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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소고 1: 각주 달린 번역서
신복룡(申福龍) 교수(1942년생)가 번역한 <삼국지>를 받고 가벼운 글을 세편 올립니다. 역자는 나와 친분이 두터운 분일 뿐 아니라 이 번역본은 한국에서 나온 수많은 번역서 중 아마도 각주가 붙은 유일한 ‘연구서’와 같은 책입니다. 그냥 받고 넘길 수 없어 <삼국지>에 대해 나의 생각을 보탠 것입니다.
오늘(5.2)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가 지휘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Orfeo 채널에서 들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채널이름이 Classica 이었는데 어느새 Orfeo 로 바뀌었네요. 오자와는 멋진 일본인 지휘자이지요. 2악장 중간부터 들었습니다. 마침 신복룡 교수님의 번역본 <삼국지>에 관해 쓰던 중이라 <비창>의 마지막 부분을 ‘보고’ 싶었습니다. 보통 팡파르로 끝나는 교향곡들과 달리 조용히 스러지는 <비창>은 100년 드라마인 <삼국지>의 수많은 영웅들이 마치 ‘물거품 같이 사라지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드럼(?) 소리가 조금씩 낮아지면서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듯’ 서서히 끝나는데 지휘자 오자와는 마지막 부분에서 입술을 약간 떨면서 씰룩거리고는 눈을 감는데 눈물인지 땀인지 맺힌 게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漢)의 부흥을 내건 영웅들이 하찮게 보인 사마의(司馬懿) 부자와 손자에게 먹힌 것 같은 실제 상황과 겹치더군요.
이 글은 <삼국지>에 대한 ‘서평’이 아닙니다. 나관중(羅貫中)의 <삼국지>가 나온 지가 언제인데, 최소한 600년은 넘은 소설인데 무슨 서평입니까?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삼국지>에 대해 너무나 해박해서, 요즘 표현으로는 덕후(한 분야에 미칠 정도로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말 otaku/御宅/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바꿔 부른 ‘오덕후’의 줄임말로, 그 방면의 대가를 지칭-편집자 주)가 많아서, 아는 체하며 쓰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이 글은 <삼국지>와 신 교수님과 얽힌 이야기와 나의 소회를 간단히 적은 겁니다.
내가 <삼국지>를 처음 만난 건 국민학교 3-4학년 때 <학원>에 김용환이 그린 ‘코주부 삼국지’였습니다. 장비가 술에 취해 서주성을 여포에게 뺏기는 이야기였으니 <삼국지> 중 첫 부분에 해당할 겁니다. 원본 총 120회 중 14회이군요. 그 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도서관에서 정음사 판 <삼국지>를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4권 ‘적벽대전’편은 이미 대출되어서 오래 동안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정음사 판 10권 중 마지막 ‘천하일통’편을 제외하고 9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음사 판은 역자 및 발행자가 최영해(崔暎海)로 나오는데 사실은 역자 박태원이 월북하여 출판사 사장 최영해의 이름으로 나온 것이라고 하죠. 한자가 어려우나 번역이 유려하고 몇 번 읽어도 지겹지 않았지요. 그 외 유비가 돗자리 장사를 하면서 어머니께 차를 봉양하고 장비가 돼지고기를 우물 안에 넣고 큰 돌로 덮어 보관하며 장사하는 이야기 등 나관중의 <삼국지>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아마도 일본인이 쓴) <삼국지>도 보았으나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해 중단했습니다.
원래 <삼국지>는 중국 정사(正史) 24사 중 하나로 서진(西晉)의 진수(陳壽, 233-297)가 쓴 역사서 <삼국지>입니다. 그리고 천년이 지나 송나라 때 배송지(裴松之)가 주석을 추가하여 분량이 늘어난 것이죠. 진수의 아버지가 제갈량의 첫 북정 때 가정을 잃은 마속의 부하로 제갈량에게 벌을 받았다고 해서 <삼국지> 정사는 제갈량을 좋지 않게 평했다지만 ‘사가(史家)’ 진수가 조조의 위(魏)와 이를 이은 진(晉)을 삼국의 중심국가, 즉 ‘정통’으로 삼았으니 편협하게 쓴 건 아닙니다. 소설 <삼국지>가 아니라 역사서 <삼국지>로서는 당연한 평가일 겁니다. 제갈량에 대해서는 공과(功過)는 후대에 함께 논의되고, 지금까지도 논의되고 있지요. 역사서 <삼국지>는 또 우리에게 익숙한 ‘위지’의 ‘동이전’ 부분에 부여와 고구려 등에 관한 기록을 포함하고 있어 한국 고대사 연구에 주요한 자료를 제공해 줍니다.
