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참으로 심심한 사람 -
文霞 鄭永仁
아침 8시 10분에 집에서 떠난다. 한의원으로 침 맞으러 간다. 첫 회 진료가 8시 50분에 시작하니 한참 여유가 있다.
한의원까지 가는 데는 한 10여분 걸린다.
천천히 걷는다. 마치 슬로우-시티(slow-city) 시민이나 된 것처럼…….
기적의 도서관 앞을 지난다. 엄마와 아이들이 한 50여명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오늘 도서관에 무슨 일이 있어요?”
“네!”
“무슨 일이 있어요?”
재차 물었더니 그제야
“도서관에서 아이들 프로그램이 있어서 접수하려고 기다리고 있어요.”
하여간에 대한민국 엄마 극성은 세계가 알아주고 남을 것이다. 하기야 어떤 엄마는 어렸을 때 1,000권 읽기 목표를 세운다나? 그래가지고 그 아이가 자라서 책을 즐겨 읽겠는지?
아마 간서치(看書癡)나 독서종자(讀書種子)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편에 ‘도서관 앞 횡단보도 십자형화 확정!’ 하고 어느 정당이 자기가 한양 대문짝만하게 써 붙였다.
하여간에 정치인들은 치사한 짓은 도맡아서 한다.
좋은 일은 모두 자기들이 한 짓이라고 과대포장이다.
후안무치가 따로 없다. 그리고 나쁜 일에는 ‘안했다,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 모르쇠에 달인이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빵집이 한창 수리 중이다.
“아저씨, 무슨 가게가 새로 생겨요?”
“아니오, 빵집 수리 중입니다.”
아, 그렇구나! 우리 집 단골집인데, 포인트 점수가 없어질까 봐 걱정한다.
휘둘러본다. 핸드폰 가게가 그 좁은 바닥에 6개나 된다.
새로 연 가게는 계약하면 20㎏짜리 쌀 한 포대 준다고 써 붙였다.
이 틈에 핸드폰 바꾸고 쌀 한 포대 챙겨……. 확실히 우리나라는 IT강국임에는 틀림없다.
안경점 두 곳에서는 팍팍 세일한다고 야단이다.
다초점렌즈가 싸다고 야단이다. 슬쩍 들어가서 안경을 공짜로 세척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 라는 말이 허투루 한 말이 아니다.
교회 앞을 지난다. 앞에 있는 제법 큰 배롱나무가 분홍빛 꽃들을 탐스럽게 매달기 시작한다. 미끈한 몸매가 더 아름지다. 100일 동안이나 꽃이 피고지고 하여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단다.
배롱나무 밑에는 맥문동이 보랏빛 꽃 대궁을 올리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배롱나무 가지마다 주먹 두 개만한 전구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밤마다 길 잃은 양들을 인도하는 불을 밝힌다. 그 배롱나무의 신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하느님, 저도 잠을 자게 해 주세요!’
24시 편의점에 다다른다. 아침부터 웬 아줌마가 시원한 얼음물을 세 개나 들고 야외 탁자 위에 놓는다.
“그거 냉커피예요?”
그 아줌마는 뜨악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냉커피인데요.”
“얼마인가요?”
“1,500인데요.”
아줌마는 웬 싱거운 늙은 놈을 보듯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양장점 앞에는 긴 화분에 채송화가 꽃 피고 있다.
요즈음 채송화는 옛날 채송화는 사뭇 다르다.
옛날 채송화는 땅으로 기다시피 했는데 요즈음 것은 하늘을 보고 꼿꼿하게 꽃을 피운다.
옛날부터 우리 곁에 있던 앉은뱅이꽃을 보기가 어렵다.
채송화, 제비꽃 등. 젊은 것들이나 늙은 것들이나 고개 숙인 것을 못 본다.
카센터 앞에 다다르니 카센터 사장이 세차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괜스레 기분이 째진다. 딸이 사 준 내 차도 이 집 단골이기 때문이리라.
