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백혜진 기자] 국내 유일한 ‘베이비박스’가 유기논란에 시달리며 언론에 뭇매를 맞고 있다. 최근 스웨덴 정부가 방한해 영아를 유기하는 원인, 베이비박스가 불법인 이유, 아동 보살핌 여건 등 베이비박스 실태와 입양제도를 파악한 사실이 알려지며, ‘베이비박스’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베이비박스가 오히려 젊은 미혼모들의 영아유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반면 한쪽에서는 현실적으로 꼭 필요한 제도라며 팽팽히 맞서는 분위기다. OECD 국가라고는 부끄러운 이같은 현실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 이와관련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교회 이종락 목사는 “한국이 처한 부끄러운 현실”이라며, “베이비박스가 없었더라면 음식물 쓰레기통, 야산, 화장실에 버려졌을 이 아이들을 보며 어찌 잠잠히 있을 수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이 목사가 둥지를 틀고 있는 주사랑교회를 <뉴스포스트>가 찾아 최근 베이비박스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봤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 우림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알록달록 벽화로 멋을 낸 주사랑공동체교회를 만날 수 있었다. 최근 주사랑공동체교회는 ‘베이비박스’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이 아담한 교회 내부는 현재 있는 아이들은 물론 언제 또 들어올지 모르는 간난아이들을 위해 육아용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서는 태어난 지 한시간만에 옷도 입지 못한 채 탯줄이 바짝 잘린 채 감염돼 오는 신생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신생아 버리려면 차라리 이곳으로…
고등학교 1학년을 중퇴한 A(17)양은 지난해 4월 남자친구를 사귀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다. 아이를 가진 사실도 모르고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같은 해 7월 인터넷 게임을 통해 또다른 친구를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출산일이 다가오며 A양은 남자친구와 부산으로 여행(?)을 가 모텔에 투숙했다.
A양은 모텔에 투숙한 이후 남자친구에게 밤사이 배가 아프다며 모두 4차례에 걸쳐 심부름을 시켰고, 남자친구가 밖을 나갔다 온 사이 오전 5시 무렵 남자 영아를 출산했다.
갑작스런 출산에 겁이 덜컥 난 A양은 6층 객실에서 창밖으로 영아를 던졌고, 남자친구가 돌아온 5시 30분 모텔을 빠져나갔다.
옆 오피스텔 공사현장에 있던 인부가 모텔 주차장 천막 위에 신생아가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영아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탯줄이 남아 있는 상태로 주차장 천막 위에서 방치돼 있었다.
이 같은 영아 유기 사건은 해마다 끊이지 않고 일어나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10대의 임신, 성폭행, 불륜, 경제적 어려움 등 다양한 이유로 죄 없는 어린 아이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
특히 2012년 8월 5일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시행됨에 따라 아이의 출생신고가 필수불가결한 사항이 된 후, 버려지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사후 피임약 불법 유통, 인터넷 불법 입양, 신생아 장기매매 조직 활성화 등의 사회적 부작용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어린 미혼모가 출산 우울증에 ‘너만 아니면’이라는 마음으로 아기의 목을 조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끌어안고 울기를 3~4차례 반복하다가 주사랑공동체교회를 찾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미혼모가 아이를 죽일 마음으로 약을 타 놓고 있다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전화를 걸었고, 이종락 목사의 ‘데려오라’는 말에 주사랑공동체교회를 찾았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애기를 키울 여건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죽으라는 심정으로 침대에 내던져지는 아이들. 밖에서 아이를 낳고 야산에 파묻으려고 하다가 이곳으로 흙투성이가 돼 오는 신생아들”이었다.
이 목사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다 죽은 목숨인 아이들”이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가 없었더라면 이 아이들이 현재 살아있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입양아특례법 개정 이후 영아유기 급증
지난 해만 베이비박스를 통해 주사랑공동체 교회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239명이다. 한 달에 2명꼴이던 아이들이 지금은 20명에 육박한다고. 1년 새 3배 넘게 늘어난 아이들은 미혼모들의 비참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의 유기조장 논란에 대해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라고 잘라 말했다. “쓰레기나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지, 사람이 쓰레기통에 들어갈 수는 없다”며 “음식물 쓰레기통, 야산, 화장실에 버려지는 아이들을 보며 잠잠히 있을 수는 없었다”고 격정을 토로했다.
어린 여학생이 교복치마 밑으로 보이는 다리가 붉게 물들 정도로 하혈하는 상태로,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교회로 찾아오기도 한다고. 이 목사는 이런 원인을 어린 미혼모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사회적 미보장 상황과 정부지원금으로 책정된 양육비 월 15만원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영아 유기 조장 vs ‘생명 살리는 일’ 합법화 해야 월 2명꼴이던 영아유기…입양특례법 이후 10배 증가 미혼모 ‘너만 아니면…’ 우울증에 신생아 목 조르기도 저출산 국가 한국, 버려지는 영아수는 세계 최악 수준
최근에는 돌이 훌쩍 지난, 2~3살 된 아이들이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들어왔다.“악을 쓰고 우는 아이의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가보니, 3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엄마가 가버렸다’며, 엄마가 떠난 방향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듯이 울고 있었다. 아이 손에 쥐어진 편지에는 ‘도저히 키울 수 없어 부탁한다. 형편이 되면 찾으러 오겠다’고 써 있었다”
저출산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울타리는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한국의 베이비박스가 세계적인 논쟁이 되고 있다.
