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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 [☆나는 그곳에서 행복을 만듭니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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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시간, 의미, 철학이 담긴 21개의 특별한 삶과 공간
[나는 그곳에서 행복을 만듭니다]
주우미, 홍성만, 박산하 씀 / 꿈결(2015.01.19) / 값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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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진의 글
나누고 어울리고 잇고 고집하는
스물한 가지 공간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은 2012년 겨울 무렵 홍 작가의 ‘줄 서는 집’에 대한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결국 두 번의 겨울을 거치며 태어났다. 원고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쉽지 않았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곳이되 매출 욕심이 일하는 즐거움을 넘어서지 않기를 바랐으며, 되도록 그들의 인기나 수익이 사람들을 위해 쓰이는 곳을 찾았다. 찾는 사람은 적더라도 줄 서는 곳이 될 만한 잠재 가치를 가지고 있거나, 꼭 그리되었으면 하는 사심이 들어간 곳도 있었다. 우리는 인기가 공익을 해치는 곳은 발굴하지 않았다는 데서 보람을 느끼며, 대기업의 수익이나 스타 업체의 이윤을 보태 주기 위해 영혼을 담지 않았다는 데서 기쁨을 느낀다.
까다로운 선정 과정을 거친 덕분일까. 취재를 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겸손을 배웠고 멀리 보는 안목을 배웠다. 풍족함과 관계없이 즐겁게 사는 법을 엿보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크고 작은 아이디어를 만났다.
이 책이 실린 카쉐어링 기업 <쏘카>, 정장 대여 업체 <열린 옷장>, 공정 여행사 <공감 만세>, 카페 <프롬나드>와 <꿈꾸는 타자기>는 일을 통해 재능과 이윤을 나눈다. 청소년문화센터 <신나는 에프터센터>,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 카페 <유쾌한 황당>, 가락본동 어린이집 <숲반>,<부부 농원>은 어울림을 통해 주변에 반향과 자극을 일으키면서 세상을 조금씩 더 살 만하게 바꾸어 간다. 창덕궁 <달빛기행>, 상암 DMC <영화창작공간>,<한수풀해녀학교>, 가마솥 공장 <안성 주물>, 고려인 야학 <넘>는 시대와 시대를 잇고, 문화인과 문화 욕구를 이어 주는 곳이다. 트렌드에 편승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 장인이 흔치 않은 현대에서도 고집스레 한길을 가는 공방 <가구장이 박흥구 공방>과 <두부공>, 튀김집 <요요미>, <만년필연구소>, 당근 케이크 집 <하우스 레서피> 등도 있다.
‘줄 서는 집’의 완성된 원고들은 ‘나는 그곳에서 행복을 만납니다’라는 이름으로 묶였다.
취재 요청을 할 때 “우리 집은 줄을 서지는 않는데요”라며 손사래 치던 곳들이 많았다. 더불어 자신들은 스타가 아니며, 스타가 될 생각도 없음을 밝혔다. 이런 가게나 기업들에게는 ‘줄’의 의미를 다시 설명해야 했다. 그때 우리가 열심히 설명하던 ‘줄’의 의미는 ‘행복’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쉽게 흔들리고 유혹받는 얄팍한 마음을 접어두고, 돈과 명예와 성공 위에 존재하는 행복을 향해 찬찬히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일례로 <신나는 에프터센터>의 취재에 도움을 주었던 애벌레 애칭는 “지자체장이 바뀌면 위탁 운영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예요?” 라는 걱정스런 질문에 “제자리로 돌아가서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된다”는 편안한 대답을 내놓았다. 십수 년간 시민단체에서 일해 온 그녀의 말에는 자신의 일과 시민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있었다. 카쉐어링 기업 <쏘카>의 이사 또한 대기업이 카쉐어링 시장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 “우리만의 길을 더 열심히 가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것은 그들만이 만들어 가고 있는 철학에 대한 깊은 신뢰다. 업계의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으며 오랜 세월 가구를 만들어 온 박홍구 씨는 ‘유행 따라 쉽게 만드는 가구’를 제안하는 유혹에 대해 “반드시 사용자를 닮은 가구여야 한다”라는 간단한 대답을 내놓는다.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얼마나 심플한가!
대한민국의 상위 1퍼센트가 되겠다고, 혹은 유명해지겠다고 주류에 줄 서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속에서 이들의 간결한 목표는 얼마나 빛나는가!
여기, 오늘 하루의 매출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목표 앞에 전전긍긍하는 우리의 조급증을 고쳐 줄지도 모른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인생을 심플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책을 덮으면 한 곳씩 찾아가 보고 싶을지 모른다. 직접 만나서 느끼게 되는 행복의 양은 또 다를 것이다. 정성과 겸손으로 우리를 만나 주었던 스물한 곳의 사람들에게 서문을 빌어 감사를 전한다.
