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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01
씬1. 배경화면+자막
낙랑국을 아십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대부분, 승자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름 없이 사라져간 패자들의 이야기도 우리가 알아야 할 선조들의 아름다운 역사입니다.
‘자명고’
씬2. 고구려 국내성, 수양전 앞뜰 (이른 아침)
(자막) 서기 38년(낙랑국이 고구려에 멸망한지 1년 후), 고구려 국내성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호동의 왕자궁이다.
호동, 윗옷은 벗고 얇은 바지차림에 맨발로 아침 수련중이다. 무기를 들고 수련하기 전, 몸을 풀고 있다.
씬3. 낙랑국, 기망현 고랭산 일각 (이른 아침)
(자막) 낙랑국 기망현 고랭산
왕홀이 이끄는 낙랑반군들의 아지트. 눈발이 날리고 있다.
왕홀, 나무로 만든 싯업벤치를 이용해 운동을 한다. 윗옷 벗고, 얇은 바지 차림으로 천 신발을 신고 윗몸 일으키기 하는.
어느 순간 왕홀, 나무로 만든 철봉을 잡고 도마 운동으로 옮겨간다.
씬4. 고구려 국내성, 수양전 앞뜰 (이른 아침)
몸을 푼 호동, 단검으로 짚으로 만든 사람 모형을 찌르기도 하고.
순식간에 무기를 바꿔 장검을 들어 검법을 운용하는데 그 모습이 강인하고 절제 되어 있다.
씬5. 낙랑국, 기망현 고랭산 일각 (이른 아침)
왕홀, 장검을 들고 천으로 된 신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날아올라 나무 철봉을 두 발로 밟고 선다.
철봉 위에서 검법을 선보이는 왕홀.
굵어진 함박눈 아래, 검을 움직이는 왕홀의 모습이 마치 춤을 추듯 유려하고 아름답다.
씬6. 고구려 국내성, 수양전 앞뜰 (이른 아침)
호동의 기합소리가 정적을 깬다.
유모(여/50대), 멀찍이 떨어져 흰 명주수건을 들고 있고.
매고(여/20대,왕자궁 시녀), 따뜻한 물이 담긴 청동대야와 물잔을 들고 걸어온다.
뜰에 들어선 태추, 호동의 모습을 지켜보다 박수를 친다. 호동, 검을 멈추고 돌아본다.
태추 : 왕자가 아니라 공주였으면 반하겠습니다!
호동 : 녀석, 취향하고는. (들고 있던 장검을 태추에게 던진다)
태추 : (가볍게 받고) 좋죠~
태추, 어깨를 움직여 목뼈를 으드득- 소리나게 풀고 기합을 내지르며 호동에게 달려든다.
호동, 바닥에 놓인 장창을 집어들고 대련한다. 끝내 태추 바닥에 깔리고, 호동 매운 눈길로 태추의 목에 장창을 겨눈다.
태추 : 콱! 찌르십시오. 살아 뭐하겠습니까.
호동 : (유모를 보고) 어떡할까?
유모 : 죽이세요. 아무 쓰잘데기도 없는 놈. 이참에 아들 하나 새로 낳게요.
호동 : 하하- 유모도 참. (웃고) 오늘만 살려주마. (장창 던지고)
태추 : (허리를 이용해, 몸 튕겨 벌떡 일어나고)
호동과 태추, 오른손 주먹끼리 부딪쳐 그 시대식 하이파이브 하고.
매고, 다가와 청동물잔과 고운소금을 내민다.
호동, 검지에 소금을 대충 묻혀 두어번 이를 문지르고, 물로 헹궈 뱉는다.
그동안 유모, 명주수건으로 호동의 등과 가슴에 흐른 땀을 닦아준다.
씬7. 동, 호동의 침실 (이른 아침)
유모, 호동의 옷을 입혀준다. 유모, 마무리로 호동의 띠 장식 매어주려는.
호동 : 내가 하지. (띠를 잡으려 하면)
유모 : (살짝 호동의 손등을 치고) 늙은이 아침 재민 뺏지 말랬죠?
태추 : (탁자 접시에 놓인 볶은콩을 한웅큼씩 주워 먹으며) 찾은 것 같습니다.
호동 : (돌아본다) ?
태추 : 낙랑공주 말예요, 묻은데.
호동 : ! 어디냐?
유모 : (태추의 말 가로막으며) 어딘지 알면 뭐하려구요? 가, 머리 풀고 낙랑공주 무덤 앞에서 진혼이라도 하시게요?
유모가 말하는 동안 문 열리고. 매고, 소반에 산양젖 담긴 청자사발을 들고 들어온다.
유모 : 누가 감히 왕자님 방에 네 멋대로!
매고 : 산양젖 뎁힌 것을 드리려고..
유모 : 놓고 나가거라.
매고 : (탁자에 놓고 문 쪽으로)
유모 : 태자 책봉이 눈앞입니다. 또 무슨 분란거리를 만드시려구요!
매고 : (잠시 문 앞에서 지체하며 엿듣는)
유모 : 안나가고 뭘 하느냐!
매고 : 송구합니다. (나가는)
유모 : 궁안 온 천지에 왕비마마 눈이며 귀 안닿는 데가 없습니다. 왕비전 움직임도 심상찮은데, 적국 공주 무덤은 왜요!
호동 : .. (좌대에서 검을 내려 허리에 찬다)
씬8. 동, 국내성 어마장 앞 (이른 아침)
호동과 태추, 호위무사가 끌고 오는 말을 기다리고 있다. 유모, 걱정스러운 눈길로 호동을 본다.
유모 : 왕자님..
호동 : (유모 손을 잡고) 유모. 그 적국의 공주가 한 때는 내 아내였지 않는가..
어마장 노예(남/10대) 말을 끌고 호위무사와 함께 온다.
호동, 노예의 엎드린 등을 밟고 말에 올라탄다. 태추, 단숨에 말에 올라탄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유모. 멀리서 지켜보는 매고.
맨발의 노예, 땅바닥에서 일어나면 헐벗은 윗옷에 인두로 지진‘樂浪’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노예, 사라지는 호동과 태추를 본다.
씬9. 낙랑국, 기망현 고랭산 일각 (이른 아침)
부퉁이 탄 말 한 마리 달려온다.
신분확인을 요구하며 앞을 막아서는 낙랑반군1.2를 “비켜!!” 고함치며
들고 있는 장창의 대를 이용해 한번에 밀어 버리고, 그대로 통과한다.
반군1 : 적이다!! 대장군을 해치러 왔다!! 왕홀 대장군을 보호하라!!
반군1, 뿔피리를 분다.
왕홀, 나무 철봉 위에 서서 무예를 선보이고 있다.
부퉁, 장창을 왕홀을 향해 집어 던진다.
왕홀, 철봉 위에서 우아하게 공중제비를 돌아 창을 피하고, 나무 가지 위로 옮겨 선다.
부퉁,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단검을 왕홀에게 집어 던진다.
왕홀, 마치 번지점프를 하듯 두 팔을 벌리고 낙하한다. 부퉁이 던진 단검이 나뭇가지에 박혀 파르르- 검날이 떨린다.
반군들, 손에 무기를 들고 움막에서 우르르- 달려 나온다.
왕홀, 낙하하면서 말 위의 부퉁을 끄집어 땅바닥에 떨어트린다.
왕홀, 부퉁을 깔고 앉아 목에 단도를 들이 댄다.
반군들, 깔려 있는 부퉁에게 창을 겨누고 있다.
부퉁 : 니미. 곱상하니 힘도 없으면서. 갈수룩 기교만 느는구려.
왕홀 : 기교도 실력이다. (단도로 부퉁의 얼굴을 쓱- 민다)
부퉁 : (화들짝- 놀라) 어쩌려구요!
왕홀 : 가만있어, 베인다. 고구려 놈들 손에 죽기 전에, 부하들 손에 먼저 죽겠다. 깨끗이 다듬어 주마.
(부퉁의 수염 반을 밀어 버린다)
부퉁 : 호동이 그 개자식이 떴습니다.
왕홀 : ! (벌떡 일어난다)
씬10. 동, 대장군 막사
왕홀과 부퉁, 양피지에 그려진 낙랑지도를 놓고 회의하고 있다.
왕홀 : 한 번은 라희 무덤을 찾을 줄 알았지.
