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132/200414]나는 반자연인半自然人인가?
언젠가 썼던, 내가 ‘속세俗世 자연인自然人’이라 부르는 친구와 함께, 어제는 하루종일 산을 오르락내리락 더텼다. 만보계에 17000여 걸음이 기록된 것으로 봐 혈당 수치도 내려갔으리라. ‘봄산’이 별볼 일 있어서가 아니고, 이제 막 피어나는 두릅과 엄나무, 산취와 고사리, 머위잎을 뜯기 위해서였다. 저수지에 던져놓은 민물새우망도 걷어야 한다. 이 친구는 태생胎生이 산골이어서 그런지, 산에 관해선 모르는 것이 없다. 나무, 약초, 야생화는 물론이고 산짐승들의 생태까지 환하다. 놀랄 놀자가 따로 없다.
따라다니기에도 벅차지만 정말 재밌는 산속의 헤맴. 지난해에는 산삼도 한 뿌리를 캤는데, 근처에 또 한 뿌리가 있게 마련이라며 그 자리를 안내해준다. 자기가 없을 때 내년에 한번 와보라며. 땅 속을 들여다보듯 어떤 칡이 좋고 크기가 어떤지도 알고 있고, 요령도 있고 팔뚝만한 칡도 아주 쉽게 캔다. 걸을 때마다 주변에 있는 산더덕, 야생 엉겅퀴, 돌배나무, 층층나무, 정금나무 등을 가리키며, 효용과 장아찌 담는 법 등을 알려준다. 진달래는 조금 힘을 줘 잡아당기면 뿌리째 쑤욱 캐지는 것도 처음 알았다. 덕분에 우리집 대문앞 꽃밭을 진달래로 울타리를 쳤다. 내년이 기대된다. 참 대단한 친구다. 이 친구는 ‘한 세상’을 이런 것들을 온몸으로 익히며 살아온 모양이다. 말하자면 나의 ‘자연공부’의 스승인 셈이다.
동갑이지만, 가방끈은 국졸國卒. 그것조차 친구들보다 3년이나 늦게 다녔다. 6년 동안 벤토(도시락) 한번 싸갖고 간 적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러니 본능적으로 생존력生存力을 갖췄을 것이다. ‘조선낫’ 하나면 갖고 산속에 가면 무소불위無所不爲, 사람 다리만한 나무도 한두 번 낫질로 척척 넘어지는 게 신기했다. 동식물에 대한 생리生理를 너무 잘 아니까, 무인도에 홀로 있어도 절대로 굶어죽을 일 없을,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 ‘속세 자연인’ 친구가 있어 어제도 내내 행복했다. 이 친구가 불쑥 “인자, 우천(나의 호)도 반자연인半自然人은 된 셈”이라고 말했다. 흐흐.
저수지에서 막 건진 새우도 즉석에서 먹으며 달달하다고 한다. 더덕도 캐자마자 잎까지 다 훑어 먹는다. 다래나무 줄기를 낫으로 자르니 고로쇠나무마냥 물이 나온다. 목이 마르다고 무슨 문제가 있으랴. 배 고프면 손가락만한 칡을 금방 캐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아아, 산 정상 근처에서 멧돼지가 파 만들어놓았다는 ‘짐승 목욕탕’도 보았다. 제 몸뚱아리가 진드기 등으로 가려우니 나무에 득득 긁다가도 안되니까 작은 웅덩이를 파 그속에 들어앉았을 멧돼지의 지능을 상상해 보라. 놀라움의 연속이다.
오후에는 가족묘소 아래 밭자락에 산더덕 20여 뿌리와 엉겅퀴, 산취를 캐다 옮겨 심었다. 틀림없이(100%) 잘 자란다니 자연스럽게 씨가 퍼지면 더덕밭, 엉겅퀴밭, 산취밭이 될 것이다. 집뒤 밭에 심을 수도 있지만, 그럼 ‘산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는 것. 다 해본 후에 한 말이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만큼 땅의 기운이 막강한 것이리라. 그 옆에는 겨자씨만한 ‘눈개승마’ 씨앗을 두 봉지 사다가 뿌렸다. 이 나물은 무쳐 먹으면 쇠고기 맛이 난다하여 ‘고기나물’, 3가지 맛이 난다하여 ‘삼나물’이라고 한다, 김칫국 먼저 마신다고 벌써부터 눈개승마에 밥 비벼 먹을 생각을 한다.
다음으론, 산취 이야기다. 데치지 않고 그냥 씻어 곧바로 삼겹살을 싸먹어 보시라. 입안에 진동하는 향취香臭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살짝 데쳐 먹으면 또다른 맛, 이른바 ‘별미別味’는 이를 말함일 터. 두릅순과 그보다 ‘한 끗발’ 위라는 엄나무순은 일러 무삼하리오? 봄산은 이런 나물들로 대풍성하다. 대처에서 꼭두새벽부터 달려와 광부들처럼 헤드라이트를 둘러쓰고 산속을 헤매는 극성도 이래서 부리는 것이리라. 이렇게 자연의 선물은 현란하고 오묘한 것이거늘. 솔직히 아내와 형제자매들과 친구들에게는 자랑하기도 미안할 정도로 날마다 즐거워하는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엊그제 서울에서 만난 서너 명이 나를 보더니 ‘어찌 그리 얼굴이 맑고 좋아졌냐? 건강체’라며 놀란다. 작년만해도 모두 얼굴이 못됐다며 걱정을 했는데, 좋아졌더니 듣기에도 참 좋다. 아니, 내가 봐도 건강해진 것같다. 얼마 전 지리산 바래봉이나 구룡계곡 등 을 오르는데 숨이 ‘1도(하나도)’ 가프지 않고 가뿐하고 너끈한 것을 보면 말이다. 몇 년 전 판교에서 살 때는 평지 4km를 걷는데도 3번이나 쉬어야 했는데. 이제 10여년간 상시 복용하던 고혈압과 당뇨약을 끊어도 될까? ‘결론은 버킹검’이란 시쳇말처럼, 결국은 또 시골과 자연예찬이 되고 말았다. 혹시 누가 이 졸문을 읽고 귀촌귀농을 결심할 사람이 있을까?
오후 5시, 인근 면소재지 복지관에서 퇴근한 아버지와 막걸리를 한잔 하며 말했다. “아버지, 하루가 너무 짧고,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제 인생에서 지금이 최고예요” 아버지 “그러믄 좋지. 밥이 땡기고 맛있을 때 많이 먹어라. 사람 좋아하니까 농사는 짓지 말고 그냥저냥 재밌게 살아라” “긍개요. 10년 전쯤에 내려왔어야 허는디 너무 늦게 왔어요” ‘미스터트롯’ 영탁의 ‘탁걸리 한잔’으로 초저녁부터 잠이 달디 달다. 숙면할 것같은 예감이다.
첫댓글 Carpe diem!
오늘이 즐거우면 인생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