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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m 이상의 산봉우리가 스물여섯 개나 되는 산의 고장 거창(居昌).
우리 국토의 뼈대를 이룬 백두대간의 덕유산 구간이 거창의 서북쪽 지붕을 이루고, 거기서 뻗어 내린 진양기맥 산줄기가 거창 땅 서남쪽 골골을
샅샅이 훑고 지난다.
동북쪽의 경계를 이룬 것은 국립공원 가야산의 비호 아래 펼쳐진 웅장한 마루금이다.
이 두 산줄기 안에 거창(巨創)한 거창(居昌)이 자리한다.
우두산(牛頭山)은 예전에 별유산(別有山)이라고도 불렀다.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는 뜻은 따로 세상이 있지만 인간 세상은 아니라는 뜻으로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체험하거나
그런 세계가 왔을 때 쓰는 표현이다.
별유산(別有山)은 그러한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속세를 떠나 별유천지(別有天地)일 만큼 빼어난 산이다.
우두산에서 500여m 떨어진 최고의 조망봉인 의상봉(義湘峰 1,046m)은 우두산의 아홉 봉우리 중의 하나.
소머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 우두산은 일본 개국신화와 관련되어 있으며, 의상봉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참선한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두산 자락에는 고견사와 견암폭포, 의상대사가 쌀을 얻었다는 쌀굴 등이 있으며, 최치원 선생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고견사는 신라 문무왕 때(667년) 원효와 의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데, 전생에 와 본 곳이라 해서 고견사(古見寺)라 이름 붙였고,
견암(見庵)이나 견암사로도 불렸는데, 견암폭포는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한때 제법 융성한 사찰이지만 한국전쟁 때 불에 타고 이후 차츰 중건됐다.
주차장에서부터 1㎞ 넘게 산길을 걸어 올라야하지만 2001년 모노레일을 만들어 짐을 실어 나르기에는 한결 수월해졌다.
대웅전 안에는 보물 제1700호인 고견사 동종과 대웅전 오른쪽 범종루 뒤에 경남 유형문화재인 석불이 있다.
우두산은 백두대간 대덕산 남쪽에 있는 삼도봉(초점산)에서 분기하여 수도산과 단지봉을 지나며 남쪽으로 꺾어내리는 수도지맥에서 만나는 봉우리다.
이 수도지맥은 다시 두무산 오도산 만대산을 그치며 황강과 낙동강 합수점까지 105.8km를 달려와 끝을 맺는다.
필자는 2011년 6월 한마음산악회의 정기산행 일정으로 오늘 A팀이 걷는 코스와 똑같이 다녀온 바 있다.
◇ 참고 산행기(주차장-바리봉-장군봉-의상봉-우두산-주차장) ☞ http://cafe.daum.net/phanmaum/FXy6/219
GPX
5.3km를 후미와 함께 천천히 4시간 30분이 걸렸다.
고도표<산행을 시작하는 주차장이 고도 500m였고, 고견사는 해발 약700m였다.>
국제신문의 코스와 똑 같이 걸었다.
부산일보의 참고 개념도. 이 코스를 따라 2011년 6월 걸었다.
수도지맥
처음 A팀은 당동을 기점으로 하였으나 고견사주차장 원점회귀로 바꿨다.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올라...
공사가 진행 중인 고견사 방향과...
조금 떨어져서 좌측 바리봉 방향(콘테이너 건물 뒤)으로도 살핀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B팀들이 앞서가는 뒤를 따른다.
우측으로 나중에 내려온 마장재 우두산 방향을 흘겨보며...
계곡 깊숙한 지점에 깎아지른 암반으로 형성된 견암폭포를 지난다. 이름만 폭포일 뿐 오랜 가뭄으로 물줄기는 아기 오줌줄보다 뭇하다.
계단을 따라...
거대한 바위 밑을 통과하다...
오른쪽으로 허연 이빨을 드러낸 암반을 바라본다.
그 뒤론 주능에서 뻗어내리는 작은 능선.
모노레일을 만난다. 고견사로 운반하는 온갖 짐들을 실어나르는 수단.
의상대사가 수도할 때 매일 두 사람분의 쌀이 나왔다는 '쌀굴'도 신비함을 더한다.
쌀굴은 고견사 동쪽 산등성이를 넘어 1㎞ 정도에 위치해 있다. 쌀굴(600m) 갈림길을 지나자 싸르싸르 아랫배가 아파 와...
급히 해우소를 찾아야 한다.