부퉁 : 단칼에 (탁자에 단도를 힘차게 꽂으면서) 모가지를 콱! 따서 고구려로 보내겠습니다.
왕홀 : 네 목 간수나 잘해. 호동이 칼에 안 떨어지게.
부퉁 : 대장군!!
왕홀 : 놈이 몇 명이나 데리고 온다더냐?
부퉁 : 달랑 둘요. 호동이 자식하구, 태추란 놈하고.
씬11. 동, 국내성 성문 앞
성문이 열린다. 호동과 태추를 태운 말이 쏜살 같이 달려 나간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 모두 부복해 호동에 대한 예의를 표한다.
씬12. 낙랑국, 기망현 고랭산 대장군 막사
왕홀,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고 있다.
부퉁, 조금 떨어져 구석에 놓인 나무 걸상에 앉아 한 손에 국수사발을 들고 먹고 있다.
왕홀 : (눈을 뜨고) 병사 오십을 데리고 내가 직접 간다.
부퉁 : (국수 국물 마시다 그릇 입에서 떼고) 그깟 호동이 놈 하나 죽이는데 쉰 명씩 떼거리로? 쪽 팔리게..
왕홀 : (버럭) 네 놈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니까!
부퉁 : (찔끔해서) 만만하게 봐서가 아니라요.. (국수 그릇 내려놓고, 다가오는)
왕홀 : 놈을 꼭 사로잡아야 한다.
부퉁 : 그냥 죽이죠! 생포하자면 우리 애들 희생도 만만찮을텐데...
왕홀 : 반드시 호동을 사로잡아, 고구려 노예로 있는 우리 백성들과 맞바꿔야한다.
부퉁 :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씬13. 고구려 일각
호동과 태추, 호쾌하게 말을 달리고 있다.
씬14. 왕검성 외곽, 낙랑공주의 묘 근처
(자막) 낙랑공주 라희의 무덤
왕홀과 부퉁, 군사들을 배치하고 있다. 군사들, 갑옷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왕홀, 낙랑공주의 무덤을 만감이 교차한 표정으로 본다.
라희의 묘는 버려진 듯한 무덤이다. 봉분이나 무덤에 주먹만한 돌들이 떨어져 있다.
무덤 앞에 ‘被男人所迷惑,最終使樂浪國走向滅亡的亡國公主羅姬之墓’라고 쓰여 있는 나무 푯말이 초라하게 세워져 있다.
부퉁, 군사들을 배치하다 낙랑공주의 무덤 앞으로 온다.
부퉁 : 더러운 년. (침을 퉤- 뱉는다)
왕홀 : .. (착잡한)
씬15. 고구려 국내성, 저잣거리
한 떼의 아이들, ‘와아아아-’ 함성을 내지르며 ‘喜喜樂樂’ 기예단의 가두행진을 향해 뛰어간다.
차차숭과 미추, 소소 등 기예단원들이 각자의 재주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다.
양덕(여/40대,송매설수 시녀장)과 아미술이(여/20대,송매설수 시녀), 구경한다.
선두에 선 미추, 입에 독주를 머금고 화르륵- 내뱉으며 불쇼를 한다.
차차숭, 가슴에 매단 북을 둥둥- 울려가며 변사를 한다.
차차숭 : 자아- 기대하시라~기대하시라~ 차차숭의 기예단 희희낙락이 드뎌 고구려 국내성에서 오늘 첫 공연을 합니다~
지금 요기서 뵈주는 것은 그저 맛뵈기 중에 감질나는 맛뵈기! 탕온반에 따라나온 배추 짠지요~
국수에 얹어 나오는 호박고명! 진국은 극장에서 맛보시라~
아이1 : 아저씨 진국엔 뭐 나오는데요?
차차숭 : 남월에서 특별히 잡아온 원숭이가 춤을 추고~ 발니국에서 잡아온 비단구렝이도 춤을 추고~
원숭이, 비단구렝이만 춤을 추느냐. 아닙니다~ 아니지요. 진국은 따로 있습죠~ 진국 중의 진국! 희희낙락의 자랑거리!
아미 : 거 그만 뜸들이고 말해봐요. 그 자랑거리가 뭔데?
차차숭 : 바로 이거올시다!! (품에서 인형 두 개를 꺼낸다)
술이 : 에게게게.. 그깐 인형이 뭔 진국!
차차숭 : 이게 보통 인형이 아닙죠~ 눈물 없이는 못 보는 연애 이야기~ 조국이냐, 사랑이냐~ 낙랑국과 고구려를 떠들썩하게 만든
희대의 남녀상열지사~ 바로!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사람들, “아아- 우리 호동왕자님 얘기, 나두 알지” 쑥덕인다.
차차숭 :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다 사실이냐? 진실이냐? 건 항아리 뚜껑 열고 찍어먹어봐야 아는 일!
과연 낙랑국에 있었다는 신기한 북 자명고가 진짜 북이냐! 실은 아리따운 공주님이냐!!
오늘 저녁 여러분들이 직접 두 눈으로 찍어 먹어 보고 확인하시라~
차차숭, 북을 치면서 이목을 집중 시킨다.
차차숭 : (둥- 한번 치고) 장소는 동부 저잣거리 안, 임시극장. (둥- 한번 치고) 시간은 오늘부터 닷새간. 유시 정각. (둥-치고)
관람료는 쌉니다~ 싸! (북을 사정없이 여러번 둥둥둥둥-친다) 맨 앞줄은 쌀 한 됫박! 중간은 보리 한 됫박!
끄트머리는 좁쌀 한 됫박! 서서 보는 것은 맘대루, 요금은 좁쌀 반되!!
술이 : 피- (흘기며) 엄청 비싸구만..
미추 : 동지섣달 궁금한 입 다시라고 덤으루다 간식도 드립니다. 한나라 도읍지 낙양 사람들이 젤로 치는 먹거리 빙당호로,
바로 이것이올시다!!
미추, 빙당호로 꼬챙이에서 매실 하나를 이로 물어 빼내고는 꿀꺽, 요란하게 삼키고 ‘음음...’ 과장된 제스츄어를 한다.
아미, “나두요! 나두 하나!” 미추한테 한 꼬챙이 얻는다.
차차숭 : (미추에게 빙당호로 하나 건네 받으며)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빙당호로와 함께 하는 인형극!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개극박두! 기대하시라!!
차차숭과 희희낙락 단원들 자리 옮기면서 가고. 양덕, “이보게-” 하면서 미추를 붙잡는다.
양덕 : 이보게, 아까 그 인형 나한테 팔수 없겠나?
미추 : (의아하게 훑어보고) 다 크다못해 짜부러져 가는 나인 것 같은데.. 애들처럼 인형은 뭐할라구요?
씬16. 국내성, 왕비전
청동화로에 숯불이 피워져 있다. 해애우(4살), 침상에서 자고 있다. 아미, 해애우 옆을 지키고.
송매설수, 양덕이 건넨 인형을 들고 본다.
송매설수 : 우습구나. 한 나라 왕자라는 게 한낱 저잣거리 광대들 놀이감이나 되고.
(양덕 보고) 호동이 지금 어딨는지 알아봤느냐?
양덕 : 아무래도 낙랑공주 무덤을 찾으러 간 것 같습니다.
송매설수 : 호동이 아예 제 무덤을 파는구나.
송매설수, 인형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해애우에게로 간다.
송매설수 : (아미에게) 낮잠이 길다. 깨워라.
아미 : 예, 마마. (해애우를 흔든다) 왕자님. 그만 일어나세요. 왕자님.
해애우 : .. (선잠을 깨느라 칭얼거린다)
송매설수 : (안아 일으켜 앉히며) 칭얼거리지 마라. 이제 곧 너냐? 호동이냐? 아바마마께서 태자를 세우실터인데.
너 이리 어리게 굴면 어쩌누..
해애우 : 눈이 붙었어요. (손으로 눈을 비빈다)
송매설수 : (소매춤에서 비단손수건을 꺼내 눈곱을 닦아주며) 해애우야. 네가 열 살만 되어도 이 에미 걱정을 놓을 텐데..
씬17. 국내성, 일각
송매설수, 양 손에 인형을 든 해애우와 함께 걸어온다. 뒤따르는 양덕과 시녀들.
씬18. 국내성, 대무신왕의 집무실
정전과는 다른 왕의 개인 집무실이다. 커다란 나무판에 모래가 가득 담겨져 있다.
