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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무르익은 영천
만추에 만난 보석 같은 여행지라고나 할까. 경북 영천에 대한 느낌이이다. 특히 팔공산자락의 '은해사 ~백흥암~중암암'을 찾는 길은 최고의 산사 트레킹 코스로 꼽을 법하다. 오색단풍이 낙엽 되어 구르는 가을의 정취 속에 '대찰-비구니 선원-벼랑 위 암자'를 찾는 여정은 큰 '감흥'으로 다가온다.
특히 기암 괴봉에 올라서자 펼쳐진 '불타는 듯한 팔공산 자락'은 마음속에 큰 울림이 되어 긴 여운으로 남는다. 국내 대표격의 보현산천문대가 있어 '별의 도시'로도 불리는 영천은 최근 '말(馬)의 고장'으로 거듭나며 실제 '별 볼일 많은 고장'이 되고 있다. 가을이 무르익은 은해사 진입 숲길.
오솔길을 굽이돌아 세월의 흔적 묻어나는 단청 없는 선방 '백흥암'과 벼랑 위에 걸려 있는 암자 '중암암(中巖庵)'은 오가는 숲길이며, 절집의 빼어난 기품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은해사 앞 계곡 ▶ 대찰에서 마음의 짐을 덜어 놓는다 '은해사'
사찰 어귀에 세워진 돌비석 '대소인하마(大小人下馬)'가 눈에 띈다. 큰 절에 가면 일주문에 들어가기 전 만나는 것으로 '누구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가을 그 말 뜻을 찬찬히 살피자니 '짊어지고 다니는 번뇌와 망상, 편견조차도 함께 내려놓고 들어 오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은해사 부도군락
이즈음 은해사에서 가장 멋진 공간은 담장 밖 개울가 벤치다. 여름이면 폭포수도 쏟아지는 이곳에는 커다란 참나무가 반쯤 눕듯이 계곡을 향해 멋진 단풍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 아래로 벤치가 있어 그야말로 그림엽서 속에서나 나올 법한 사색의 공간이 펼쳐진다. 은해사 앞마당. 은해사는 거조암과 백흥암, 중암암 등 암자가 8곳에, 말사도 50여 개소에 이르는 거찰이다. 하지만 대웅전과 몇몇 건물을 빼고는 근자의 것이 많다. 대웅전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커다란 향나무는 세 그루가 한 데 엉겨 마치 한 그루처럼 보이는 거목이다. 높이가 10m,가슴둘레가 1.5m에 이른다.
단청이 없어 더 고색창연한 비구니 선원, 영천 '백흥암' 비구니 선원 팔공산백흥암. 고운 단풍이 압권인 팔공산은 소박한 듯 운치 있는 암자를 곳곳에 품고 있어 더 매력 있다. 암자란 무릇 종교는 달라도 산길에서 만나면 기웃거리고, 쉬어 가고 싶은 느낌을 갖게 하는 그런 산중의 쉼터와도 같은 곳이다. 은해사의 암자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백흥암이다. 신라 경문왕 9년(869년) 혜철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은해사 북서쪽으로 숲길을 따라 2.5km 쯤 올라간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백흥암 가는 길에서 만난 감국밭. 이즈음 한창 수확기를 맞아 감국을 따는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국화향훈이 사라질 무렵 제법 널찍한 산중 호수가 나타난다. 농업용수를 대는 '신일지'이다. 주변에 정자가 놓여 있어 팔공산의 가을색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물빛을 감상하며 다리 쉼을 할 수 있다.
신일지를 옆에 두고 갈림길이 나선다. 오른쪽은 운부암, 왼쪽이 백흥암 가는 길이다. 길 사이 야트막한 산봉우리가 태실봉. 조선 인종 임금의 태를 묻어둔 곳이다. 백흥암은 태실을 지키던 수호사찰의 역할도 했다. 백흥암 가는 숲길 백흥암 가는 길은 편도로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길이 넉넉하다. 그렇다고 멋대가리 없는 그런 도로가 아니다. 소나무,굴참나무, 단풍나무,고로쇠나무,자작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단풍과 이들이 털어내는 낙엽이 굽이굽이 길섶에 쌓여 운치 있는 산사트레킹코스를 이룬다. 은해사에서 쉬엄 쉬업 1시간 남짓 걸린다. 백흥암은 단청을 하지 않아 얼핏 서원과도 같다. 백흥암이 유독 단아하고도 옛스러운 기품을 유지할 수 있기에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 공간이고 보니 정갈한 느낌이 더하다. 철저히 묵언(默言)을 지키는 선원은 50여명의 스님이 기거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풍경소리와 독경소리만이 은은히 울려 퍼질 뿐 고요함 그 자체다. 백흥암 극락전 그중 보물 제790호로 지정된 극락전 주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로 1546년 절을 중창할 때의 것이다. 극락전에는 보물 제486호 수미단이 값진 보배다. 아미타삼존불을 받치고 있는 수미단은 각 면마다 봉황과 공작-학-코끼리-용-사슴 등이 조각돼 있는 걸작품이다. 또 극락전 앞 보화루 등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걸려 있다. 담장 너머 채마밭에는 스님들이 울력으로 가꿔 놓은 김장배추가 토실하게 자라고 있다. 올 겨울 김장은 음력 시월 열사흩날(11월 18일)경에 할 요량이다. 내년 여름, 초가을까지 먹기 위해 배추만도 1000포기 내외를 담근다.
산봉우리 바위위에 올라앉은 영천 '중암암' 팔공산중암암 늦가을 불타는 팔공산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중암암(中巖庵)이다. 말 그대로 바위위에 세워진 암자. 은해사의 여러 암자 중 자연미가 물씬 풍기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해발 고도 780m의 높은 산정에 위치하고 있지만 가는 길만큼은 수월하다. 백흥암에서 산길을 따라 2.3km, 한 시간 정도를 오르면 된다. 중암암 극락문 돌구멍을 지나면 곧 법당 앞마당이다. 마당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만도 못하지만 벼랑위에서 바라본 풍광은 예사롭지가 않다.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암자 마루는 더 할 수 없이 여유로운 공간이다. 한 소끔씩 불어오는 산바람에 울리는 풍경소리가 산새소리와 어우러져 고요한 산중의 적막을 가를 뿐, 산사의 고적미를 느끼기에 최고다. 암자주변은 온통 큰 바위 투성이다. 입구만 돌구멍이 아니라 곳곳에 돌구멍과 돌틈이 있다. 심지어 해우소 조차도 돌구멍위에 있다. 중암암 해우소 중앙암 법당 뒤 삼층석탑과 석등도 운치 있는데, 이곳을 지나 바위 길을 돌아서면 돌틈에 서 있는 낙락장송 '만년송'이 서 있다. 이 곳이 불타는 팔공산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 포인트. 앞으로는 삼인암 등 명물 바위가 있다.
만추 영천 나들이 '여행메모'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영천IC~영천시내~청통면은해사/ 영천IC~도동 교차로~ 임고서원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먹을거리 영천은 경북에서 제 2의 한우산지이다. 특히 포도 주산지로 포도를 먹인 한우가 유명하다.
영천 포도한우 영천시 청통면 호당리 청호숯불갈비 등에서 포도한우를 맛볼 수 있다. 갈비살, 뭉티기 각 1만 8000원(130g 기준), 소금구이 1만3000원, 소고기찌개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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