서울시와 마포구에서 만든 장터 <늘장>에 입주했던 <산골처녀 유라씨네>의 대표가 시골로 내려가는 바람에 <늘장>의 빛나는 철학과 박경미 씨의 도농연계운동이 결국 언급되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도심 빈 공간에 높은 건물을 세우는 대신 시민들의 경제 활동과 휴식을 지원하는 <늘장>같은 공간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바라며 이렇게나마 마음을 전한다.
세상 사람들과 즐거움을 연대하고, 어울리고, 때로는 수익을 이웃과 나누고, 재능을 나누고, 이어 주겠다는 사명을 지니고 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오늘은 아름답다.
홍상만, 주우미, 박산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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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글
몰입해 보자,
모험이 있는 삶에
지난주 세계 사회혁신가들과의 교류를 위해 영국 옥스퍼드로 출장을 다녀왔다. 스콜월드포럼skoll World Forum 10주년 행사에도 참석했는데, 올해의 화두는 ‘AMBITION-fueling opportunity, scaling progress’ 즉, 기회와 진보를 이끄는 ‘열망’에 대한 것이었다. 지난해 그라민뱅크의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가 ‘세계적 위기를 돌파할 대담한 사회적 상상력’을 제안했던 것과 맥을 잇는 주제어였다. 결국 행복한 세상으로의 변화를 만들어 낼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사회혁신가의 열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일정으로 떠난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나는 그곳에서 행복을 만납니다>라는 사회혁신가들의 열정적인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우선 나와 이웃 간에 이기적인 이해관계가 형성되도록 하던 ‘경계’를 훌쩍 뛰어넘은 세계 시민의 삶을 소개한다. 필리핀의 계단식 논밭인 바나우에를 함께 돌보는 공정 여행객들의 친구 <공감만세>, 이주노동자들의 도시 ‘국경 없는 마을’ 안산에 꾸려진 고려인 야학 <너머>, 제주로 귀촌하여 로컬 푸드 당근 케이크를 만드는 <하우스 레서피>, 아빠의 마음으로 신선한 식재료의 튀김을 파는 <요요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또한 제도 교육에서 배우지 못했던 손작업 기술을 습득하며 자립형 인간의 삶에 도전하는 사례도 들려준다. 상수역 부근 수제 자전거 공방을 운영하는 동네 오빠 <두부공>, 4대째 가마솥 공장을 이어가는 백 년의 기업 <안성주물>, 스킨스쿠버 강사도 입학한다는 제주의 <한수풀해녀학교>, 토요일만 여는 <만년필 연구소>의 이야기는 특히 청년들과 베이비부머 세대가 부러워할 행복한 이야기들이다.
혁신의 열망을 안은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혼자만으로 부족할 때가 많다. 따라서 혁신의 주체들이 일상적으로 만나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융합하는 과정과 공간이 매우 중요하다.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센터 안에 자리 잡은 <영화창작공간>, 바리스타 청년들의 품격 있는 노동이 보장되는 카페 <프롬나드>, 소비자가 직접 필요한 만큼 수확하고 직거래하는 <부부농원>, 만화가들이 만든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 동네 작가들을 위한 플랫폼 <꿈꾸는 타자기>등 방문해 보고 싶은 공간들이 가득하다.
아울러 우리는 사람들이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이른 나이에 자기 주도적으로 행복을 찾고 누리길 기대하는데, 이런 꼬마 혁신가들의 등장을 가능하게 할 공간들도 소개하고 있다. 가락동 어린이집 <숲반>, 성미산 마을의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 은평 <신나는 에프터센터>가 그곳이다.
나는 한동안 정치가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핵심이라 생각해 왔다. 이번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도 사회적 경제 매니패스토 실천협의회의를 통한 시민사회와 정치 후보자 간의 협력을 돕고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우리 생활에서 더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경제 영역이다. 즉, 어떠한 가치로 직장 생산 활동을 선택하고 소비하느냐가 우리 자신을 규정하거나 사회의 경제민주화 수준을 변화시키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시를 비롯한 공유 경제 도시를 지향하는 곳에서 운영 중인 카쉐어링 기업 <쏘카>, 청년 구직자에게 필요한 정장을 시민 참여로 공유하는 <열린옷장>, 신뢰로 운영되는 부암동의 무인카페 <유쾌한 황당>등은 ‘많이 소유하고 많이 소비하기 위해 많이 버는 직장만을 선호했던’ 삶의 공식을 흔들어 본 귀중한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런 행복을 꿈꾼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부채 없이 정주할 수 있는 작은 규모와 공유 주택에 살면서, 내 아이들의 독립은 청년 주거협동조합을 통해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웃과 함께 집에서 10분 거리에 생태 농장을 만들어 마을의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이자 농장어린이집으로 개방하고, 주말이면 찾아오는 청년 문화예술가의 소공연에 소박한 집밥과 농작물로 공연비를 지불하고자 한다. 건강 문제는 보건의료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어서 걱정 없이 노후를 맞길 바란다.
