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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만 배우는 이를 따라서 오로지 입으로만 힘써 취하면 안된다.
※ 단어풀이 · 학어자(學語者) : 말을 배우는 사람 · 구판(口辦) : 입갗춤. 말 잘함의 조건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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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본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흉내만 내고 있다 이것입니다. 법문의 본의와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깊이 없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말만 흉내 내고, 자료 모아서 나중에 강연 때 써먹고, 정작 본의는 파악 못하고. 막상 진짜 깊이 있는 공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실생활에 써먹어 봐야지요. 교당에서 식사 당번도 되어보고, 청소도 해보고, 처처불상도 해보고, 그래야합니다! 교당을 형식으로만 다니고, 몇 년 다녔다는 이야기만 하고, 정작 진짜 실생활에서 써먹어보지는 안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불교에선 이것을 ‘입만 보살’이라고 합니다. 부처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귀만 부처, 입만 부처, 인 사람들이 있답니다. 듣기만 많이 듣고 말로만 하는 그런 부처들. 마음공부는 귀신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귀신도 모르게 적공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중공양 하는 식 당번이라고 합시다. 이것은 복 지을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근데 이것을 하기 싫어한다? 마음공부 학사 한다고 하면 다들 합력해야지요. 복 지을 기회입니다. 공적인 일을 할 때 솔선수범해서 도와주느냐, 버티고 있다가 나중에 달콤한 결과물만 받아먹을 것이냐. 수많은 사람이 결과물만 받아먹으니까 갑갑해서 지눌스님이 이런 글을 지으시고 정혜결사를 만드신 것입니다. 지금 제 마음이 똑같습니다. 답답합니다.
⇒ 이른바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이루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를 이루는 것과 같아
※ 단어풀이 · 소위(所謂) : 이른바,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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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물이 독이 있고 우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소가 먹었느냐, 뱀이 먹었느냐의 차이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예를 들어보지요. 칼로 사람을 죽였다고 합시다. 칼이 나쁜가요? 칼은 죄가 없습니다. 칼로 목공을 할 수도 있고 요리를 할 수도 있지요. 근데 그 칼로 살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칼은 그냥 칼일 뿐입니다. 칼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인 것이지요. 맹물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즉 가르치는 자 역시 중요하지만 배우는 자의 마음이 참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이 살아 있느냐, 내 마음이 공부심으로 충천해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우가 사자 소리를 흉내 낸다고 합시다. 아무리 그래봤자 여우 소리입니다. 즉 흉내 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근본 바탕이 중요하다는 소리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말을 흉내 내는 것 보다 본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본의를 파악했느냐, 신심이 있느냐는, 바로 경계를 당해보면 압니다. 이를테면 이번 학사마련 바자회를 보면 됩니다. 신심 있는 사람은 도움 되고 싶어서 안달 났는데, 너희는 열심히 해라 나는 바쁘다. 그러는 사람들이 있지요? 개인 사정이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백수도 바쁘고 할아버지들도 바쁩니다. 개인 사정없는 사람 없습니다. 시간을 얼마냐 ‘내서’ 하느냐의 차이지요. 우리 교당에서도 법문의 우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뱀의 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법에 묶이고, 정에 묶이지 마십시오. 물론 정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결혼식도 가주고 단회도 하고 즐겁게 놀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 교화단이 어떤 집단인지 잊으면 안 됩니다. 정은 법을 공부하기 위한 정입니다. 법을 공부하려고 같이 밥도 먹고 같이 놀고 그러는 것이지요. 근데 법이 없으면? 오히려 생사윤회에 착심만 증강시키고 업력만 쌓게 됩니다. 법 공부하려고 모여서 업만 지으면 안 되지요. 정만 취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들은 법당에 들어오면 일원상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인사부터 하지요.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일원상부터 봐야합니다. 자 목수는 무엇을 합니까. 나무를 자르고 깎습니다. 왜 하느냐, 바로 작품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근데 자르고 깎으면서 내 마음의 업도 자르고 깎으면 참 큰 목수가 됩니다, 그런데 그냥 자르고 깎기만 하면 큰 목수는 될 수 없습니다. 자 뱀을 잘 그리는 화가가 있다고 합시다. 그 화가가 어떤 마음으로 그리느냐가 다릅니다. 기술만 있다고 해봐요, 그러면 항시 뱀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 화가는 내생에 뱀으로 태어나기 봤자 더 하겠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행위를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서원을 챙기고 목적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의사 한 명이 강남에 개업했다고 합시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강남에 개업을 했다면 앞서 말한 화가랑 다르지 않습니다. 자 원불교를 다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원불교를 믿는지, 왜 교당에 오는지 다시 새기십시오. 사람이 좋아서 다니지 마십시오. 즐기려고 다니지 마십시오. 내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니까 다니지 마십시오. 법을 공부하기 위하여 본의를 알고 다니십시오. 적을 아무리 잘 물리쳐도 내 마음의 적을 물리치지 못하는 장수는 진짜 장수가 될 수 없습니다. 원불교 와서 깨달음을 얻는 교도가 되어야지 몇 년 다녔다고 허울이나 커진 교도가 되면 안 될 일입니다.
