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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마 11:28-30절
제 목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일 시 : 2026. 8. 23.
마11:28-30/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새번역 마태복음서 11:28-30/"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본문은 천국을 잃어버리고 빼앗긴 채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사랑스런 주님의 음성입니다. 사랑의 주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1.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1)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했습니다.
수고하고란 코피아오라고 하는데 피로를 느끼다, 열심히 일하다, (부여된)노동, 수고, 쇠약해지다 라는 뜻의 현재 분사 능동태로서 자기 스스로 많은 일 때문에 피로를 느끼고 쇠약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무거운 짐이란 프홀티조 라고 하는데 짐을 싣다(배나 짐승에게), (영적 근심)으로 과중하다, 무거운 짐을 지다라는 뜻의 현재 분사 수동형으로서 다른 사람에 의해서 무거운 짐을 진 채 계속해서 지쳐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수고하다란 스스로 많은 일을 하느라 피곤하거나 쇠약해 졌다는 뜻이며, 무거운 짐진 자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무거운 짐을 진 채 지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 당시의 사람들을 보니까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지나친 열심으로 많은 일을 하느라고 피곤해 하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지워 준 짐 때문에 지쳐 있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이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와 원수 마귀가 지워 준 질병과 고통이라는 무거운 짐을 진 채 힘들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순례자의 길을 가는 믿음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12: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무거운 것이란 무거운 것에 눌려 있는(힘에 버거운), 짐이라는 뜻입니다. 얽매이기 쉬운이란 유페리스타토라고 하는데 즉(경쟁자가)모든 방면에서(경주자를)훼방함, 쉽게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벗어버리다란 아포티데미라고 하는데 집어치우다, 벗어 던지다, 따로 두다, 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란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것을 벗어 던지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도 모든 무거운 짐이란 스스로 지나친 열심으로 만든 짐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뜻이 아닌 자기 욕심을 좇아 살아가는 삶이 곧 짐이라는 뜻이며,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다란 사탄 마귀가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모든 것들을 멀리하다 라는 뜻으로 원수 마귀는 우리가 주님의 뜻을 좇아 선한 일을 하는 것(예배,기도,전도 등)을 방해함으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란 자신의 잘못된 욕망과 욕심 때문에 피곤해 하거나 아니면 원수 마귀의 방해와 유혹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요즘 삶이 너무나 힘들어 지쳤어 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요즈음 하는 일마다 안되고 막혀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만든 짐으로 힘들어 하거나 마귀가 유혹하고 방해하는 것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으로 모두가 예수님과는 상관이 없는 일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바로 예수님과는 상관없이 또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지 못한 채 험한 세상, 지옥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전도하면서 만나서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목사님, 지금 살아가는 삶도 지옥 같은 데 무슨 지옥이 또 있습니까?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솔직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없이,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사실, 매일의 삶이 지옥같은 삶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주신 사명이나 일들은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일단 믿음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시키실 때는 반드시 주님께서 도와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돕는 자를 보내 주셔서 그 일이 잘 되도록 길을 열어 주시는 등 주님께서 반드시 그 일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란 일단은 주님과는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모든 일들을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맡기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다음의 말씀을 보시면 주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일하든지 그것이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이고, 주님께서 시켜서 하는 일 같으면, 주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주님께서 맡겨 주신 일들을 행하는 과정 속에서 어느 정도 힘듦이 있을 지는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완성하심으로 책임져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님께 순종해서 하는 일은 주님께서 책임지고 이루십니다. 바로 그런 믿음으로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그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기쁨이요 즐거움이요 주님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 인생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도 위탁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만약 내가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면 그 일은 결코 나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일할 때 주님은 그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럽게 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일하게 하셔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쉬는 일이 되게 하십니다.
문제는 나의 인생과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잘못된 욕망으로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한다면 그것은 쉬는 일이 될 것이고 즐겁고 기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와 내 인생과 내가 하는 일이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나의 뜻과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참된 쉼과 안식이 없고 기쁘고 즐겁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내게로 오라는 말씀처럼 주님께로 가는 것이고, 또한 나의 인생과 나의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2)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내게로 오라란 듀테 라고 하는데 이리로 오라, 오다, 뒤따르다 라는 뜻으로 예수님 없이 내 스스로 가지 말고 주님의 뒤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너희들이 그렇게만 한다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쉬게하리라는 아나파우오 라고 하는데 남아있다, 쉬게 하다, 원기를 돋우다, 안식하다, 휴식하다 라는 뜻으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주님을 따라가게 되면 주님께서 힘을 주시고 하는 모든 일이 노동이나 수고가 아니라 안식을 누리며 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과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까? 아니면 즐겁고 기쁘고 쉬는 일입니까? 저는 사람들이 휴가는 언제 갑니까? 라고 물으면 나는 전도하면서 쉽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저는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기 때문에 그 순간이 쉬는 시간입니다. 외적인 환경이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면 불편하기는 합니다. 그것은 불편한 것이지 고통스럽거나 힘든 짐이 아닙니다. 저는 전도하면서 쉽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더 잘살지 못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전도자로 살지 못하는 것이 나에게 짐이고 고통이고 주님께 죄송스럽지, 전도하는 자체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2.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새번역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1)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습니다.
