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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 기사입력 2007-09-29 16:24 | |||||
레즈(리버풀)의 주장 스티븐 제라드(27)가 페르난도 토레스(23)를 두고 이언 러시를 떠올렸다면 더이상의 칭찬은 없다. 러시가 누구인가? 웨일즈 출신으로 1980년부터 1996년까지 한 시즌(1987-1988시즌 이탈리아 유벤투스)을 제외하고는 리버풀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통산 658경기서 346골을 뽑아낸 전설적인 킬러다. 리버풀 역사를 통틀어 1군 최다골(346골) FA컵 최다골(39골) 리그컵 최다골(48골) 등은 여전히 러시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리버풀에게 리그 우승 5차례, FA컵 챔피언 3차례, 리그컵 우승 5차례와 챔피언스리그 챔피언 등극을 한 차례 안겼으며 FA컵 결승전에서만 5골을 뽑아냈고 지긋지긋한 지역라이벌 에버턴전에만 25골의 비수를 꽂았으니 어찌 리버풀 팬들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필자는 몇년 전 한 스포츠용품업체의 홍보위원으로 러시가 방한했을 때 기자라는 신분 탓에 사인을 받아두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긴 다리로 성큼 성큼 내달려 볼을 잡아내 수비수들이 미처 대처하지 못하도록 몸을 제쳐놓은 후 골을 뿜어내는 품새를 볼라치면 러시와 토레스는 닮았다. 리버풀 출신의 제라드는 토레스의 모습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동경하며 따라 배우고 싶던 러시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마침내 찾은 9번의 적임자 다른 팀도 마찬가지겠지만 리버풀에게도 등번호 9번은 특별하다. 로저 헌트(492경기 286골) 이안 러시(658경기 346골) 로비 파울러(369경기 183골) 마이클 오언(297경기 158골) 등으로 이어져온 9번의 계보는 오언을 끝으로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스페인) 지브릴 시세(프랑스) 엘 하지 디우프(세네갈) 등을 연거푸 영입했지만 이들은 기대만큼 활약해주지 못했다. 맨유 아스널 첼시 등에게 패권을 내주며 고전한 이유 중 하나는 분명 9번의 공백이었다. 올시즌 리버풀은 사상 최고인 20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써가면서까지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를 영입한 데는 바로 이런 까닭이 숨어있다. 그리고 주저없이 토레스에게 9번을 안겼다. 리버풀의 9번을 받아든 그는 "예전 9번을 달았던 선수들을 생각해보면 리버풀이 내게 9번을 준 것이 나에 대한 대단한 믿음과 자신감을 나타내 주는 일이라 느껴진다"고 소감을 밝혔었다. 스페인의 '엘 니뇨 데 오로(골든 보이)'로 불리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사상 최연소 1군 선수이자 2년만에 주장 완장을 찬 그였지만 리버풀의 9번을 맡기기에는 여러 불안감들이 존재했다. 과연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서 그가 기록한 82골(214경기)의 득점은 엄청난 위력의 스트라이커라고 하기에는 경기 수에 비해 득점이 부족해보였다. 이런 이유로 시즌 개막 전만해도 토레스에 대한 평가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는 프리미어리그서 이미 3골을 뽑아냈고 지난 9월 26일 레딩 FC와의 칼링컵서는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 무려 6골을 뽑아낸 그의 위력은 9번의 공백을 메우기에 충분해 보인다. 물론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제라드가 비교대상으로 삼은 러시에 비해 토레스는 영국 땅에 연착륙한 것은 분명하다. 러시는 1980년 12월 13일 입스위치 타운전서 리버풀 데뷔전을 치렀지만 좀처럼 골이 터져나오지 않았다. 그가 첫 골을 뽑아낸 때는 9개월이 지난 1981년 9월 30일 유러피언컵 예선전이었다.
