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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IRc26JTgSDo?si=W-TSl_uxPfTrCQfN
안전한 피난처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환난당할 때 도우시는 분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5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16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시편 91:1~16, 개역개정)
* 지존자(1절) ‘지극히 높고 귀한 존재’ 곧 하나님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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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살며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사람은 보호받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함이 방패와 손 방패가 되어 모든 재앙에서 그를 건지십니다. 악인들은 보응받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 이름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환난에서 건지시며 구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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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삶 시편 91편 1~13절
1 지극히 높으신 분의 비밀스러운 곳에 사는 자는 전능하신 그분의 그늘 아래 머물게 되리라.
2 내가 여호와를 내 피난처이시요, 내 요새이시며 내가 의지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리라.
3 참으로 그분은 너를 새 사냥꾼의 덫에서, 죽을병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너를 그 깃털로 감싸 주시니 네가 그 날개 아래로 피할 것이며 그 진리가 네 방패와 성벽이 되리라.
5 너는 밤에 엄습하는 공포나 낮에 날아오는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6 어둠을 활보하는 흑사병이나 한낮에 넘치는 재앙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7 네 곁에서 1,000명이 넘어지고 네 오른쪽에서 1만 명이 쓰러져도 네게는 가까이 이르지 않으리라.
8 너는 그저 네 두 눈으로 악인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9 네가 지극히 높으신 분을, 피난처이신 여호와를 네가 있을 곳으로 삼으면
10 어떤 해악도 네게 닥치지 않고 어떤 재앙도 네 장막 가까이에 이르지 못하리라.
11 그분이 천사들에게 명령해 네 모든 길을 지켜 주라고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12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들어 올려 네 발이 돌에 맞는 일도 없으리라.
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젊은 사자와 살모사를 짓밟으리라.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요 요새”라고 고백하며,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이 가장 안전한 삶임을 선포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보호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질병, 재앙, 밤의 두려움과 낮의 위험 속에서도 그의 백성을 지키십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실제적인 보호의 약속입니다. 세상의 어떤 방패도 완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결코 뚫리지 않는 방패가 되십니다.
나는 위기 상황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의지하고 있나요?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내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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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시편 91편 14~16절
14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가 나를 사랑하니 내가 그를 구하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알았으니 내가 그를 높이 올리리라.
15 그가 나를 부를 것이니 내가 응답하리라. 내가 그의 고통과 함께하겠고 그를 건져 영광스럽게 하리라.
16 그가 원하는 만큼 오래 살게 해 주고 내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자에게 직접 약속하십니다. 환난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환난 가운데 함께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시며, 그분의 구원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는 고난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임재’임을 보여줍니다. 성도는 고난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멀리하나요, 더 가까이 나아가나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어떻게 믿고 붙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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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섭리를 믿는 승리자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여러 일을 겪습니다. 심한 고난을 겪으면, 운명론에 빠지는 사람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의 태도가 확연히 갈립니다. 운명론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람의 노력으로는 인생을 도저히 바꿀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어떤 운명론자들은 고난 앞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나님의 섭리까지 다 부정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 중 다수는 절망하며 하나님을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들은 바벨론 강변에서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절망과 좌절 속에 빠진 우리에게 새로운 힘과 비전을 주소서.”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 문을 여셔서 새로운 삶의 비전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되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섭리란 하나님이 우리 일생의 모든 일을 그분의 주권으로 이루어 가시는 것을 말합니다. 운명론자와 섭리를 믿는 자를 ‘죽은 잉어와 산 모래무지’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잉어는 몸집이 크지만, 죽으면 배를 하늘로 드러내고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정처 없이 떠내려갑니다. 반면 모래무지는 몸집이 작지만, 강바닥을 쓸며 물살을 거슬러 힘차게 올라갑니다. 섭리를 믿는 하나님 백성은 모래무지와 같은 승리자입니다.
