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일기 2017년 하안거-4

[Wondam:원담]

2017년6월9일(금)맑음, 한때 소나기

  어젯밤 보름달이 떴었지. 선문염송에 이런 게송이 나온다.

摩耶肚裏堂前月,  照破人人一夢身.

마야두리당전월   조파인인일몽신

마야부인 뱃속인가, 절 앞의 달이여

사람들의 꿈같은 몸을 비추어 비워버리네.

 허백명조(虛白明照, 1687~1767) 선사가 읊었다. 사명(四溟)대사의 제자로서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했다. 어느 해 초파일에 연등을 밝히며 지었다고 《허백집(虛白集)》에 전한다. 게송에서 照破라는 말에 눈이 있다. 비추어 부셔버린다. 무엇을 비추었더니 무엇이 부서졌는가? 집중된 주의력을 가지고 몸을 대상으로 비추어본다. 그러면 몸에 대한 고정관념이 부서지면서 ‘있는 그대로’가 드러난다. 집중된 주의를 대상에 비추는 것을 照라한다면 이것은 sati,念이다. 몸을 대상으로 sati하면 몸에 대한 고정관념-몸이 ‘나’라는 견해, 몸이 실재한다는 견해, 몸이 항상 한다는 견해-이 부서지면서 삼법인이 드러난다. 그래서 人人一夢身-사람 사람마다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자기 소유의 몸, 이것은 여러 가지 정신물질요소가 이런 저런 조건하에 임시로 한 덩어리를 이루어 자기 몸인 것처럼 경험될 뿐, 사실은 끊임없이 변해가는 흐름에 불과하다. 그래서 夢身/dream-like body, 幻身/illusory body라 한다. 이런 사실을 직관하면 꿈속에서 ‘나’라고 체험된 그 ‘나’와 현실의 ‘나’와 별로 다를 바 없다. 꿈속의 ‘나’도 我執아집이며, 현실의 ‘나’도 아집으로서 환상이다. 이렇게 느껴지면 무아를 체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침에 서기스님 방에서 차를 마시는데 밖에서 천둥소리가 들린다. 문을 여니 빗줄기가 꽂히더니 이내 잦아져 고요해진다. 여우비인가? 옛 이야기에 여우를 짝사랑한 구름이 여우가 호랑이에게 시집가자 너무 슬퍼 울었던 비를 여우비라 했다는데. 오늘 아침 누군가에게는 하늘도 함께 슬퍼해주어야 할 만큼 큰 슬픔이 닥쳤을 런지도 모른다. 숲에 내려앉는 안개마냥 슬픔이 서린다. 오후에 뒷마당에 풀 뽑는 울력하다. 점차 흐려진다.

2017년6월10일(토)맑음

  말끔하게 닦은 유리창 같은 하늘, 투명한 공간. 티베트 하늘같은 느낌. 오늘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6.10민주항쟁이 있었던 날이다. 난 그때 어디 있었나? 봉암사 선방에서 하안거 정진 중이었다. 그것이 1983년 갓 출가한 이래 견습생활을 마치고 처음으로 선방에 나왔던 첫 안거였다. 그 당시 봉암사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중이라 밖에서 들려오는 소문에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해제하고 나서야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6.10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 중계를 보았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살풀이 공연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다. 광주항쟁을 이끌었던 윤상원 열사가 사살되던 1980년5월27일 새벽4시 나는 거기서 그와 함께 죽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없었고, 살아남았다. 다시 1987년6월9일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을 때 그 자리에서 내가 대신 맞았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에 없었고, 살아남았다. 누군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아니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희생이 가져온 민주와 자유라는 결과를 누리고 산다. 나는 얼마나 쉽게 살아가는가? 누군가는 대의를 위해서 죽음까지 바쳤는데 나는 왜 죽음을 피하여 살아남았는가?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누군가의 희생에 올라타서 당연한 듯이 먹고 마시며 잘 살고 있다.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사는가? 수행이라고?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수행인가?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 권력을 행사하지도 않으면서 가장 소박하고 청빈한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보아 중생을 이익 되게 하겠다는 목적의식(이것을 보리심이라고 한다)아래 살아간다면 나름대로 살아갈 명분이 조금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과연 그 보리심이란 게 얼마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일까? 그냥 말로만 보리심을 일으켰다고 하는 건 아닐까? 보리심이 투철하여 한 마디, 한 동작, 한 생각이 모두 보리심으로 꿰어져야 비로소 보리심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지 않으면서 절에서 일도 안하고 편안하게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는 것은 비양심적이며, 정의롭지 못하며, 비루한 인생이다. 여기에 대한 투명한 확신이 없다면 그 즉시 절에서 나가 살아야한다. 차라리 거지가 되어서 빌어먹든지, 돌아다니다 죽든지, 설산에 들어가 단식해서 죽든지 해야 한다. 죽음을 늘 손에 쥐고 다녀야한다. 여차하면 죽음을 꺼내봐야 한다. 독립투사들이 거사를 위한 폭탄을 몸에 숨기고 다니듯 수행자는 죽음을 손에 쥐고 언제든 던질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비굴하고 비루해진다고 느낄 때면 손안에 쥐고 있는 죽음을 꺼내어 눈으로 봐야한다. 그래야 번듯한 수행자는 못 될지언정 절에 붙어사는 쥐새끼는 면할 수 있으리라.

