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마트 MD(상품기획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 직업의 희노애락에 대해 말할 기회가 있었다. MD는 자신이 소싱해온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릴 때나, 품질이 좋다는 고객의 소리가 들어올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그리곤 그는 신선식품 등을 구매해 다 먹은 뒤 마트에 가져와 "환불해달라"고 하는 블랙컨슈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지간한 일들에는 도가 터서 화도 나지 않는다"며 웃어보였다.
그러던 중 내 귀를 잡아끈 건 바로 이 말이었다. "고객님들이 저한테 하시는 말 중 제일 무서운 말이 뭔 줄 아세요?"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어 "그건 '맛있는 수박 좀 골라주세요'란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진안군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에서 수박 출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진안수박은 비파괴 당도 측정기를 갖춘 선별장에서 당도 11브릭스(Brix) 이상의 수박만을 선별한다. , 뉴시스 2021.07.08.
'대체 수박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는 "수박 깨진 걸 얼마나 많이 치워봤던지… 구매해간 수박이 달지 않다며 화가 난 고객이 매장에 오셔서 수박을 던져 박살내는 일은 다반사였어요. 매장 구석구석 수박 잔해가 튀는데 제대로 못 치우면 썩어버리니… 곳곳을 닦느라 고생 참 많이 했죠"라고 했다.
MD는 "그래서 정말 이러면 안 되지만, 수박 골라 달라는 말을 들으면 최대한 못 들은 척하거나 자리를 피해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맛있는 수박을 고르는 법으로 많은 팁이 전해지는데, 보통 겉면이 매끄럽고 두드릴 때 맑은 소리가 나는 것, 수박 배꼽이 작은 것을 선택하라는 등의 이야기가 있죠"라면서도 "그런데 수박 맛은 이런 걸로 정말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MD가 일하고 있는 대형마트를 비롯해 국내 모든 대형마트와 백화점, 식품 전문 e커머스들은 수박에 대해 '당도 검사'를 실시한다. 검사 후에 일정 정도의 당도를 가졌다고 결과가 나온 수박만 판매한다. 최근 유통가는 당도가 11브릭스(Brix) 이상인 수박만 상품화시켜 판매한다. 과거엔 그 이하 당도의 수박들도 취급했지만, 최근 고당도 과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보통 수박은 산지, 농산물산지유통센터 등에서 3차례에 걸친 '비파괴 당도 검사'를 거친 뒤 각 마트에 입고돼 자체 '파괴 당도 검사' 1차례를 또 다시 거친다.
수박들이 '비파괴 당도 검사'를 받고 있다.
'비파괴 당도 검사'는 레이저로 빛을 투과시켜 과일 당도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레이저 당도 측정기가 수박 전량에 껍질을 쏴서 기준치보다 당도가 낮은 수박은 선별돼 빠지고, 기준치를 충족한 수박은 상품으로 공급된다. 다만 수박 껍질이 워낙 두꺼운 데다가, 수박은 크기가 커 이쪽 육질과 저쪽 육질 간 맛 차이가 나타날 수 있기에 오차를 줄이기 위해 세 차례에 거쳐 이 같은 검사를 진행한다.
이 과정을 거치고도 달지 않은 수박이 나올 우려에 대비해 각 유통사는 각 점포나 물류센터에서 최종적으로 '파괴 당도 검사'를 진행한다. 표본(샘플) 수박을 골라 자른 뒤 과즙을 내어 당도를 측정하는 것으로, 검사를 위해 가른 수박은 판매할 수 없다. 보통 마트 점포 한 곳에서 하루 1000개의 수박이 판매되는데, 1000개가 입고되면 이중 20~30개를 대상으로 '파괴 당도 검사'를 실시한다.
'파괴 당도 검사'는 수박을 골라 자른 뒤 과즙을 내 당도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해당 MD는 "아직도 수박의 당도에 대해선 '100% 확신한다'는 말을 쓰긴 어렵다"면서도 "그래도 수년 사이 기술이 많이 좋아진 데다가, 전량에 대해 수차례의 검사를 거쳐서 예전에 비해선 수박 당도 문제로 씨름하는 일이 많이 적어졌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는 수 차례에 걸친 검사에도 혹 맛없는 수박이 판매될 가능성에 대비해 '맛 없으면 100% 환불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수년 전에 비해 수박 당도 관련 고객 불만이 현저히 줄었다"며 "수 차례 검사를 통해 판매하는 대형마트, 백화점, 식품 전문 e커머스 등에선 수박을 믿고 사먹어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