노심초사하던 밥 페이즐리 감독은 그에게 "골문 앞에서 보다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Be more selfish in front of goal)"고 주문하며 그를 기다려줬고 러시는 마수걸이 골을 뽑아낸 이후 봇물처럼 골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토레스가 무게 중심을 잡은 리버풀은 올시즌 6경기째 무패행진(3승3무)를 달리며 18년만의 정상을 노리고 있으며 지난 시즌 AC 밀란에게 무릎을 꿇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패권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리버풀이 두 대회 중 하나의 타이틀을 따내려면 토레스의 9번만으로는 부족하다. 리버풀의 9번의 계보는 9번과 찰떡 궁합을 펼쳐 보였던 콤비와 함께 이룬 역사이기 때문이다. 리버풀은 이들을 일컬어 은유적으로 '공범자(partner in crime)'라고 부른다. 키건-달글리시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의 공범자 탄생 1970년대 리버풀의 전성기를 일군 존 토샥(웨일즈)에게는 케빈 키건(잉글랜드)이라는 협력자가 있었다. 1971년부터 1977년까지 함께 활약했던 이들은 꺼꾸리(키건)와 장다리(토샥) 콤비였다. 전형적인 타깃맨인 토샥의 주변에는 173㎝ 단신의 키건이 항상 공간을 찾아다녔다. 토샥이 떨어뜨려준 헤딩볼은 키건의 발을 거쳐 골로 연결됐고 키건이 만들어낸 공간에서 토샥은 가공할만한 골들을 만들어냈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텔레파시 파트너(telepathic partnership)'라고 칭송했고 이들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L&L(Large & Little) 투톱 스타일의 전형으로 불리고 있다. 1980년대 러시의 곁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케니 달글리시라는 천부적인 골 사냥군이 존재했다. 그 역시 173cm 단신이었지만 빠른 스피드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결정력으로 러시와 함께 최고의 호흡을 펼쳤다. 달글리시에 이르러 마침내 공범자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당시 잉글랜드는 물론 유럽까지 제패하던 리버풀의 위업은 이들을 시샘하던 많은 클럽들에게는 범죄나 마찬가지였고 그 범죄의 최전선에 선 러시의 곁에 있던 달글리시는 공범자임에 분명했다. 만일 토레스가 비어있던 9번 방에 새로운 장식들과 가구들을 들여놓으려면 새로운 친구가 필요하다. 이전처럼 L&L 스타일의 파트너가 아닌 현대축구에 걸맞은 새로운 전형의 공범자 말이다. 디르크 카윗, 피터 크라우치, 안드리 보로닌 등의 공격수들도 토레스의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겠지만 라파엘 베니테스 리버풀 감독의 구사하는 로테이션 시스템대로라면 오히려 토레스의 파트너는 제라드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만약 나와 우리팀의 미드필더들이 좋은 패스를 연결해준다면 토레스는 자신이 훌륭한 마무리를 짓는 선수라는 것을 입증해보일 것이다"는 제라드의 말은 지당히 옳은 말이다. 승부의 기선을 제압하는 토레스의 골에다 후반 막판 경기 흐름을 반전시켜버리는 '제라드 매직'이 조화를 이룬다면 리버풀의 영광 재현을 슬며시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마치 레딩전서 토레스의 해트트릭이 완결되던 바로 그 공간패스가 제라드에게서 시작됐듯 말이다. |
레즈 우승가자!!
첫댓글 레즈 우승가자!!
강등부터 들렸다가죠
이건뭐ㅡㅡ.. 레즈 우승가야죠!ㅎ
캡틴을 위한 전술 화룡점정은 토레스
강등을 위한 전술 화룡점정은 토레스
모리가 9번이었냐 -_- 19번이지... 그리고 오웬은 10번 달았던 걸로 아는데...-ㅅ-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풋내기인 토레스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비야엔테스 싸우자
오웬 10번이었는데 내 동생이 레플사서 내가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