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차 산책길 단상
1. 2025.5.8. (목)
2. 범어공원
오늘은 가정의 달 그중에서도 어버이날이다. 회원 중에서 할 일 없는 노인네들만 범어공원에 모여 산책하며 수다를 피웠다. 얘기를 들어보니, 할 일이 없어서 모인 친구들이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산책을 위해, 어버이날 가족 행사를 연휴 중에 미리 치른 노인네들이었다. 더러는 미리 해외여행까지 다녀온 친구도 있었다. 멋진 노인네들이다.
노인의 품격, 하늘이 내려준 계급장
이원근
노인만
사는 우리 집은
해가 뜨고, 기지개가 펴지고,
관절이 뚜두둑 소리를 내야 하루가 시작된다.
자연 친화형 기상 시스템이다.
젊은이들은 일찍 일어나 경쟁과 성과를 위해
오늘도 바쁘게 산다. 그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나는‘출근’이란 말을 잊은 지 오래고, 그들은 아직‘퇴근’을 꿈꾼다.
그 뺑뺑이 속에 있던 시절, 나도 거기 있었다.
그리고 아주 어렵게, 시간과 체력을 때려 넣은 끝에, 드디어 얻었다.
노인이라는 칭호.
이게 그냥 나이 든 거랑 다르다.
이건 하늘이 내린 우리 사회 최상위 계급장이다.
실로
초라한 아침 식사
잡곡밥, 된장국, 김치, 산나물
하지만 이름을 바꾸면 급이 달라진다.
‘저탄소 유기농 로컬푸드 기반의 슬로우푸드’
플라스틱 포장 없는 진짜 음식이다.
이 정도 되면, 먹는 게 아니라 사는 철학이다.
마누라는 거친 음식이 장수의 비결이란다.
그건 냉장고 냉동 칸 재고 처리의 전략적 포장이다.
그럼에도 나는 고맙다. 단지 말을 안 할 뿐이다.
고맙다는 말은, 결혼 52년 차엔 무음 진동 모드로만 통한다.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소파에 앉으면,
창 너머 두리봉이 내 정원이다. 이젠 정원이 따로 필요 없다.
가꾸지 않고, 물도 안 주고, 세금도 안 내는 완벽한 나의 정원이다.
있는 것보다 누리는 법을 안다는 건,
세월이 안 가르쳐줬으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거다.
요즘 애들 주거 공유, 자동차 공유, 우정 공유에 감정노동까지.
공유 사회 잘 살고 있다. 다만, 여유만 공유 안 되는 듯해 안쓰럽다.
TV를 켜면 맨날 똑같다.
누구는 대선 나왔다 후보 못되어 입에 게거품 물고,
누구는 구속이 겁이 나는지 갑자기 대법원장 탄핵한다고 겁박한다.
온갖 작전세력과 꼼수 장인들이 전국을 누비는 가운데,
나는 소파에 깊숙이 박혀 조용히 속삭인다.
“그래봤자, 나한텐 남의 나라 일.”
신문을 보면
오늘도 돈이 몇조씩 증발했다는데, 놀랍지도 않다.
내 통장에 들어온 적이 없는 돈은, 사라져도 체감이 안 된다.
요즘 젊은이들
세금 내고, 보험료 내고, 월세 내고, 부모 눈치 보고,
사회 눈치 보며 살아간다. 그들을 보면 미안하다.
내가 젊었을 땐 힘들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미래가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노후는 별것 아니다.
의무도 책임도 하나둘 사라지면서
하루가 점점 ‘순도 100% 나만의 시간’이 되어간다.
오전엔 산책, 오후엔 낮잠, 저녁엔 뉴스와 바둑. 심심하면 여행,
기분 좋으면 친구와 술 한잔, 날씨 좋으면 지리산이나 코리아둘레길도 한 모랭이.
물론 가끔은 나라 걱정도 든다.
‘내일 내가 없어도 이 나라가 잘 굴러갈 수 있을까?’
이 나이가 되면, 온갖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하게 되나 보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보너스 게임이다.
메인 스토리는 끝났고, 숨겨진 엔딩이나 즐기는 셈이다.
결론은 이렇다.
노후는 고생 값이다.