나관중이 쓴 것은 ‘소설’ <삼국지>이며 정확히 말해 <삼국지연의>, 혹은 <삼국연의>로 중국의 고전 역사소설 범주인 ‘연의’에 속합니다. ‘삼국의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역사 <삼국지>는 영어로 History of Three Kingdoms이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는 Romance of Three Kingdoms로 번역합니다. 중세유럽에서 기사들의 사랑과 모험, 무용담 등을 담은 이야기 ‘로망’과 같은 부류라는 말입니다. 신교수님이 이를 알면서도 책 제목을 굳이 <삼국지>라고 붙인 것은 한국인이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삼국지’라는 이미지를 부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삼국연의>라고 나왔으면 많은 독자들이 ‘이게 뭐야?’하면서 이상을 반응을 보였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교수님이 보내주신 우편물을 열고 ‘삼국지’를 보는 순간 쬐끔 놀랐다는 게 솔직한 고백입니다.
2017년 봄이더구요. 회의 차 세종시로 가는 버스에서 신교수님과 <삼국지> 번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미 번역과 주석을 다는 작업은 끝났고 오역이나 틀린 한자발음을 고치면서 출판사와 이야기하고 있던 시기였을 겁니다. 그러니 이 책이 나오기까지 난고의 시절이 얼마나 길었는지 심심한 위로와 경외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수백 년에 걸쳐 한국인들이 읽어 온 <삼국지>에서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특히 요즘 읽히는 <삼국지>의 온갖 오류를 바로 잡은 것은 귀중한 ‘학문적’ 성과입니다. 나도 나관중의 <연의>를 독자들이 잘 이해하시도록 그냥 <삼국지>라 쓰겠습니다.
신교수님이 기억하실지 모르시겠지만, 버스에서 나의 첫 반응은 ‘팔릴까요?’였습니다. 우리 세대라면 궁금해서 각주를 찾아보고 싶은 분들이 많겠지요. 그런데 요즘 애들은 만화나 게임으로 <삼국지>에 접하는데, 어려운 주석이 있는 책이 얼마나 읽히고 또 팔릴까 걱정이 되었던 겁니다. 연구서도 주석은 책의 흐름을 끊기 때문에 가급적 줄이고 본문에 소화하라는 건데 ‘소설’에서 각주를 찾아 읽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는 번거로움을 마다할 독자들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우려했던 겁니다. 이번에 책을 보니 나의 우려는 기우(杞憂)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글을 읽어 내려가는데 각주가 별 지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나와 같이 수십 년간 <삼국지>를 접하면서 의문을 가져온 세대들은 모르는 부분에 부딪치면 자연히 눈길이 각주로 내려가 많은 깨우침을 받게 되더군요. 앞으로 배송지에 이은 한국인 <신복룡의 주해 삼국지>라고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러나 신교수님의 <삼국지>가 베스트셀러가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아시죠? 많은 분들이 읽지는 못해도 들어보기는 했을 겁니다. 하버드 대학 교수가 쓴 정치 철학서입니다. 이 책이 어느 나라에서 제일 많이 팔렸을까요? 미국이나 서구 국가들에서는 2만권에 미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일본에서는 5천권 조금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20만권 정도 나갔다고 하네요. 누가 이 난해한 책을 샀을까요? 철학, 정치, 사회학과 등 전공분야 교수와 학생들일까요? 아닙니다. 대학 수능을 앞둔 수험생 엄마들이었다고 합니다. 논술 시험에 사회정의와 관련된 문제가 종종 나오니 학교와 학원에서 이 주제를 다룰 때 이에 관한 최신, 최고(?)의 연구서를 답안지에 한 줄 쓰면 점수를 잘 받을 것으로 착각한 겁니다. ‘롤스의 <정의론>에 의하면....’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정의’의 문제는 플라톤 이후 철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니 굳이 롤스를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또 어느 분이 온갖 썰을 풀어 부풀린 <삼국지>도 논술 바람을 타고 떼돈을 벌었다고 하지요? 이런 종류가 몇 권 있다는데 나는 보지 않았습니다. 원본의 번역에 익숙한 나는 군더더기가 더덕더덕 붙은 건 딱 질색이니까요. 신교수님의 <삼국지>는 어떤 바람을 타야 돈을 벌수 있을꼬? 그래서 가난한 글쟁이들에게 복의 씨를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될 수 있을꼬? 기도해 봅니다.