낙랑국 18현 자리에 초록색 깃발이 달린 나무저가 꽂혀져 있고, 깃발에는 각각 현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가벼운 차림새의 대무신왕, 분노한 얼굴로 우나루와 을두지에게 보고를 받고 있다.
우나루 : (반군을 표시하는 붉은 깃발 달린 나무저를 옮겨 꽂으면서) 왕검성이 있었던 조선현을 중심으로,
여기 기망현, 둔유현. 열수 아래 열구현에서도 대규모 반군의 조짐이 보입니다.
대무신왕 : 도대체 이 낙랑 놈들은 어찌해서 수그러들 줄을 모르는가!
을두지 : 어느 백성이 자신들의 조국을 그리 쉽게 포기하려 하겠습니까?
대무신왕 : 반란을 하려면 구심점이 있어야 하질 않느냐! 낙랑의 임금이었던 최리의 목이 호동의 칼에 떨어져
갈대밭 한 구석에서 썩은지도 일년이 넘었거늘, 언제까지 낙랑 독립이라는 헛꿈을 꾸겠단 말인가!
문 열리고, 송매설수와 양손에 인형을 든 해애우, 양덕이 들어온다.
을두지 : 또 다른 왕녀가 어쩌면 살아 있어, 낙랑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대무신왕 : 좌보. 그게 무슨 말인가?
을두지 : 신이 알아본 즉, 낙랑의 유민들은 하나같이 낙랑공주 라희 말고, 최리에게 또다른 왕녀가 있어
때가 되면 자신들을 구하고, 낙랑국을 다시 세울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대무신왕 : 그게 사실인가?
을두지 : 신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대무신왕 : 그럼 근거 없는 소문인가?
을두지 : 그 역시 신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대무신왕 : 그렇다면 대체 뭔가! 최리한테 라희 말고 또 무슨 혈육이 있다는 것인가!
송매설수 : 그런 것은 호동왕자에게 물어보면 잘 알 것입니다.
대무신왕과 신하들, 돌아보면 송매설수가 해애우와 함께 서있다.
을두지와 우나루, 내시들 ‘마마..’ 하면서 두 사람에게 읍한다.
대무신왕 : 호동왕자가 잘 알 것이라니 무슨 뜻이오?
해애우 : (대무신왕에게) 아바마마, 이거. (손에 들고 있는 인형을 내민다)
대무신왕 : 이게 뭐냐?
송매설수 : 낙랑의 공주 라희와 호동왕자를 닮지 않았습니까?
대무신왕 : ! (살펴본다)
을두지 : (한발 앞으로 나와 인형을 보고) 근자에 광대들이 호동왕자님과 낙랑공주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한다더니.. 그것입니까?
송매설수 : 좌보께선 잘 알고 있군요. (아미에게 손짓해 자명의 인형을 바치게 한다)
대무신왕 : 이건 누구요?
송매설수 : 대왕께서 궁금해 하시는 낙랑국의 또 다른 왕녀 자명공줍니다.
대무신왕 : ! (본다) ... (내시장에게) 호동왕자를 불러라!
내시장 : 예, 폐하.
송매설수 : 왕자는 낙랑공주 라희의 무덤을 찾는다고 패수 건너에 가 있답니다.
대무신왕 : !! 당장 호동을 불러들여라!
씬19. 국내성, 정전 뜰
가벼운 옷차림의 대무신왕과 우나루, 내시가 매의 발에 천을 묶어 띄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내시장, 대무신왕의 어깨에 털 망토를 걸쳐준다.
매가 내시의 손을 떠나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씬20. 왕검성 외곽, 낙랑공주의 묘
(자막) 낙랑국 조선현 왕검성 외곽 (지금의 평양특별시 낙랑구역)
호동의 말이 달려온다. 태추, 먼저 내려 엎드려 등받이를 만들지만 호동, 가볍게 뛰어 내린다.
호동, 무덤을 살펴본다.
태추 : 찾느라 죽을 앨 먹었어요. 나라 망하게 한 계집이라고 까마구 밥으로 억새밭에 던져 놓고 아무도 시신을 안거뒀다네요.
한참 지나 공주궁 아랫것들이 몰래 묻었다는데.. 맞긴 맞나요, 낙랑공주 무덤이?
호동 : (비문을 읽는다) 사내에게 눈이 멀어 낙랑국을 멸망시킨 망국의 계집, 공주 라희의 묘..
태추 : 사내에게 눈이 멀어.. (헤벌쭉 웃으며) 그 사내가 왕자님일 테니까 확실하네.
호동 : ..스무보 밖으로 물러가 있거라.
씬21. 근처 언덕, 왕홀 있는 곳
낙랑국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왕홀, 말 위에 앉아 호동을 바라보고 있다. 그 옆에 말 위의 부퉁.
낙랑의 군사들, 긴장한 표정으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씬22. 동, 낙랑공주의 묘
멀리 매어 놓은 말 옆에 선 태추, 호동 쪽을 보고 있다. 호동, 무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호동 : (농담처럼) 나라 팔아먹은 계집이 된 기분이 어떻소?
호동, 가죽주머니를 열고 가져온 술을 조금 무덤에 붓는다.
호동 : 심심친 않겠구려. 적어도 그대 무덤인줄 알고서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더러 더러 (봉분 위에 돌을 몇 개 집어 던지며) 이러구 돌도 던져줄 테고, 더러 더러 침도 뱉어줄 테고.
호동, 봉분 위에 떨어진 돌들을 몇 개 골라 멀리 던진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호동 : 여기도 겨울이 오는구나..
호동, 손바닥을 내밀어 눈을 한두 송이 받아 본다.
호동 : (무덤을 보고) 라희야, 너.. 억울하냐? 나를 만난 것이? 내게 이용당한 것이?
(어조가 젖어든다) ..아니면 내, 너를 사랑치 않아서?
호동, 술을 한 모금 마신다.
호동 : 그대나, 나나.. 한 나라의 공주로, 왕자로 태어난 운명이다.
(쓸쓸히 바라본다) 라희야.. 너, 지금 자명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느냐?
씬23. 동, 태추 있는 곳/호동 있는 곳
태추, 하늘을 보면 호동의 매가 빙빙 선회하고 있다.
태추 : 왕자님!! 궁에서 보륵이가 왔습니다!!
호동, 목에서 작은 신호용 뿔피리를 불어 매를 부른다. 태추, 뛰어온다.
호동, 팔목에 매를 앉힌다. 태추, 매의 발목에 묶인 비단천을 풀어 호동에게 건넨다.
태추 : 뭔 일입니까?
호동 : (보고) 아버님께서 부르시는군.
씬24. 동, 언덕
왕홀, 드디어 칼을 빼든다.
왕홀 : (부퉁에게) 지금이다.
부퉁 : (군사들에게) 이놈들아! 드디어 호동을 잡아 낙랑의 원수를 갚을 날이 왔다!!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자식을 죽이고 노예살이로 내 몬 놈이다!! 가자!!
군사들, ‘와아아아!!’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간다.
부퉁이 앞서고, 왕홀은 잠시 남아 지형지물을 다시 한번 살피고, 한 순간 말에 박차를 가해 언덕을 내려간다.
씬25. 동, 호동 있는 곳
(소리) 낙랑병사들이 지르는 함성소리
태추, 소리나는 쪽을 돌아본다. 부퉁과 낙랑국 병사들이 언덕에서 밀고 내려오는.
태추 : (어리벙벙) 폐하가 조선현 현장한테 파발을 보내셨나.. 왕자님 호위하라고.
호동 : (낙랑국 깃발이 시선에 들어온다) !! (표정이 급변한다) 낙랑 반군이다!!
씬26. 호동과 왕홀의 전투
호동의 매 보륵이 상공을 선회하면서 날카로운 소리로 운다.
호동과 태추, 말에 앉아 낙랑반군들을 맞아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다.
부퉁, 거칠게 태추를 몰아붙이고. 왕홀, 호동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후방에서 군사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오른쪽이 뚫린다!! 후미를 둥글게 감싸라!!” 상황에 맞는 대사 치고.
호동, 다가오는 군사 한명을 베어 버리고.
호동 : (소리친다) 왕홀!!!
군사들, 호동을 포위 압박해 들어간다.
