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저자소개
조선시대 생활사 중 촌락 부분을 맡은 공주대학교 사학과 이해준 교수는 향촌에 대한 편찬에서 많은 경력을 갖고 있는
이다. 과거에는 한국역사민속학회 편집위원회 편집위원이었으며 현재는 전라감영 복원 재창조위원회 위원을
담당하고 있다. 향촌 문화와 역사는 그의 저서에서 잘 드러나는데 그 예로는 고을과 마을의 문화이야기, 지역사와 지역문화론 등이 있다. 앞의 책에서 그는 지역사와 지역문화에
대해 저술했다.
Ⅱ. 서론
이전까지는 조선시대라 하면 현재와 동떨어진 시대이며 우리의 삶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낙후된 환경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강의를 통해 조선시대 민중들의 삶을 배워 갈수록 체계적인 규칙 아래에 돌아가는 사회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향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원래 향도는 불교신앙결사조직이었지만 이후에 생활공동체로 변모한다는 점 때문이다. 왜냐하면 기존에 종교적인 성격을 띠던 조직이 변해 오로지 촌락 생활에 관련된 모임으로 변화했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래 특정한 성격을 갖고 있던 조직이 다른 조직으로 바뀌더라도 기존의 성격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그 특성에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보이기 마련인데 그러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 중에서도 특히 촌락 공동체에 관해 다뤄보고자 하며 당시의 촌락 조직의 종류 그리고 그 조직에 따라 현재 연구된 자료를 중점으로
촌락민의 생활을 풀어보고자 한다.
Ⅲ. 본론
남아있는 조선시대에 관한 서적들은 대부분이 왕실, 귀족들의 이야기나 국가 대 국가로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국가 구성의 최소단위인 촌락이다. 그런데 이 촌락에서도 계급이 나누어져 있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당시의
촌락 구조는 사족들이 모여 있는 사족촌락에 10여 개의 자연 촌락들이 묶인 형태였다. 이러한 구조가 발생한 것은 사족과 농민, 상민들의 경제적, 신분적 차이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사족과 농민들 사이의 경제적
수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것은 사족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 구조가 사족층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주변의 자연 촌락들은 이를 쫓아 모여든 것이라 생각한다. 책의 내용 중 ’이 같은 촌락생활의 생생한 자취를 살피는 과정에서 중요시되어야 할 자료가 바로 고문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촌락과 촌락민의 존재, 그리고 그들의 삶의 모습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지배층에 의해 지배층 중심으로 기술된 기록물들은 많은 한계점을 가지기 때문이다.’[1]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우리가 인터넷에서 편히 접할 수 있는 고문서들은 양반 계층의 이야기를 다룬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중의 삶을 보기 위해선 같은 민중의 입장에서 서술한 문서를 살펴야 한다. 실제로 족보, 호적, 분재
기록과 같은 문서들을 통해 사족들의 입촌 과정을 살필 수 있으며 마을의 친족 조직인 종계와 관련된 문서들을 통해 촌락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생활공동체 조직과 관련된 문서들까지 종합해 내용을 살펴보면 촌락에 언제 누가
새롭게 들어왔으며 어떤 날에 함께 어떤 행사를 진행했는지, 마을 공동 시설은 언제, 누가, 비용을 얼마나 들여서 만들었는지 또한 알 수 있다. 이 부분이 새로웠는데, 현대의 입장에서 조선시대에 대해 공부할 때
조선시대는 지금에 비해 낙후됐고 특히 촌락민들의 수준은 더 낮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마을에
거주하면서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를 기록한 것과 같이 마을 단위에서의 일만이 아니라 가계 단위의 일까지도 일일이 기록을 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촌락에 관한 내용도 꼼꼼하게 정리했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이런 고문서를
크게 나누자면 촌락 편제 자료, 촌락 조직 자료, 촌계와
두레 자료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주체가 누군지, 대상이 무엇인지에 따라 종류가 나누어진다. 촌락 편제 자료 중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한 것은 가좌대장이다. 책을
보면 ‘가좌대장은 가옥의 위치와 규모, 소유관계를 적은 일종의
가옥대장으로 원래의 법규에 의하면 주소〔통과 호〕, 호주의 신분, 나이, 가족 수, 가옥의 규모, 전답, 우마의 수 등을 함께 기록하도록 되어 있었다.’[2]라고
한다. 아파트, 빌딩, 도로를
만들거나 화재나 사고로 소실된 가옥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는 확인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민속 연구에 힘들 것이라 지금까지 생각했었는데, 가좌대장이 있다면 가옥의 배치 뿐만 아니라 촌락의 구성원과 당시 마을의 규모를 알 수 있어서 촌락에 대해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가옥의 배치만 기재되어 있었다면 가좌대장을 제작한 이유를 단순히 마을의
