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보호 좌회전 / 정해종
좌회전 표시가 도발적으로 그려진
팻 메스니의 앨범 [턴 레프트] B면 두 번째 곡
[Are You Going with Me?] 를 들으며
조심스럽게 핸들을 왼쪽으로 꺾는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그렇게
노래 부르며 일제히 좌향좌 했던 친구들
멋쩍은 얼굴로 돌아와 넥타이 추켜 메고
얌전히 직장 다니는 녀석들을 보면
나는 늘 왼쪽 옆구리가 가렵다
좌회전이 허용되지 않는 우익의 나라
보호하진 않되 눈감아준다는 건 관용이다
베풀어준 관용에 대해 거듭 감사하며
우연과 필연 사이, 의지와 운명 사이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모든 경우의 악재에 가슴 졸이며
법전의 조항과 조항 사이
관례와 원칙 사이의 공백을
도둑질하듯 잽싸게 핸들을 꺾어
나는 오늘도 무사하게 하루를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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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호 좌회전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보호하진 않되 눈감아 준다는 저 관용에 앞서
용기만 있다면 보호되지 않은 길에서 모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갈 수 없는 막힌 길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안전한 좌회전 길을 외면하고 비보호 좌회전 길에 서고는 합니다.
뒤따라오던 차가 미처 차선을 변경하지 못하여 내게 신경질적으로 빵빵 거려도,
반대 차선의 차가 좌회전 신호를 켜고 있는 내가 혹 미친 척 달려들까 불안해하여도
그건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 그들의 몫이라 생각하면서,
그 길, 비보호 좌회전이 그려진 신호대 앞에서 모험을 하고 싶어집니다.
그리하여 무사히 비보호 좌회전을 했을 때의 쾌감을 느끼고 싶습니다.
첫댓글 저도 좋아했던 시여요. 그전에 이 제목으로 된 시를 모아 올렸던 적도 있는데...그 때가 생각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기억납니다. 몇 편의 시를 함께 읽어 주셨던 것, ... 그 때를 그리워하면 안 되겠지요.^^ 이미 우린 여기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