⇒ 지혜로운 이의 배움은 보리(깨침)를 이루고, 어리석은 이의 배움은 생사를 이룬다함이 이것이니라.
※ 단어풀이 · 지학(智學): 지혜로운 이의 배움. · 보리(菩提): 위없는 깨달음. 바른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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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했던 것처럼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한다면 보리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의를 파악해서 깊이 있게 들어가면 반드시 보리를, 즉 깨침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다못해 주먹 쓰는 깡패들도 신의가 있어요. 그런데 하물며 종교가에서도 배반하고 대의 없고 신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결혼식 갈 때 마다 괴롭습니다. 예식장에서 교당은 안 오고 결혼식은 나타나는 교도들을 봅니다. 법은 아니고 정만 찾아오는 교도. 법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하근기입니다. 그래서 우학성생사(遇學成生死), 어리석은 이의 배움은 생사를 넘지 못합니다. 이것을 절에서는 ‘절 도깨비’라고 합니다. 절에 사는 도깨비라는 것입니다. 절에서 신자로 활동은 하는데 어리석고 하근기라서 절에서 하는 소리가 맨날 주지스님 뒷담화나 하고, 반찬 투정이나 하고. 자기 인연이나 늘리고 있고, 쟁투나 하고, 먹지 말라는 술이나 같이 먹고 있고, 현애상이나 내서 어려워 못해먹겠다고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제가 오늘 익산에 갔다 왔어요. 사무국장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사무국장님 저번에 교무 훈련 할 때 같은 방을 쓰시던 분인데요. 참 괜찮은 분이십니다. 아버지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아들은 둘인데 한 명은 출가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출가시키기가 힘들다고 하는데 마음이 짠 하더라고요. 근데 오늘 장례에 갔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교무님도 독자이고 아버님도 독자였나 봅니다. 그런데 출가 했습니다. 교무님과 정토회원, 아들 둘, 그들 밖에 없더라고요. 출가한 큰 손자를 할아버지가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자 정릉교당에 열심히 법문문자 보내는 교도가 있다고 합니다. 근데 다들 “곧 마음 식을 것이다”라고 한 대요. 이게 업 짓는 것입니다. 자 이런 문자 받으면 우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가 회장님께 그랬어요. 회장님 답장 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대요. 제가 그래서 답장 하고 그 교도에게 불공 잘 하라고 했어요. 초발심 낸 사람을 격려하고 독려할 것이 아니라, “곧 그 마음 식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마음 식게 하는 짓입니다. 교도들이 발심한 사람들을 마음 식게 만듭니다. 어리석은 이들은 업을 짓고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고 죄업에 빠집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법을 공부하러 와서 죄를 짓고 있어요. 제가 전농교당에 있을 때, 어떤 여자 청년이 “제원 교무가 담배 피는 것을 보았다”고 다른 청년들에게 막 소문을 냈습니다. 그러다가 교당 안 나오더라고요. 근데 참. 제가 한 대라고 피웠으면 참회라도 하겠다만. 제가 출가해서 단 한 개비도 피지 않았거든요? 성질나서 마음으로는 피워본 적 있지요. 하지만 한 대도 안 폈는데 제가 담배 피는 것을 보았대요.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막 소문내더라고요. 저와 선연이 되겠습니까? 하다못해 제가 담배를 피웠더라고 하더라도 심지어 그러더라도 제 말이 올바른 법문이라면 취해야지요. 밤길에 횃불이 있는데 죄인이 횃불을 들었다. 그러면 아무리 죄인이라도 횃불을 따라가야지요. 올바른 정법이라면 따라야지요. 죄인이 횃불 들었다고 안 따라가면 어둠 속에서 고꾸라져 넘어지기나 하겠지요. 여러분 이렇게 생각 해 보세요. 나라면 교무님처럼 매주 법회 보겠는가, 나라면 처자식 놔두고 정법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 하고 난 뒤에 교무님을 시비 해 보세요. 저를 시비해 보세요.