호동, 다시 군사 한 명을 단창으로 찌르고, 말 위에서 그 창을 발로 차 군사의 몸 깊이 박아 넣으며 소리친다.
호동 : 왕홀!!!
왕홀 : (호동을 보다, 군사들에게) 잠시 길을 열라!!
왕홀의 말에 군사들 일사분란하게 길을 튼다.
왕홀, 말을 몰아 군사들 앞으로 나와 호동과 거리를 두고 마주선다.
왕홀 : 말 하오.
호동 : 비겁하다!! 그대들 공주의 묘를 찾은 조문객을 덮치다니.
부퉁 : 개뻥!! 조문객 같은 소리하고 있네!
왕홀 : (손을 들어 부퉁의 말을 막고, 호동에게) 내가 비겁하다면, 그대 고구려에게 배운 것이니 말할게 없고. 우리들의 공주라..
왕홀, 잠시 라희의 묘를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호동도 왕홀의 시선을 따라 라희의 묘를 바라본다.
군사들, 라희의 묘를 향해 침을 퉤퉤- 뱉기도 하고, 증오에 찬 표정으로 돌을 집어 던지기도 한다.
왕홀 : (천천히 시선을 돌려 호동에게) 그대가 그녀를 망가트리기 전까진 확실히 우리들의 공주였소만..
라희가 당신을 위해 낙랑을 버렸을 때.. 우리도 그녀를 버렸소.
호동 : ..수장 싸움을 청한다. 우리가 겨뤄 내가 이긴다면 오늘은 그냥 보내다오.
왕홀 : 하하하- (웃고, 표정 바뀐다) 그대는 져도 (태추를 흘깃 보고) 두 목숨 잃을 뿐이지만.
내가 지면 고구려에 노예가 된 우리 백성 삼십만이 다 죽소. 같은 무예인으로 한번 겨뤄보고픈 호승심은 있소만..사양하오.
왕홀, 호동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목례하고 돌아서 군사들에게.
왕홀 : 진을 펼쳐 호동을 사로잡아라!!
군사들, “와아-” 소리치며 둥글게 진을 친다. 호동과 태추, 필사적으로 싸운다.
부퉁, “그물을 던져라!!” 고함치고. 군사들 그물을 호동에게 던지는데.
태추, 몸 던져 그물을 자신이 덮어쓴다. 태추, 땅으로 떨어진다.
태추 : (그물을 벗으려 애쓰며) 어서 가세요!! 전 그냥 두시구요!
호동 : 쓸데없는 소리!!
호동, 부퉁과 낙랑군사들을 막아 내는 한편 칼로 태추의 그물을 잘라내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
태추 : 가요!! 가!! 소용없으니까! 고래심줄로 짰어요!!
태추, 그물 속에서 자신의 검으로 호동의 말 다리를 찌른다.
놀란 호동의 말, 낙랑군사들을 짓밟고 달려 나간다.
부퉁 : 호동!!!
부퉁, 호동을 추격하며 창을 날리려 한다.
호동, 휘파람을 불면 매 보륵이 부퉁에게 달려들어 눈을 쪼아 버린다. 부퉁, 비명을 지른다.
호동, 때를 놓치지 않고 부퉁의 심장을 향해 단검을 던진다.
왕홀 : 부퉁아!!!!!
왕홀, 달려 나오고 부퉁, 말에서 떨어지는데.
호동, 떨어지려는 부퉁을 낚아채 자신의 말로 옮긴다. 부퉁을 방패로 호동이 태추에게로 간다.
호동, 태추를 그물째 끌어 쥐고 말을 달린다.
태추, 여전히 그물에 싸인 채 땅바닥에 질질 끌리며 탈출하는.
왕홀 : (부퉁을 보며 찰나의 순간을 망설이지만, 이내 냉정을 찾고) 궁수!!!
왕홀의 지시에 궁수들, 호동을 향해 소낙비 같은 화살을 날린다.
대부분의 화살이 부퉁을 고슴도치처럼 만들고, 땅바닥에 끌려가는 태추의 그물을 뚫고 두 대 정도 박힌다.
호동, 전속력으로 달아난다.
씬27. 패수강, 나루터 일각 (낙랑국쪽 돌도리 포구)
유일하게 말을 탄 왕홀, 호동을 쫓아왔다.
호동, 왕홀의 말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허리끈으로 묶은 부퉁의 죽은 시신을 던져 버린다.
왕홀의 말, 놀라서 히힝- 거리며 멈춘다. 왕홀, 자신의 장검에 내공을 실어 호동에게 던진다.
호동의 말, 장검을 맞고 쓰러지고.
호동, 말에서 뛰어 내려 태추를 그물채 들쳐 매고 그대로 강으로 뛰어 든다.
왕홀 : !!
왕홀, 갑옷을 벗고 강으로 뛰어든다.
씬28. 동, 강심 배 위
호동, 배 위에 오른다. 힘겹게 그물 채 태추를 끌어 올리는. 호동, 배를 젓기 시작한다.
왕홀, 배 가까이로 가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호동, 물속에 있는 왕홀에게 단검을 날리려다 멈춘다.
호동 : 겨울강이 차다. 그만 돌아가.
왕홀 : ..
호동 : 승부는 다음에 내자. 나 역시 너와 한번은 겨뤄 보고 싶으니.
왕홀 : .. (수면에 떠 있는)
호동, 노를 저어 고구려 쪽으로 간다. 왕홀, 떠나는 호동을 물속에 잠겨 바라본다.
씬29. 배 위/낙랑쪽 돌도리 포구
왕홀, 젖은 몸으로 물에서 나온다. 호동, 배에서 왕홀을 보다 소리친다.
호동 : 왕홀!! 그대들의 공주는 어디에 있는가!!
왕홀 : (본다)
호동 : 자명공주는 지금 어디 있는가!!
왕홀 : 그대가 그것을 물을 자격이 있는가!!
호동 : ..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그녀는... 죽었나.. 살았나...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구나..
씬30. 패수가 보이는 언덕 (황혼)
왕홀, 부퉁을 데려다 놓았다. 이미 왕홀, 얕게 땅을 파 놓고.
왕홀, 부퉁의 몸에 박힌 화살촉을 하나하나 뺀다.
왕홀 : ...부퉁아.. (눈물이 흘러내린다)
왕홀, 부퉁의 목에 걸린 나무로 만든 군번표를 떼어내 자신의 목에 건다.
(인서트) 군번표, 列口縣人 夫氏
씬31. 호동의 배 위 (황혼)
호동, 누워있는 태추의 몸에서 화살촉을 뽑아낸다.
태추 : (고통을 참느라 신음을 단 한번 내고) 바보요. 왕자님은.
호동 : (차게) 다시는 나서지 마라. 죽고 사는 건 각자의 몫이다.
호동, 허리술띠를 풀어 태추의 팔에 묶는다. (Dis)
씬32. 패수강, 나루터 (저녁)
나룻배에서 호동과 태추가 내린다. 우나루, 마중을 나와 있다.
호동 : ..고모부님이 예까지 나오셨습니까?
우나루 : (호동의 몰골을 보고) 피투성이. 물투성이. 뭔 일이오?
호동 : 라희한테 갔다 오는 길에 멧돼지 사냥을 했습니다.
우나루 : 그래요..? (태추를 본다, 미심쩍은) ..
태추 : 멧돼지한테 받혔습니다.
우나루 : 쯧쯧!! (혀차고, 호동에게) 이 사람아. 지금이 어느 땐데 낙랑공주 무덤에, 멧돼지 사냥에..
가뜩이나 오나부 원로장들이 자네 태자 책봉을 싸구 말리는데. 왜 괜한 분란을 사서 만드시오.
호동 : 그들이 언제 내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져 나를 못마땅해 합니까? 내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싫은 것이죠.
우나루 : 그렇다치고. 어떻게 좀 이쁘게 보일 수는 없는 건가? 비위도 좀 맞춰주고. 뇌물도 좀 듬뿍듬뿍 안기고.
가끔씩 술도 좀 찐하게 같이 마셔주고.
호동 : 하하- 한 나라의 왕자가 색주가 계집이 될 순 없질 않겠습니까?
씬33. 국내성, 정전 앞 (밤)
옷을 갈아입은 호동, 계단을 다 올라왔다. 우나루, 계단 밑에서 대기하고.
대무신왕의 호위무사들 지키고 있다. 내시장, 호동에게 읍하고 안에다.