천왕문을 들어서기 전에 만난 해우소(解憂所)에서 필자는 기어코 근심을 풀고 말았다.
예전엔 의상봉 고견사로 기억되지만 지금 천왕문엔 우두산 고견사라 편액되어 있다.
천왕문을 들어서자 엄청난 규모의 은행나무 한 그루가 다른 수종의 나무와 섞여 군계일학의 자태로 서있다.
이 은행나무는 천 년이 넘은 은행나무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진다. 높이 28m에 둘레만 6.10m에 이른다. 2000년 3월 보호수로 지정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667년(문무왕 7)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견암사(見岩寺)에 기원을 둔다.
1360년(공민왕 9)달순(達順)과 소산(小山)이 김신좌(金臣佐)와 함께 중건하였다.
1395년 태조가 고려왕조의 왕씨(王氏)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전지(田地) 50결을 내리고, 매년 2월 10일 내전의 향(香)을 보내서 수륙재(水陸齋)를
행하게 하였다.
1424년(세종 6) 사원의 승려 수와 전지의 결수를 정할 때, 45결이었던 전지를 100결로 늘리고 승려의 수를 70명으로 하였다.
1630년(인조 8) 설현·금복·종해 등이 중건하고 고견사(古見寺)라 개칭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보물(제1700호)로 지정된 범종과 경남 유형문화재인 석불이 있다.<자료>
올려다 보는 고견사의...
돌말뚝이 석기둥은 무엇에 쓰는 어떤 물건인고?
쭉쭉빵빵 키큰 나무들을 따라...
정면 3칸 팔작지붕의 대웅전 앞에 섰다.
대웅전 앞에 있는 이 돌은 배례석(拜禮石) 또는 정례석(頂禮石)으로 불린다.
대부분 야외의 법당 정면이나 석등 바로 앞에 놓이는 것이 보통이나 사리신앙(탑신앙)이 성행하던 시기에는 탑 앞에도 배례석을 두었다.
형태는 직사각형인 것이 대부분이나 간혹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도 있으며 대부분 법당과 평행으로 놓여있다.
배례석의 윗면에는 화려한 연꽃으로 장식된 것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도 있다
신발을 벗고 대웅전 옆문을 통해 법당안으로 들어선 다음 합장. 복전함에 복전을 넣었다.
대웅전 좌측 모서리에 안치된 보물 제1700호인 '고견사 동종(居昌古見寺銅鍾)'
이 동종은 1630년(인조 8)에 승장계 주종장으로 활동한 천보(1595∼1634 활동)가 고견사의 사명(寺名)이 견암사일 때 제작한 것이다.
형태는 한국 종의 특징인 한 마리의 용으로 감싼 모양의 음통(音筒)이 없는 대신 쌍룡으로 된 종뉴와 띠장식을 두른 종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조선 초기에 유행했던 외래 유형에 속한다.<다음백과>
용의 이마에 '왕(王)' 자를 새겨 놓은게 특이하다.
고견사 동종은 사실성이 있는 쌍룡의 표현이나 종신의 균형미, 불좌상과 불탑·원패·범자가 장식된 점, 생동감이 있는 문양대 등에서 17세기 전반기 범종을
대표하는 종으로 볼 수 있다.
동종의 명문은 조선후기 일반적인 동종과 다르게 사찰의 연혁, 동종 제작에 소요된 실제기간, 제작에 들어간 물품 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기문 형태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료로 보존가치가 크다고 한다.
거창 고견사 동종 안내판.
범종각 뒤로...
석불이 안치된 불각을 찾았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3호인 '고견사 석불(古見寺石佛)'이다.
이 불상은 한눈에 심하게 마멸됐다. 높이 220㎝, 너비 120㎝, 어깨너비는 75㎝이며 전체적으로 당당한 모습과 토속적인 인상을 풍긴다.
머리는 육계(肉髻)가 뚜렷한 소발형(素髮形)이며, 얼굴에는 눈·코·입 등의 희미한 윤곽만이 남아 있다.
귀는 어깨에 닿아 긴 편이며, 목은 짧고 삼도(三道)는 보이지 않는다.
신체는 비교적 당당해 보이는데, 넓은 어깨와 둥글고 살찐 얼굴 때문인 듯하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둥글고 두꺼운 몇 개의 주름만으로 간략히 표현하였으며, 신체에는 볼륨이 없이 편평한 조형감이 강조되었다.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을 아래로 펴서 밖으로 향한 모양인 듯하다. 현재는 발 부분이 잘려 있는데 원래부터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광배(光背)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이며, 2줄의 양각선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구분하였는데, 두광에는 단판연화문(單瓣蓮花文)과
연주문(連珠文)이 장식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마멸이 심하지만 고려시대 석불의 양식적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상이다.<다음 백과 요약>
고견사 석불 안내판.