이 목사는 “15개국에서 베이비박스를 취재해갔다. 최근에는 CNN뉴스를 비롯해 뉴욕타임즈, LA타임즈에 보도됐으며, 독일과 프랑스는 1년에 몇 번씩이나 베이비박스를 보도한다. 싱가폴 등 다큐멘터리를 찍어가는 나라도 있었다”며, “이는 한국복지의 창피”라고 단언했다.
“이번 달 초에도 제주도, 광주, 여수, 거제도, 부산 등 각지에서 아이들을 데려온 안타까운 사연의 부모가 있었다. 아이를 위해 이것밖에 해줄 수 없는 이들의 노력을 ‘유기’라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 목사는 생활이 어려운 탓에 아이를 포기하는 부모의 마음을 먼저 헤아렸다.
전국 각지에서 주사랑공동체교회를 찾아야할 만큼 ‘베이비박스’ 운영은 부실하기만 하다. 반면, 세계 20개국에서는 영아유기를 방지하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활성화시켜 국가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미국은 50개주 각각 공공기관에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독일 역시 정부에서 베이비박스 100여 개를 운영하고 있다. 덕분에 길거리에 유기되는 아이들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한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보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베이비박스를 합법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이 급선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의 부작용 심각
입양 아동의 권익을 보호하고 입양을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입양특례법이 2012년 개정된 이후 국내 입양 아동 수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생모가 직접 출생신고를 한 뒤 일주일간 숙려기간을 거치고, 입양과정을 신고제에서 재판을 통한 허가제로 바꾸는 복잡한 과정은 끊임없이 잡음을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먼저 입양을 보내기 위해 친부모가 아이를 반드시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아이가 입양되기까지 가족관계증명서에 자녀로 남아 있어 입양을 보내려는 부모들이 어려움에 처한다.
특히 성폭행 혹은 어린나이에 원치 않게 생긴 아이의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여성이 많다. 국내 입양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해외 입양을 보내려면 몇 년씩 자신의 자녀로 기록이 남게 된다.
또 태어난 아이가 장애가 있을 경우 합법적인 입양을 포기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입양이 어려워 시설로 보내 수 년 간 입양을 대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출생신고 의무제도 때문에 부모들이 포기하는 것이다.
입양 기간 도중 아이가 사망할 경우 영원히 가족관계등록부에 자녀가 사망한 것으로 기록이 남는 것도 문제다. 나중에 결혼하고 싶어도 출산 기록이 남아 출생신고를 꺼리게 되는 것.
특히 복잡해진 절차 때문에 입양을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말리 홀트(79)는 지난달 방송된 YTN 시사교양프로그램 '김정아의 공감인터뷰'에 출연해 "너무 갑자기 변했다. 20장 넘게 서류 일을 하니 가족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개정된 입양특례법의 부작용을 지적하기도 했다.
입양숙려제도도 현실에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 제도는 부모가 출산 후 아이를 일주일 간 입양 보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입양을 재고할 시간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적용하며 신생아의 건강을 저해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입양이 1천548명이었지만 2012년 1천125명으로 감소했다. 부산의 경우 입양특례법 시행 전 1년간(2011년 8월 5일~2012년 8월 4일) 109건이었던 것이 시행 이후 1년 간 19건으로 극 감소했다.
입양 기관들은 음성적인 입양이 늘었을 것으로 보고 보건복지부에서 대책을 세워서 더 안전하게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 ‘베이비박스(Baby Box)’란? 지난 2007년 독일의 가브리엘 스탠글(Gabriele Stangle) 목사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는 부모들이 비밀리에 아이를 두고 가게 해 애꿎은 어린 생명을 잃지 않게 하자는 취지로 최초로 창안해 설치했으며 현재 유럽 주요 10여개국과 일본·중국·한국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 글.사진=백혜진 기자>
<미니 인터뷰> 70cm 상자의 기적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 “인권보다 생명이 더 중요한 것, 입양특례법 개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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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 2014년 4월. 지난 9일까지 주사랑공동체교회를 거쳐 간 아이는 총 419명. 이 중 부모와 재회한 아이는 120명이다. 가로 70cm, 세로 60cm, 깊이 45cm 크기의 신생아가 겨우 들어갈만한 베이비박스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느낀다는 이 목사는 “‘찾아갈 기회를 줘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때 자부심을 느끼고, 감사한 마음이다. 이 같은 사실이 유기조장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덧붙여 “인권보다 생명이 중요하다. 생명 없는 인권은 없다. 적반하장으로 베이비박스에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현실에 부합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며, “입양특례법으로 인해 버려지는 영아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베이비박스 때문에 아이를 버리는 것이라는 논란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격’의 몰지각한 발상이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 각 도에서는 목회자들이 나서 베이비박스에 동참하고 있다. 경기도 군포, 강원도 홍천의 교회 목회자가 베이비박스에 동참하겠다고 했고, 부산 양산에 병원에서도 베이비박스가 운영될 예정이다. 현재 부산의 한 복지단체에서 베이비박스가 운영되고 있다.
이 목사는 “419명의 아이들 중 한 아이도 희생되지 않고 잘 보호했다고 자부한다. 잘 교육하고 양육하는 중이다. 함께 생활하는 형제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친구이자, 엄마, 아빠가 되어주고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목사는 인터뷰 말미 베이비박스에 관심을 갖고 작은 생명에 대한 후원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후원방법을 알려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후원계좌 : 우리은행 1005-501-909778 주사랑공동체교회/ 전화 :02-854-4505) |
첫댓글 약간 수정할 부분이 있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