《나는 그곳에서 행복을 만납니다》의 주인공들이 더 담대한 도전을 계속하고,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활성화된다면 내 미래의 행복도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서울특별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이은애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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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작가진의 글
나누고 어울리고 잇고 고집하는 스물한 가지 공간에 대한 이야기
추천의 글
몰입해 보자, 모험이 있는 삶에
1. 나누다_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들
이런 여행 어떠세요? • 공정여행사 <공감만세>
책과 책 사이 꿈이 익어 가는 시간 • 글쓰는 북카페 <꿈꾸는 타자기>
정장에 행운을 달아 드립니다 • 정장 공유 서비스 <열린옷장>
커피 향 청춘 • 카페 <프롬나드>
나눠 쓰는 즐거움 • 카쉐어링 기업 <쏘카>
2. 어울리다_오늘 하루가 아름다운 이유
작은 상자 속 골라잡는 재미 • 무인카페 <유쾌한 황당>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 은평구 청소년문화의 집 <신나는애프터센터>
숲의 아이들 • 가락본동 어린이집 <숲반>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는 재미 •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
책과 놀이와 공동체 • 서점 공동체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
도시 곁에서 고향이 되어주는 곳 • 관광농원 <부부농원>
3. 잇다_어제 시작된 내일
역사 속을 걷는 밤의 산책 • 고궁의 밤 나들이 <창덕궁 달빛기행>
한국 영화의 인큐베이터 • 상암 DMC <영화창작공간>
이어져야 하는 숨비소리 • 해녀와 해남을 키우는 <한수풀해녀학교>
나와 같은 당신들과의 행복한 동행 • 고려인 야학 <너머>
4. 고집하다_세상에 이런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겠지
단골이 없는 집 • 가마솥 공장 <안성주물>
가구 한 그루 심어드립니다 • 가구 공방 <가구장이 박홍구 공방>
네가 가진 만큼만 즐겨라 • 자전거 공방 <두부공>
착한 가게의 바삭바삭한 꿈 • 분식점 <요요미>
따뜻한 아날로그 공간 • 만년필 병원 <만년필연구소>
건강해지는 맛, 삶을 담은 케이크 • 당근 케이크 집 <하우스 레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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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을 걷는 밤의 산책※
고궁의 밤 나들이
창덕궁 달빛 기행
밤에 쓴 글을 아침에 고쳐 쓴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밤이 사람을 얼마나 말랑말랑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하물며 달빛이 바람을 타고 흐르는 가을밤이다.
고궁이 열려 있는데 어찌 그 곳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시 찾은 고궁
내게 고궁은 도시 속 섬처럼 느껴졌다. 멀지 않은 곳에 있음에도 쉽사리 발길이 닿지 않는, 그거 시간이 멈추어 버린 섬, 그중 야간 벚꽃놀이와 놀이공원으로 추억 속에 둥둥 떠 있던 창경원이 궁궐로서의 면모를 회복하고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이미 오래전이다. 꽤 긴 시간이 흐르고 다시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문화재청이 주최하는 ‘창덕궁 달빛기행’이란느 행사 소식이었다. 문득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고향과 가족을 찾아 떠났던 이들이 다시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발길을 돌리던 2013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창덕궁을 찾았다. 300년이라는 시간의 문턱을 넘어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여정, ‘달빛기행’을 시작한다는 그 묘한 떨림, 길었던 더위를 밀어내는 시원한 바람이 돈화문 앞마당을 휘감았다.
저녁 7시 30분, 입장을 30여 분 앞둔 시각, 이미 돈화문 앞마당은 입장을 기다리는 가족과 연인들로 분주했다. 인터넷 예매만 가능한 이 행사에 하반기에 진행되는 15회 (월 5회, 3개월)의 입장권 1,500매가 단 5분 만에 마감되었다 한다. 행사의 인기나 관람객들의 부지런함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을 교부받고 다섯 개 조로 나뉘어 입장을 준비한다. 잔잔한 조명의 돈화문을 배경으로 근엄한 근위대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나직한 속삭임, 경쾌한 카메라 셔텨 소리, 길었던 더위를 가시게 하는 초가을의 밤바람이 뒤섞인다.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빌딩 숲 서울의 한가운데에서 나지막한 담장너머의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청사초롱은 흐르고
돈화문으로 들어서자 관람객 서너 명마다 한 개씩의 청사초롱을 손에 쥐어준다. 캄캄한 고궁에 30여 개의 청사초롱이 길을 따라 흐른다. 숨소리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고요한 고궁의 밤 전경이 이채롭다. 각 조별 담당 가이드를 따라 설명에 귀기울이고 촬영을 이어 가며 어둠 속 가려졌던 고궁의 밤을 가른다.