내시장 : 폐하! 수양전 왕자마마가 오셨습니다.
대무신왕 : (소리) 들게 하라.
호동, 허리춤에 찬 검을 풀어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에게 준다.
호위무사, 두 팔을 벌리고 선 호동의 몸을 손으로 훑어 샅샅이 수색한다.
호동 : (빙그레) 갈수록 아바마마 만나기가 힘들어지는군, 그래.
씬34. 동, 정전 안 (밤)
호동, 들어온다. 대무신왕, 해애우를 안고 어르다가 호동을 바라본다.
호동, 대무신왕과 송매설수에게 인사한다.
송매설수 : 그래, 라희 공주 묘소에는 잘 다녀왔는가?
호동 : (놀리듯) 어마마마 염려 덕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두 소매를 마주 모으고, 길게 읍한다)
대무신왕 : (해애우를 내려놓고, 호동을 날카롭게 본다)
해애우 : 형님~~ (호동에게 달려간다)
호동 : 오냐~ (덥석 안아 해애우를 높이 올린다) 많이 무거워졌구나.
송매설수 : (불안한) 애가 무서워한다. 내려놓아라.
호동 :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해애우를 공중에서 돌려 옆에 끼고 대전 바닥에 던져 버릴 것 같이 한다)
송매설수 : 해우야아!!
대무신왕 : (동시에) 호동아!!
호동 : (비웃는) 왜들 그러십니까? 제가 아우를 바닥에 내동댕이라도 칠까 그러십니까? (다시 한번 공중에 높이 든다) 이렇게요?
대무신왕 : 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송매설수 : (사색이 된다) 해애우야!!
내시장과 호위무사들, 정전 안으로 뛰쳐 들어온다.
호동, 공중에서 높이 든 해애우의 허리를 가볍게 안아 대전 바닥에 사뿐히 내려놓는다.
송매설수 : (해애우를 안는다) 이제 괜찮다. 무서워 마라.
호동 : 하하하- 하하하- 두 분 마마께서는 대체 무얼 염려 하시는 겁니까?
왕위가 탐이나, 저를 어린 동생이나 쳐죽일 놈으로 보셨습니까?
송매설수 : (독기가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호동을 본다) 세상에 조롱거리가 된 줄도 모르고, 기고만장 하는구나.
왜, 낙랑국을 정벌한 것이 너의 공이라 여기느냐?
호동 : 아마도 제 공로가 맞을 것이옵니다, 어마마마. (빙그레 웃는다)
송매설수 : .. (노려본다)
대무신왕 : .. (호동을 보다, 내시장과 호위무사들에게) 모두 물러가라!
문가에 서 있던 내시장과 호위무사들 뒷걸음질 쳐 물러간다.
대무신왕 : (송매설수에게) 해애우를 데리고 나가 있으오.
송매설수 : 호동이 지금 신첩을 우롱하고 있사옵니다, 폐하!!
대무신왕 : (낮고 차갑게) 왕비전으로 돌아가라지 않는가.
송매설수 : ..
송매설수, 대무신왕에게 짧게 절하고 해애우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가면서 호동을 본다. 호동의 옆을 스쳐가며.
송매설수 : 서남문 거리에는 사내가 돈 받고, 자기 몸을 파는 곳도 있다던데.. 계집의 마음 하나 후려 낙랑을 집어 삼킨 것과
무엇이 다를꼬. 그것이 일국의 왕자가 할 짓인가. 부끄럽구나..
호동 : 과연 어마마마의 꾸짖으심이 지당하옵니다. (읍한다)
송매설수가 호동을 노려보다 제풀에 지쳐 해애우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갈 때까지
호동, 두 소매를 맞잡고 깊이 읍한 자세로 고개 숙이고 있다.
씬35. 동, 왕비전 (밤)
송매설수,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송매설수 : (마치 호동이 앞에 있는 듯, 대전 쪽을 흘겨보며) 천한 계집의 배를 빌어 태어난 천한 놈 같으니..
씬36. 동, 대전 안 (밤)
화가 난 대무신왕, 빠른 걸음으로 대전 안을 서성인다.
호동, 한쪽에 서서 대기하고 있다. (두 사람만 있는)
대무신왕 : (걸음 멈추고) 낙랑공주 무덤은 왜 갔느냐? 오나부 늙은이들이 너를 찢어발기고 싶어 하는 판에,
그리도 명분을 만들어 주고 싶더냐?
호동 : 공주는.. 한 때 아바마마의 며느리였습니다.
대무신왕 : 제 나라를 판 몹쓸 계집이다.
호동 : 우리 고구려로 보자면 더할 수 없이 고마운 여인 아닙니까?
대무신왕 : 말이 지나치구나! 대체 네 불만이 무엇이냐!
호동 : 아바마마께서는 땅을 넓히실 줄은 알아도, 땅을 다스릴 줄은 모르는 분이십니다!
대무신왕 : 호동! 네, 감히 이 아비를 조롱하느냐!
호동 : (꿇어 엎드린다) 낙랑의... 백성들을 살펴주소서. 아바마마, 소자에게 지난날 무어라 약속하셨나이까?
피 흘리지 않고, 낙랑을 얻을 수 있다면 그들에게 온정을 베풀겠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가엾이 여겨주십시오...
이대로라면 반란은 끊이지 않고, 그들은 결국 다 죽습니다. (눈물이 흐른다)
호동,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부복한다. 부복한 등이 흔들린다.
대무신왕, 그 모습을 보다 머리가 아픈 듯 한손으로 탁자를 짚고, 관자놀이를 누른다. (Dis)
씬37. 동, 대전 안 (시간경과)
내시장의 지휘 아래, 내시들이 소리없이 칠지등에 초를 갈고 간다.
초심지 타들어가는 소리만이 타닥타닥- 고요한 대전 안에 울린다.
호동은 부복한 채 일어날 줄을 모르고.
대무신왕 : (무겁게 입을 뗀다) 선대왕이신 유리명왕께서는 당신의 피를 이은 자식 둘을 죽였다.
호동 : (고개를 들어 대무신왕을 본다)
대무신왕 : 어린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어떻게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죽이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는가?
호동 : ..
대무신왕 : 이제야 알겠다. 임금에게 생각이 다른 아들은 정적일 뿐이다. 반드시 죽여야 할 적.
호동 : 소자를 죽이고 싶으십니까?
대무신왕, 호동의 발치에 호동 인형을 던진다.
호동 : .. (본다)
대무신왕 : (낙랑공주 라희의 인형을 던진다)
호동 : ! (집어서 본다)
대무신왕 : (자명공주의 인형을 던진다) 너는 그 계집을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냐?
호동 : (어쩔 수 없다) 최리 대왕의 숨겨진 딸, 자명공주입니다.
대무신왕 : 찾아내 죽여라.
호동 : (벌떡 일어난다) 아바마마! (상처 받은 심정으로) 소자 그럴 수 없습니다...소자는..소자는..그 여인을 연모하고 있나이다.
대무신왕 : (보다) 낙랑을 완전히 밟아 호동 네 능력을 보여라. 그것이 오나부의 늙은이들 손에서 너를 지키는 길이고,
해애우의 어미로부터 너를 지키는 길이고.. 이 아비로부터 네 목숨을 지키는 길일 것이다.
호동 : ..
대무신왕 : 자명이라는 계집의 목이 떨어지는 날, 내 호동 너를 태자로 세우리라!
호동 : .. (고민하는)
대무신왕 : (좌대에서 칼집 채 칼을 꺼낸다) 아비가 땅을 넓히는 대무신의 왕이었다면,
너는 살아남아 그 땅을 어떻게 다스리는지 온 천하에 보여주어라!
대무신왕, 호동에게 칼을 건넨다.
호동, 한쪽 무릎을 꿇고 한쪽 무릎을 세워 무장의 예로 칼을 받는다.
호동 : 신 호동. 삼가 대왕마마의 명을 받드나이다!!
씬38. 차차숭의 임시극장, 앞 (다른 날, 낮)
‘喜喜樂樂’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차차숭과 미추가 들어온다. 소소, 뒤따르려 하면.
차차숭 : 넌 여기 좀 있어.
미추 : 혹시.. 또 손님들이 말야. 시간 잘못 알고 일찍 올 수도 있으니까.
소소 : (뭔가 찜찜한)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죠! 안에 닭이라두 튀겨놓은 거 아녜요? 몰래 먹을라구?