젊어선 성과 내고, 관계 유지하고,
경쟁 피하지 말라고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았다.
이제는 세상에 있으되,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삶.
그게 노인의 진짜 품격이다.
부럽다고?
당신도 곧 도착한다. 단, 살아남는다면.
첫댓글 ㅡ 권수문
하늘이 내려준 인생 계급장
정말 부럽습니다.
세상 만물에는 품격있는데 우리 왕초형님의 품격은 그야말로
최상급 베스트 1등 인생입니다.
우리 모두 품격잇는 노후를 맞이하려고 하지만
아무나 할 수없는 일이지요.
사모님과 오래오래 해로하시고
고 좋은 덕담 많이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ㅎ 왕초성님의 가슴에 마음의 카네이션을 한 다발 달아드립니다.
ㅡ 홍정희
노인들 속에 꽃 한송이가
빛을 발하니
그나마 위로가 되네.
ㅡ 이정렬
진정한 수필가의 진한 향기가 나네요~ 아빠의 글의 힘은 진정성인거 같습니다ㅎㅎ 잔잔한 감동과 재미가 있습니다. 아들로서 평소에는 잘 몰랐던 우리 아빠의 모습을 내 폰 안에서 엿볼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강 잘 챙기셔서 좋은 글 많이 남겨주세요. 품격있는 이원근 수필가님, 여기 팬 1명 추가요~!
ㅡ 박영준
대구 동문 영상으로 만나니 엄청 부럽고 아주 보기도 좋고 무척 반가워요.
항상 안산,즐산 하길 기원하며 건투를 빌어요.
계성 53회 대구 동문 파이팅
ㅡ 이영아
재밌는 글이네요~ㅋㅋ
아침부터 숨가뿌다 생각했는데 글을 읽고서는 이때는 다 이래 사는갑다 싶네요~^^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ㅡ 정문희
낯익은 남자 동기님들
무엇보다. 건강미가 넘쳐보여 보기좋습니다
그 중심에 공곡 이원근
산대장님의 리드쉽이 돋보여 더더욱. 보기 좋습니다
건강이 최고!
맑은 공기 마시며 건강미
과시하시고~~
대6의 최고 리드로서
건강미. 오래토록 과시하시기 바랍니다
이원근 공곡님 최고!
ㅡ 김진아
글이 너무 좋습니다. 저도 이해가 되는걸 보면 나이들어가는 기성세대네요. 아버님같은 철학 가지고 단단하게 나이들어가고 싶네요.
ㅡ 김수봉
나 또한 그러합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조석 함께 하시던 97세 아버지 세상뜨시니 많이 그립고 그렇습니다 이대장.
ㅡ 김종배
노후의 지인분들과 여가선용 하시는 모습을
본받아야겠습니다 .
ㅡ 송준각
감동적인 글 감사드리고 건강 유지하면서 품격있는 노인으로 지내는 것이 최상일 것 같습니다~
이고문님 잘 익어 가십니다.건강,행복하게 마무리 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도 멀지않은 날 같습니다
ㅡ 박낙원
고향에 일 때문에 와서 자동차 기름만 축 내고 성과는 병아리가 쪼아 먹어서 없었고, 어제는 비 가와 마루에 앞산 보며 커피잔 속 믹스향 잠시 꼴깍꼴깍 하다 바닥 보고 방에 와서 TV보니 그 × 보기가 싫어 뉴스를 닫은 지가 한 달이 다 됐네.
채널 잡고 헤매다 언뜻 공곡 생각나서 남파랑 길 new를 안 봤네.
이번에는 길동무가 셋인가 보내 아니 세 분으로 고치겠네 600m만 붙이면 30km겯 걸음 더한 거리를 7시간 18분... 공곡이 나보다 띠동갑 兄이네 나는 아직이니까
"히야" 이번 기행문도 새벽에 다시 읽고 내 맘을 졸필로 안개 편 속달로....
건강한 다리 위엔 건전한 머리와 가슴이 있으므로 항상 안전(安全)만 지키면 건강 걱정은 뚝
ㅡ 김명근
하늘이 내린 계급장이라~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ㅡ 곽순옥
감사합니다.
즐겁게 지내 시는모습 좋습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