2017년6월11일(일)맑음

 찬란한 아침 해가 숲을 비춘다. 온 세상이 청록으로 빛난다.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다.

靑山影裡鹿抱卵; 청산영리녹포란

白雲江邊蟹打尾. 백운강변해타미

푸른 산그늘 속 사슴이 알을 품고

흰 구름 강가에서 바닷게가 꼬리치네.

 방랑시인 김삿갓(본명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이 뱉어놓은 소리다. 김립(金笠, 삿갓笠)은 유랑하는 뽀에지 에스쁘리poesie esprit였다. ‘허황된 시(虛荒詩)’라는 딱지가 붙여졌던 위 對句대구가 세월이 바뀌면서 천하에 회자되는 명구가 되었으니 문자도 유행을 탄다. 효봉 선사(曉峰,1888~1966)의 오도송(悟道頌/깨달음의 노래)에 ‘鹿抱卵’이 인용된 것이다. 선사가 출가하기 전후에 어디선가 봤던 김삿갓의 시가 기억에 남았다가 금강산 법기암에서 토굴수행하던 중에 홀연히 전광석화처럼 빛을 발하여 다음과 같은 절창이 되어 흘러나왔다.

海底燕巢鹿抱卵, 해저연소록포란

火中蛛室漁煎茶; 화중주실어전다

此家消息誰能識, 차가소식수능식

白雲西飛月東走. 백운서비월동주

바다 밑 제비집에 사슴이 알을 품고

타는 불속 거미집에 고기가 차 달이네,

이집안 소식을 뉘라서 알랴 ?

흰 구름은 서쪽으로 달은 동쪽으로

 스님은 송광사에서 오래 주석하시면서 정혜쌍수로 선 수행을 가르치셨다. 나는 1983년 7월에 송광사로 출가하였다. 당시에는 효봉선사의 법을 이은 九山구산선사(1909~1983)가 수행을 지도하는 큰 어른이셨다. 나는 구산스님을 스승으로 여기며 행자생활을 하였는데 그해 겨울 돌연 입적하는 바람에 송광사를 떠났다. 스승을 찾아가겠다면서 행자실에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새벽안개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던 것이다. ‘출가위승(出家爲僧)은 성도구중(成道救衆)에 있습니다. 스승을 찾아 떠납니다. 佛法불법의 大海대해에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편지였다고 기억된다. 큰절을 나서 그길로 광주시외버스터미널로 나가 공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공주산성 밑에 있다고 들었던 永明寺영명사를 찾았다. 송광사에서 행자생활 할 때 나보다 몇 개월 뒤에 같은 고향에서 왔다는 어느 행자가 말하길 ‘공주산성 밑 어느 절에 가면 불세출의 도인이 숨어있다,’고 들었던 말이 씨앗이 되어 부풀려진 구도의 일념은 나를 공주로 끌고 간 것이다. 백제시대에 돌로 쌓았던 산성 밑에 조그만 절이 하나있기는 있었다. 여기가 바로 영명사라는 곳이구나 하고 한 숨을 돌리는데 한 비구 스님과 또 다른 비구니스님이 내며 바케스를 냅다 던지면서 큰소리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청순한 용모의 한 사미승 복장의 행각승이 갑자기 나타나니 두 스님이 놀라서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다. 여차여차해서 도인을 찾아왔다니까 ‘아, 正자, 法자, 정법스님을 찾아왔구만!’이라면서 반기면서 어서 오라 환영하였다. 비구는 묵담이라 하고 비구니는 법성이라고 했는데 두 분 스님 모두 정법스님의 지도를 받아 화엄성중 천일기도 중이라 한다. 그런데 그 절은 보살이 주인행세를 하는 보살절이었다. 주인보살은 실상화보살이라 하며 정법스님을 젊었을 때부터 시봉했다고 하니 스님에게 일생을 바친 삶을 사신 것이다. 그 날부터 새벽 도량석을 하는 소임이 내게 주어졌고, 그 스님들을 쫓아서 하루에 네 번 기도를 하였다. 빡빡하게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새벽 도량석을 하는데 절 뒷마당에서 누더기를 기워 입은 큰스님이 나타나시는 게 아니가. 희미한 불빛 아래 보이는 당당한 풍채의 모습이 과연 도인이다 싶었다. 냉큼 땅바닥에 절을 올리면서 ‘큰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무어라 불러주시겠습니까?’라 하니 ‘둥글 圓원, 못 潭담, 원담이라 하거라.’라 하신다. 이렇게 하여 나는 정법스님과 은사상좌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무슨 자서전을 쓰려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가 흘러 여기까지 왔다. 9시에 방선하고 방으로 돌아와 말린 양파를 넣고 물을 끓여 족탕을 하다.