원문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왜냐하면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마음(카르디아)이란 헬라어로 심장이라는 뜻이지만 예수님의 본능적인 성품을 의미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란 예수님의 본능적인 성품자체가 온유하고 겸손하다라는 뜻입니다. 온유하다란 프라오스라고 하는데 온화한, 겸손한, 온유한 이라는 뜻입니다. 겸손하다란 타페이노스라고 하는데 짓눌린, 즉(상징적으로) 굴욕감을 느끼는(환경이나 배열에 대해), 천한, 초라한, 낮은 등급(신분)의, 겸손한이라는 뜻으로 겸손하다란 많은 고난을 받거나 짓눌리거나 굴욕감을 느껴 보았거나 종처럼 고난당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것은 그저 화를 내지 않고 온순하다는 뜻이 아니라 종(servant)으로서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거나 고난을 당해보아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안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본성 자체가 고난 받은 종으로써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난을 다 당해보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2)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멍에란 쥐고스 라고 하는데 고전헬라어에서는 종이나 짐승이 메는 멍에를 의미했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완전한 종속, 속박 이라는 뜻입니다. 메고란 아이로 라고 하는데 들어올리다, 취하다, 나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종들이나 노동자 두 사람이 함께 멍에는 메고 밭을 갈거나 일을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주신 멍에를 멘다는 것은 곧 예수님과 함께 메는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쉼과 멍에는 동일한 축복을 그린 두 개의 그림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멍에를 멤으로써 우리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는 자에게 쉼을 주는 멍에인 것입니다.
이어서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배우다란 만나노 라고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든지)배우다, 이해하다 라는 뜻으로 배우다란 모방하거나, 자신의 경험을 배우라는 뜻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전달해 줄 수 있는 계시로서의 진리를 와서 배우라는 의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배우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직접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을 통하여 배우는 것은 불순물들이 많이 섞일 수가 있습니다.
3)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마음이란 푸쉬케 라고 하는데 혼, 지정의를 가진 자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카르디아 라고 했고, 인간의 마음을 푸쉬케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예수님의 본성을 의미하며, 인간의 마음이란 범죄하고 타락한 이성으로써의 자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쉼을 얻으리니란 쉼이란 아나파우시스 라고 하는데 중단(쉼), 오락, 안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얻으리니란 휴리스코 라고 하는데 찾다, 발견하다 라는 뜻이며, 그래서 쉼을 얻다, 발견하다란 참된 안식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 안에 있었고, 예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한 것을 드디어 발견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렘 6:16절의 말씀은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렘6:16/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라는 말씀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고 하시면서 그러면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본문을 이 렘6:16절과 연관지어 이해하면 옛적 길 곧 선한 길로 행하려면 예수님의 멍에(가르침과 진리의 말씀)를 메어야(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는 율법학자들이 뒤집어 씌운 그런 무거운 짐이 아니라 안식을 가져다 주며 평강을 가져다 주는 쉽고도 가벼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28:2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3.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멍에란 쥐고스 라고 하는데 고전헬라어에서는 종이나 짐승이 메는 멍에를 의미했으며, 신약성경에서는 완전한 종속, 속박이라는 뜻입니다. 쉽다란 크레스토스 라고 하는데 유쾌하다,부드럽다, 좋다, 은혜스럽다, 안락하다, 친절하다 등의 다양한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쉽다(크레스토스)라는 다양한 의미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장 가벼운 것입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예수님의 멍에를 새의 깃털에 비유하여 그 깃털이 창공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 만큼 가볍다고 설교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라고 주신 짐, 곧 주님의 새 계명=사랑의 계명(commandment of love)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님니다. 그래서 요일5: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이 세상의 도덕이나 율법보다 무가치하거나 경박(輕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어떤 가르침보다 더 준엄하고 숭고(崇高)하며 높은 수준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라고 주시는 짐은 1) 확실한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며, 2) 선하고, 바르고, 좋은 것이며, 3) 항상 예수님의 능력에 의존하는 신앙이 전제된 것이며, 4) 나 혼자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사랑으로 메기 때문에 그 집은 가볍고, 또 영원한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했습니다.
짐이란 프르티온이라고 하는데 화물, 즉 과업 혹은 업무, 무거운 짐이라는 뜻입니다. 가벼움이라는 엘라프로스 라고 하는데 가벼운, 사소한, 견디기 쉬운 이라는 뜻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워 주신 짐, 사랑의 계명은 결코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다. 가볍고 쉽습니다. 원수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무겁고 힘든 짐이라고 속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마귀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가서 말씀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시도해 보지도 않습니다.
행15: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라고 했으며, 행15:5/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무거운 짐을 지워서 고통스럽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와 장로들이 함께 모여서 의논한 후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행15:10/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라고 했으며, 행15:20/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했으며, 행15:28/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숭배와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그 외에는 사도들이 가르쳐 준데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능력을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능력 주시는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메어 주신 신앙생활이라는 모든 짐을 쉽고 편하게 안식을 누리면서 메고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지옥같은 삶이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삶이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삶은 쉬는 것이며, 안식을 누리는 것이며 천국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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