미추 : 이년이. 아나 닭이다! (소소의 이마를 툭- 때린다)
씬39. 동, 임시극장 안
미추, 얼른 문의 걸쇠를 건다.
차차숭, 귀빈들이 앉을 탁자를 밀고 거적을 들친다. 거적 아래,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차차숭 : (미추에게) 잘 지켜.
미추 : 에구. 간 떨려..
미추, 문쪽께를 바라보고.
차차숭,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간다.
씬40. 동, 임시극장 지하
마치 방공호와 같은 공간. 촛불이 밝혀져 있다.
차차숭, 내려오면 차차숭의 시선에 사냥복 차림의 한 여인이 벽에 붙여 놓은 낙랑국의 지도를 보고 있다.
차차숭 : 공주님..
여인 : (돌아보지 않고) 왕홀 대장군과 연락이 닿았습니까?
차차숭 : 예. 호동을 생포하는데는 실패했으나 예정대로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공주님과 합류,
낙랑백성들을 구하겠다는 전언입니다, 자명공주님.
여인이 천천히 뒤돌아본다. 그녀, 자명이다.
씬41. 우나루의 저택, 회랑
마당과 회랑이 이어져 있다.
시종 한 명, 여주인이 탈 말의 털을 빗으로 빗기고 있다.
여랑, 마당으로 내려서려는데. 회랑 뒤에서 우나루가 달려온다.
우나루 : 부인!! 공주!!
여랑 : (돌아본다) 왜요?
우나루 : 좀 있으면 해가 질텐데 어딜 간다고 그러시오! 오늘은 기필코 우리 부부생활에 대해 의논할 게 있다니까요.
여랑 : 우리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요?
우나루 : 많지요, 많아. 공주하고 나하고 합방 날짜를 아직도 유모가 택일해주는 날에만 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문제가 한두 가지요?
여랑 : (피식- 웃고) 그런 거라면 인형극 보고 와서 합시다.
우나루 : 인형극! 호동왕자랑 낙랑공주가 어쩌구 저쩌구 그 저질스런 거 말이오? 그딴 걸 왜 본단 거요!
여랑 : 원래 고급스러운 거 치고 재미있는 게 없으니까요.
여랑, 손 내밀면 시종이 얼른 마편을 건네고 땅바닥에 엎드린다.
여랑, 시종의 등을 밟고 말 등에 오른다.
씬42. 우나루의 저택, 앞
여랑, 말 타고 가려는데 뛰쳐나온 우나루, 여랑을 부른다.
우나루 : 부인!! 공주!!
여랑 : (돌아본다) 또 왜요!
우나루 : 나두 같이 갑시다!
여랑 : 저질이라면서?
우나루 : 그러게 얼마나 저질인지 내가 감실 하려는 게죠!
우나루, 말 뒤에 올라타 여랑의 허리를 덥석 껴안는다.
씬43. 국내성 언덕
호동, 홀로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태추, 호위무사들과 조금 떨어져 있다.
(대무신왕의 소리) : 임금에게 생각이 다른 아들은 정적일 뿐이다. 반드시 자명이라는 계집을 죽여라.
내 그날, 호동 너를 태자로 세우리라!
호동 : .. (자리에서 일어난다)
씬44. 차차숭의 임시극장, 앞 (저녁)
겨울해가 뉘엿뉘엿 져간다.
차차숭과 미추, 소소, 사람들이 가져 온 쌀·보리·좁쌀을 각각 짚으로 만든 커다란 둥구미에 받고 있다.
성장을 한 귀부인들은, 하녀들이 곡식이나 해바라기 씨만큼 자른 은을 주고 귀인석쪽 문으로 들어가고.
평민들은 거적을 들치고 들어간다.
소소 : 자아- 빙당호로 하나씩 받아 가세요~ (빙당호로가 담긴 나무목판을 목에 걸고, 한 꼬치씩 나눠준다)
우나루와 여랑이 시종을 앞세우고 걸어온다.
우나루 : 떠들썩하게 들어갈까요? 조용히 들어갈까요?
여랑 : 뭔 소리에요?
우나루 : 공주가 누군지 안 밝히고, 낼 돈 내고 몰래 들어가면 조용히 들어가는 거고.
떠들썩하게 들어가는 것은, 네 이놈들!! 물럿거라! 공주마마 행차시다!! 돈 안내고 들어가는 거요.
여랑 : .. 그냥 조용히 들어갑시다..
씬45. 동, 극장 안 (저녁)
(소리) 유시를 알리는 큰 징소리가 들린다.
우나루와 여랑, 한쪽 탁자에 앉아서 차와 기름떡을 놓고 있다.
주변 다른 탁자에도 귀부인들 앉아 있고.
차차숭과 미추가 인형극의 행동에 맞춰 해설을 하고 있다.
미추가 낙랑공주를, 차차숭이 변사, 호동왕자, 자명공주 역할을 모두 한다.
차차숭 : 낙랑국에는 단군왕검이 신성한 황소를 내려 주어, 그 황소의 가죽으로 만든 신기한 북이 있었으니
그 북을 자명고라 불렀던 것이다아~
씬46. 동, 극장 앞 (밤)
태추와 호동, 다가온다. 그 뒤로 따라오는 호위무사들.
소소, 입장료를 받기 위해 문을 지키고 있다.
소소 : (반색) 아구야! 무데기로 오네~ 대체 몇 명이야. 하나, 둘, 셋, (하다가 호동을 본다) !! 왕..자..님..
호동 : ..
태추 : 네 년이 왕자님을 아느냐?
소소 : 왕자님도 이 년을 아시긴 아십니다만.. (하다가 안으로 뛰쳐 들어간다)
씬47. 동, 극장 안 (밤)
소소, 뛰쳐 들어왔다.
소소 : 큰일 났습니다!! 큰일 났어요!!
사람들, 웅성웅성- 거리고. 차차숭과 미추, 해설을 멈춘다.
미추 : (불안한) 왜 저래요.. 설마.. (우나루와 여랑이 앉아 있는 탁자 아래께를 본다)
차차숭 : (불안한, 그러나 낮게) 가만 못있어!
소소 : 왕자마마께서 구경 오셨습니다!! 호동왕자님이 오셨습니다!!
여랑 : 호동이?
우나루 : 아구, 폐하가 보내신 거 아니오! 당신 잡아 오라고!
호동, 들어온다. 그 뒤를 따르는 태추.
사람들, 일제히 일어난다. 탁자 앞에 앉아 있던 귀족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부복한다.
우나루와 여랑은 의자에서 일어나 있다.
차차숭과 미추, 사람들, 부복한 채 “왕자마마 만세!! 고구려 만세!! 호동왕자님 만세!!” 외친다.
씬48. 동, 임시극장 지하 (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명, 소매춤에서 단도를 꺼내 재빨리 칼집에서 빼낸다.
(사람들의 소리) : 고구려 만세!! 위대하신 대왕마마 만세!! 호동왕자님 만세!!
자명 : !! (호동왕자라는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튕기듯 벌떡 일어난다)
자명, 나무 사다리가 놓인 위쪽 입구를 바라본다.
씬49. 동, 임시극장 안 (밤)
사람들, 질서정연하게 빠져 나가고 있다.
탁자들 모두 치워지고, 호동과 우나루, 여랑만이 남아 있다.
호동 : (미소) 고모님도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여랑 : 너하구 낙랑공주 연애하던 얘기라는데 어떻게 안궁금해~ 자, 여기 앉자.
여랑, 호동의 손을 끌어 자신의 옆에 앉히고. 우나루 자리에 앉고. 태추는 입구 쪽에 가 선다.
우나루 : (차차숭에게) 뭐하나? 사람들도 다 나갔는데 빨리 빨리 안하구.
차차숭 : 아, 예~
차차숭, 자명이 있는 아래쪽을 짧게 쳐다보고 생각한다. 얼른 시선 바꿔 무대 뒤를 보고.
인형극 노는 이에게 말하는 형식을 빌어, 실은 자명이 들리도록 큰소리 지른다.
차차숭 : 자~안심하십시오!! 별 일 아닙니다!!
씬50. 동, 자명 있는 곳 (밤)
자명, 차차숭이 자신에게 하는 소리를 듣는다.
