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332
■1부 황하의 영웅 (332)
제 5권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제 40장 패자(覇者)가 되다 (6)
남쪽 성문을 지키고 있던 대부 장장(長牂)은 느닷없이 나타난 영유(寧兪)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그대가 여기 어쩐 일이오?"
"주공께서 귀환하시는 중이오. 지금 교외에 당도해 계시오."
"7월 15일에 오시기로 해놓고 어찌하여 이토록 일찍 오시는 것이오?
섭정께서는 아무런 준비도 해놓지 않으셨을 터인데, 아무튼 주공께서 오시는 중이라 하니 어서 가서 섭정께 알립시다."
장장(長牂)은 영유와 함께 수레를 타고 공궁(公宮)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 직후, 천견(歂犬)이 전위부대를 이끌고 남문에 당도했다.
"우리는 주공의 선봉대다. 주공께서는 바로 뒤에 오실 것이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방금 전 영유(寧兪)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별 의심없이 천견의 무리를 통과시켜 주었다.
성안으로 들어선 천견(歂犬) 역시 공궁을 향해 급하게 병차를 몰았다.
섭정 숙무(叔武)는 뜰에서 머리를 감고 있다가 영유(寧兪)와 장장(長牂)의 방문을 받았다.
"주공께서 오시는 중입니다."
숙무(叔武)는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였다.
그가 막 고개를 쳐들며 영유(寧兪)에게 무슨 말인가를 물으려는데, 공궁 문 밖에서 수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형님이 오셨구나."
숙무(叔武)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밖을 향해 뛰어나갔다.
그런데 이때 궁 안으로 들어온 것은 위성공의 선봉대 천견이었다.
천견(歂犬)은 앞에서 뛰어나오는 사람이 섭정 숙무(叔武)인 것을 알고 재빨리 어깨에서 활을 벗었다.
'네가 나를 위해서 죽어주어야 겠다.'
천견은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힘껏 시위를 당겨 숙무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정확하게 숙무(叔武)의 왼편 가슴에 가서 꽂혔다.
"아악 -!"
구슬픈 비명 소리가 공궁(公宮) 뜰에 울려퍼졌다.
영유(寧兪)는 기절할 듯 놀랐다.
급히 달려가 쓰러진 숙무를 붙잡아 일으켰다. 그러나 숙무의 숨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위성공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대부 원훤(元暄)이 공궁으로 달려오다가 이 광경을 보았다.
원훤은 천견의 행동이 위성공이 시켜서 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나도 죽겠구나. 나 하나 죽는 것은 아깝지 않으나, 내가 죽으면 누가 저 극악무도한 위성공에게 복수를 할 것이며, 누가 숙무의 원한을 씻어줄 것인가.'
원훤(元暄)은 재빨리 몸을 돌려 공궁을 빠져나와 진(晉)나라를 향해 달아났다.
그 무렵, 위성공(衛成公)은 초구성 남문에 당도해 있었다.
그는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극진한 태도에서 비로소 숙무(叔武)에게 딴 뜻이 없음을 알았다.
안내를 받아 막 성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저 앞에서 영유(寧兪)가 눈물을 뿌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영유가 위성공 앞에 이르러 말했다.
"이게 어쩐 일입니까?
숙무(叔武)께서는 주공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감던 머리를 움켜쥐고 영접하러 나오다가 천견(歂犬)의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신은 이제 위나라 백성들에게 신용을 잃었습니다."
위성공(衛成公)은 크게 놀랐다.
"숙무(叔武)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알았소. 그런데 그가 죽다니........!"
위성공은 수레를 몰아 공궁으로 들어갔다.
조정 신료들은 위성공이 오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황급히 나가 영접했다.
영유(寧兪)는 위성공을 숙무의 시체가 있는 공궁 뜰로 데리고 갔다.
숙무(叔武)는 마치 산 사람처럼 눈을 부릅뜨고 누워 있었다.
위성공(衛成公)은 숙무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대성 통곡하였다.
"숙무여, 숙무여. 네가 나 때문에 죽었구나. 이 일을 어쩔꼬. 이 일을 어쩔꼬."
위성공(衛成公)의 눈물이 숙무의 얼굴 위에 가서 떨어졌다.
그러자 죽은 숙무의 부릅뜬 두 눈에서 광채가 일더니, 어느 순간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것을 보고 있던 영유(寧兪)가 위성공에게 아뢰었다.
"천견(歂犬)을 잡아죽이지 않으면 숙무의 영혼을 어찌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위성공(衛成公)은 군사들에게 천견을 잡아오라고 명했다.
천견(歂犬)은 공궁 한구석에 숨어 사세를 살피다가 붙들려 위성공 앞에 끌려왔다.
그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위성공을 향해 외쳤다.
"신이 숙무(叔武)를 죽인 것은 다 주공을 위해서입니다."
위성공(衛成公)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놈, 너는 지금까지 내 동생을 모략하고, 또 네 마음대로 내 동생을 죽였다.
그것도 부족하여 이제는 네 죄를 나에게까지 뒤집어 씌우려고 하느냐! 여봐라, 저 놈을 당장 목 베어 죽이고, 숙무(叔武)를 임금의 예로써 장사 지내어라."
천견(歂犬)은 시장에 끌려나가 참수를 당했다.
처음에 백성들은 숙무(叔武)가 피살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위성공에 대한 원망이 컸으나, 천견의 참수 현장을 목격하고, 숙무를 군주의 예로써 장사 지내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