설 아래 대목 때 단돈 10만원이 없어서
외제차를 타고 명품가방이나 시계를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빌려러 온다는 기사를 보았다.
옛날 한 때 라도시계가 인기가 있어서 동남아에서 시계밀수가 성행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선원들은 너도나도 차고 세관박스를 통과하고(물론 개밥을 내야 했지만, 여기서 개밥이라고 하는 것은
선원들이 돈을 조금씩 걷어서 세관에 잘 봐달라고 상납하는 돈을 지칭하는 것이다)
개나 소나 차는 흔한 것이 라도(Rado)시계였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이 많았다.
주말에 외출하여 친구들과 만나 커피라도 한 잔 하려면 호주머니에
차비와 커피값은 있어야 하는데 단돈 몇 천원이 없을 때가 많았다.
집에서 부쳐오는 용돈이 올날은 아직 멀었고, 친구들한테 돈을 빌리기도 어려울 경우
어쩔 수 없이 급한 경우 전당포를 찾았다.
손목시계는 단골메뉴이고, 독일제 계산자와 제도기도 들고 나갔다.
당시에는 컴퓨터나 전자계산기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엔지니어가 되려면
지수,로그를 계산자로 대충 계산하려고 산 것이고, 제도기는 도면을 그리기 위한 것이었다.
먹물을 찍어서 도면을 그리는데 기계제도를 두 학기나 공부를 했다.
어떤 친구는 잘 그린 친구의 도면을 유리창에 원본을 대 놓고 연필로 바로 카피하여
그 위에 먹물로 그린 친구들도 있었다.
진해 있을 때(군복무시절)도 출동 나갔을 때
잠시 접안하여 식수나 연료를 수급할 때 밖에 상륙하여
술이라도 한잔 해야 할 경우가 있었는데
주머니에 돈이 떨어져 할 수 없이 전당포에 손목시계를 맡기고
몇푼 받아서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출동중에 맡긴 시계를 그것을 찾으려고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수병에게
시계를 찾아오라고 돈을 주었더니 그 돈마져 홀랑 술을 받아 먹어버린 얌체도 있어
결국 손목시계만 날리고 말았다.
가난한 시절에는 전당포도 주변에 많았다.
시내 으슥한 골목 안쪽에는 으례 전당포가 한 두개는 있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는 수중에 있는 값어치가 있는 물건들은 무엇이나 맡기면
돈을 빌려 주었다. 어떤 친구는 안경까지도 잡히고 돈을 빌리는 친구도 있었다.
알고보면 전당포 이자가 상당히 높았지만 서민들이 이용하기엔 편리한 측면도 있었다.
아마 일제시대부터 시작된 대부업종의 일종이 아닌가 생각된다.
강원도 강원랜드 앞에 가면 고급자동차를 비롯하여 명품들을 맡기고 돈을 빌려가
노름하다가 다 잃고 가는 사람도 허다하다고 들은 바도 있다.
한 때 살기가 나아지자 전당포가 사라졌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살기가 차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