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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불선원 () 선불교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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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나누기 스크랩 鏡峰스님과 三笑窟..
봉두 총각 추천 0 조회 68 12.05.30 12:16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鏡峰스님과 三笑窟>

 

        * 경봉스님(1892-1982)

 

三笑窟은 경봉스님이 촛불이 문틈을 파고드는 바람에 부딪혀 춤을 추는 광경을 보고

깨달음을 얻고 悟道의 노래를 불렀던 곳이다.

 

我是訪吾物物頭 내가 나를 찾아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目前卽見主人樓 눈앞에서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呵呵逢着無疑惑 하하 우습구나, 이제 만나 의혹이 없으니

優曇華光法界流 우담바라 꽃광명만 온 누리에 흐르네

 

 

경봉스님은 생전에 늘 말했는데 도인과 중생의 차이는 네 가지를 알고 모르는데 있다.

중생에게는 네가지 큰 의혹이 있다 하였다.

 

자기를 모르는 것

온 곳을 모르는 것

가는 곳을 모르는 것

죽는 날을 모르는 것

 

 

선사는 이곳 삼소굴에서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월간 해인'에 있는 글을 옮겨 본다.

 

"통도사를 감싸 안은 영축산은 그 심장 깊숙이 극락암을 품고 있다.

극락암은 통도사 근현대 역사의 주축을 이룬, ‘九河의 敎’와 鏡峰의 禪'이라고

일컫는 경봉선사(1892~1982)가 삼소굴에 주석하면서 선풍을 드날렸던 통도사의 말사이다.

삼소굴은 1927, 경봉선사가 용맹정진 중, 촛불이 문틈을 파고드는 바람에

부딪혀 춤을 추는 광경을 보고 깨달음을 노래한 곳이며,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라" 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한 곳이기도 하다.

법을 구하기 위해 승속을 막론하고 구름같이 몰려들었던 불자들에게 자비의 미소로 지혜를 열었던 공간이다.

 

극락암은 고려 충혜왕 초기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50여 년간 극락암을 지키며 모든 중창 불사를 주관해온 선원장 명정스님은

 

땅만 파면 신라시대 와당이 나 여기 있소하고 무수히 나왔는데 고려 창건기는 허구야라고 하신다.

 

명정스님은 20년 동안 경봉선사를 곁에서 시봉한 효상좌이다.

노장이 불국사에서 6개월 전에 설법하셨던 법문을 적어 오라고 하셨어.

어렵지만 그대로 써서 드렸거든, 그 일이 시초가 되어 노장님 곁에서 걸망지고

다니는 일등 수좌로 글쟁이가 되어, 타락 아닌 타락을 하게 되었지.”라고

하시는 스님의 얼굴에서 영축산 천진불의 미소가 피어오른다.

 

입승 스님께 방문을 잠그라고 하시더니, 열쇠 꾸러미를 찾아 벽장에서 꺼내온 보따리를 풀어 놓으신다.

용성, 한암, 만공, 탄허, 만해, 춘성, 성철, 향곡, 석우스님 등 경봉선사가 당대의 선지식들과

깨달음의 경지를 겨뤘던 법거량, 주고받은 선문답, 일생동안 쓴 일기, 사진 등 보물처럼 간직한 스승의 유필이다.

 

순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감동과 온 몸에서 느껴지는 전율이 교차한다.

한자리 앉아서 기라성 같은 선승의 숨결과 손길이 농축된 수많은 문자사리를 한꺼번에 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스님은 스승의 방대한 유필을 모아 경봉스님 말씀삼소굴 소식’‘경봉일지등을

펴냄으로 스승의 뜻을 기리고 불자들의 마음을 열어 세상을 깨우고 있다.

 

경봉선사 입적 후 원광재를 지키며 가풍을 이어가는 스님은, 스승을 한시도 잊지 못한 사무친 그리움이 절절하다.

 

노장님 가신지 벌써 30년이나 되었어. 잠깐 지나간 세월인데, 살아 계시는 것만 같아.”

가느다랗게 떨리는 스님의 음성이 다관 가득 찻잎을 담아 진하게 우려주신 독한 차 맛처럼 가슴을 흠뻑 적신다..

 

호국선원은 경봉선사가 1928년 조실로 추대되면서 선원을 개설하고 입적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낮에는 설법, 밤에는 용맹정진의 독특하고 힘든 수행으로 바보가 되거라”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보아라하며 수좌들의 정진을 독려했다.