⇒ 또 법을 주관하는 사람에게 경박상(업신여기는 생각)을 반드시 내지 말라.
· 주법인(主法人): 법을 주관하는 사람 · 경박상(輕薄想): 경솔하고 가벼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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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장에서 법을 다루는 사람을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솔선수범 하라는 것이지요. 단장, 중앙, 회장단이 솔선수범 해야지요. 오히려 신심 장한 교도가 교무를 괴롭힐 때가 있습니다. 스승을 잘 모실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법입니다. 제가 언제 무슨 일 좀 신문에 내라고 했더니 “하이고 교무님 언론 타시려고 그러네.”라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그 소리를 듣고 참 답답했어요. 저를 사회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다니요. 자기의 주견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달마대사가 면벽을 했지요. 왜 면벽했을까요. 법을 이을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혜가가 나타나서 달마에게 법을 구했지요. 그런데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제자를 기다리며 면벽 한 것이었는데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혜가가 눈보라 속에서 하룻밤을 동굴 앞에서 지새고 팔을 잘라내고 신심과 구도심을 표시하고 나서야 달마가 “그 정도 마음이라면 내가 너를 제자로 거두어 이 법을 가르치겠다.”고 하여 가르쳤습니다. 종교는 구도심으로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도심이 있어야 합니다. 전화하고 밥 사주고 챙겨주면 한 번씩 법회 출석하는 것,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구도심으로 이곳에 와야지요. 여러분 지눌스님의 제자 중에 한 명이 금나라 황제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금나라 황제의 등창병을 지눌이 법력으로 고쳐주어서 보답으로 황제가 지눌스님께 붙여준 제자입니다. 진각이라는 이름이었는데, 키도 크고 잘생겨서 지눌스님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래서 지눌스님이 그랬지요. 너는 도를 아느냐. 너는 길을 아느냐. 법의 길도 모르면서 뒤에서 업신여기는 제자였던 것이지요. 그제서야 그는 크게 참회했고 그 사람이 진각스님이라고 유명한 스님이 되신 것입니다.
⇒ 경박상을 낸 것으로 인하여 도에 장애가 있으면 능히 닦음에 나아갈 수 없으리니 반드시 이를 삼갈지어다.