▲ 이른 시간부터 돈화문 앞마당을 채운 100여명의 관람객들이 야경과 근위대를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1405년에 지어진 후,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거치며 현재에 이른 창덕궁은 조선의 궁궐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라고 한다. 무수한 외침을 받아 온 이 땅에 아프지 않은 역사를 가진 곳이 어디 있을까? 그러니 조선의 왕조를 지켜 온 궁궐은 오죽할 것인가. 서로 이웃하고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은 각각 비원과 창경원이란 이름으로 동물원과 놀이공원으로 전락했다. 이제라도 궁의 본모습을 찾아
가고 시민들에게 조선 궁궐로서의 기억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어둑한 밤, 침략과 왜곡의 역사를 겪고도 의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궁 앞에 모두들 자연스레 숙연해졌다.
◀초가을 도심 속 고궁의 밤을 깨운 관람객들의 행렬은 청사초롱 불빛에 따라 길게 이어졌다
사극에서나 보던 궁의 밤 풍경 속에 100여 명의 청사초롱 행렬은 기나긴 빛의 띠처럼 움직였다. 돈화문을 출발해 현존하는 궁궐 안의 돌다리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금천교와 인정문을 지나 창덕궁의 정전인 이정전 앞에 다다랐다.
인정전과 낙선재
인정전은 연산군과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에 이르기까지 임금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던 창덕궁의 정전이다. 또한 신하들의 하례와 외국 사신 접견 등 조선의 대표적인 행사가 행해졌던 창덕궁의 대표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활짝 열린 문 안으로는 임금의 자리인 용상과 곡병, 해와 달이 함께 떠 있는 다섯 개의 봉우리를 그린 일월오악도, 그리고 천장에 있는 봉황 한 쌍을 볼 수 있다. 계단 아래마당에는 문무백관들 각각의 품계석이 도열되어 있다. 한 나를 책임지는 왕의 수많은 고민과 결단이 이 자리를 채웠으
리라 생각하니 압도적인 느낌의 이 공간이 당당하면서도 외롭게 느껴진다. 수백 년이 흐른 지금, 눈에 담고 사진에 담고 역사를 귀에 담으며 잠시나마 장고한 시간들을 헤아려 본다.
아자문, 완자문, 띠살문 등 문마다 다른 화려한 문살로 아름다운 낙선재는 헌종 임금의 서재와 사랑채로 이용되었던 건물로, 석복헌과 함께 헌종의 애틋한 사랑이 만들어 낸 공간이다. 궁중 건축물임에도 단청을 하지 않아 소박한 느낌이 이채롭다.
옛 왕가에서는 왕비나 왕세자빈을 간택할 때 임금이 직접 관여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헌종은 첫째 왕비가 어린 나이에 후손 없이 유명을 달리하자, 두 번째 왕비를 간택할 때에는 직접 보기 원했다고 한다. 헌종은 각 가문의 규수들 중 김자청의 딸(훗날 경빈 김씨)을 마음에 두었으나 대왕대비의 결정에 따라 명헌왕후 홍 씨가 왕비로 간택되었다. 만 3년이 지났는데도 왕손이 생기지 않자 후궁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헌종이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경빈 김씨였다. 헌종은 낙선재를 지어 서재와 사랑채로 이용했는데 바로 옆에 석복헌을 지어 경빈이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23세의 젊은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헌종이지만 그 짧은 사랑의 온기가 오늘날 흔적으로 남았다.
낙선재 일원은 이후 1966년까지 순정효황후가 기거했고 영친왕과 그의 부인, 그리고 덕혜옹주 역시 이곳에서 여생을 맞이하였다 하니 창덕궁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왕가의 발길이 머문 곳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한국 최고의 정원인 부용지 일원
상량정과 후원
낙선재의 뒤편에는 작고 아담한 육각형의 정자인 상량정이 있다. 서고 앞에 있어 높은 장대석 주초 위정자에 앉아 독서와 휴식을 즐기던 곳이라 한다. 바로 옆 만월문滿月門이라는 동그란 문과 상량정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왕궁의 중후함에서 벗어난 소박한 여유를 자아내고 있다.