 

경봉선사의 자비가 훈습된 호국선원에는 수행자가 100명 이상 모여들어 한강 이남의 제일가는 선원으로 이름을 드날렸다."

   

 

경봉스님은 詩 書 畵까지 두루 갖춰 五絶로 불렸던 대선사다.

차를 좋아하여 茶禪一味를 가르쳤던 스님이다.

 

喫飯喫茶人生 日常三昧之消息 會德磨 茶

 

밥먹고 차마시는 살림살이가 일상삼매의 소식이라.

이 소식을 알겠는가! .

 

차에 관한 시도 많이 남겼다.

 

滿天風雨處空 하늘에 가득한 비바람 허공에 흩어지니

千江水面中 달은 일천강 물 위에 떠 있고

山岳高低揷空連 산악은 높고 낮아 허공에 꽂혔는데

茶前香藝古度通 차달이고 향 사르는 곳에 옛길이 통했네

 

 

秋水長天 가을물 긴 하늘에

上下圓融 상하가 원융하고

一色蘆花 한 빛 갈대꽃에 명월이 왕래하니

時兮景兮 시절과 풍경이여

是外何奇 이 밖에 어떤것이 기이한가

萬古眞消息 만고의 참된 소식은

石鼎一椀茶 돌솥에 끓인 한 주발의 차일세

 

 

<걸어가며 세상보기: 茗園>에서 발췌 ? 무진장, 행운의 집(2012.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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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 스님〈상〉                                                                                                                                                                              2005.02.02 법보신문 : 790 호

“물처럼 만물을 살리며 살아라”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경봉(鏡峰) 큰스님은 근세에 경남 양산의 통도사가 배출한 위대한 선사(禪師) 가운데 한분이었다.

스님은 1892년 4월,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일찍이 한문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어머니 안동 권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16세의 나이에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절감하고 양산 통도사 성해 스님을 은사로 삭발 출가하였다.

이후 경학(經學)이나 사찰소임에는 뜻이 없고 오직 참선수행에만 마음을 두었다. 그러나 사찰에서는 그에게 종무소 사무를 계속 맡기는지라 스님은 통도사를 탈출, 비장한 각오로 참선 수행을 시작했다.

1927년 ‘이 뭣꼬’ 화두를 들고 참구하다 마침내 개오하여 ‘대자유’를 얻었다. 그 후 경봉 스님은 통도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와 중창불사에 헌신하셨고 통도사 산내 암자인 극락선원에 조실로 머무시면서 눈푸른 납자들을 제접하셨다.

1982년 7월 17일, 세수 91세, 법랍 75세로 열반에 드셨다.
“나 죽은 뒤 내 모습이 보고 싶다면…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이 유명한 마지막 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남긴 채 세상과 인연을 접은 것이다.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법문

해방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쳐 1960년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민도(民度)는 부끄러울 만큼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1960년대까지는 전체 국민의 반 이상이 문맹자로 여겨질 정도로 문화 교육수준이 밑바닥을 맴돌고 있었고 겨우겨우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가는 백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당시 그렇지 않아도 한문으로만 되어있던 불경, 한문으로만 독송하는 의식, 어려운 한문용어로만 전해지던 스님들의 설법 때문에 불교는 그야말로 불교가 아닌 채 ‘불공이나 올리고’, ‘소원성취나 비는’ 기복종교에 머물고 있었다.

이 당시 절에 가보아야 보통 백성들은 스님의 설법이 무슨 말씀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머나먼 말씀’일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당시, 경봉 스님은 누구나 재미있고 쉽게 부처님의 말씀을 풀어서 설법해 ‘뭐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던 불교신자들’에게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제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여섯 가지가 다른 것이 아닌기라.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눈, 귀, 코, 혀, 몸 그리고 생각을 가리켜서 육근(六根)이라고 하는긴데, 알고 보면 이 여섯 가지가 사람을 망치는 도둑놈들인기라.

그래서 부처님이 이 여섯 가지 도둑놈들을 제대로 잘 단속하라고 이르신게야.

눈도 도둑이요, 귀도 도둑이요, 코도 도둑이다. 이 도둑놈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가면 그 사람은 신세를 망치게 되는기라.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가 갖고 있는 몸속의 여섯 도둑놈들을 잘 다스려야 하는기라. 내 말을 알아 듣겠는가?”