나는 <삼국지>를 읽으면서 비장감이랄까 비극성에 따른 페이소스를 느낍니다. 비극이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 앞에 좌절할 때 느끼는 것이지요. 삼국 중 오나라는 강남에 안주하여 편안하게 지낼 뿐 천하통일의 의지는 없었지요. 셋 중 가장 국력이 약한 촉이 불가능에 가까운 통일 ‘대업’에 도전합니다. 한실부흥을 목표로 의형제를 맺은 유비, 관우, 장비가 하나씩 사라지고, 제갈량이 북벌에 성공하지 못한 채 죽을 때 비극성은 절정에 달합니다. 오장원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가을 하늘을 올려보고 ‘유유한 창천아 어이 이리 야속한고...’를 외치고 죽는 제갈량을 생각해 보세요. 유유창천은 시경(詩經)에 나옵니다. 주(周, 기원전 1046-기원전 256)의 수도 호경(鎬京, 현재의 西安 부근)이 견융(犬戎)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지요. 뒷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잡초만 무성한 옛 파괴된 도읍을 보고는 하늘을 향해 ‘유유한 창천아, 누가 이런 짓을 했는고.’라고 울부짖습니다. 절망과 허탈한 심정을 내뱉는 중국적 표현 중 가장 마음에 와 닫는 말이죠.
우리 때 고3 국어교과서에 실린 ‘두시언해’의 촉상(蜀相)도 비탄의 심정을 말해줍니다. 두보다운 비극미가 넘치지요.
三顧頻煩天下計 삼고빈번천하계 하니,
兩朝開濟老臣心 양조개제노신심 이랴
出師未捷身先死 출사미첩신선사 하니,
長使英雄淚滿襟 장사영웅누만금 이라
(유비가) 세 번 찾아 와 천하를 위한 계책을 내놓고
두 임금을 섬겨 나라를 열고 구한 늙은 신하의 마음이랴.
군사를 내었으나 이기기 전에 몸 먼저 죽으니
후대의 영웅들은 길이 눈물을 옷깃에 적시네.
그런데 나의 페이소스가 향하는 곳은 천한통일을 향한 촉의 몸부림이나 제갈량이나 관우 등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아닙니다. <삼국지>의 저자인 나관중(1330?-1400)입니다. 삼국시대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사마의의 손자가 조조의 위(曹魏)를 멸하고 세운 진(西晉, 265-317)이 통일을 달성한 이후 구전과 연극 등으로 천년을 내려왔습니다. 송 시대 20-30명을 모아두고 무성영화 시절 성우와 같이 썰을 푸는 방식 말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많았기 때문이겠지요. 관객들은 유비가 패해 도망가는 부분에서는 함께 탄식하거나 울고 조조가 패하면 박수를 쳤다고 하더군요. 이것을 원말-명초에 나관중이 집대성하고 그의 상상력이 추가되어 <삼국지>라는 소설로 탄생한 겁니다. 그래서 사실이 7, 허구가 3이라고 하죠. 인기 있는 적벽대전 편은 사실 3, 허구 7이랍니다. 관우가 하웅을 벤 것, 조조에게 항복할 때 3가지 조건(土山約三事), 단기천리(單騎千里)와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 제갈량이 조조군의 남진에 맞서 신야를 불태운 것, 강하로 도주할 때 조운이나 장비의 무용담, 적벽대전에서 화살 10만전을 얻고, 하늘에 빌어 동풍을 일으키고, 관우가 화용도에서 조조를 살려주고, 제갈량이 가정을 잃고 퇴각 중 서성(西城)에서 성문을 열고 성루에서 거문고를 타자 사마의가 후퇴했다는 공성계(空城計) 등은 나관중의 창작이거나 과장된 것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시들도 나관중이 쓴 것이 많지요.