만월문을 지나 담벽을 따라 꽤나 긴 행렬이 시작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100여 명의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숨죽인 기행을 이어가던 중 앞선 무리의 사람들에게서 탄식 소리가 들려온다. 곧이어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은 거짓말처럼 황홀했다. 관람객을 위한 가야금 선율을 배경으로 빛과 커다란 연못과 그에 비친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가을밤의 선물, 이곳이 바로 정조가 사랑했던 후원이며 한국 최고의 정원으로 손꼽히는 부용지다.
《동국여지비고》에 의하면 이곳은 정조가 꽃을 가꾸고 고기를 낚던 곳이라 하며 동서 34.5미터, 남북 29.4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방형의 연못이 있고 그 뒤로 부용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앞으로는 어수문을 지나 규장각과 열람실이 있는 주합루가, 우측으로는 과거 시험에 급제한 사람들을 위해 축하를 해 주던 영화정이 있다.
부용지 일원은 왕의 극히 개인적인 휴식 공간이자 학문에 대한 애정과 열린 사고를 보여 주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왕의 집무 공간인 인정전에서 권위를 느꼈다면, 후원에서는 미적 감각과 풍류를 발견할 수 있다.
낙선재와 석복헌에서 헌종을 볼 수 있었다면 이곳 후원에서는 정조를 볼 수 있다. 이렇게 각각의 공간에서 임금들의 성정과 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것도 고궁 나들이의 묘미라 할 수 있다.
◀달빛기행의 마지막은 전통 공연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밤에 쓴 편지를 읽어 본 적 있는가
달빛기행의 마지막은 효명세자가 일반 양반가 주택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었다는 연경당세서의 전통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프로그램에서 제공되는 따뜻한 차와 다과를 손에 들고 앞마당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춘앵무, 아쟁산조, 판소리 춘향가, 국악 관현악 연주로 이어지는 30여 분간의 공연은 고종과 순종 시절 연회 공간으로 자주 이용되었다는 이곳을 다시 들썩이게 했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 바람을 타고 흐르는 현의 음색, 좋은 사람과의 가을밤 달빛기행, 오늘의 이벤트는 야간 고궁 기행이라는 단순한 정의를 넘어 역사 속 공간이 현대의 우리와 나란히 있는 곳이라는 시공간적 공감대를 만들었다.
밤에 쓴 글을 읽어 본 적 있는가?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고쳐 쓴 적 있는 사람이라면 밤이 사람을 얼마나 말랑말랑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겪었던 이야기를 고백하듯 고궁은 우리에게 밤을 빌어 나지막이 말을 건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말랑한 속삭임이 언제 있었냐는 듯 궁궐로서의 기개와 위용을 뽐낼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척 가만히 기억해 주면 된다. <취재에 도움 주신 곳: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99. 02-762-8261. www.cd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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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잠시 쉬어 가고자 했을 뿐인 나의 휴가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곳을 파괴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섭고 미안한 일이다. 공정 여행을 기획하는 <공감만세>는 누군가의 삶이나 삶의 터전을 파괴하지 않는 여행을 추구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차량이 쉴 새 없이 오가고, 길을 파괴하고,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주는 여행은 지양한다. 그래서 바나우에 여행 스케줄에는 무너진 논둑을 쌓는 코스가 포함되어 있다. 여행을 통해 봉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며칠을 지냈을 경우 차량 한 대가 논둑길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계산해서 최소한의 복구 활동을 하는 것이다.
p. 23, 이런 여행 어떠세요? • 공정여행사 <공감만세> 중에서
“개인적으로 동네 작가 발굴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당신의 창조성을 응원합니다’라는 콘셉트로 카페 공간을 만들었어요. 누구나 자기 책을 쓰고 싶어 하는 욕망이 숨어 있는데 그 욕망을 살살 간질여 주는 깃털이 되어 보자 했죠.”
p. 35, 책과 책 사이 꿈이 익어 가는 시간 • 글쓰는 북카페 <꿈꾸는 타자기> 중에서
<프롬나드>에는 좋은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과 맛 좋은 커피를 누릴 권리가 있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뿐이다. 맛 좋은 커피를 위해 셔터를 내리고 실험하는 바리스타들과, 그들의 미래가 곧 오늘의 커피 맛이라고 믿는 <프롬나드>이기에 나는 매일 그곳으로 숨어든다.
p. 69, 커피 향 청춘 • 카페 <프롬나드> 중에서
언제부터일까. 한창 시끄럽게 떠들어야 직성이 풀릴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굣길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학원 셔틀버스의 늘어선 줄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비자발적인 삶의 굴레를 씌우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천천히 살아도 된다고, 성공보다 행복을 위해 살라고 가르쳐 본 적 있는가? 버스를 향하는 작고 지친 어깨의 행렬이 어른들의 욕망을 대신 짐 지고 있는 것 아닌가? 아이들에겐 분명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 p. 06~107,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 은평구 청소년문화의 집 <신나는애프터센터> 중에서
비가 오면 비가 만든 숲에서 놀고, 눈이 오면 눈이 만들어 놓은 숲에서 논다. 매일 날씨 따라 다른 놀잇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생겨난다.
