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지명) 시인 2시집 『온새미』 발간
지명(知命) 이선희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온새미』를 오늘의문학사에서 발간하였습니다. 오늘의문학 특선시집으로 발간된 이 시집에는 시인이 일상에서 느끼고 생각한 세상이 오롯하게 담겨 있습니다. 시집 제목인 ‘온새미’는 ‘자르지도 쪼개지도 않은 그대로의 상태’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작품을 쓰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긴 시집입니다.
이 시집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습니다. 서시는 시집의 제목에 들어있는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부에 42편, 2부에 31편, 3부에 4편의 시와 4편의 산문으로 구성되었는데, 네 편의 산문에는 자손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따스한 정서와 함께 담겨 있습니다.
# 서평
1.
지명 이선희 시인은 첫 시집 『마중편지』의 표지에 <시로 쓴 일상>이라고 명기(明記)하여, 시집에 수록된 작품의 성격을 암시한 바 있습니다. 시집은 3부로 구성하였는데, 창작한 날짜를 밝힌 작품으로 1부,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 2부, 가족에 대한 일상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3부를 구성하였습니다.
두 번째 시집 『온새미』도 동일한 구성으로 편집하였습니다. 다만 3부에 손자에게 쓰는 편지글 4편이 수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렇듯이 그는 일상에서 느끼는 정서적 충격, 상식과 좀 다른 견해, 혹은 사색하게 만드는 삶의 이치 등을 작품에 담아내었습니다.
<시로 쓴 일상>, 그것은 실제 생활에서 느끼고 생각한바 소소한 제재(題材)들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는 자존심 높은 그가 겸양의 언사로 건넨 것 같습니다. 일상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삶을 관류하는 철학이 깊숙하게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지명 시인은 월령(月令)에 민감한 것 같습니다. 1월부터 12월까지 쓴 작품도 여러 편이고, 해마다 쓰는 그 달의 작품이지만 다양합니다. 둘째 시집의 처음을 장식한 작품 「4월이 오면」에서도 그만의 형상화를 만납니다. 계절의 그 시기에 어울리는 정서적 언어는 물론, 비유와 상징을 통하여 수준 높은 형상화를 완성합니다.
<설마와 역시가 번갈아/ 임계점을 넘어서고/ 호미와 낫에 잘린 진실을 캐다가/ 소문과 추측의 짜깁기로 만든 담벼락을/ 쉴 사이 없이/ 오르내리는 도마뱀처럼/ 미디어에 중독되어 무척이나 어지럽다>는 표현은 그야말로 백미(白眉)입니다. 1연에서부터 소소한 일상을 뛰어넘어 수많은 갈래의 상상력을 작동하는 작품입니다. 시어의 독자성과 그 시어들이 절묘하게 융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는 수준 높은 작품이매, 일상을 노래하되, 일상성과는 거리가 있어도 한참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2연의 <봄이 타고 온 꽃수레에 숨어/ 꽃멀미에 참담하게 무너져 버려도 좋겠다.>에 이르면 고도의 은유와 함께 일상으로 돌아온 듯합니다. 이는 다시 3연과 4연으로 이어져 유사성을 표출하지만, 5연에서 시인의 의중에 따라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안간힘으로/ 겨울을 뚫고 나온 종점의 계절/ 그대는/ 무슨 꽃으로 피고 있나요?>에서 시인의 지향을 확인하게 됩니다.
3.
이선희 시인의 작품 「경계석」에서는 서사적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1연에서는 아들처럼 마음에 담은 학생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건축석재업을 합니다. 그래서 ‘경계석’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차도보다 조금 높인 인도가 시작되는 돌’을 경계석이라 합니다.
2연에서는 경계석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인도와 차도를 가르는 돌에 불과하지만, 그 연원에 대한 시적 형상화는 놀라운 발상을 보입니다. <태고의 마그마 화강 경계석은/ 고고하고 근엄하다.>고 정의합니다. 돌산의 바위는 처음에 큰 덩어리로 떼어집니다. 다시 가르고 잘라서 쓰임새에 따라 구분됩니다. 경계석 역시 <땀과 분진의 노동으로 반들반들 윤>을 내는 존재로 수용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경계석을 밟기도 아깝다는 생각에까지 이릅니다.
3연에서는 경계석의 가치를 찾아내고, 자녀에게도 그와 같은 역할을 주문합니다. <경계석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흔들렸을까/ 인도로 달려드는 트럭이든 오토바이든/ 온몸으로 막아내어/ 부서지고 쪼개지는> 것이 바로 경계석의 역할이자 운명입니다. 매일 보고 지나면서도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살지만, 경계석은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리하여 ‘하진’에게 <부서지고 쪼개지는 경계석처럼/ 해야 할 일에 뒤로 물러서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세상에 우뚝 서기를 기대합니다. 이렇듯이 이선희 시인은 작은 사물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도야(陶冶)해야 할 품성을 제시합니다. 이와 같은 그의 혜안(慧眼)이 여러 작품에 용해되어 각각의 개성을 드러낸 채 감동을 환기합니다.
4.
지명 이선희 시인은 다양한 소재를 찾아내는 특별한 ‘달란트’를 부여받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시어를 찾아내어 절묘하게 융합하는 표현 능력을 갈고 닦은 것 같습니다. <솟대에 올라앉은 새/ 창공을 날고 싶다.> <처마 끝 풍경(風磬) 속/ 물고기는 바다를 꿈꾸고> <닫집에 갇힌 스님들은/ 득오의 낭떠러지로 굴러봤으면> 등에서도 착상이 놀랍습니다.
또한 지명 시인은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소재로 음악 용어를 채택하는데 신기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그는 자신을 ‘못갖춘마디’라고 말합니다. 이순(耳順) 중반에 ‘뒤늦은 깨달음’인데, 그러나 ‘못갖춘마디’는 어딘가 부족한 것이 아니고, 음악에 새로운 맛과 멋을 살리기 위해 찾아낸 보석 같은 역할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음악의 기법일 뿐입니다.
그의 시는 이와 같은 형상화를 통하여, 그가 찾아낸 깨달음을 독자와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쉽지만 느끼며 생각하게 하는 깊이가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새로운 감동을 생성하고 있는 그의 2시집 『온새미』를 읽으며, 온 힘을 기울여 작품을 창작하는 자세에 박수를 보냅니다.
--일상에서 찾은 삶의 이치와 정서-― 지명(知命) 이선희 2시집을 감상하며
--문학평론가 리 헌 석(사)문학사랑협의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