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살던 동네의 재개발로 인해 예절교육관 밑으로 이사했다. 이전 동네에 추억도 많고 살기도 좋았던 터라 아쉬운 한편, 익숙한 동네로 옮겨와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이전에 살던 집과 다른 점이 많다. 살면서 느끼는 큰 차이점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방문과 화장실 문이 모두 정상적으로 열리고 닫힌다는 점, 물이 잘 나온다는 점, 온수가 잘 나온다는 점이다.
이전 집은 화장실 문과 안방 문이 닫히질 않아 여러 부분에서 애로사항이 많았다. 친척이나 친구들이 놀러올 때 화장실 문이 닫히지 않는 부분에 불편함을 표했고, 닫히지 않는 방문은 하필 부모님 방인데다 거실+부엌과 바로 연결돼 있어서 늦은 시간에 여기서 무언가를 하기가 껄끄러웠다, 방문이 잘 닫히는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야 문이 닫힌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깨닫는다.
물은 어떤 때는 손을 씻을 수 있을 만큼 나왔지만 어떤 때는 개미도 빠지기 어려울 만큼 쫄쫄 나왔다. 싱크대와 화장실 중 어느 한 곳을 사용하면 나머지 한 곳을 사용하기 어려웠고, 변기물을 내린 뒤에는 한참을 기다려야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난 이 부분에서 가장 큰 불편함을 느꼈다. 방문은 어떻게 조심조심 사용할 수 있고 온수가 안 나와도 찬물로 씻으면 그만이지만, 일을 보고 난 뒤 손을 씻기 어렵다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상상해보자. 기다리기 싫으면 볼일을 본 다음, 물을 내리기 전에 먼저 손을 씻어야 했다. 이 점을 비교하면 이사 온 집이 새삼 훌륭하게 느껴진다.
온수는 기다리면 나오긴 했다. 문제는 아주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인데, 가끔은 영영 나오지 않을 때가 있어 찬물로 씻어야 했다. 한겨울에 찬물 샤워를 하다보면 이 문제가 뼈시리게 느껴진다. 특히 학교에 있다가 주말에 집에 돌아오면 불편함은 배가 되었다. 온수만 누르면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진다니, 누군가에겐 당연한 사실이 내겐 신기했다.
이렇게 오목조목 따져보면 이전 집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런 곳에 3년 동안 어떻게 살았지?’ 생각할 때마다 불편한 집인데, 이상하게도 지난 3년간 잘 살았다. 물론 장점도 많다. 햇빛 잘 들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하다. 학원가 10분, 범계역 20분이라 어디 가기도 편했고 동네에 마트, 문구점, 미용실, 애견용품점, 치킨집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 있었다. 잘 가진 않았지만 호계도서관, 호계체육관, 만안문구 등도 근처에 있었다. 엄마가 ‘평생 이 집 살아도 좋겠다’고 하셨을 정도로 잘 살았다. 생활의 불편함은 생각보다 크게 느끼지 못했다.
어디든 실제로 살다보면 괜찮다. 이전 집을 생각하며 느끼는 점이다. 당신이 어느 날 갑자기 열악한 환경에 처했다면, 처음엔 불편하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한 달쯤 살다보면 어느새 불편함이 편해질 것이다. 뭐든지 익숙해지게 돼 있다. 난 필리핀 시골 마을에서 집 바깥에 있는 작두펌프로 손을 씻은 적이 있고, 독일 지인의 집에서 비싼 물 값에 쫓기며 손을 씻은 적이 있다. 이런 상황은 불편하다. 처음 갔을 땐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나 싶다. 그러나 어떤 열악한 곳에서든 일단 자리 잡고 살다보면 알게 될 거다. 물이 개미 기어가듯 나오는 곳에서도, 계곡물 흐르듯 나오는 곳에서도, 충분히 손을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보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란 말이 틀리지 않다고 느낀다. 어디에 살든 그 환경에 적응하며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이 품은 무한한 가능성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테라포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첩첩산중에 고립되어도 강을 찾아 손을 씻으며 살 수 있는 것, 여기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첫댓글 규성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점점점 고조되면서 감동이.
선생님도 너보다 더 어릴 때, '물 나온다' 누구라도 먼저 소리를 외치면, 우리 3형제는 물을 받을 수 있는 거면 모든 통을 부산하게 준비해서 윗집에 연결된 호수로 물을 받아 욕실이며 주방이며 릴레이로 전달해 담아둘 수 있는 곳이면 모두 물을 담아두었다. 그땐 그게 불편한지 모르고, 그냥 당연한 듯 사는 거지. 뭐든지 어려움은 그만큼 '힘'이 되는 것 같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적응해서 이겨내고 별 일 아닌 걸로 만들어버린다면 말이지.
오늘 권영이와 규성이 시작이 좋은 걸. 다만.
1. 규성이 글의 소재가 아주 좋다. 그리고 짧은 글 속에 담고 싶은 걸 충분히 다 잘 담은 듯. 다만. . . 더욱 맛깔스럽게 글이 표현되면 더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건 설명식, 서술식으로 글을 쓰는 느낌을 좀 덜어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주려는 식으로 쓰기보다, 그저 그 상황에 내가 몰입해서 그저 그 순간을 묘사하고 너의 감정과 생각을 최대한 표현해내는 것에만 몰입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글이 좀더 생생하게 팍팍 튀는 글이 될 수 있을 거야. 가령.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상상해보자.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점을 비교하면 이사 온 집이 새삼 훌륭하게 느껴진다. . .
요런 표현들이 딱딱한 설명글이 되게 만들어버린다.
개인의 경험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글이니 . . 설명식을 빼려고 노력해보자. 규성이 글이 전반적으로. . 아무래도 잘 설명하려는 친절한 마음에서 그렇게 될 거야. 하지만 글의 종류에 따라 설명식일지, 묘사식일지, 그렇게 글의 표현 방식을 선택할 수 있으니 그런 걸 잘 생각해 다음엔 써보자꾸나.
다만, 이건 나쁘지 않을 듯. 여섯 문장은 개인 경험에 바탕한 내용들이니 설명식 쫙 배고 더욱 생생한 묘사(상황이나 감정등) 위주로. 마지막 문단은 설명식이어도 괜찮다. 마지막 문단은 성격상 사람들에게 뭔가 교훈을 주는 효과와 의도가 있는 글이므로. 그렇게 6문단들과 나머지
마지막 문단의 성격이 싹 탈바꿈하는 것도 멋진 반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단문 쓰기 아주 좋다. 계속 화이팅!
아. 그리고.. . 제목. . .이것도 나쁘진 않긴 한데. . . 제목을 더욱 강렬한 걸로. . . 시간 될 때 고민해보렴.
마지막 문단 '충분히 손을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을.'부분 뒤부터는 단락을 구분해야 더 읽기 좋을 것 같다. 나머지는 봉실선생님이 다 이야기 해주신 듯. 앞으로 형 집 놀러갈 때 손을 오래 안 씻어도 되겠구만!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