차차숭/(소리) : 호동왕자님이 우리 자명고 이야기가 궁금해서, 그냥 인형극 보시러 오신 거예요!!
자명 : ..
씬51. 동, 임시극장 안 (밤)
차차숭, 징잡이에게 손짓하면 징이 다시 울린다.
인형극의 막이 열리기 시작한다. (Dis)
씬52. 인형극 몽타주 (임시극장 안/자명 있는 곳)
호동, 인형극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여랑은 차를, 우나루는 빙당호로를 들고 우적우적 씹는다.
무대 위에서, 호동의 인형이 낙랑공주 라희의 인형을 바라본다.
인형극의 내용, 극을 보는 호동의 모습, 호동의 발아래서 그 인형극의 내용을 듣고 있는 자명의 모습이 적절하게 보여진다.
낙랑(인형-미추) : 호동. 나의 왕자님~ 그대 요즘 무슨 근심이 있나요? 어찌하여 저, 라희를 보고도 전처럼 웃질 않으시나요?
호동(인형-차차숭) : 낙랑공주. 그대 나라에는 적이 침입하면 저절로 울리는 신비한 북 자명 고가 있어 적군을 막아준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낙랑(인형-미추) : 네에- 왕자님. 우리 낙랑국의 보물이올시다~
호동 : ..
(낙랑인형의 소리) : 자명고가 있는 한, 그 어떤 적이 쳐들어온다해도 물리칠 수 있으니~
우리 낙랑국은 안심할 수 있는 것이오니다~
자명 : ..
자명, 인형극의 내용을 회한에 젖은 눈빛으로 듣는다.
자명, 벽면에 놓여 있는 지도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씬53. 낙랑국, 왕검성 정광문 망루 (자명의 회상/이른 새벽)
(자막) 서기37년, 낙랑국 왕검성
왕검성 북쪽 정광문 망루 위에 최리와 자명이 서 있다.
시위들, 내시들을 다 물리친 채 두 사람이 서서 여명 속에 드러나는 북쪽 산하를 바라보고 있다.
최리 : (자명에게 시선 돌리고) 고구려 왕 무휼이, 자명고가 과연 하늘이 내린 북이 맞는지 직접 보겠다 하니 막을 방법이 없구나.
자명 : .. (듣는)
최리 : 무휼의 명을 받은 고구려 군사 삼십인이 오늘 북쪽 군사 경계선을 넘는다.
자명고가 그때 스스로 울리지 않는다면, 고구려가 쳐들어오겠지.
자명 : 아직 우리는 고구려를 이겨낼 군사력이 없습니다.
최리 : 그러니 어쩌겠느냐? 우리로서는 고구려 군사가 경계선을 넘는 시각을 알 수 없는 것을..
(자명을 본다) 북을 울릴 수 있겠느냐?
자명 : ..
최리 : 자명아. (자명의 손을 잡는다) 네게 이 아비, 낙랑의 운명을 맡긴다..
씬54. 낙랑국, 강가 (이른 새벽)
얼음이 얼어 있는 강가. 신녀, 몇 명이 얼음을 깬다.
자명, 대무신왕의 시험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자 얼음물 속에 들어간다.
자명, 얇은 속치마 차림으로 목욕을 한다.
신녀들, 흰 비단천을 맞잡아 자명의 나신을 아무도 볼 수 없게 삼면을 가린다.
자명, 윗옷을 풀어 얼음 위에 내려놓는다.
씬55. 자명고각 밖/안 (낮)
신녀들, 고각 열보 밖에 쳐진 금줄 앞에서 을두지와 고구려의 호위무사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지한다.
최리 : (양해를 구하는) 이곳은 나와 신녀 외에는 그 누구도, 우리 낙랑국의 대신들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대무신왕 : 호동은 내 뒤를 이을 왕자이니 함께 들어가겠소.
최리 : .. (잠시 생각하다) 그러시지요.
라희 : 저도 들어가야겠어요.
최리 : 라희야.
라희 : (빙긋-웃으며) 고구려의 왕자도 들어갈 수 있는데. 아버님의 뒤를 이어 낙랑의 주인이 될 제가 들어갈 수 없다니요?
이 자명고 또한 뒷날 제가 다스릴 북이 아닙니까.
최리 : ..
오직 최리와 대무신왕, 호동, 라희만이 금줄 안으로 들어간다.
자명고 북이 보관되어 있는 사당의 문이 열린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아래, 거대한 자명고 북의 모습이 드러난다.
대무신왕 : (북의 크기에 압도당한) 이것이 자명고?
최리 : 그렇습니다. 고구려의 왕이여.
대무신왕 : (냉소하는 듯한) 북의 크기가 그 능력은 아닐 터. 내 말로만 들어온 자명고의 신비한 능력을 지켜보겠소.
최리 : 오늘 경계선을 넘는 고구려 군사들이 다 죽는다 해도, 자명고를 친견한 대가라 여기십시오.
대무신왕과 최리의 시선이 날카롭게 부딪친다.
씬56. 군사 경계선 앞 (탄열현 은포 방향)
멀리 군사경계선을 알리는 목책과 낙랑국의 깃발(곰이 그려진)이 세워져 있다.
우나루, 고구려 보기병 삼십인을 대기시키고 있다.
군두 한 명이, 고구려기를 한손에 들고 휘하 보병 삼십인에게 창과 방패를 들게 하고 전열을 가다듬는다.
우나루, 신호로 보내올 징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씬57. 왕검성, 단군사당 안
단군왕검의 그림이 비단폭에 그려져 있다.
자명, 머리를 푼다. 단도로 머리카락을 잘라 향로에 던져 넣는다. 불길이 치솟는다. 그 뒤로, 오직 일품만이 시립하고 있다.
자명 : (머리카락을 던져 넣고) 단군왕검이시여!! 우리 낙랑국을 지켜주옵소소!
낙랑의 백성은 단군의 후예들이옵니다. 옛 조선의 백성들이 더는 전란에 빠지지 않도록, 낙랑국을 굽어 살펴 주옵소서!!
씬58. 자명고각 안
대무신왕과 호동, 최리, 모두가 초조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
라희, 호동의 모습을 지켜본다. 호동과 시선이 마주치는 두 사람.
대무신왕, 고각 밖을 잠시 내다본다.
씬59. 군사 경계선 앞 (탄열현 은포 방향)
(소리) 징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우나루, 징소리를 듣는다.
군두 : 장군!! 정시옵니다!!
우나루 : (날렵하게 말에 올라, 검을 빼어 든다) 가라!! 고구려 병사들아!! 왕께서 명하신 시각이다!!
저기 오리 밖이 낙랑의 땅이다!! 낙랑의 북, 자명고가 허튼 소리임을 오늘 우리가 증명할 것이다!!
우나루, 박차를 가해 말을 움직인다.
군두가 깃발을 흔들며 달리기 시작하고,
뒤로 고구려 보병 삼십인이 창을 고쳐 들고 경계선에 흐르는 냇물을 철벅거리며 건너기 시작한다.
씬60. 왕검성, 단군사당 안
자명, 돗자리 깔린 바닥에 앉아 단도로 자신의 팔목을 그어 피를 낸다.
일품 : 공주님!! (다가오려는)
자명 : (고개 저어 오지 못하게 하고, 탁자 위에 놓인 흰 사발에 피를 받는다) 단군왕검이시여!! 자명 엎드려 청하옵니다!!
제 바람은 오직 단 하나, 낙랑국을 평화롭게 하고, 낙랑의 백성들이 피 흘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옵니다!!
도와주소소!! 도와주소소!! 오직 오늘 이 한 시각에 낙랑국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낙랑국이 고구려의 말발굽 아래 밟히지 않게 하소소.. (눈물이 떨어진다)
씬61. 군사경계선 몽타주
(자막) 증지현 알지 군사 경계선
군사경계선 목책에 매가 앉아 있다. 매의 발목에 노란색 비단이 묶여 있다.
(자막) 탄열현 민봉 군사 경계선
군사경계선 목책에 매가 앉아 있다. 매의 발목에 푸른색 비단이 묶여 있다.
(자막) 증지현 묵방 군사 경계선
군사경계선 목책에 매가 앉아 있다. 매의 발목에 검은색 비단이 묶여 있다.
(자막) 탄열현 은포 군사 경계선
목책에 매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매의 발목에 붉은색 비단이 묶여 있다.
