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연구년을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보내면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다룬 독일 기사를 찾았다. 몇 년 동안 자료 발굴을 통해 당시 독일인이 관찰한 대한제국은 많은 부분 호도되고 저평가된 것을 알았다. 이 책은 1898년 당현(당고개) 금광을 조사하고 돌아간 크노헨하우어의 1901년 강연문, 1913년 조선을 경험한 예쎈의 여행기, 1933년 라우텐자흐 교수가 백두산 밀림에서 만난 이름 모를 독립군 이야기를 바탕으로 독일 신문, 독일 대학에서 소장하는 한국관계자료집을 참조해 구성하였다.
예쎈 여행기에서 한국 역사 부분을 보면, 고려 왕조부터 중국에 귀속된 하위 왕조라는 역사 인식과 임진왜란부터 시작된 일본의 약탈은 약 4세기 동안 조선 쇄국정책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도 부산을 수백 년 동안 자유항구로 이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관리와 권세가들의 횡포로 농민계층은 착취를 당하고, 권세가 집안에서 소작농이지만 노예처럼 일하는 농민과 양반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며 양반이 조선 사회 루저의 원형이 됐다는 역설적 정의가 흥미롭다
크노헨하우어는 1898년 2월 ~ 1899년 6월까지 1년 5개월 동안 대한제국에 체류하면서 아시아 문화를 경험하였다. 그가 조선을 세 차례 탐사하면서 경험한, 낡고 파괴된 조선의 건축물들은 이웃 국가들의 침략전쟁 때문이 아니라 조선의 민중봉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렇다면 수줍고 평화를 사랑하고 순종적이라 평가를 받는 흰옷을 입은 조선인은 파괴적인 면도 갖고 있다는 뜻인가?
독일 지리학자 라우텐자흐는 1933년 10개월 여정으로 조선, 러시아, 시베리아를 향하여 동아시아 답사를 떠났다. 1933년 7월부터 10월까지 백두산부터 남으로 한라산, 동으로 울릉도까지 조선의 산맥, 강, 지질, 식물분류 등 조선 지리학의 제반 지식을 망라할 자료를 조사하였다. 그의 백두산 답사는 혜산진에서 백암온천까지 일본 경찰의 보호구역이지만, 그 지역을 벗어난 백두산 원시림지역에서 독립군 무리를 만난 내용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