“지금 뭐하고 있어?” / “요리하고 있어요. 물로 밥하려고요.” / “물은 왜 나눠 줘?” / “어차피 물은 많으니까요.” / “뭐해?” / “지렁이한테 미끄럼틀을 만들어 줘요”
숲속에서의 모든 놀이는 창의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진흙을 다져서 케이크를 만든다는 아이는 “오늘 누구 생일이라고 하면 어때?” 하며 자신의 상상을 나눈다.
- p. 116 ~ 117, 숲의 아이들 • 가락본동 어린이집 <숲반> 중에서
그곳에 가면 축축 처져 있는 내 인생이 조금은 가뿐해질 것 같다. 여기에서는 뭘 해도 좋고 뭘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것이 <쫄깃쎈타>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이다. ‘쫄깃’은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은 적당히 탄력 있고 재미있는 상태로 행복하게 살자는 의미다. 이곳에서만큼은 마음이 좀 풀어져도 괜찮다. 쫄깃한 일상을 위한 쉼, 재미있는 내일을 함께 꿈꿀 수 있는 공간이다.
-p.123~124, 너무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는 재미 •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 중에서
적당히 선선한 바람, 바람을 타고 흐르는 현의 음색, 좋은 사람과의 가을밤 달빛기행. 오늘의 이벤트는 야간 고궁 기행이라는 단순한 정의를 넘어 역사 속 공간이 현대의 우리와 나란히 있는 곳이라는 시공간적 공감대를 만들었다.
밤에 쓴 글을 읽어 본 적 있는가?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고쳐 쓴 적 있는 사람이라면 밤이 사람을 얼마나 말랑말랑하게 만드는지 알 것이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겪었던 이야기를 고백하듯 고궁은 우리에게 밤을 빌어 나지막이 말을 건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말랑한 속삭임이 언제 있었냐는 듯 궁궐로서의 기개와 위용을 뽐낼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척 가만히 기억해 주면 된다.
-p. 175, 역사 속을 걷는 밤의 산책 • 고궁의 밤 나들이 <창덕궁 달빛기행> 중에서
해녀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무작정 반갑기도 하다. 이렇게 거친 일을 배우겠다고 찾아오기에, 바다라는 어쩌면 위험한 곳으로 보내야 하기에 가르치는 데 소홀할 수 없다.
지금껏 한 번도 선생이 되어 본 적 없는 해녀들은 조금은 묘한 기분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 p.198~201, 이어져야 하는 숨비소리 • 해녀와 해남을 키우는 <한수풀해녀학교> 중에서
“노래방 기계 만질 줄 알아요?”
김승력 대표가 나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의 뒤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켜지지 않은 마이크를 잡고 방긋 웃고 있다. <고향의 봄>을 부르겠다는 이 아이는 고려인 4세다. 얼마 후 있을 <너머 학예회>에서 보일 장기자랑을 준비 중이란다. 아이가 열 번 넘게 노래를 부르는 동안 뒤에 서서 한 번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애절하게 바라보는 아이 아버지의 표정이 아프게 다가온다. 사람에게 애절함이나 슬픔의 여분이 얼마나 있어야 저런 표정이 나오나 싶었다. 마음속 진짜 고향을 헤아리고 있을까? 그가 살던 동토와 국적도 주지 않는 한국, 어디가 더 차가운 땅일까?
- p. 212, 나와 같은 당신들과의 행복한 동행 • 고려인 야학 <너머> 중에서
박홍구 씨 역시 스스로의 삶이 ‘비포장 길’이었다 할 정도로 계속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가구 디자이너로서의 좋은 학벌, 좋은 인맥 없이 혼자만의 길을 개척해 온 그에게 먹고사는 일이란 비포장 길을 달리듯 버거운 것이었다. 좀 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가구를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나만의’ 특별한 가구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세상에 나 같은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p. 244, 가구 한 그루 심어드립니다 • 가구 공방 <가구장이 박홍구 공방> 중에서
“저는 젊은 시절부터 축하받을 때 왠지 불안했어요.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반드시 내려가게 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노력해야 해요. 힘든 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 거란 믿음으로요. 케이크 하나에 저의 모든 철학이 다 녹아 있어요. 그런 긍정의 힘을 달콤함과 함께 느꼈으면 좋겠어요.”
