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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떻게 태어나 사는가?
안도현 시인의 ‘시와 연애하는 법’
2008년, 「시와 연애하는 법」이라는 타이틀로 6개월 동안 「한겨레」에 연재했던 원고를 대폭 손질하고, 내용을 보강해 묶은 이 책은 ‘좋은 시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좋은 시는 어떻게 쓰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시작법 책인 동시에 오랜 세월 시마詩魔와 동숙해온 시인 자신의 시적 사유의 고갱이들이 담겨 있다. ‘좋은 시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비법이 수능시험 답안지처럼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가 무엇인지'를 말하기 보다는 '시적인 것'을 탐색하는데 주력한다는 자신의 이야기, 상투적인 것을 피하라는 충고, 한 편의 시가 탄생하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 등을 통해 좋은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관해 이야기 한다.
또한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에 쓴 시를 부끄러이 공개하면서, 자신이 골랐던 시어 하나하나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기도 하고, 급기야 화장실에서 떠오른 시상 메모가 어떻게 한 편의 시로 탄생하는지 그 과정과 흔적을 소상히 서술하면서, 안도현 시인과 시에 대한 뒷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마련한다. 그리고 책 속에 좋은 시의 증표로 삼을 만한 100여 편의 시를 소개하며, 이 시들이 왜 좋은 시인지에 대한 시인의 도움말이 시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자연스럽게 마련하고 있다.
좋은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시와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시라는 세계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 답답해했던 사람들, 어떤 시가 좋은 시인지에 대한 안목을 기르고 싶었던 사람들, 어떤 시인, 어떤 시집을 읽으면 좋을지 막막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이 맞춤한 시 안내서로의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
머리글 - 영혼의 생산자로서 시인이 된다는 것
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술·연애·시집|소리로 세상 읽기
2 재능을 믿지 말고 자신의 열정을 믿어라
타고난 시인은 없다|몰입의 기술
3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똥하고 친해져야 한다|시적인 순간
4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하라
상투성의 그물|세계와의 불화|동심론
5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라
본 것, 가까운 것, 작은 것, 하찮은 것|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6 지독히 짝사랑하는 시인을 구하라
필사의 즐거움|사랑하면 길이 보인다
7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죽여라
시가 서 있어야 할 자리|시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사랑의 표현
8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발효와 숙성|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
9 감정을 쏟아 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
함축인가, 비유인가|고백·감상·현학|묘사의 힘
10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
묘사는 관찰로부터|대상과의 거리두기
11 체험을 재구성하라
시적허구|화자의 뒤에 숨은 시인
12 관념적인 한자어를 척결하라
일상어와 시어|진부한 말이 진부한 생각을 만든다
13 형용사를 멀리하고 동사를 가까이 하라 ...
한심한 언언|동사의 역동성과 종결어미의 변화
14 제목은 시쓰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음식점 간판과 음식의 맛|제목을 붙이는 방식|암시하되 언뜻 비치게
15 행과 연을 매우 특별하게 모셔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행갈이의 힘|산문시와 짧은시|문장의 빛깔과 무늬
16 창조를 위해 모방하는 법부터 익혀라
통변의 기술|시에 숨어있는기승전결
17 시 한 편에 이야기 하나를 앉혀라
서정과 서사의 결합|시에 숨어있는 기승전결
18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진정성이냐, 기술이야|온몸의 시학
19 단순하고 엉뚱한 상상력으로 놀아라
비유의 덧칠|소를 들어올린 꽃
20 없는 것을 발명하지 말고 있는 것을 발견하라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현상의 이면을 보는 눈
21 퇴고를 끊임없이 즐겨라
문을 밀까, 두드릴까|참담한 기쁨을 느낄 때까지|소월도 3년 동안 고쳤다
22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화장실에서의 메모|쩨쩨하고 치사한 시쓰기
23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새로운 언어, 새로운 인식, 새로운 감동|시애틀추장의 연설|시의 네 가지 높은 경지
24 개념적인 언어를 해체하라
상상력을 풀무질하는 시인|시적 상상력과 창의성
25 경이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시인으로서의 고뇌|몇 가지의 시작법
26 시를 완성했거든 시로부터 떠나라
시를 간섭하지 않눈 시인|침묵도 말이다
_색인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많이 쓰기 전에, 많이 생각하기 전에, 제발 많이 읽어라. 시집을 백 권 읽은 사람, 열 권 읽은 사람,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 중에 시를 가장 잘 쓸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 나는 시 창작 강의 첫 시간에 반드시 읽어야 할 시집 목록을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모두 200권쯤 된다. 내가 강의하는 건물에는 국악과가 있어 가야금이나 거문고 따위를 들고 오르내리는 학생들이 자주 보인다.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집이 악기다. --- pp.13~15
시는 ‘대변’을 ‘똥’이라고 말하는 양식이다
‘똥’이라는 말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똥’이 삶의 실체적 진실이라면 ‘대변’은 가식의 언어일 뿐이다. 시는 ‘대변’을 ‘똥’이라고 말하는 양식이다. 그리하여 시는 ‘똥’이라는 말에 녹아 있는 부끄러움까지 독자에게 되돌려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워 슬그머니 미소를 띤다.
