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11장1절-13절 “권력에 취한 다윗”
(요약) 오늘 본문은 신복들이 전투를 치르는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던 다윗은 저녁에 왕궁 옥상에 거닐다가 밧세바를 보게 됩니다. 그는 밧세바를 불러들여 동침합니다. 밧세바가 잉태하자 다윗은 남편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러 그녀와 동침하도록 유도하나 그의 충정으로 번번이 실패한다는 내용입니다.
<11: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는 봄이 되어서 전쟁을 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다. 이 전쟁은 10:14에 언급된 전쟁의 연장으로 요압은 군대를 이끌고 랍바로 도망한 암몬을 치기 위해 출전하였고 암몬 자손을 친 다음에 랍바를 포위하였다.
<11: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 부하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사이에 다윗은 한가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낮잠을 자고 저녁에 일어나 시원해진 왕궁 지붕을 한가롭게 산책하였다. 그러다 한 여인이 옥상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11: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 밧세바의 아버지 엘리암과 밧세바의 남편 헷 사람 우리아는 모두 다윗의 37명의 용사 중에 들어 있는 다윗 왕국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다(삼하 23:34, 39). 우리아는 ‘여호와는 빛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으로 추측해본 건데 그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났고 여호와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었다.
<11: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 다윗은 밧세바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부하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도 사자를 보내어 그녀를 데려와 동침하였다. 그런데 이때는 밧세바가 부정함에서 벗어나 정결 의식을 막 치른 때였기에 임신이 가능한 상태였다. 여기서 이것을 언급한 것은 밧세바가 임신한 아이가 우리아의 아기가 아니라 다윗의 아기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이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간다.
<11: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 시간이 흘러 밧세바는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고,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렸다. 간음의 형벌은 남자와 여자 모두 처형하는 것이다(레 20:10). 밧세바는 다윗이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도록 소식을 알렸을 것이다.
<11:6>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 밧세바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우리아를 자신에게 보내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요압은 우리아를 다윗에게 보낸다.
<11: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 다윗은 우리아가 오자 요압의 안부와 군사들의 안부와 전쟁의 상황을 물었다. 이것은 마치 전쟁의 상황을 알기 위해 우리아를 부른 것처럼 보이기 위한 행동이다.
<11: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 다윗은 우리아에게 집으로 가서 발을 씻으라고 한다. 여기서 발을 씻으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여행자가 집에 왔을 때 발을 씻겨줌으로써 환영의 표시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발’이란 단어는 남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다윗은 일부러 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아내와 관계를 가지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즉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여 자신의 아기를 우리아의 아기인 것처럼 속이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아의 수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많은 하사품을 보내어 자신이 매우 좋은 왕인 것처럼 행동한다.
<11: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 우리아는 다윗의 생각과 다르게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왕의 모든 부하들과 같이 잠을 잤다. 여기서 그의 주인의 부하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아는 다윗을 자신이 충실하게 섬겨야 할 주인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우리아의 충직한 모습은 자신에게 충직한 부하의 아내를 탐내어 간통하고 그 결과를 뒤집어 씌우려는 다윗의 비열한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렇게 우리아가 다윗의 계획과 다르게 행동함으로 다윗의 계획은 실패하게 된다.
<11: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다윗은 집으로 가지 않은 우리아를 불러 왜 먼 길에서 돌아왔는데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이런 우리아의 행동이 매우 마음이 안 들었지만 우리아를 걱정하는 척하며 집으로 가지 않은 이유를 물은 것이다.
<11: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자신의 상사인 요압과 왕의 군대가 전쟁터에 있는데 어떻게 자신만 편안하게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아내와 잘 수 있냐고 말하며 자신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왕의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 우리아가 궤와 전쟁터와 아내와의 잠자리를 언급한 것은 전쟁을 수행할 때 진영에서 정결해야 하는 규범과 연결된다. 언약궤가 함께 하는 진영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거룩한 곳이기에 여자와 자는 것이 금지된다. 남성이 설정하면 하루 동안 부정한 상태가 되어 진의 거룩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레 15:16~18). 우리아는 혹시라도 자신이 부정하게 되어 전쟁터에 있는 다윗 진영의 거룩성이 훼손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정결법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11: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 다윗은 우리아가 자신에게 대한 충성심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자 다시 한번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어 밧세바와 자게 하려고 시도한다. 다윗은 우리아에게 하루 더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하며 내일은 보내주겠다고 한다. 본문에서 우리아가 그날과 그다음 날 예루살렘에 머물렀다는 것은 다윗의 권고로 이틀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렀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왕이 충성스러운 신하를 배려하여 하루 더 쉬게 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11: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 다윗의 진짜 속셈은 우리아를 불러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며 일부러 우리아를 취하게 만든다. 우리아가 취하면 술김에 집으로 가서 아내와 동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아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집으로 가지 않고 어제처럼 부하들과 함께 잤다. 이런 충직한 충성심의 대가는 죽음이었다. 하나님과 왕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욕망을 참고 성문 앞에서 부하들과 밤을 보낸 우리아의 모습은 자기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을 저버리고 부하에 대한 신의를 버린 다윗과 대조된다.
[결단] 유혹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적과의 싸움도 어렵지만, 자신과의 싸움도 못지않게 어렸습니다. 혹 넘어졌다면 숨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회개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늘 신실하게 살아가려고 했던 다윗, 순간의 욕망에 눈이 멀어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순간입니다. 정말 깨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죄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8은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은 다윗은 그 죄를 덮기 위해 계책을 모색하고, 죄에 죄를 더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야고보서 1:14, 15에서는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결국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나아가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지금 내가 믿음이 좋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순간의 방심이 죄에 빠지게 합니다. 늘 깨어 있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욕심이 늘 성령의 지배 아래 있게 해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 안에서 죄에게 지지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멘! 202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