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도, 미국 횡단도, 캐나다 서부 횡단도 여러 차례 자동차몰고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니 제주도에서 영흥도 쯤이야 가볍게 여길만 합니다. 소위 역마살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타고난 팔자수준입니다.
목요일 어제 진이의 마지막 제주도 체류일, 비가 주룩주룩 내립니다. 바람도 강해서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연속적으로 천둥 비슷한 소리가 멈추지 않는 날씨 속에 진이 짐을 정리했습니다.
미뤄왔던 집안 살림 후다닥 치우는 날은 바로 제주도 떠나기 하루 전입니다. 어제는 오후 4시 배편이니 아침 일찍부터 묵혀둔 주방정리 삼매경. 집안일이란 해도해도 끝이 없기 때문에 밀린 것이 있던 없던 분주하기 마련입니다. 늘 밀린 것이 많은 편인지라 그 분주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공교롭게 아이들 샤워 중에 딱 끊겨버린 온수, 여기는 가스온수기를 쓰기에 여분을 놔두어도 가스가 다 떨어졌는지 확인할 길이 없으니 온수가 안되면 떨어졌나해서 주문하는 방식입니다. 다른 독채에 연결되어있는 10kg짜리 가스통을 들고 다급하게 갈아끼웠건만 가스가 얼마없는지 얼마 못가 다시 끊기고 주문한 가스는 오질 않고...
빗속에서 가스통을 들고 이리저리 뛰는 모습이란... 다른 여분의 통을 분리해서 다시 나르는 사이 다행히 가스공급차가 왔습니다. 집이 넓으니 뭐 하나 손보는 것도 걸음수가 장난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정원도 넓고 좋다했지만 (사실 여전히 좋기는 하지만) 차몰고 조금만 나가면 널린 게 아름답고 고색창연 자연풍경들이라서 집이 꼭 자연모습과 가깝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제주도에 살아보니 깨닫게 됩니다.
제주도 정착하려면 1~2년은 살아보고 결정하라는 말이 맞습니다. 제주도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만큼 다급하고 절실한 마음보다는 제주도만한 곳은 찾기 쉽지 않겠다는 큰 깨달음이 제주도에 마음을 두게 합니다. 제주도에 길게 있되 큰 부담도 없이 언제든지 원래 집도 편히 왔다갔다 하면서 하는 거처방식들도 잘 찾아지고 있어 마음이 살짝 설레기도 합니다.
제주도살이를 시작할 때 책 두권만 완성할 때까지는 여기에 있겠다 였습니다. 그런데 외지인으로 제주도에 정착하여 자신이 하고싶었던 분야에서 꽤 만족도 높은 성과를 내고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제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은 커졌습니다.
여수행 배에서 사무장님이 어찌나 친절하게 대해주는지 멋진 단독방 배정에다 여수행 여객선은 시설도 완도행에 비해 훨씬 좋고 다양합니다.
노래방때문인지 저녁을 다 먹고도 잠시도 객실을 지키지않고 자주 나가는 태균이. 방도 많고 복잡할텐데도 잘도 찾아다닙니다. 저녁먹고나서 태균이에게 준이데리고 우리방에 가라하고, 진이 데리고 화장실 다녀왔더니 준이가 로비에서 길을 잃고 혼자 헤매고 있습니다. 태균이 혼자 가버린 모양이거나 준이가 놓쳤거나...
방으로 왔더니 태균이 혼자 와서 있습니다. 이런 헷갈리는 비슷한 공간에서도 태균이 정말 시공간 감각은 아주 우수합니다. 준이나 진이가 이런 점이 좀 어렵죠. 카메라기억의 장점입니다.