2017년6월12일(월)맑음

  새벽 정진 마치고 나오니 아침놀이 예쁘게 피었다. 아름다운 날들이 눈앞에서 지나간다. 잡아둘 수 없는 지상의 아름다운 날들이 꽃잎처럼 떨어져간다. 우리는 낙화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

  아침 정진을 마치고 마당을 밟으니 온 세상이 찬란히 빛난다. 보이는 사물이 반짝반짝 윤기가 난다. 공간 가득히 실 비단이 나부끼는 듯 부드러운 바람결이 두루 감싼다. 은혜로움을 느낀다. 나는 세계에 대해 무슨 일을 해준 것도 없는데 세계는 이러히 나에게 많이 베풀어주는구나. 감사합니다. 나는 이웃에 대해 별로 도움 되는 일을 한 게 없는데 이러히 나를 도와주는구나. 감사합니다. 나는 뭇 생명에게 기여한 것이 별로 없는데 만물이 나를 감싸며 살려주고 있구나. 감사합니다. 나를 살게 하며, 살려주고 있는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크나큰 은덕에 감사하여 몸 둘 바를 찾지 못하여 유리의 땅에 흠이 나지 않도록 살살 걷는 엄지왕자가 됩니다. 몸과 마음을 통째로 공양 올립니다.

6월13일(화)흐림 가끔 소나기

  점심시간에 고등학교 동창 신동민이 찾아오다. 졸업 후 40년 만의 해후. 큰절 마당에서 얼굴을 마주쳤는데 가만히 보니 고등학생 때의 얼굴윤곽이 눈앞에 서 있는 50대 중년남자의 얼굴과 겹쳐지면서 기억이 난다. 손을 잡고 명고스님 방으로 가다. 명고스님이 차를 따라주면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푼다. 동창은 고3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당시 고3 시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특수반에 들어가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동민은 학교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아이와 친구를 삼으면 자기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동민은 집으로 놀러올 만큼 나와 잘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민이 생각하기를 자기는 공부를 못하는데 친구가 자기하고 놀면 좋은 대학교 가기 어려울 테니까 나(전교1등)와 전교2등에게 절교선언을 했다고 한다. 좋은 의도로 그런 것이지만 지혜롭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걸 나중에 후회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기억을 꿈에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동민은 그걸 상처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일을 털어놓으면서 용서를 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내가 스님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그 후 入寂입적했다는 소문을 듣고 포기했는데, 얼마 전에 진주에 있다는 말을 듣고 다음 날 곧 바로 진주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거기서 봉선사에서 하안거 수행중이라는 말을 들었고, 오늘 휴가를 내어 찾아왔다.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데 밖에서 소나기가 오락가락한다. 차를 아홉 잔 정도 마시니 가슴에 맺힌 이야기는 대충 풀어진 모양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연못을 거닐며 연꽃을 감상하고 돌아가다.

  오후부터 다각실 문 앞에 버려진 개가 짓고 있다. 다각스님이 빵을 주니 꼬리를 치고 제집에 온 것처럼 근처에 어정대며 붙어살려고 한다. 주인에게서 버려진 유기견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예쁘게 생긴 놈인데 나이가 들었고 피부병이 있다. 주인이 보살피기 싫으니까 절에다 갖다버린 것이다. 슬퍼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눈을 가진 개는 이 스님이 이리가면 이리 따라가고, 저 스님이 저리가면 저리 따라간다. 누구에게 정을 붙어보려 하지만 스님들은 각자 자기 생활이 있으니 보살필 수는 없다. 다각스님이 목줄을 매어 근처 나무에 의지해서 쉬게 해준다. 내일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가기로 했다는 소식이 왔다. 길러준 부모도 버리는 세상에 키우던 개를 버리는 일이 무슨 대수겠는가? 자기에게 귀찮고 불편해지면 한 때 정을 주었던 사람이나 애완동물도 가차 없이 내버리는 게 세상인심이다. 달면 삼켰다 쓰면 뱉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히 몰인정하고 쌀쌀맞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2017년6월14일(수)흐림