지도를 상세히 작성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옥의 배치뿐만 아니라 그 가옥의 거주하는 사람, 그 사람의 재산 규모까지 작성했으므로 이는 촌락에서 세금을 거두기 위해 그들의 재산을 기록한 것이라 생각한다. 촌락 조직 자료는 주로 동계와 동약에서 만들었으며 이는 향약과 촌계가 합쳐진 형태였기 때문에 하층민과 사족층
모두의 삶을 다루었단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촌락 조직 관련 자료에서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정한 조약, 합의 내용, 동계의 재산, 부역과 같은 노동활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하층민과 사족층이 합쳐져 조직을 만들었지만 내용이나 이 목적을 살펴보면 신분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뜻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규약을 살펴보면 조직의 운영방식과 규제를 담고 있지만 그 내용은 조직원의 상하 신분질서를
확고하게 해서 농촌 질서를 안정화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또한 동계안에서는 신분에 따라 상계안과 하천민으로
나누어 작성하였다.
촌락 편제 자료, 촌락 조직 자료는 사족, 양반에
의해 쓰여 민중들의 삶을 다루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촌계나 두레 관련 자료, 민중에 의해 쓰인 자료가 민중들의 삶을 보는데 가장 적합하다. 촌계는
마을의 생업이나 두레, 동제와 같은 의례를 주관했는데 이 규약이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실제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한다. 두레는 이앙법, 즉
모내기법이 농촌에서 보급되면서 등장한 모임이다. 왜냐하면 이앙법의 확대와 함께 농촌에서는 1인당 경작지 면적이 증가했고 이와 함께 수확량도 증가했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들이 혼자서 자신의 경작지를 모두 경작하기는 부담되기 때문에 공동체 조직인 두레가 탄생한 것이다. 두레
조직은 농사를 준비하는 회의로 호미모듬을 하고 농사가 끝난 뒤에는 대동회의를 한 후 호미씻이로 농사를 마무리했다.
하층민들의 삶과 관련이 깊은 촌계와 두레 중에선 두레가 생활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촌계는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을 다룬데 반해서 두레는 농민들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농사와 관련된
조직이기 때문이다.
Ⅳ. 결론
책을 읽으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오늘날의 촌락의 모습과 당시의 촌락의 모습은 다른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촌락에서는 특별히 법률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지만 당시의 촌락에서는 사족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 또한 규범, 규칙을 만들었으며, 서당 건축과 같은
촌락의 일을 모두 문서화해서 짓는데 사용된 자재, 금액은 물론이고 누가 했는지까지 작성했다는 점에서
촌락이 단순한 농촌 집단이 아니라 체계적인 형태를 갖춘 농촌 조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촌락
구성원의 신분에 따라 한 조직 안에서도 구분 지은 것을 통해 그 시대의 엄격한 신분 구조를 알 수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촌락과 관련된 대부분의 자료는 사족층이 포함된 조직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하층민과 관련된 촌계나 두레 관련 자료는 미흡하다. 상대적으로 하층민들은 농경에 집중해야 해야 해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고 교육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글을 아는 사람도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촌락
조직 중 하층민들로만 구성된 조직에서 집필한 서적을 조사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자료가 적고 그 연구도 부족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순 없었다. 반대로 사족층이 담당했던 서적들의 경우는 현재 남아 있는 종류도 다양하고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알 수 있는 촌락에 대한 정보에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족층에 관한 자료가 아닌 하층민들에 대한
새로운 자료의 수집이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사족층에 대한 사료 또한 중요하지만 비교적 자료의 양이
부족한 농민 조직에 대한 자료 수집과 이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Ⅴ.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고문서학회,
『조선시대 생활사』, 역사비평사, 1996.
논문
이해준, 1992, 「촌락(村落)의 조직과 운영관련 고문서자료(古文書資料)3」, 古文書硏究
, Vol.2, p27-45.
이해준, 2009, 「조선시대 촌락공동체와 제의, 놀이」, 韓國史市民講座, Vol.45, p171-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