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비 오는 날엔 파전에 막걸리라는데
이른 아침 어린이대공원에 모여 탐조를 한다
보일 듯 말 듯 볼 듯 말 듯
비는 멈추지 않아 팔각정 카페에서 남은 시간 담소한다
집으로 갈까 하다 핫한 성수동 카페를 떠올린다
기능 잃은 고어텍스 등산복과 등산화 믿고 작은 우산 쓰고 걷고 또 걷는다
대학생 시절 노동운동 연습한다고 성수동 공장에 잠깐 다닌 적 있다
흔적을 찾는데 건물도 업종도 바뀐 듯 가물가물한데 좀더 걷고는 확신한다
아침 일찍 단체 합숙방을 나와 식품첨가물 현장으로 가던 길
서울탁주 공장이 있었다
그곳에 다니고 싶었다
그늘진 담벼락에 앉아 바가지로 막걸리를 마시던 그분들이 부러웠다
비 오는 날엔 파전에 막걸리라는데
12시 이전 홀로 갈 객기가 없어
순대국이라도 먹을까 하다
카페 가서 커피라도 마실까 하다
순대국은 우리 동네가 최고
커피는 이미 몸에 들어가 있고
비는 깊숙이 젖어들고
우산은 이따금 바람으로 뒤집히고
발길은 서둘러 성수역으로 뚜벅뚜벅
노동운동 근처도 가지 않았는데
왜 성수동 변화를 보고 싶어 했을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얄팍하게 공장 다닌 기억 훈장처럼 달고 싶은 걸까
남을 위해 살아보겠다는 투지를 되새겨 보고 싶어서일까
비루한 청춘을 지우려고 했던 걸까
비를 털고 전철 타고 구파발역 지나니
비는 눈으로 바뀌어 흩뿌려댄다
그래 성수동 그 거리에서 꼭 기억해야 할 건 서울탁주 장수막걸리
그게 청춘에서 장년을 잇는 불세출의 명작이리라
그래 우리 동네 최고 순대국집에서 막걸리나 마시자
그렇게 지난날을 날리고 무던히 살자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 같은 소리 그만하고
그냥 그렇게
살자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