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뒤숭숭한 시국인데 얼마전에 한 체육인의 부음을 접했습니다.
배구 경기장에서 이름을 드높였던 ‘작은 새’ 조혜정씨가 아주 멀리 날아갔다는 소식이었지요.
작아서 더 그럴 수 있었을까. 폴짝 뛰어오르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습니다.
스파이크 넣고 내려앉을 때도 사뿐했었지요.
그니가 배구 선수로 한창 이름 떨칠 때 신문·방송에서 ‘날으는’이라고도 했는데.
‘나는’이라 하면, 공중에 떠서 움직임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일인칭 대명사 ‘나’에 조사 ‘는’이 붙은 말로 헷갈릴까 봐 그럴 법도 했을 겁니다.
동사나 형용사 어간의 마지막 음소(낱소리) ‘ㄹ’이 어떤 환경에서 탈락하는 현상을
예전엔 ‘ㄹ 불규칙 활용’이라 했습니다.
‘다물다/다무니 밀다/미세 살다/삽디다 이끌다/이끄오’처럼
‘ㄴ, ㅅ, ㅂ, 오’ 앞에서는 무조건 ㄹ이 사라지므로
요즘은 불규칙이 아니라 그냥 ‘ㄹ 탈락’이라 부릅니다.
‘날다’도 그래서 ‘나는’이 옳습니다.
‘낯설은, 잠들은, 녹슬은’이 아니라 ‘낯선, 잠든, 녹슨’ 하듯이 말입니다.
ㄹ이 탈락하는 조건이 아닐 때 ‘으’를 넣는 잘못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물물을 길으려고’ ‘시간이 줄으므로’ ‘귀가 멀을지 몰라’….
ㄹ 아닌 받침으로 끝난 어간에 ‘려고, 므로, ㄹ지’ 같은 어미가 붙으면 매개모음을 쓰지요
(닫으려고, 같으므로, 좋을지).
그러나 유독 ㄹ 받침만 예외여서 ‘길려고, 줄므로, 멀지’가 맞는 표기입니다.
그럼 ‘놀음, 얼음, 졸음’도 잘못 아닐까 싶네요.
이 말들은 파생 접미사 ‘음’이 붙어 아예 명사로 굳어버린 예외입니다.
원래대로 매개모음 없이 쓰는 명사형(동사나 형용사지만 명사 노릇을 하게 만드는 활용형)과는 다르지요.
결국 ‘놀음을 실컷 즐기는/실컷 놂은 즐겁다’ ‘얼음이 보이는 강/강이 얾을 보면서’
‘졸음 운전은 위험해/운전하면서 졺은 위험해’로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작은 새’의 부음(訃音)을 살피다 ‘날으는 원더우먼’이 생각났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나르는 작은 새’요 ‘나르는 원더우먼’이었는지 모르잖아요.
한쪽은 자부심과 희망, 다른 쪽은 환상과 통쾌함을 날라다 줬으니까요.
저승에서는 작은 새가 아닌 봉황으로 영생하시기를 빕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