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베로니카의 수건 -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
예수 그리스도 초상은 ‘사람의 손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전설과 그로부터 전래된 ‘베로니카의 수건’이라는 주제에서 시작된다.
이 전설은 사람의 손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직접 자신의 얼굴 모습을 천위에 남긴 기적을 일컫는다.
베로니카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는 중세부터 바로크시기에 이르기까지 지속해서 그려지던 미술의 중요한 주제였다.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발걸음을 옮기지만, 결국 십자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 한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자신의 머릿수건을 풀어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닦아 주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나 예수님의 얼굴이 여인의 수건에 새겨졌다. 성녀 베로니카가 실존 인물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름을 풀어보면 ‘참 얼굴’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라틴말 ‘베로니카’는 베라(vera, 참, 진실한)와 이콘(icon, 형상)의 합성어다. 따라서 베로니카의 수건은 ‘참(진실한) 얼굴을 담은 천’이라 말할 수 있다. ‘베로니카의 수건’이라는 도상(圖像)은 중세 말기에 전성기를 맞았지만, 후대에는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 스페인의 엘 그레코나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 같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다만 이들의 작품에서는 중세시대 인간의 애틋하고 친밀한 감정보다는 절제된 감정이 드러난다.
스페인 바로크 최고의 화가라고 할 수 있는 이를 손꼽으라면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 1598-1664)을 거명할 수 있다.
주로 세비야에서 활약했던 그는 수도원이나 성당에서 의뢰한 작품들을 주로 제작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사도나 성인·성녀, 수도자들의 기적이나,환시·황홀경에 빠진 몽환적 비전이 사실주의적으로 묘사돼 있으며, 이를 통해 작품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특히 수르바란은 이탈리아 바로크 회화의 거장인 카라바조의 사실주의와 테네브리즘(Tenebrism, 명암대조법)에 스페인의 종교적 감수성을 결합해 최고의 영성 미술을 발전시켰다.
그래선지 수르바란의 작품에는 화가 자신의 강렬한 신앙심마저 느껴진다. 그가 1635-40년경에 그린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은 짙은 검은색 벽에 흰색 천이 네 모서리로 고정돼 있다.
작품에는 이 주제를 말하는 베로니카도 없고, 수건을 들고 있는 천사들도 배제된 채 고통스러운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련히 남아 있다.
전형적인 바로크 회화의 ‘눈속임 기법’(trompe-l’oeil, 트롱프뢰유), 즉 실물로 착각할 정도로 철저한 사실적 묘사를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수난을 더욱 실감나게 느끼게 하는 기법이다.
수건에 새겨진 그리스도의 얼굴은 흐릿한 황색의 모노톤으로 핏기라고는 전혀 없이 창백하다. 뚜렷하지 않아서 더 애처롭고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은 고통스럽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성화(聖畵)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건하게 살고 그들이 보는 그림들을 본받아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자극한다.
이처럼 이 작품 속 그리스도의 얼굴은 전혀 온기가 없고 푸른 기가 돌 만큼 창백하고 해쓱하기에 더욱 가슴에 묻히고 오래 기억하고픈 마음이 든다.
https://m.blog.naver.com/sonyh252/221900783303
<밀양 명례성지에서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