- p.295, 건강해지는 맛, 삶을 담은 케이크 • 당근 케이크 집 <하우스 레서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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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마음이 가벼워지는 행복한 공간
의미를 되찾아주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천하는 아름다운 책
추억과 시간이 쌓일 때 공간과 사물은 더 특별해집니다. 의미와 철학이 담길 때 삶은 아름다워집니다. 이 책에는 추억, 시간, 의미, 철학을 쌓아가는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남다른 방식을 택했기에 새로워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가 잊고 있던 오래된 가치를 찾는 것에서 시작되었답니다. 함께 누리기, 같이 나누기, 모두 행복하기……. 조금씩 색이 바래지고 있지만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될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 찾아나서는 즐거운 향연, 이 책이 아름다운 이유랍니다.
- 서울특별시장 박원순
이런 행복을 꿈꿉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부채 없이 작은 공유 주택에 살면서, 집에서 10분 거리에 생태 농장을 만들어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농장어린이집으로 개방하고, 주말이면 찾아오는 청년 문화예술가의 소공연에 소박한 집밥과 농작물로 공연비를 지불하고, 보건의료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이어서 걱정 없이 노후를 맞기를……. 이 책의 주인공들이 더 담대한 도전을 계속하고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활성화된다면 제 미래의 행복도 실현될 겁니다.
- 서울특별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이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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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약력∥
∙ 주우미
십여 년간 광고 현장에서 카피라이터와 작가로 일하고 있다. 글 쓰는 것만큼 취재를 좋아하여 긴 취재와 방대한 자료 조사가 특기다. 행간마다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담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 《외길 위의 염소》가 있다.
∙ 홍상만
시를 전공하고 기자, 카피라이터, 광고기획자, 북디자이너 등 글과 책의 언저리를 참 길게도 맴돌았다. 이제 관념적으로만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와 방식에 대한 관심들을 ‘공간’을 매개로 한 ‘당신’과 ‘나’의 이야기로 풀어 보고자 한다.
∙ 박산하
여행 기자다. 여행지에서의 풍경과 냄새, 공기, 맛, 언어 등 낯섦과 익숙함의 간극, 그 사이를 좋아한다. 지도에 표지되지 않은 곳을 흠모하며 그곳에서 얻은 소소한 찰나를 전하고 있다. <KTX매거진>를 거쳐 <AB-ROAD>에서 매달 여행을 하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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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
돈, 명예, 성공 위에 있는 행복을 향해 걷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공간, 의미를 되찾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 재능· 노동· 재화· 꿈을 나누다:“공정 거래와 공유 경제, 그들에겐 당연한 일”
영국의 민간 싱크탱크 <서스테이너빌러티(SustainAbility)>는 2015년을 이끌 사회 트렌드 톱 10 리스트에 ‘공유 경제’를 올렸다. 개인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인 경제 개념에서 벗어나 지식과 재화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서비스 시장이 매년 80%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고, 이제는 경제 형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며 기존 산업 구조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 책의 1부 <나누다 :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들>은 공정과 공유를 경영 이념으로 삼은 ‘착한 기업’과 새로운 경제 형태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공정여행사 [공감만세]는 여행객들이 현지인과 어울리고 현지인들의 삶을 보존할 수 있는 여행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한다. [공감만세]의 고객들은 현지의 논밭을 일구고 길을 보수하는 작업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원주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수업에도 참관한다. 소비 일색의 뒷맛이 씁쓸한 여행을 지양하고 감동과 공감을 얻는 여행을 하자는 것이다. 대부분의 카페가 파트타임 비정규직들로 채워지고 있지만, 카페 [프롬나드]의 구성원들은 일반 회사의 직원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채용과 휴가를 보장받는다. 뿐만 아니라 바리스타로서 실력을 키울 기회도 누릴 수 있다. 구성원들의 행복이 ‘커피 맛’과 ‘행복한 공간’으로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수천 권의 책과 공간, 작업 도구가 마련되어 있는 북카페 [꿈꾸는 타자기]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꿈을 응원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기부 문화에 동참하도록 이끈다. 기부받은 정장과 구두를 대여하는 [열린옷장], 저렴한 비용에 자동차를 빌려주고 자동차를 함께 나누어 쓴 이웃들의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쏘카]는 한국형 공유 경제가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 사람 · 세상 · 자연과 어울리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방법”
공정한 거래와 채용, 공유 경제가 실현되고 있는 현장을 다녀온 1부에 이어 2부 <어울리다 : 오늘 하루가 아름다운 이유>에서는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세계 시민들이 성장하고 있는 남다른 교육 현장, 타인과 어울리며 삶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독특한 공간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가락본동 어린이집에서 운영하고 있는 <숲반>은 조기 학습과 관련된 커리큘럼이 전혀 없다. 그저 아이들을 숲에 풀어놓고 마음껏 자연과 호흡하도록 내버려둔다. 미취학 아동인 이 아이들은 나물을 뜯고 지렁이를 만지고 자기들끼리 고안한 놀이를 하면서 사람과 자연을 배운다. 비가 오면 비가 장난감이고, 눈이 오면 눈이 장난감이 된다. 서울 성산동 성미산 마을에 자리한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는 마을의 도서관이자 서점이자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사랑방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엄마들은 공동 육아를 하거나 놀이 지도를 하고, 아빠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든다. 이웃의 아이가 내 아이가 되는 마을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은평구 청소년문화의 집 <신나는애프트센터>에서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아무렇게나 팽개쳐둔 청소년들이 제집처럼 드나들며 보드 게임을 하거나 동아리 활동에 열중한다. 이곳의 운영 주체는 청소년이다.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서울 부암동 고갯길 세 평 남짓한 무인 카페 <유쾌한 황당>의 작은 공간에서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수상한 일’을 벌이고 있고,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 <쫄깃쎈타>에서는 바짝 조여진 일상이 느슨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장흥의 <부부농원>에서는 손님이 논밭에서 직접 뽑은 농산물들이 후한 인심이 더해진 ‘농부만의 계산법’에 따라 거래되고 있다.