씬62. 군사 경계선 앞 (탄열현 은포 방향)
우나루와 군두의 지휘아래, 고구려 군사들 목책 앞으로 다가온다.
목책에 앉아 있던 매 한 마리가 고구려 군사들을 노려보다 힘차게 날아오른다.
씬63. 창공
붉은색 비단끈을 매단 매가 낙랑국 왕검성을 향해 날아온다.
씬64. 낙랑국, 단군사당 안/밖
일품, 사당 밖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망루에 붉은 깃발이 올라온다.
일품,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일품 : 공주님!! 붉은 기가 올랐습니다!!
자명 : !! (눈물이 흐른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일어난다) 어서, 은포에 봉화로 알려요!! 고구려군이 오고 있다고!
씬65. 자명고각 안
대무신왕, 득의만만한 웃음을 띠우며 최리를 바라본다.
대무신왕 : 낙랑의 왕이여. 내 오늘에야 그대 낙랑국의 자명고가 한낱 거짓된 이야기임을 알겠소!
매, 빛 들어오지 않는 열린 창으로 들어와 자명고 북 장식 위에 앉는다.
대무신왕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명고가 울리기 시작한다. 입체 음향처럼 사방에서 북소리가 진동한다.
대무신왕 : !!
호동 : !
최리 : !
라희 : !
대무신왕, 자명고 북을 노려본다. 카메라, 자명고 북 안으로 들어간다.
씬66. 자명고의 비밀 (몽타주)
(소리) 북소리
북 안에 수천 마리의 박쥐가 매달려 있다.
매가 날아와 자명고의 장식 위에 앉는다.
겁을 먹은 박쥐들 일제히 날개를 퍼덕거리며 북을 치기 시작한다.
매, 장식 위에 매달아 놓은 육포 조각을 입에 물면, 육포에 연결된 끈이 들어 올려지고, 북을 막고 있던 마개가 열린다.
박쥐들이 그 통로를 따라 자명고 북을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북이 워낙 커서 박쥐가 날아가는 어두운 통로까지 사람들 시선에 들어오진 않는다)
씬67. 은포 일각, 우나루 있는 곳
우나루, 군사들을 이끌고 달리는데.
땅바닥이 일어서며, 나무가 일어서며, 낙랑에서 설치한 부비트랩이 작동된다.
기겁을 하는 우나루.
군사들, “자명고다!!/자명고가 노했다!!” 소리치며 기겁을 한다.
말 달리는 소리와 함께 나타나는 은포의 비밀부대. 갑옷으로, 복면으로 두 눈만 내 놓고 온몸을 감싸고 있다.
특수부대, 화살과 창으로 고구려 군사들을 몰살 시키고 있다.
우나루 : !! (고군분투하며) 후퇴하라!! 후퇴하라!!!
특수부대, 고구려 군사들을 전멸시키고 우나루만 남겨 놓는다.
우나루 : .. (멍한)
특수부대, 우나루를 지켜본다. 부대장, 창을 던져 그의 앞 땅에 꼽는다.
부대의 우두머리, 신호를 보내 부대원들을 뒤로 물린다.
우나루 : ...
씬68. 자명고각 안
(소리) 북소리
천지를 진동하는 북소리.
대무신왕, 결국 귀를 틀어막고 끓는 심화를 참지 못하는 표정으로 뛰쳐 나간다. 호동, 대무신왕을 보다 시선돌려 북을 본다.
호동 : 이런.. 북이..있다니...
호동, 경이로운 시선으로 자명고를 바라보는 모습.
씬69. 차차숭의 임시극장 안 (현실/밤)
호동, 굳은 표정으로 인형극을 보고 있다.
낙랑(인형) : 왕자님은~ 왜 그리 자명고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호동(인형) : 나를 위해 자명고를 찢을 수 있겠소?
낙랑(인형) : 어머나!! 지금 뭐라 하셨나이까~ 소녀의 귀가 잘못된 것이오니까?
씬70. 동, 임시극장 지하 (밤)
자명, 회한에 잠겨 인형극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차차숭/(소리) : 라희. 정녕 그대가 나를 사모해, 나를 따르고자 한다면 자명고를 찢어주오!
자명 : ..
씬71. 동, 임시극장 안 (밤)
낙랑(인형) : 아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랍니까. 사랑을 택하자니 조국을 버려야 하고. 조국을 택하면 왕자님이 죽을 것이고.
아아- 하늘이시여.
호동(인형) : 선택하기 어려울 땐 그냥 가까이 있는 것을 선택하면 되오~
호동 인형, 낙랑공주 인형을 끌어안는다.
우나루 : (박수까지 치며 박장대소 하는) 하하- 거, 재미있네. 재미있어!
여랑 : 호동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데, 뭐가 그리 재밌단 거예요!
우나루 : 뭐, 인형극이라는게.. 다 그런거 아니겠소.. (히쭉- 웃는)
차차숭 : (해설) 이리하여 애욕에 눈이 먼 낙랑공주는 조국을 배반하고, 낙랑국의 보물 자명고를 찢기로 굳게 결심한 것이었다.
남자에 눈이 먼 낙랑공주의 지각없는 행동이 바로 낙랑국이 망하게 된 전초였던 것이었다~
장면 바뀌면 낙랑공주, 단도를 들고 자명고를 찢으려 북이 있는 고각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낙랑(인형) : (독백) 왕자님. 아아아- 나의 호동 왕자님. 당신을 살리기 위해, 이제 자명고를 찢겠습니다!
내 비록 조국을 배반하고, 아비를 배반하는 희대의 악녀가 될지라도 운명이라 여기겠습니다!
낙랑, 북을 찢으려 하는데 자명공주가 나타난다.
낙랑(인형) : 아니, 넌 자명공주? 니가 여기 왜 있느냐?
자명(인형) : 언니. 북을 찢어봐야 소용없어요. 적이 국경에 몰래 들어오면 자명고가 절로 울린다는 것은
부러 지어낸 거짓말이올시다. 세상에 그런 북이 있을 리 없지요.
낙랑(인형) : 그게 무슨 소리냐?
자명(인형) : 자명고의 정체는 실은 언니의 배다른 동생, 나 자명입니다.
고구려로부터 내 조국 낙랑국을 지키기 위해 꾸며낸 얘기올시다!
(소리) 두둥!! (북소리)
호동, 인형극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씬72. 낙랑국, 자명고각 앞 (과거회상/이른 아침)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미명이다.
자명고각 앞을 지키고 있는 호위무사 두 명과 신녀가 보인다.
라희, 남장으로 변복을 하고 얼굴을 가린 채 나무 뒤에 숨어서 호위무사들을 보고 있다.
라희, 주머니에서 금으로 된 바늘을 꺼내들고, 잠시 생각하다 바늘을 던진다. 어둠을 뚫고 금바늘이 날아간다.
호위무사 한명은 하품 하다, 한 명은 돌아서다 순식간에 급소에 바늘을 맞고 쓰러진다.
신녀 : !
라희,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른다.
신녀, 목에 걸고 있는 작은 뿔피리를 입에 대고 불려고 하는 순간 라희의 금바늘이 신녀의 목에 박힌다.
라희, 신녀의 옆에 착지해 허리춤을 뒤져 고각을 여는 열쇠를 찾는다.
씬73. 동, 자명고각 안 (이른 아침)
문이 삐걱 열리며 라희가 들어온다.
칠지등의 불빛 아래, 자명고 북이 신비한 느낌으로 서 있다.
라희, 두건을 벗는다.
라희, 자명고의 북을 만져보다 결심한 듯 단도를 꺼내 든다.
(자명의 소리) : 기어이 조국을 배반하려는 건가요?
라희 : ! (보면)
북 뒤 어둠 속에서 자명이 걸어 나온다.
라희 : 니가 왜 거기 있는 거냐!
자명 : 그러는 공주님은 그 차림새로 여긴 왜 온거죠?
라희 : .. (어쩔 수 없다) 다 알면서 뭘 묻고 있니?
자명 : 결코 공주님이 자명골 찢게 내버려두진 않겠어요!
라희 : 호호 (자지러질 듯 웃고, 싸늘하게) 너 따위가 날 막을 수 있다 생각해?
자신의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라희, 허리에 끈처럼 맨 금사편을 풀어 자명에게 날린다.
날카롭게 공기를 가르며 자명의 얼굴로 날아오는 금사편.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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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받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