  선덕과 인봉스님과 숲을 한 바퀴 돌다. 오후에 유기견 센터에서 개를 데리러 왔다. 개를 데리러 온 사람이 예쁘게 생기고, 잘 관리를 받던 얘라서 곧 입양될 것이라 낙관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도 잘 생겨야 관심과 애정을 받는구나.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비하면 개로 태어난 것은 악업의 과보라 하겠지만, 예쁘게 생긴 몸을 타고난 개는 선업의 결과라 하겠다. 같은 종류의 악업의 과보 가운데도 다양한 편차를 보인다. 원인은 동일하더라도 그 과보는 ‘의미 있는 예측가능성’ 안에서 다양성을 보인다.

  오늘 오기로 한 경진과 혜진 스님이 오후7시나 돼서 온다고 한다. 템플스테이 관에 방을 잡아놓고 기다리다. 저녁정진 방선하고 나서 도착했다. 객실에 방을 정해놓고 명고스님 방에게 가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를 이어주는 큰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비달마구사론과 유가사지론을 반드시 공부해야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다. 고운사 화엄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등현 스님께서 그 분야에 조예가 깊다는 이야기를 듣다. 앞으로 그분께 배울 기회가 있기를 기원한다. 우리가 남은 인생동안 함께 불교를 학습할 것을 넌즈시 합의하다. 밤이 늦어 차 모임을 마치고 각자 쉴 곳으로 돌아가다.

2017년6월15일(목)맑음

  아침 공양 마치고 경진과 혜진 스님 모시고 큰절 경내 한 바퀴 돌다. 명고스님이 안내하면서 도량 곳곳에 서린 연기 설화를 들려준다. 조실스님 채에 들러 月雲스님께 인사드리다. 스님말씀에 도량에는 항상 소곤소곤, 중얼중얼 하는 소리가 들려야 한다고 하시다. 小僧소승(어린 스님)을 일본말로 읽으면 ‘소곤’이라고 발음된단다. 그러니까 절 안에 어린 사미승들이 많이 모여 소곤소곤 거리는 소리가 들려야 불교의 미래가 밝다는 말이니, 출가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져 절집이 텅 빌 지경이 된 지금에 비추어보면 딱 맞는 말이다. 중얼중얼은 본시 ‘중알중알’에서 온 말인데 중은 스님이니, 중알은 많은 스님들이 좁은 공간에 알알이 들여 박혀 사니 중얼중얼 댄다는 말이다. 좁은 절에 스님이 너무 많이 모여사니 서로 중얼중얼 댔다는 것이니, 올망졸망 아이들이 서로 부딪히며 살았던 흥부네 가족같이 정다웠을 풍경이다. 조실스님 말씀은 소곤소곤, 중얼중얼 거리며 스님들이 함께 모여 살았던 옛 시절이 그립다는 말과, 동시에 오늘날 쓸쓸해진 불교의 현실을 반성하라는 뜻이다. 조실스님 방에서 물러나와 간단히 차를 나누고 두 분 객스님은 서울로 향하고 난 선방으로 돌아오다.

2017년6월16일(금)맑음

  아침 안개가 숲에서 피어난다. 붉은 해가 앞산에서 떠오르니 하늘이 온통 놀빛으로 물든다. 왜 불교를 공부해야할까?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죽는다는 사실을 통절하게 느낄 때 죽음을 넘어서는 길, 죽음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삶을 모색하게 된다. 죽음을 넘어선 궁극적 가치를 찾는 사람에게 영적인 탐구와 종교적인 방황이 시작된다. 그러나 인생은 짧고 종교는 많다. 한 개인이 모든 종교와 영적인 전통을 탐색하여 바른 길을 찾기는 힘들다. 구도자가 이 지점까지 왔을 때 그가 충분한 선업을 쌓은 행운아라면 불교를 만날 것이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유파의 수행과 종교를 몸소 체험하시고 종교적 방황을 끝냈다. 최종적이고도 가장 바른 해법을 제시해주셨다. 악업을 끊고 선업을 지으라. 남의 것을 빼앗지 말고 너의 것을 베풀라. 팔정도의 길을 가라. 이타적 동기를 일으켜서 자기를 정화하면서 남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라. 우리 앞엔 오직 한 갈래의 바른 길, 큰 길이 펼쳐져 있다. 팔정도의 길, 지혜와 자비를 같이 닦음, 보리심을 새김, 10바라밀의 완성. 불자여, 종교적인 방황을 끝내라. 다른 길을 찾지 말라. ‘마음’이나 ‘도’를 찾는다고 우왕좌왕 하면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 인생을 낭비한 죄가 크리라.

