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성수필에 나타난 정체성 연구
Ⅱ. 80년대 여성 언술의 특성
1. 내적 분열성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페미니즘 언어이론에서 지금까지 논의된 분야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성차’의 문제로서, 여성과 남성의 언어 사용 방식이 과연 서로 다른가, 다르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다룬다. 둘째는 언어 속의 ‘성차별’의 문제로서, 그로 인한 영향이나 그것을 없애는 방법을 연구한다. 셋째는 ‘소외’의 문제로서 기존의 언어로는 여성의 경험을 표현할 수 없다는 억압성을 다룬다. 이렇게 볼 때 페미니즘 언어이론이 다루고 있는 세 가지 분야는 성차․성차별․소외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과 다른 경험, 쌓여 있는 분노와 불만을 가진 여성에게 갑갑증과 불편을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사용하고 규정하는 주체 자체가 되어 만들고 사용하는 언어와 언어행위의 실현이 필요할 것이다.
남자 입장에서 여성의 ‘여성답게’는 자신의 욕구를 성취하기에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여자는 속박감과 기만의식을 본능적으로 느끼나 숨긴 채 행동하는 자신을 낯설게 보게 된다. 언술 특성에 대한 연구는 연구자의 성의 한계나 역사적 상황으로 볼 때 남성 독점적이었다. 성차별적 사회제도의 반영으로 다른 비전이 제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문제제기나 극복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그 언어로 규정한 ‘여자의 도리’나 ‘여성답게’의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피지배자로 길들이는 장치임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말이 누구의 입장에서 얘기되고 있는지도 알아채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런 의식을 가진 여성작가의 작품에서 전략적 글쓰기가 행해지는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여성들의 언어가 소외되는 상황은 곧 여성의 언어가 막혀 있어서 밖으로 표출되지 못하고 감금되어 있는 상황을 나타낸다. 이러한 현상은 여성수필가의 수필에서 뿐만 아니라 여성시인, 여성운동가의 수필에서도 나타난다. 언어로부터의 소외는 언어가 전적으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해 이미 선택되어 있으며, 자신을 적대시하는 언어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발생한다. 이러한 소외 속에서 여성들에게 ‘침묵’과 ‘망설임’의 언어만이 주어지게 되고, 그 언어들은 묵종․의존․힘없음을 상징하게 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본장에서는 언어로부터의 소외로 인해서 야기되는 ‘내적 분열성’의 특성을 침묵의 단절성과 독백의 유보성으로 나눠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