한의원 2층 계단을 오른다. 무릎이 시원찮으니깐 ‘도대체 이 한의원은 왜 2층에 있는 거야!’ 투덜거려 본다. 그러면서 일찍 왔으니 1호실 입점은 맡아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면 한의원 문을 연다.
오메, 징한거! 대기실에는 열댓 명이 그들먹하게 앉아 있다.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게 마련이다. 1등쯤 하려면 8시점에 와야 하나보다.
턱걸이로 2호실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다. 참고로 이 한의원엔 3호실까지 있다. 대개 노인네들이다. 상근하다시피 하는 노인네들도 있다.
한편 오지랖 넓게 의료보험 재정도 걱정이 된다. 나이 들면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망우초(忘憂草)라는 원추리나물이라도 해먹어야 하나보다.
하기야 나도 그렇다. 대기실 TV에서는 어느 코미디언의 객쩍은 소리가 한창이고, 다들 목을 빼고 쳐다보고 있다.
왜 그리 아픈 노인네들이 많은지? 내 옆에 앉은 할머니.
나이 66세, 84세 친정어머니 홀로 사시고, 자식 하도 없고,
기초수급자라고 한다. 당 수치 400 이상, 고혈압에 허리 디스크 수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동생네 식당에서 일을 도와준다고 한다.
가만히 보면 병마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달라붙는 것 같다.
원장의 침놓기가 시작한다. 침놓기 전에 다들 힘내라고 하이파이브로 기를 살려 준다. 그러면서 환자에게 하는 말이 꼭 있다.
“고통 끝, 행복 시작입니다!”
하기야 고통 없는 행복은 제대로 된 행복이 아닐 것이다.
아마 아픈 사람들이 다 바라는 소망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개인의 병증과 나아지는 상황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정영인 님은 허리디스크에 목디스크, 소화불량, 요즈음은 왼쪽다리가 땡기시지요? 허리와 목디스크는 좀 나아지셨고요?”
이 원장은 머리가 비상하다. 개인별 침 자리는 물론, 신상명세서를 다 줄줄이 꿰 찬다. 심지어 천주교 신자 영세명까지 줄줄이다. 하기야 그런 머리라, 그 어려운 한의대에 들어갔을 것이다.
한 시간 가량 침을 맞으면서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펼쳐진다.
문산읍에서 지붕까지 물 찼던 이야기, 요양원에 간 것, 50억 재산 중 45억을 아들이 갖고 아버지를 5억짜리 실버타운에 넣었다는 이야기,
필리핀에다 어머니를 버려 정부에서 찾아왔다는 것, 그나마 반은 연금을 해서 천만다행이라는 어느 전직 공무원 이야기도....
아들이 아버지 400만원 전세금을 뽑아가 아들집 베란다에다 간이침대를 놓고 산다는 할아버지, 자식들에게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이 이야기,
저 이야기들이 줄줄이 사탕이다. 어쨌거니 늙는다는 것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닌가 보다.
84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70세 넘은 할머니 보고 갈비 먹으러 가자니깐
‘아니, 내 나이가 얼만데 노친네들과 어울려요’하는 노영계(老嬰鷄) 할머니의 당찬 말에 온통 웃음바다!
그러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전반부 30분은 사(瀉)하는 침을, 후반부 30분은 보(補)하는 침을 맞는다.
침을 뽑을 때, 맞은 침 자리에서 피가 나오면 원장은 “암소 한 마리 잡았습니다.” 라고 한다. 침 맞은 자리에서 피가 나오면 효과가 좋다는 것이다.
나는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형인가 보다. 그러니 병이 빨리 나을 수 있는가?
어느 익살궂은 할아버지는 “원장님,내가 잡은 암소가 한우요, 수입소요?”,
“그야 당연히 1등급 토종 한우입니다.“ 라고 원장은 너스레를 떤다.
하기야 그 한의원 간판이 토정 한의원이기도 하다.
하기야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