· 지(之) : 대명사적 성격의 어조사 · 진수(進修) : 닦음에 나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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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경박상이 무엇인가요. 경박상은 가벼운 생각, 경박한 생각입니다. 자기 생각, 선입견입니다. 자기 경험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처음엔 그렇죠. 처음엔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예법을 배우고 자기가 왜 이 자리에 왔는지 돌아보고 그래야지요. 여러분 삼장은 경률론이라고 합니다. 서유기의 삼장법사는 이 세 가지에 전부 능했던 사람이라는 소리입니다. 경은 경전. 률은 규칙입니다. 론은 제불조사 중에서 조사들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해석하고 당신의 깨달음을 설해놓은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은 대장경, 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론까지 모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긴 것입니다. 자 그런데
⇒ 논에 이르되, 어떤 사람이 야행(밤길)에 죄인이 횃불을 잡고 길을 맡았거든, 만약 사람이 악한 까닭으로써 광명을 받지 아니하면,
· 집거(執炬) : 횃불을 잡음 · 당로(當路) : 길 안내를 책임짐. |
론에 이렇게 써 있었다네요. 논에 이르되, 어떤 사람이 밤길에 죄인이 횃불을 잡고 길을 맡았거든. 밤엔 불빛이 중요합니다. 밤에 횃불이 있으면 누가 들었든 상관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들었든, 죄인이 들었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들었든, 나는 그저 그것을 따라 잘 가서 진흙탕을 피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에~죄인이 들었네~그러면서 따라가지 않아 버린 다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인가요. 교무님 마음에 안 드니까, 단장이 마음에 안 드니까, 그래서 교당 안 나오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교무님 바뀌니까 교당 안나와버리고. 제가 원남교당 처음 갔을 때, 저 이전의 교무님이 총각 교무님이었대요. 제가 가니까 여자애들이 안나와버리더라고요. 그 여자애들이 법으로 다닌 것이 아니라 정으로 다닌 것이지요. 교무가 총각이고 아니고 잘생기고 못 생기고가 무슨 상관입니까? 스님이, 단장이, 주무님이, 회장님이, 교무님이 내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가 무슨 상관입니까? 영어 선생님이, 지리 선생님이 내 마음에 안 들고 성격이 거지같으면 어떻습니까? 나는 영어 공부하고 지리 공부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까 교무님이 담배 폈다는 소문 들으면 떠나는 교도가 있을 것입니다. 근데 그러면 뭐 어떻습니까? 교무는 부처님의 법을 설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으라고 솔성요론 제1조에 써 있는 것입니다. 저는 대각여래위도 아니고 출가위도 아닙니다. 근데 그렇다고 이 교당 안 다니시렵니까. 선입견의 선글라스를 벗으십시오. 투명하게 보십시오. 약이인악고불수광명(若以人惡故不受光明). 이것은 무슨 소리냐. 악한 사람이 빛을 들었다고 빛을 안 받아 버리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악인이 들었으니까 빛을 따라가지 않아버린다. 자 작년에 단원들이 식당번 안 해준다고 교당 떠난 단장이 있습니다. 식당번 안하면 뭐 어때요? 그게 교당 다니는 것, 법 공부 하는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대종사님 당대 법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음악의 명창이 지나가다가 어떤 사람이 소리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더래요. 그 사람의 제자가 들어보니 스승님 보다 훨씬 못하더래요. 그래서 “스승님보다 훨씬 못 하는데 뭐 듣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대요. 그러니 스승이 “저 못하는 가운데서도 나보다 능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배웠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소리를 전체적으로 못할지 몰라도 능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취하면 되지요. 여러분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아무리 무식하고 멍청해도 전공 했고 몇 년씩 가르친 사람인데 여러분 보다 부족했겠습니까? 원불교 교무도 아무나 되는 것 아닙니다. 면접도 있고 시험도 있고 참 어렵습니다. 저 공부할 때 필기시험 1등한 사람이 있는데 면접에서 ‘심법이 아니다’라고 해서 떨어진 사람도 있어요. 교무고시 쉽지 않습니다. 교무 되려면 공부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설사 그 교무가 조금 모자란다고 해도 어렵게 어렵게 해서 일단 교무가 되었다면 신자로써 예법으로써 대해야지요. 내 마음에 드나 안 드나와 상관없이.
⇒ 구덩이에 빠지고 참호에 떨어져버린다 하시니 법을 들을 적에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여
※ 단어풀이 · 타갱(墮坑) : 구덩이에 빠짐. · 락참(落塹) : 참호에 떨어짐. · 박빙(薄氷) : 얇은 얼음. |
횃불 떠나서 가다보니까 어떻게 되었느냐, 구덩이에 떨어지고 참호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니 법을 들을 때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경에 나오는 말인데요. 전전긍긍 두려워하고 조심하라 여림심연은 깊은 연못을 건너가듯 조심하라는 소리입니다. 여리박빙은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하라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조심해서 법문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다 일어나서 법문을 들었다고 해요 자꾸 졸고 그러니까.
