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笑翁公의 義氣(소옹공의 정의로운 기개)
公께서 甲子之變에 應道內儒生檄文하여 募義兵穀하고, 丙子에 與安牛山邦俊으로 倡義勤王하다가 聞講和하고 痛哭而歸하여 因廢擧業하고 絶意當世하여 隱居寒川精舍하니 忠孝文章이 爲 南冠冕하다. 道伯이 將薦에 公이 辭曰, 無實績而剡薦 吾誰欺 欺天乎하며 竟不許하고 我是崇禎完人이라
¤ 풀이 : 공께서 갑자지변(1624이괄의 난) 전라도 내의 유생 격문에 응하여 의병 모집을 지원했고 1636년에 *우산 안방준과 함께 의병신분으로 임금을 지키다가 교전국 간의 전쟁을 종전코자 화해하니, 통곡하며 귀향했다. 이로 인해 과거 응시를 접고,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며 한천정사하니, 충과 효 문장이 마치 남쪽 벼슬아치이었다.
관찰사의 장군 천거에 공께서 사양하며 말씀하시길 '실적도 없는데 관직에 천거되면, 내가 누굴 속이겠는가. 하늘을 속일려고,!' 하며 결국 불허 하고 나는 *숭정을 따르는 완전한 사람이라.
주) 安邦俊 : 죽산(竹山)안씨, 안방준(安邦俊, 1573.11.20~1654.11.13), 호 우산(牛山)
주) 崇禎完人 : 명나라의 완전한 사람
주) 笑翁 : 魏廷灝(위정호, 22세, 운암공 2남)
◇ 無名堂公 號 由來(무명당公 호 유래)
美風宇有文章하며 大小鄕解에 連中 十六하고 晚捷殿試策할새 誤落謹對字하여 旋遭拔去하니 豈非命耶아 遂廢擧하고 構蓮堂하여 號無名堂하니 時稱湖海高士하다.
¤ 풀이 : 집에서는 아름다운 풍속으로 문장이 있었으며, 마을에는 대소를 다 풀이했다. 열 여섯 번을 잇달아서 늦게까지 과거시험을 공부할새, 글자를 잘못 써서 삼가 글자를 대조하여 되돌리고는 뽑아버리니 어찌 운명이 아니냐? 마침내 공부를 그만 두고 構蓮堂(구연당, 촌집)하여 호를 무명당이라 하니 당시 사람들이 칭하기를 호남 바닷가 고결한 선비라 하다.
주)無名堂 : 魏廷鳳(위정봉, 22세, 운암공 3男)
※운암공 자제 : 남자 4명, 위정룡(魏廷龍), 위정호(魏廷灝), 위정봉(魏廷鳳), 위정난
자료/ 운암종중 제공, 풀이/ 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