모름지기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똥’에 유의해야 한다. 절대로 ‘똥’을 무시하거나 멀리해서는 안 되며, ‘똥’이라는 말만 듣고 코를 싸쥐어서도 안 된다. 똥을 눌 시간을 겸허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똥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하며, 똥하고 친해져야 한다. 똥을 사랑하지 않고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다. --- p.32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시인이란, 우주가 불러주는 노래를 받아쓰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든 메모지와 펜을 챙기고 받아쓸 준비를 하라. 잠들기 5분전쯤 기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때, ‘아, 내일 아침에 꼭 그것을 써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잠들어버리지 말라. 영감은 받아 적어두지 않으면 아침까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시와 시인과의 대결은 서로 잡고 잡히는 어린애들의 놀이와 다르지 않다. 옛 시인들은 시마詩魔가 있다고 믿었다. 시에 사로잡힌 상태를 말한다. 이 귀신이 몸에 붙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몸과 마음이 온통 시에 쏠려 있게 된다. 시를 쓰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시를 한창 쓰고 있을 때 당신도 이 귀신을 만나야 한다. 이 귀신과 친해져서 이 귀신이 옮긴 병을 앓아야 한다. 당신도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 pp.36~37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바라보는냐가 더 중요하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적 경험은 나의 경험의 일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나의 경험 중에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 것을 우리는 시적 경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시인은 경험한 것에 대하여 쓴다. 하지만 경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지는 않는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해 본다고 많은 시적 경험이 쌓이는 것은 아니다. 바쁘게 한 세상을 살아왔다고 그 수많은 경험들이 글쓰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말라. ‘무엇’을 쓰려고 1시간을 끙끙댈 게 아니라 단 10분이라도 ‘어떻게’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 p.59
지독히 짝사랑하는 시인을 만나라
백석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1980년, 대학 1학년 때였다. 백석이라는 낯선 시인의 이 시 한 편은 스무 살 문학청년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나는 캄캄해졌다. 그만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 나는 백석의 새로운 시를 만날 때마다 노트에 한 편 두 편 옮겨 적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묘한 흥분과 감격에 휩싸여 손끝은 떨리고 이마는 뜨거워졌다. 나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필사했다. …… 그가 내게 왔을 때, 나는 그의 시를 필사하면서 그를 붙잡았다. 그건 짝사랑이었지만 행복했다. --- p.65
소월도 3년을 고쳤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1922년 7월 『개벽』에 처음 발표되었다.
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진달래꽃」하고 상당히 다르다. 1925년 12월에 출간한 시집 『진달래꽃』을 준비하면서 소월은 3년 동안 시를 퇴고한 것이다. 시행을 바꿔 전체적으로 리듬을 유려하게 살렸고, ‘고히고히’는 ‘고이’로 줄였으며(‘한아름’은 ‘아름’으로), ‘그’라는 불필요한 관형사를 지웠다. 특히 3연은 대폭 손질한 흔적이 뚜렷하다.
가시는 걸음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앞서 등장한 ‘길’과 ‘뿌리다’ ‘고히’라는 말이 3연에 다시 반복되어 있는 것을 보고 언어의 장인인 소월은 못 견뎠을 것이다. ‘마다’라는 조사는 얼마나 가시처럼 그의 눈에 거슬렸을까? 이러한 퇴고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걸음걸음’이라는 생동감 넘치는 한국적 언어의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신도 시를 고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라. 밥 먹듯이 고치고, 그렇게 고치는 일을 즐겨라. 다만 서둘지는 마라. 설익은 시를 무작정 고치려고 대들지 말고 가능하면 시가 뜸이 들 때까지 기다려라. 석 달이고 삼년이고 기다려라. --- pp.223~224
여기 인용한 시들은 몇몇 작품을 빼고 거의 90년대 이후에 발표된 시들이다. 현 단계 한국시의 한 흐름과 맥을 짚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작법도 시작법이지만 시를 읽는 기쁨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 감사합니다
미숙씨, 좋은 글 고마워요시와 진짜 연애해 보고싶다...
주문만 해놓고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그의 시를 보다가 문득 우리 새얼님들께도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시와 각별해지고 싶은 맘이 드네요. 근데 상대가 눈길을 안주네요^^
사랑스런 미숙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