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충도(草蟲圖)의 의미
새로 발행 될 5만 원 권의 신사임당 초상으로 말들이 많다. 그러나 이번 호에서는 초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화폐에 들어갔거나 문화재급의 유명한 초충도(草蟲圖)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조선조의 최고 여류화가인 사임당 신씨는 초충도 그림을 많이 남겼다. 사임당이외에 시인묵객들 중에 그림에 능한 이들은 친지나 좋아하는 분들에게 헌시(獻詩)와 함께 축원하는 마음을 담은 초충도 그림을 그려 보냈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민화와 사대부들이 즐기던 서화에서 초충도 그림은 아주 중요한 기원과 축복을 담고 있다.
새로 발권되는 5만 원 권에는 신사임당의 초상이외에 보물 제 595 호인 초충수병도 그림이 인쇄 된다고 한다. 초충수병도(草蟲繡屛圖)는 18세기의 자수병풍으로 풀, 나비, 잠자리, 민들레, 패랭이 등 20여 가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병풍이다. 신사임당의 그림인 초충도(草蟲圖)는 이미 5천원 권에도 있는데 여기에는 나비, 수박, 여치를 그린 그림이 인쇄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얼굴인 화폐에 초충도 그림이 들어간다는 것은 초충도에서 의미하는 여러 가지 기원에 우리 선조들의 얼과 풍습과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초충도 서화에 그려진 나무, 바위, 화초, 오이, 가지, 닭, 고양이, 사마귀, 나나니벌, 갑충 같은 것들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일까?
서울대 박물관이 소장한 신사임당의 그림 중 노련도(鷺蓮圖)에는 연밥그림과 백로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여기에 개구리밥이 떠다니고 있는데 백로 두 마리는 부부를 상징하고 백년해로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만일 백로가 한 마리라면 일로연과(一鷺蓮果)라 하는데 이는 일로연과(一路連科)의 동음이어로 단번에 소과와 대과를 합격하라는 기원을 담은 것이다. 백로 그림에 연밥이 아닌 부용화(芙蓉花)라면 일로영화(一路榮華)의 의미인데 부귀영화를 축수하는 뜻인 것이다. 신사임당의 화훼초충도 8폭 병풍그림 중에는 가지그림도 있다. 여기에는 두 뿌리의 가지에 하나는 흰색 가지 하나는 자주색가지두 개가 달려있고 벌과 붉은 나방, 흰나비가 날고 있다. 그리고 바닥에 산딸기 덩굴, 쇠뜨기 풀, 무당벌레와 방아깨비가 있다. 이 그림은 무척 섬세하게 그려서 마치 식물도감이나 곤충도감을 보는듯한데 이 그림들도 무척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우선, 가지는 한문으로 가자(茄子)라고 쓰는데 이는 즉 가자(加子)의 의미로 아들을 많이 낳으라는 말이고, 쇠뜨기 풀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번식력이 강해서 농부들이 애를 먹지만 그 번식력처럼 자식을 많이 두라는 뜻이다. 방아깨비 역시 알을 99개 낳는다는 속설처럼 다산(多産)하라는 의미였다. 벌과 개미는 여왕벌과 여왕개미에게 충절과 의리에 투철하므로 충군애국하고 형제간 우애를 가지라는 의미이다. 무당벌레는 갑충(甲蟲)인데 갑옷을 갑제(甲第)라고 하니 갑제는 급제와 뜻이 같음으로 장원급제를 비는 뜻으로 썼고, 등에 7개의 점이 있으니 북두칠성을 의미하여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뛰어난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이 그림은 내용이 의미 하는바 대로 아주 다양한 복록을 기원하였기 때문에 수많은 처자들이 이 그림을 본떠 시집가기 전에 자수로 만들 혼수품목 1호로 치던 그림이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중에 전로(傳蘆)화가 있다. 이 그림은 게(蟹) 두 마리가 갈대 이삭을 물고 있는 그림으로 갈대를 전해 올린다는 뜻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게는 두꺼운 갑옷을 입었으니 무사의 기상처럼 누가 뭐라 해도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옆으로 걷는 게처럼 강직하게 충언하는 신하가 되라는 뜻이다. 그리고 전로란 전려(傳臚)와 중국 발음이 같은데 전려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호명 할 때 아래 관원이 임금의 말씀을 복창한다는 말이어서 두 마리 게처럼 소과 대과 잇달아 급제하여 충신이 되라는 의미이다.
또한 김홍도의 그림 중에는 고양이와 나비가 서로 바라보는 모질도(耄耋圖)가 유명하다. 고양이 묘(猫)와 나비 접(蝶)의 중국 발음이 모질과 같아서 모질도라 하는데 모(耄)는 70을 뜻하고 질(耋)은 80을 의미한다. 바로 7~80까지 살라는 축원을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에는 바위그림과 패랭이꽃과 제비꽃이 있다. 패랭이꽃은 한문으로 석죽화(石竹花)라 하는데 죽(竹)은 축(祝)과 같은 “쥬”라는 중국발음으로 바위처럼 장수를 축수하는 그림이다. 제비꽃은 꽃대가 갈고리처럼 굽어있다. 한자로는 여의초(如意草)다. 말 그대로 마음먹은 대로 되시라는 축원이다. 이 모질도에서 뜻하는 의미는 7~80 되시도록 바위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고 여의초처럼 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기를 축원한다는 뜻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처럼 은유를 하더라도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우리도 이렇게 정이 그윽한 마음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