돌아나와 샘터에서 한 바가지 시원한 감로수를 들이킨 후...
대웅전 뒷편으로 올려다 보니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보인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오래돼 보이지는 않는다.
사성각(四聖閣)을 지나며, 사성(四聖)- 사대성인- 은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이지만
고견사 사성각은 칠성여래님, 독성님, 산신님, 용왕님을 모신 곳이란다.
사성각 뒤로 올라 마애석불(磨崖石佛)을 알현하였다.
그리곤 고견사 뒷쪽 소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산자락으로 오른다.
거대한 바위 밑에 우물도 있고 복전함도 있다.
좌측 바위 아래의 석불.
의상봉 좌측 아래의 안부에 올랐다.
안부의 이정표.
예전에 인증했던 우두산 정상석은 의상봉 아래 이곳에 세워져 있다.
ㅋㅋ... 제 마눌 머리에 오른 손을 올려놓고 무슨 웃음을 그리 웃낭? 아직 정상은 저만치 한참이나 남았는데...
의상봉을 좌로 에두른 후에 만나는 또다른 갈림길에...
의상봉을 오르는 계단이 있고, 그곳에 '가조 1경'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의상봉을 오르는 계단을 오르다 뒤돌아본 모습.
B조 일행들을 여기에서 만났다.
계단을 오르다 우두산 방향으로 돌아보니...
산세는 오목하게 고견사를 감싸고 있다. 그래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라고 하남? 포란하던 금계가 비계산에서 날아가면 우짜노?
쓰잘 데 없는 생각을 접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모진 풍파에도 아랑곳없이 바위 틈새에 뿌리를 박고 선 소나무.
우두산 방향의 산세를 자꾸만 돌아본다.
계단을 오르다 열리는 곳의 전망은 A팀이 오른 바리봉 능선.
숙성산 미녀봉 방향으로 더멀리...
당겨 보았더니 시설물이 있는 봉우리는 오도산.
의상봉을 오르면서 돌아보는 전망.
의상봉은 의상대사가 참선을 한 곳.
우두산의 위성봉으로 우두산 보다 높이는 낮지만 그 위세는 2등가라면 섧을 것.
이토록 사방팔방(四方八方)...
통방(通方)의 자리이니...멀리 첩첩의 산맥 뒤로 하늘에 맞닿은 하늘금은 수도지맥(?)
무엇을 닮긴 닮았는데, 아~ 맞다. 작은 돌고래인 상괭이. 상괭이는 사람의 웃는 모습을 닮았대서 '웃는 돌고래' 또는 '한국의 인어' 라고도 불린다.
상괭이의 귀여운 모습<자료사진>
아까 일행들이 방을 뺀 식사자리에 앉으려다 커다란 왕개미들 때문에 이주. 그런데 성호씨는 몸이 허약(?)하여 왕개미 두 마리를 생으로 씹어 먹는다.에구~
내려와서 올려다 보는 의상봉.
식사자리 옆에 도드라진 바위가 있어...
올라섰더니 7형제를 닮은 바위가 나란히 서있다.
식사 후 돌아보는 의상봉
천혜의 암릉 지대에서...
조망을 즐기며 한참이나 머물다...
세월아, 네월아, 유산(遊山)놀음을 한다.
의상봉과 그 너머로 톱니를 이루고 있는 암릉.
암릉을 돌아보다 달마대사를 닮은 바위를...
살짝 당겨 보았더니 영판 달마를 닮았다. 그렇다면 달마가 우두산으로 간 까닭은?
이 바위 누대(樓臺)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무상무념의 이 소나무님은 탈속(脫俗)을 하셨을까?
폼생폼사의 민재 씨는 그래서 걸음이 더딘 편.
석문(石門)을 통과하다...
에구~ 낑깄다. 지난 번에는 현자씨가 낑기더니...ㅋㅋ
맞은 편의 산자락을...
살짝 당겨 보았다.
B팀 중에서도 B팀이니 바쁠 일은 없어.
또다시 돌아본 의상봉.
우두산은 저쪽 숲속에 숨어 있어 가늠하지 못하지만...
그 우측 산자락으로 흘러 내리는 암봉만은 자꾸만 눈이 가니, 그래서 '눈은 부지런하고 발은 게으르다.'라고 하는강?