⇒ 반드시 모름지기 귀와 눈을 기울여 현묘한 소리를 들으며 마음 티끌을 맑히어 그윽한 이치를 완상하다가
· 현음(玄音) : 현묘한 소리 · 정진(情塵) : 번뇌 · 유치(幽致) : 그윽한 이치 |
집중하여 현음, 현묘한 소리를 들으라. 여러분, 검을 현이라는 단어를 보십시오. 검다는 것은 그냥 검은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오묘하고 깊은 것인지 몰라요. 그것이 현음입니다. 진짜 현음은 설한 바 없이 설한 법문입니다. 여래의 말씀입니다. 내 주장, 상에 가득한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들은 바 없이 듣는 것이 참 들음입니다. 여러분 법문 그냥 듣지 마세요. 메모 하고 필기 하세요. 그게 무엇입니까? 앉아서 망념이나 하고 있고. 여러분 필기하십시오. 법회시간에 수다나 떨고 핸드폰이나 보고 졸고 있고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리하여 마음 티끌을 맑히고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업덩어리, 번뇌 덩어리를 맑혀야 합니다. 그 덩어리들은 생각입니다. 무슨 생각이냐, 선입견과 주견과 관념입니다. 108번뇌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맑힙니까. 염불, 좌선, 기도, 사경, 이게 전부 다 맑히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법문 들을 때 늦게 오지 마십시오. 늦게 오니까 앉아서 법문 들을 때 교무님 오늘 말씀이 부담스럽고 그러는 것은 왜 그러느냐. 일찍 와서 불전에 헌배하고, 기도하고, 사은님께 감사하고, 마음을 맑히고, 마음을 비우고, 그러고 법문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번뇌가 없이 맑혀서 들으니까. 늦게 와서 지각해서 맑지 않고 관념과 경박상 있는 상태에서 들으니까 제 법설을 듣고 마음이 아프다고 그러고 독 같다 그러고 찔린다고 그러고 불편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편한 진실은 듣기 싫지요. 그러나 진실 맞습니다. 내 마음이 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편한 것입니다. 상처 났을 때 소독약을 바르면 너무나 쓰리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소독약을 바르면 아프다고 해서 호호 불기만 하면 낫지 않습니다. 쓰린 소독약을 발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상처가 나으려면 소독약을 발라야 합니다. 여러분 법을 공부하러 와서 좋은 말만 듣고 가려고 하면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번뇌가 일어나면 그저 구경하십시오. 완상하십시오. 이 번뇌가 어디서 왔는가, 그저 뚫어보십시오. 번뇌에 속지 말고 그 번뇌를 그저 완상하십시오. 자학하지도 마세요. 경계 따라 그럴 수도 있지요. 그저 지켜보십시오.
⇒ 법당에서 내려온 후에 묵묵히 앉아서 이를 관 하되 만약 의심하는 바가 있거든 널리 먼저 깨달은 이에게 여쭈며
· 선각(先覺) : 선지식 |
법회가 끝나면 수다 떨고 핸드폰 하고 그러라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앉아서 관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까 법회 중에 들었던 의문이 있으면 그것을 묵묵히 관조하여 선각자에게 물으라는 소리입니다. 어떻게 물으느냐.
⇒ 저녁에 고민하고 아침에 물어 실오라기 털끝만큼이라도 어그러지지 말지어다.
