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 종기는 확실히 짜 버려야 한다
2004.3.19.금요일
'국민은 강팀이다' 게시판
고등학교 1학년 때 오금에 종기가 하나 났었다. 이게 그냥 두면 나으려니 했는데 점점 곪기 시작을 하더니 일주일쯤 지나자 얼마나 심하게 곪았는 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 버렸다. 집에서 그냥 짜버리려고 했는데 원래 종기라는 것이 고름이 나올 구멍을 뚫어주고 짜줘야 하는데 도저히 집에서 구멍을 뚫을 재주가 없어서, 그리고 성격이 차가운 편인 엄마도 딸이 가진 종기를 완전히 짤 용기는 없으셨던 것 같다. 분명 내가 소리를 지를테고 그 소리에 꾹꾹 눌러서 짜내지 못할테니.... 그래서 가까운 외과에 가서 간단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종기의 크기가 거의 야구공만하게 되었으니 이건 수술이었다.
의사선생님은 장딴지부분에 마취제를 놓더니 5분쯤 있다가 엎드리게 한 후에 종기에 노랗게 곪아진 부분을 메스로 쭉 가르고는(이 흉터는 아직도 조그맣게 남아 있다) 정말 내가봐도 무시무시할 정도의 고름을 짜내기 시작했다. 마취된 다리라서 아픔은 거의 없었고 그저 꾹꾹 누르는 것 같았지만 아마 그냥 집에서 이것을 짜내려고 했다면 난 기절했을거다. 한참을 그렇게 짜낸 의사선생님은 구멍이 뽕 뚫어진 부분에 심을 넣고는 며칠 통원치료 하라고 했다. 그리고 마취가 풀리면 아플테니까 먹으라면서 몇가지 약도 주고...
본래 의사라는 직업이 아픈 곳을 치료할 때는 인정사정 없다. 조금 따끔하다 조금 아플거다라는 말이 의사입에서 나오면 그건 거의 기절할 만큼 아픈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환자 사정 봐줘가면서 어설프게 치료하믄 다시 재발할거고 그러면 자기가 돌팔이 소리를 듣기도 하려니와 난 이게 의사라는 직접정신이 투철해서라고 생각한다.
암튼 그렇게 종기를 짜내고 집에 엄마와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뭐 먹고 싶은 것 없느냐 물었다. 난 한참을 생각하다가 초코파이 하나만 사달라고 했다. 엄마는 가게에 가셔서 초코파이를 사들고 오셔서 그냥 날 보고 혀를 끌끌 차셨다. 암튼 그 초코파이 하나를 입에 물고 절뚝거리며(사실 수술한 다리의 마취가 풀리기 시작해서 거의 깨끔발로) 집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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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달전쯤 목뒤에 종기가 났다. 처음에는 아프지 않았는데 이걸 처치하지 않고 그냥 세수도 하고 자꾸 손으로 만져서 그런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목을 제대로 돌리기 조차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아픈 것도 아픈것이려니와 목을 돌리질 못하니 어쩌다가 외출할 일이 있어서 운전을 하고 나갈때도 상당히 불편하고 위험했고 마치 목에 김일성처럼 혹이 하나 붙은 느낌이라서 영 기분이 께름찍했는데...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베개가 온통 피범벅에 고름범벅이 되어 있었다. 푹신한 걸 베고 잤는대도 압력에 제 스스로 터져버린 거다. 잘 됐다 싶어서 화장실에 들어가서 찔끔찔끔 나오는 눈물을 참으면서 거울을 앞뒤로 놓고 내가 짜내기 시작했다. 한 30여분을 그렇게 고름을 짜내자 목이 양옆으로 잘 돌아가고 또 고개짓이 제대로 되는거다.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피고름 범벅이 된 베개일은 잊어버렸다.
그런데... 내가 나 스스로 치료를 하다보니 설익게 짜낸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도 거의 보름동안을 찔끔찔끔 고름이 나왔다. 반창고도 붙히고 약도 발랐지만 이 고름의 근이라는게 얼마나 질긴지... 나를 위해 싸운 백혈구 시체들이 노랗게 나오는데... 참 신경질도 나고... 결국 한달여를 이 종기와 씨름한 끝에 완전히 치료가 되었다.
엄마는 고약을 사다 붙이자고 했지만 고약에서 나는 냄새도 별로고... 고약을 붙히면 시커먼게 목덜미에 붙어서 영 남봄에도 안좋을 듯하고... 그리고 무엇보다고 고약이란 걸 지금도 파는 지 잘 모르겠고... 그래서 그냥 내 고집대로 버틴 결과가 한낱 종기로 한달을 가게 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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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라는 것... 별것 아니지만 사람을 참 성가시게 하고 아프게 하며 신경질 나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 종기와 그로 인한 합병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왕들도 몇몇은 이 종기가 원인이 되서 승하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 작지만 그저 무시할 수만도 없는 것이다.
이 종기의 치료법은 곪을대로 곪게 놔두었다가 완전히 노란색으로 잘 익으면(?) 잘 달군 바늘로 끝에 구멍을 내고 인정사정 없이 안에들어 있는 고름을 짜내는거다. 이때 치료를 하는 사람이 환자의 고함소리에 또는 아퍼서 흘리는 눈물에 비명소리에 인정을 두면 결국 그짓을 또 반복해야한다. 눈 딱감고 한번에 끝낼 수 있는 일을 두번 세번 해야하고 그만큼 고통도 당해야 한다. 그리고 피가 나오기 시작하면 소독약으로 깨끗하게 소독을 한 후에 고약을 붙여서 남은 근을 빼야한다. 물론 대강 짜고 고약을 붙힐 수도 있지만 치료기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으며 여름에는 고약에 점착성분이 녹아서 볼썽사납게 될때도 있다. 관건은 근이라고 하는 종기의 뿌리를 완전히 빼야 한다는거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또 염증을 일으켜서 내 아까운 백혈구들이 전사하게 된다. 먹어서 전부 종기와 싸우라고 내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난 이번 415 총선에 내 소중한 한표를 고약이라고 명명한다. 고약도 그냥 고약이 아니라 근을 빼버리는, 그래서 다시는 염증이 생기지 못하도록 하는 특제 고약이라고 명명한다. 그동안 그토록 많은 민주의 백혈구들이 우리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고름으로 산화해 갔지만(고름은 백혈구가 세균과 싸워서 죽은 시체다) 아직도 세균들이 남아 있다. 덜짜서 그런거다. 짜고도 제대로 고약을 붙이지 못해서 그런거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붙여야 한다. 그것도 효능 좋은 특제 고약으로.
현대의학에서는 종기에 고약을 붙이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칼로 찢어서 고름을 빼고 항생제 투여를 해서 세균이 번식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항생제든 고약이든 이번에야 말로 확실히 짜낼 기회다. 좀 아프겠지만, 눈물도 나고 고통스럽겠지만 확실히 짜 버리자. 종기 치료에 고름을 짜내는 것만큼 확실한 치료법은 없다. 앞으로 한달 후 내 한표가 그리고 여러분의 한표가 87년 6월에 그 고통을 견디면서 짜내고도 남은 마지막 남은 세균들을 확실히 멸균시킬 특제 고약, 특제 항생제로 만들자. 다시는 우리의 이부자리를 피고름으로 젖게 만들지 말자.
이제 선택만이 남았다. 설짜서 또 아플것인가 아니면 고통과 눈물을 참고 확실히 짜내버릴 것인가. 우리가 할 일이다.
- 시민오빼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