느림보 B-B팀이 기어코 우두산頂에 섰다.
의상봉 아래에 예전의 작은 정상석을 밀어내고 정상을 차지한 큼지막한 자연석 정상석의 하얀 무늬결.
그 뒤로 매화산으로 가는 길은 출입통제. '출입통제'라는 글귀를 누군가 훼손하였다. 그러니까 우두산을 넘으면 가야산 국립공원이 되는 셈.
매화산과 남산제일봉, 그리고 그 뒤로 가야산.
당겨 보았다.
이 바위는 무엇을 닮았나? 쇠통을 닮아 쇠통바위?
300m를 내려와 주차장 갈림길이 나오면...
마장재 방향으로 진행해야만 멋진 암릉길을 만나 산행의 하이라이트를 맛볼 수 있다.
마장재 방향으로 돌아나와 만나는 암릉구간.
A팀의 영관씨와 서표씨가 우리를 앞섰다.
휑하니 앞서가는 그들.
필자는 오늘 오형님과 발걸음을 함께 해야만 한다.
걸음은 나름대로 잘 걷지만 한 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최근에는 산을 오르지 않다가 필자가 함께하면 조심조심 동행을 한다.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암릉 구간 뒤로 고개를 내민 비계산.
조물주는 이처럼 켜켜이 포개고, 차곡차곡 쌓고, 가지런히 배열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 놓았다.
눈을 돌리는 남산제일봉과 가야산 방향.
암릉을 이리저리 안전시설을 이용하다...
돌아보는 지나온 길.
성호 씨 부부와 민재 씨는 더 뒤에 쳐져 있고...
우로 돌아보면 A팀이 크게 원을 그린 능선이 선명하다.
차츰 고도는 하강하지만...
아직 더 보여줄 게 있는 우두산 암릉은...
쫏삣 촛대바위인 듯하였지만 글자를 새겨도 좋을 비석바위를 빚어 놓았다.
다시 우로 돌아보고...
또 돌아 보아도 전혀 지루할 새가 없어.
비계산 마장재 방향으로 능선은 더 이어지지만...
우리는 여기까지다. (마장재를 1km남짓 남겨둔 여기는 '고개삼거리') 우리는 빨간 화살표를 따라 능선길에서 벗어나며 뒷사람들에게 표식기를 수정해 놓았다.
우두산 갈림길을 만나면서...
산길은 편안한 육산으로 바뀌더니...
그제사 고운 나리꽃에 눈길이 머문다.
다시 마장재 갈림길을 만나고...(이 길로 영관 씨와 서표 씨가 내려옴)
한창 건축물이 지어지는 곳에 내려왔다. 건축물의 정체가 무얼까?
이제 알았다. 이 건축물은 거창군에서 추진하는 '항노화 힐링랜드' 조성사업의 일환인 듯.
공사장으로의 출입은 막아 놓아...
오랜 가뭄에 바싹 말라버린 계곡을 건너...
아까 올라갈 때 보았던 '마장재 우두산' 표식기가 있는 곳으로 나왔다.
우리 버스의 지붕이 보이더니...
덩그렇게 우리 버스만이 너른 주차장에 대기 중이다. 계곡은 물이 말라 있으니 화장실로 들어가 씻을 수밖에...
그런 다음 조리하고 있는 음식이 나올 때가지 기다리는 테이블로 가서 시원한 생탁음료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여름 보양식 닭백숙은...
땀흘린 자의 축복이다.
-고견사 석불-
석불도 은행나무도 마음이다
그 마음 천년이 기본이다
수억만 년 묵상에 잠겼던 바위가
산괴불주머니꽃 이슬을 털고
눈부신 미소로 나오던 아침이 있었다
그 이래로 천 번의 신록, 천 번의 단풍
은행나무가 전하는 일기일경의 말들을 들으며
천년을 한 일각에 산 시간이 있다
눈을 감으면 그 환한 소리들 산의 파도로
넘쳐 불어나고, 별들의 강물로 흐른다
이제 그만 돌이 되련다
눈도 코도 입도 다 지워버리고
귀 하나만 열어놓으련다
천년이 하루아침 일이다
오늘 새벽꿈처럼 생생한 전생의 하루를
천년으로 살아보는 그런 오늘이 있다
그런 목소리가 있다
여기 별유산 고견사에서는
<이 종 성>
첫댓글 햄요~어렵게 찾아낸 우두산의 명물이될 사진 안올려났네요~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