2017년6월17일(토)맑음

  진주선원에 학생들이 대중공양 오다, 아침 6:30에 출발하여 10:45경 봉선사 도착하다. 미리 와서 기다리던 연꽃님과 함께 선원으로 올라오다. 선방에 참예하여 문수보살께 예경드리고 좌정하다. 진주에 온 열여덟 분과 연꽃님이 빙 둘러앉은 가운데 내가 짧게 법문하다. 죽음은 우리를 깨어있게 만드는 스승이다. 불교공부는 초기불교에서 시작해서 차근차근 순서대로 배워야한다. 법문들은 것은 마음에 새겨 기억해야한다. 새긴 것을 실천해야 한다. 죽음에 이르러 감당하기 힘든 공포가 일어난다. 아집이 강할수록 공포심은 커진다. 그러므로 죽음을 미리 예습해야한다. 그게 사띠sati/念라는 것이다. 호흡sati, 죽음에 대한 sati가 그것이다. 지계와 보시가 너를 보호하리라.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 것이라고 붙들고 있던 것들, 금쪽 같이 귀하게 여기든 내 몸과 내 피 같은 돈, 사랑하던 사람들과 떨어져야 한다. 그것들을 악착같이 붙잡고 놓치지 않고 싶은 데, 저승사자는 인정사정없이 나를 강제로 떼어내서 저승으로 데려간다.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억울함과 원통함에 가슴이 메어지고, 허탈감에 마음은 땅으로 가라앉는데 밀려오는 공포에 사지가 벌벌 떨리리라. 죽음이 우리를 강제로 떼어놓기 전에 가진 것을 미리 유용하게 쓰라는 게 바로 보시이다. 주고, 베풀고, 내려놓으면 홀가분해지리라. 출가자는 집을 버리고 세속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앞만 보고 가지만, 재가자는 출가자의 뒤를 따라 가되 뒤돌아보면서 집과 세상인연을 연민과 자애로 대해야한다. 떠남과 돌아봄, 出離출리와 梵住범주(세상에 청정하게 머물며 함께 살기)의 균형을 잡는 것이 불자의 삶이다. 말을 마치고 가을철 공부 계획을 이야기하다. 일행들을 공양간으로 모시고 가서 점심 공양을 하게 하다. 공양을 마친 다음 다각실에서 명고스님이 주는 차를 흡족히 마시다. 이어서 모두 함께 줄을 지어 광릉 숲길을 걷다. 한 줄로 걷거나, 둘씩 짝을 짓거나, 삼삼오오 무리지어 소곤소곤 속닥속닥 이야기꽃을 피우며 길을 걷는다. 초록의 터널을 지나고 산소 가득한 나무그늘을 즐기며 빨갛게 익은 산딸기랑 인동초를 보면서 길을 간다. 풀 그늘 언덕배기에 잠시 멈추어 서서 수박을 먹다. 미소와 환담이 오고가고, 수박과 사탕을 주고받으며 다시 길을 재촉하여 한 바퀴를 돌아오다. 선방에 도착하자 내가 평소에 주어놓았던 잣나무 솔방울을 선물로 나누어 주다. 학생회 간부 네 분들은 도향스님께 인사드리러간다. 다른 분들은 큰절 경내를 둘러보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일행은 버스에 올랐다. 작별인사 나누다. 연꽃님과 헤어지다. 모두 함께 보낸 하루, 찬란한 지상의 한 때,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반짝이다 사라진다. 일체가 그와 같다. 조건으로 이뤄진 것은 무엇이든 사라지게 되는 법.

[초당 草堂]

스님~ 영명사 정법스님과의 은사상좌와의 관계가 궁금해 집니다.

"팔정도의 길, 지혜와 자비를 같이 닦음, 보리심을 새김, 10바라밀의 완성. 불자여, 종교적인 방황을 끝내라. 다른 길을 찾지 말라."

방황에서 돌아와 정도를 갑니다. 팔정도의 길을 갑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Wondam:원담]

다음에 이야기 해드릴께요. 저의 구도행각이 흥미진진한 점이 좀 있습니다.

[munin문인]

스님!
기대 됩니다 ()()()

[양순]

스님 본인 스스로 청순한 외모라 하시다니요 ㅋㅋ 😂 그런데 진짜 청순하셨을듯.
문득 생각났는데.. 스님 이름이 북아메리카 인디언들 이름과 비슷해요. 둥근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