■ 시간 · 공간 · 삶을 잇다: “애정과 관심이라는 씨줄, 날줄로 만드는 더 나은 세상”
3부 <잇다 : 어제 시작된 내일>에서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를 잇고, 영화산업 각 분야의 유닛을 연결하는 공간과 부당한 현실에 처한 이들의 삶에 힘을 보태는 사람을 돌아본다.
서울 창덕궁의 <창덕궁 달빛 기행>은 조선 시대 궁궐을 돌며 역사의 밤나들이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선사하고, 해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조성한 제주도의 <한수풀해녀학교>에는 치열한 경쟁률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년 해녀와 해남이 되겠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온다. 서울 상암동 DMC의 <영화창작공간>에서는 감독, 작가, 프로듀서, 제작자 등의 ‘영화장이’들이 서울시의 지원 속에 한국 영화의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의 고려인 야학 <너머>는 여느 재외동포들보다 힘겹게 한국에서의 삶을 이어가는 고려인들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준다.
■ 아름다움 · 느림을 고집하다: “아날로그의 반가운 귀환”
《나는 그곳에서 행복을 만납니다》가 소개하는 21개의 특별한 삶과 공간을 관통하는 한 가지 가치를 꼽으라면 그것은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 어느 누구도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져야 하고 옳지 않은 길은 가지 말아야 한다는 소박한 신념을 실현하고 있을 뿐이다.
100년 넘게 무쇠 가마솥을 만들어 오고 있는 <안성주물>은 인체에 무해하고 단단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량 생산 방식을 도입하지 않았다. 모든 공정에 사람의 손길이 가야 하기 때문에 채산성은 떨어지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100년의 가치’를 지켜 가고 있다. 나무를 인공적으로 가공하지 않고 나무가 가진 자연의 성질 그대로를 살려서 가구를 만드는 <가구장이 박홍구 공방>, 잉크 한 병 값으로 세상의 모든 만년필을 ‘치료’해 주는 <만년필연구소>, 손으로 하는 노동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자전거 공방 <두부공>은 사람과 살을 맞대는 사물에 담긴 추억과 사연을 지켜 나가고 있다. 그리고 분식점 <요요미>와 당근 케이크 집 <하우스 레서피>는 스스로 생각하는 삶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튀김과 케이크에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더 건강하고 맛있다.
■ 행복이라는 줄로 연결되는 세상을 꿈꾸는 책: “세상에 이런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겠지”
처음 이 책은 ‘줄서는 집’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물론 끼니때마다 장사진을 이루는 맛집 같은 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번거로움과 기다림,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더 큰 행복과 만족을 얻어 가는 그런 곳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발견하고자 했다.
까다로운 선정 과정을 거친 덕분일까.
취재를 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겸손을 배웠고, 멀리 보는 안목을 배웠다.
풍족함과 관계없이 즐겁게 사는 법을 엿보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크고 작은 아이디어를 만났다.
<작가진의 글> 중에서
이 책에 담긴 21개의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비용이 저렴해서, 편리해서, 실력이 있어서, 신뢰가 가기 때문이라는 실효성에 가치를 두고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각박한 일상을 사느라 잠시 미루고 접어 두어야 했던 인생의 한 단면을 그들을 통해 접하고 느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돈만 지불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백화점 진열대의 상품처럼 넘쳐나는 곳이 우리 주변에 있기에, 그래도 우리의 오늘 하루는 아름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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