· 불람(不濫) : 어그러지지 않음. 넘치지 않음. · 사발(絲髮) : 실오라기 털 끝. 아주 조금. |
저녁에 고민하고 깊이있게 고민한 뒤에 그 다음에야 물으라는 소리입니다. “저 생각났는데요!”하고 바로 물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날에 “네가 무슨 질문 했냐?”하고 질문하면 모르는, 그렇게 생각 없는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안하는 것 보다는 없는 질문이라도 하는 게 낫습니다. 교당내왕시 주의사항을 보면 어떠한 감각이 있었고 의심이 밝아졌는지 소득유무를 반조하여 보고 실생활에 활용하기를 주의하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이렇게 실생활에 활용하면 관문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화요공부방 안 나오지 않지요. 매번 똑같은 법문 한다고 안나와버린다. 웃기는 소리입니다. 관문상입니다. 실생활에 활용하고 문답감정 하면 화요공부방 빠질 리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배우는 파트에 교당내왕시 주의사항 전부 다 들어있습니다. 물론 모르면 몰라서도 질문 할 수 없지요. 불치하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나보다 못나고 나보다 무식한 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을 묻는 것.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것. 그리고 모르는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도 모르니 질문을 안 하는 것이지요. 자 묵묵히 앉아서 관하라는 것에는 ‘복습’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러분 교당내왕시 주의사항을 학교내왕시 주의사항 으로 생각해보면 장학금 안 탈 수가 없습니다. 모든 공부에 해당되는 주의사항입니다. 복습을 하고 실생활에 활용해 보아요. 여러분 바둑 기사들은 바둑을 두고 난 후에 복기를 하지요. 까닭 없이 바둑 둔 사람은 복기할 수 없습니다. 생각 없이 둔 사람은 복기 못 합니다. 깊이 있게 둔 사람 만이 복기를 할 수 있습니다. 저번에 누가 그러더라고요. 화요공부방 타이핑을 하면 설법을 여러 차례 곱씹게 되고 법문의 소중함을 알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영상도 다시 봐야지요. 저도 제가 했던 법문 영상 전부 다시 봅니다. 공부라는 것은 끊임없이 복습하고, 절차탁마 하는 것입니다. 안다고 덮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법당에서 법회 끝나고 나서 장난이나 치고 있고 끝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러고 그런 짓이나 하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주역 괘 중에는 잠룡괘가 있습니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기 전에는 잠룡을 합니다. 여러분 그것이 석척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제 노트 제가 죽고 난 뒤에 보세요. 공부하다가 느낀 바가 있거나 의심나는 바가 있으면 바로 메모해놓고 끊임없이 연마하고 묻기도 합니다. 모르는데 넘어가고. 의심이 났는데 넘어가고. 알지도 못하고 외우고 있고. 그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실생활에서 응용도 안 되고 내 것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 날 의심난 것은 그 날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합니다. 여러분 은행에선 당일 회계를 당일 정리해야합니다. 못 하면 새벽 까지 하지요.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회계뿐만이 아닙니다. 오늘 할 일은 오늘 다 끝내고 자야 합니다. 선방에 가면 낮에 강연을 했으면 저녁에 연구하고, 다음날 아침에 조실에 가서 물어봐야지요. 모르면서도 묻지도 않고. 대종사님께서도 묻고, 묻고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의심이 없이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리고 털끝만큼이라도 놓치지 말고 어그러지지 말아야 합니다.
⇒ 이와 같아야 이에 가히 바른 믿음을 내어 도로써 마음을 품은 자라 할수 있을 것인저! |
앞에 말씀드린 이 모든 것들을 다 지키면, 그 뒤에야 비로소 바른 믿음을 내어, 진정 도로써 마음을 품은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도심 있는 사람, 원력 있는 사람, 깨달을 사람입니다. 믿은 만큼 한 만큼 소득이 있는 것입니다. 아주 정비례합니다. 10% 믿으면 10% 소득이 있고 10% 하는 것입니다. 50% 믿으면 50% 하고 50% 소득이 있는 것이고, 100% 믿으면 100% 하고 100% 소득이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돌아가신 우리 상산법사님 보세요. 바른 믿음입니다. 학교도 다니지 않은 무학자인 스승 대종사를, 경성제국대학 나오시고 재산 많은 상산님이 믿으셨고 나이 100세 되도록 스승의 말씀을 어기지 않고 믿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비로소 큰 성자이고 공적 있는 사람이고, 진정한 법기이고, 알뜰한 주인인 것입니다.
질문
박원허: 저는 횃불을 든 죄인을 채워주고 싶은데 팀 단위로 활동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무님: 채워주세요. 아랫사람의 도리를 다 하십시오. 싫어하면 몰래 모시세요. 아랫사람의 도리를 다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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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으로 훌륭한 정리입니다. 감사합니다
와오, 감사합니다. 어마어마한 공력이 보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