이토록 쉽고 시원한 법문 덕분에 통도사 극락암에는 늘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물처럼 살면 후회 없으리

경상남도는 물론, 인근의 부산에 살고 있는 불교신도. 멀리는 서울에 살고 있는 불교신도들까지 기를 쓰고 저 멀고 먼 양산 통도사 극락암까지 찾아간 이들은 바로 그 깊은 산속 암자에 영축산의 대선사 경봉 스님이 앉아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경봉 스님을 만나 뵙고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나면 이 세상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봉 스님은 영축산 약수터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돌에 새겨두고 신도들로 하여금 약수를 마시면서 그 글귀를 음미토록 하였고, 이 유명한 글귀가 자살하려던 수많은 중생들을 살려냈다는 전설 아닌 전설을 만들어냈다.

영축산 약수터에 경봉 스님이 새겨둔 글은 다음과 같다.

“이 약수는 영축산의 산 정기로 된 약수이다.
나쁜 마음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먹어야 모든 병이 낫는다.
물에서 배울 일이 있으니, 사람과 만물을 살려주는 것은 물이다.
갈 길을 찾아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물이다.
맑고 깨끗하며 모든 더러움을 씻어주는 것이 물이다.
넓고 짙은 바다를 이루어 많은 고기와 식물을 살리고 되돌아 이슬비가 되나니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영축산이 깊으니 구름 그림자가 차갑고 낙동강 물이 넓으니 물빛이 푸르도다.”

얼음물고 참선하다 치아 상해

영축산을 오르던 고해중생들이 이 약수터에 이르러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나서 경봉 스님이 써놓으신 이 글귀를 보고도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지 못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바로 이 영축산 약수터의 ‘물 법문’ 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이 마음속에 새겨 맛있는 인생을 살도록 생각을 바로잡게 해주고 있다.

물처럼 사노라면 결코 후회 없으리!
오직 참선수행에만 평생을 매달렸고 한겨울에도 끝없이 밀려오는 졸음을 막으려고 개울에 얼어붙은 얼음덩이를 깨어다가 입에 물고 수행을 강행, 젊었을 때 치아를 거의 다 버린 상태였다.

스님이 노인이 되셨을 때 스님의 치아가 너무 부실하여 음식을 제대로 잡숫지 못하자 제자와 신도들이 돈을 모아 의치를 해드리려고 했더니 스님은 한사코 손을 내저으셨다.

“늙은 중이 갈비를 뜯어먹을 일도 없는데 틀니를 해 박아서 무엇하노. 그 돈 따로 쓸데가 있으니 차라리 나한테 현찰로 다고.”

그리고 스님은 틀니를 해 넣으시라고 신도가 놓고 간 돈을 가난한 신도를 위해 찔러 넣어 주었다.

“집에 갈 때 양식이라도 좀 사가지고 들어가거라.”

경봉 스님은 평소 당신께서 불자들에게 당부하신 그대로 ‘물처럼’ 사시면서 우주만물을 이롭게 하고 계셨던 셈이었다.

윤청광〈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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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05.30 18:23

    첫댓글 자기를 모르는 것...온 곳을 모르는 것...가는 곳을 모르는 것...죽는 날을 모르는 것
    ☞도인과 중생의 차이☜
    "야반 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라"는 임종게 화두를 주시고 가신...경봉 대선사
    높은 선지식의 가르침 ...공부 잘 하고 갑니다...감사합니다...()()()...

  • 작성자 12.05.30 18:37

    정말 멋지게 살다가신분이라고 생각하며 깊이 존경합니다.

  • 12.05.31 08:29

    물처럼 사노라면 결코 후회 없으리라는 경봉 스님 말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작성자 12.05.31 09:01

    그분의 말씀처럼 사바세상을 무대로 연극 한번 멋지게 하고 가고 싶습니다.
    다음 세상에도 꼭 그분을 만나고 싶고 반드시 만나게 될거라고 믿습니다.
    모든 인연에 깊이 감사합니다.

  • 12.05.31 10:58

    물처름 사노라면! 그 어떤 말 보다 공감이 큽니다.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 12.05.31 14:21

    감사합니다.

  • 12.05.31 20:38

    저는 해마다 통도사 극락암에 경봉스님 추모제때 차 공양 하러 갑니다.
    올해도 참석하는데요. 시간되시는분들 경봉스님 추모제때 오십시요.
    차 대접 하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 작성자 12.05.31 20:57

    그러셨군요.
    저는 첫제사때 가고 못갔습니다.

  • 12.06.03 18:01

    저희들은 선방앞에 말차 코너에 있습니다.
    삼소굴앞에 보이차 코너에도 있습니다.
    자비향 찾아주시면 반갑겠습니다.
    성불하십시요.()()()

  • 작성자 12.06.03 18:31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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