나관중은 원나라 말기에 봉기한 영웅들 중 명태조 주원장과 대립하던 장사성(張士誠, 1321-1367)아래 있었던 전력(前歷) 때문에 명이 건국된 후 벼슬길에 나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주원장 밑에는 제갈량보다 뛰어나다는 유기(劉基, 1311-1375)란 책사가 있었지요. 강태공 (혹은 장량), 제갈량과 함께 중국 역사상 3대 책사로 꼽히지요. 대업의 ‘성공’이란 측면에서는 제갈량보다 한수 위 등급입니다. 나관중이 집에서 빈둥거리니 마누라는 돈 벌어오라는 내쫓고... 그래서 <삼국지>와 <수호전> 등을 지었다는 이야기들이 있지요. 특히 그는 원말 최대 세력이었던 진우량(陳友諒)과 전선의 크기나 규모면에서 그 보다 열세였던 주원장 간의 건곤일척의 대결인 파양호 전투(鄱陽湖, 1363.8-10)를 적벽대전의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주원장 전기>에는 엄청난 크기인 진우량의 병선에 대적할 길이 없이 작은 배에 건초와 화약을 싣고 돌진하는 전술이 나옵니다. 적벽대전의 신호를 올리는 황개의 돌격과 유사하지 않은가요? 주원장은 이 전투에서 이기고 반원(反元) 봉기의 중심에 서면서 1368년 명을 세웁니다.
자, 이제 무대는 대강 마련된 것 같지요? 벼슬길은 막혔지만 뜻이 장대한 중년 지식인 나관중이 가슴에 품었던 꿈과 회한을 소설로 쓴 겁니다. 그러면 어느 한 영웅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게 자연스럽지 아닌가요? 아마도 나관중은 스스로를 제갈량이라 생각하며 때로는 제갈량을 신격화시켜 통쾌한 이야기를, 때로는 슬픈 이야기를 마음껏 상상을 나래를 펼치면서 썼을 겁니다. <삼국지>의 서시격인 양신(楊慎: 1488~1559)의 ‘임강선(臨江仙)’은 장강은 흘러 흘러 동으로 가고(滾滾長江東逝水, 곤곤장강동서수), 낭화도진영웅(浪花淘盡英雄)이라, 수많은 영웅들이 물거품같이 일어났다 사라진다고 읊습니다. 신 교수님은 이들 수많은 영웅들 중 강유(姜維)를 최고의 인물로 꼽지만, 그는 <삼국지>라는 드라마에서는 제갈량이 죽은 뒤인 anti-climax에서 잠깐 등장하는 주역 중 한명이지요. 요즘 나온 94편 중국 드라마 <삼국지>는 제갈량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립니다. 초와 오의 멸망까지 다룬 옛날 <삼국지> 드라마에서는 강유 역에 유명 배우를 캐스팅했지만 94편에서는 초라하다 싶을 정도의 인물이 강유로 나오더군요. 신교수님도 마음속으로는 나관중과 같이 제갈량에 스스로를 투사하지는 않았나요? 얼굴도 제갈량을 닮아 미남이시구.... 강유를 내세운 것은 속마음을 감추기 위한 게 아니었나요? 이제 그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찔끔하지 않은가요? 나관중은 멋진 인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소설이 아니라 저자에게서 페이소스를 느낀다는 겁니다.
‘임강선’, 강변의 신선이 부르는 노래도 재미나는 발상이지요. 저자 양신은 나관중이 죽은 지 한참 후인 명 중기 사람인데 이 시를 청나라 문인 모륜(毛綸), 모종강(毛宗崗) 부자가 나관중의 <삼국지>를 개작하면서 서시로 넣은 겁니다. 이 시는 <삼국지> 이미지와 꼭 맞아 모두들 나관중의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지>는 주자학적 분위기가 팽배한 조선의 조정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했으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읽었다는 기록도 있지요. 이후 조선 사신이 청에 갔을 때 청의 장군이 비밀병서라면서 보여주는데 <삼국지>이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202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