여수항을 빠져나온 시간이 밤 10시30분, 진이 부모님께 인계하고나니 11시, 그 때부터 영흥도를 향해 달렸으니 피곤한 것은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새벽 4시까지 준이의 반복되는 외계어 대잔치가 환장할 지경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머무는 공간이 넓은 편이고 준이방과 제 방이 거리가 있는데도 다 들릴 정도라 때로 견디기가 힘들 때도 있는데, 차 속 지척 공간에서 몇 시간 반복되니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제가 마실 커피까지 다 마셔버린 태균이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빨리 가자고 엄마를 재촉해 댑니다. 그러면서 태균이가 제 손을 자꾸 잡아주는 이유는 준이가 힘들게 해도 참고 잘 견디라는 격려입니다. 배타러 가기위해 2차선 달릴 때, 마음은 바쁜데 커다란 트럭이 바로 앞에서 속도를 못내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어 '하필 이럴 때 트럭이 앞을 가로막네'하며 좀 짜증스럽게 중얼댔더니 준이가 아니야 아니야를 반복하면서 참견하기 시작합니다.
이상하게 준이는 제가 운전하고가다 거칠게 운전하는 차를 만나거나 뭔가 도로상황이 마음에 들지않을 때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합니다. 아마 가족들과 함께 차타고 가다가 받은 상처들이 있지않을까 짐작해보는데요...
어제는 아니야 아니야를 수십번하면서 저에게 참견해대니 한번만 하자!면서 저도 모르게 짜증을 냈습니다. 그러자 제 뒷좌석에서 제가 두른 목도리와 외투를 어찌나 폭력적으로 잡아당기고 팔을 앞으로 뻗어 저를 때리려하는 행동을 하는지... 처음입니다. 운전 중이라 너무 위험해서 일단 차를 세우고 잠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긴 고통의 터널을 어쩔 수 없이 느끼게 합니다.
이를 목격한 태균이가 많이 걱정스러워 한다는 표현으로 제 손을 계속 잡아줍니다. 진정해!Calm down!!! 이 뜻임을 잘 압니다. 그래도 그렇지 운전하다 너무 졸려 쉼터에서 잠시 눈을 붙이려면 태균이가 자꾸 일어나라 깨워대니 이것도 환장할 노릇.
결국 새벽 4시쯤 우리 셋은 잠시 차 속에서 곯아 떨어졌고 영흥도에 들어서니 대략 아침 7시 반. 감사하게도 단골철물점이 문을 열였으니 수도관 메꾸는 쇠꼭지까지 성공적으로 구입! 집에 오자마자 새는 관이 연결되어 있던 수도 관도 잘 막아주고, 다시 물을 퍼올리는 펌프시설을 가동시키니 마음이 놓입니다.
발달학교 공사도 많이 해보고 여기저기 터지고 문제생기는 집 시설들을 도맡아 해결하다보니 사소한 시설보수에 노하우가 생깁니다. 자기 전문일 외에는 집관련 기본 기술은 완전 꽝인 태균아빠인지라 제가 만능이 되지않고는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일터지면 그냥 전화만 해대는 수준! 자기 전문일이라도 잘 하니 그것으로 감사해야 되겠죠.
어제 배타고 오는데 준이집 가정도우미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몇시에 올 예정이냐? 궁금해서 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보내고 제가 데리고 있다가 제주도로 갈 예정이다 했더니 다행이라고 합니다. 집사정상 준이가 오지않는 게 낫다고... 집에서 준이가 받아야하는 스트레스가 이미 정도를 넘었다고 하네요. 녀석의 개인적 스트레스 상황이 녀석을 점점 악화시키고 있으니 엄마와의 악화된 감정이 자꾸 저에게도 이입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나마 태균아빠가 준이에게 살갑게 해주니 준이에게는 큰 심리적 위안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이번에는 휴식기간이다 생각하고 영흥도에서의 시간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첫댓글 아, 준이 폭력 조짐이 걱정스럽습니다. 외계어가 평생 가면 어쩌나 싶습니다.
강철같은 여인이십니다.
펄펄 날아 건강히 일 잘 보시고 제주에 무사히 입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