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시간여의 빡센(?) 오전일과를 마치고 나면 갑판장에게 오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러다 보니 때를 놓쳐 어중간한 시간에 혼자 점심을 먹는 일이 잦습니다. 직접 차려 먹을 때도 있고, 매식을 하기도 합니다. 매식을 할 땐 한상에 4천원짜리 백반집에서 해결을 하든지 국수집을 찾습니다.
4천원 짜리 백반. 날마다 주메뉴가 바뀌는데 돼지불백, 김치찌개, 비빔밥 등이 나온다./현대식당, 독산동, 서울
이런 사정을 아는 커피예술 사장님이 자신이 단골로 다닌다는 이여사네 멸치국수(이하 ’이여사네‘)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동네 국수집이 거기서 거기지 뭐 별 게 있겠냐 싶어 한 귀로 흘려듣던 중 국수를 고봉으로 담아 준다는 대목에 이르러서야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골목길 풍경/이여사네 멸치국수, 독산동, 서울
쏟아져 내리는 뙤약볕을 감내하며 기껏 찾아간 이여사네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문밖에서 안의 동정을 살피다 주방에서 나홀로 일에 열중하시던 이 여사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애처로운 눈빛을 발사하니 그쪽에선 더 난감해 하는 눈빛을 반사하며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하필 브레이크 타임(오후 3시~5시)에 걸린 것입니다. 강구막회도 이미 10년 전부터 브레이크 타임을 시행하고 있기에 이 여사님의 고충을 알고도 남습니다. 두 말 없이 되돌아 왔습니다.
메뉴판(2016년 8월 기준) 여름에는 콩국수를 먹는 사람이 많다./이여사네 멸치국수
두 번째 방문은 오후 1시 30분께 쯤 이었습니다. 이여사네는 4인용 입식 테이블이 다섯 개뿐인데 이미 만석이었습니다. 한 명, 또 한 명, 또 또 한 명, 두 명, 또 두 명 이렇게 다섯 팀이니 스므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일곱 명만으로도 만석이 된 것입니다. 대기자를 위한 의자 다섯 석이 있는데 그 보다는 4인용 테이블을 2인용으로 교체하는 것이 시급해 보였습니다. 갑판장이 이여사네를 주로 출입하는 어중간한 시간대(오후 1시 반~두시 반)를 보면 손님이 대개 한 명이나 두 명씩 오기 때문에 거의 만석인 상태입니다.
하기사 테이블을 쪼개서 갯수를 늘려봤자 이 여사님이 나홀로 운영하는 국수집이라 음식이 나오는 텀이 더뎌서 그닥 회전률이 높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2인용 테이블로 교체를 하느라 추가비용을 지출하느니 그냥 지금처럼 운영하는 것이 낫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여사네는 얼굴마담격인 멸치국수 외에도 비빔국수, 콩국수, 카레라이스, 꼬물이만두, 참치주먹밥, 김치주먹밥 등이 있습니다.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멸치장국을 내는 것은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지만 비빔국수나, 콩국수, 카레라이스 등은 마눌님의 솜씨도 출중하기에 굳이 나가서 사먹지 않습니다.
멸치국수/이여사네 멸치국수
멸치국수를 주문하니 커피예술 사장님의 말마따나 국수가 고봉으로 담겨 나옵니다. 수북하게 담긴 국수에게 자리를 내준 탓에 오히려 멸치장국이 부족하진 않을까 걱정이 들 지경입니다. 그러고도 손님이 모자른 기색이면 이 여사님의 ‘국수 더 줄까요?’가 바로 시전 됩니다. 라면 한 개에 밥 반 공기가 정량인 갑판장은 이여사네 멸치국수는 한 그릇이면 족합니다.
담황색으로 잘 우린 맑은 멸치장국은 비린내 없이 맹한 듯 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은은하게 감돕니다. 고명으로 얹은 호박채는 서걱하고, 실처럼 얇게 채 썬 다시마는 꼬들해서 맛은 물론이고 씹는 재미까지 더합니다. 다만 고추와 대파를 썰어 넣은 양념간장이 크게 한 수저 분량쯤 끼얹어져 나오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과는 맞지 않습니다. 맑고 시원했던 멸치장국의 간이 세질 뿐더러 고추의 매운 맛이 도드라져 전체적인 발란스를 깨뜨립니다. 차라리 테이블 양념장을 준비해 둬서 각자의 취향대로 첨가할 수 있으면 더 좋았겠단 의견입니다.
문 밖 풍경/이여사네 멸치국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염치 불구하고 이여사네에 더 바란다면 멸치장국을 내는 데 힘을 쏟는 것만큼 소면의 선택에도 신중했으면 훨씬 더 좋겠단 바람입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국수틀에 반죽을 밀어 넣어 압축을 해서 뽑아낸 시중의 흔한 공장제 소면은 구하기도 쉽고 원가를 낮추는 데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여사네의 잘 우려낸 은은한 멸치장국이라면 거칠고 투박한 소면보다는 반죽을 손수 한 올 한 올 길게 늘려가며 뽑아낸(수연, 手延) 국수라야 제격이지 싶습니다. 수연소면의 찰지고 고운 면발은 보기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식감도 부드러워 먹는 내내 행복감을 줍니다. 일반 소면이 삼베옷이라면 수연소면은 비단옷과 비견할 만합니다.
귀했던 것이 고급화의 바람을 타면서 부활하여 요즘엔 대형식품회사에서 조차도 수연국수(혹은 수연소면)를 제조할 만큼 흔해졌습니다. 온라인 장터는 물론이고 대형마트의 진열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연소면은 제조공정이 어렵고 긴만큼 가격 역시 일반소면보다 비쌉니다.
이여사네가 자리 잡은 서울시 금천구 하고도 독산동의 세일중학교 정문 앞길이 고가의 멸치국수를 팔기에는 녹녹치 않아 보입니다. 차라리 갑판장이 이여사네의 단골이 된 후에 이 여사님이 한가한 틈을 타 엄선한 수연소면을 사다주고 그걸로 멸치국수를 말아 달라 청을 해야겠습니다. 그 땐 양념간장은 빼고 주시라요. 제발~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마눌이표 낙지볶음은 20년째 실패 중, 다음엔 성공할라나요?
첫댓글 덥다보니 국수도 땡기지만 매운 낙지볶음도 무지 땡깁니다,,,
구리 가는 길에 골목안채 노리는데 대기줄이 어마어마해서 포기..
이여사님네에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테이블이 사인탁 다섯 개에서 이인탁 여섯 개와 사인탁 두 개로 바꼈습니다. 메뉴에 김치덮밥이 추가 되었는데 바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