♧ 한 절 묵상
91편 9~10절 | 세상 사람들은 황금과 권력을 자신의 보호막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도는 전능하신 하나님, 지존하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습니다. 시편 기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1절)는 위험이나 질병 혹은 전쟁에서 보호받는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의 주관자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불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큰 위로입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염려와 두려움은 작아집니다.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입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저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현재 괴로운 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집중하길 원합니다.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사랑을 갈망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소서. 그래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시편 91편 1~16절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호와 동행의 약속을 선포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로 표현하며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질병과 위험, 눈에 보이는 공격과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방패가 되십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 고난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건지신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결국 이 시편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우리의 안전과 평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시편 91편 15절
하나님은 단순히 멀리서 지켜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가’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흔들리는 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고난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문제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그분의 그늘 아래 있는 자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 명언 시편 91편 1~16절
하나님은 나를 안전한 길로만 인도하지 않으시고, 어떤 길에서도 안전하게 하신다. - 삶을 노래하다
참된 평안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데서 온다. - 어거스틴
하나님께 피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믿음의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다. - A. W 토저
신앙은 안전한 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서 있는 것이다. - 오스왈드 챔버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상황이 아니라 약속 위에 선다. - 마틴 로이드 존스
진짜 믿음은 보이지 않는 보호를 신뢰하는 것이다. - 죠지 뮬러
두려움이 클수록,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더 분명해져야 한다. - 조나단 애드워즈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대부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계신다. - 코리 텐 붐
4월7일 전도
1
시편91:1-16절 본 시편 역시 모세가 기록했습니다
내용은 가장 좋은 피난처가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중 모세 만큼 고난을 받은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모세는 어렸을때 나일강에 악어의 밥이 될 수 있었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양육되었으며 그후로 살인죄를 피해 광야에서 살았으며
소명을 받아 이스라엘1세대들과 2세들과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모세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해 가장 좋은 피난처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그늘 아래 사는 것이 지속적인 삶의 방식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1절에 "전능자의 그늘아래에 사는 자여" 라는 말은 단순한 말씀이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지속적인 삶의 방식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2절에 하나님을 피난처요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말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말할수 있는 이유를 말합니다
3절에 사냥꾼, 전염병에서 건져 주셨기 떄문입니다
5절에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로 부터 건져주셨기 떄문입니다
7절 하반절에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말합니다
같은 내용이 9절에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
여기, 재앙이 가까이 오지 못한다는 말은 재앙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다는 것은 재앙이 없는 삶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반대로 재앙이 있을수 있습니다 재앙이라는 고통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다는 것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데 왜 고난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고난을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은
고난 속에서
고난을 해석을 잘 해야 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해야 합니다
끝으로 모세는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14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여기 나를 사랑한즉 그리고 내 이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속에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깊은 관계속에 있을때 고난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승리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깊은 관계속에 거하면 15절에 영화롭게 하시며
16절에 장수하게 하심으로 만족하게 하신다 약속하십니다
모세의 시편을 통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동일하게 고백하며
우리 모두 믿음의 영화로운 분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시 91:1~16절)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삶❞
❚ 완전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 하나님은 완전한 피난처가 되십니다(1~8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자’는 ‘항상 마음을 하나님께 두고 있는 자, 주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1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피할 가장 안전한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분(2절)이십니다. 인생들을 위협하는 자들은 생명을 노략하려고 애쓰고, 심한 전염병처럼 강력합니다. 그리고 수만 명의 군사처럼 두려움의 주는 세력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은 사냥꾼의 올무와 전염병에서 우리를 건지시며(3절), 어미가 새끼를 날개 아래 품듯이 우리를 보호하십니다(4절). 위험과 공포가 부지중에 아무 때나 어디서든지 닥쳐오는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자들은 안전합니다(5~6절).
하나님은 내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그분 안에 거할 때 참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만큼 연약하고, 불행한 인생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받으며 그분의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마땅히 의지해야 할 하나님만을 섬기며 세상의 헛된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지존자를 거초로 삼을 때, 세상 속에서 가장 안전한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의 날개 아래 거하며, 완전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은 신실한 보호자가 되십니다(9~13절).
시인은 다시 한번 하나님을 ‘피난처’와 ‘거처’로 묘사함으로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자들의 안전함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9절). 하나님을 피난처와 거처로 삼았기에 어떤 불행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며, 어떤 재앙도 가까이하지 못할 것(10절)입니다. 천사들을 명하여 모든 길에서 지키실 것이며, 돌부리에 부딪히지 않도록 손으로 붙들어 줄 것(11~12절)을 말씀하십니다. 나아가 대적들의 위험 가운데서도 안전하며 도리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해 저들을 물리치고 정복하게 될 것(13절)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생 동안 나와 동행하시면서 나를 보호하시는 신실한 보호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시 23:4), 물과 불 가운데에서도 상함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사 43:2)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될 것들입니다.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것들이 모두 허무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부모와 형제도 그리고 친구도 또한 힘 있는 권력자도 내 자신을 영원히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내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 주실 분은 오직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처가 되십니다(14~16절).
하나님이 이처럼 인생들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이유는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건지시며,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기에, 우리를 높여주십니다(14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를 나누는 자가 간구하며 아뢸 때 응답하며 환난의 때에 건지십니다(15절). 나아가 만족할 만큼 오래 살도록 하고, 당신의 구원을 보여 주겠다(16절)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그것이 장차 내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는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몇 개의 성을 세우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내 자신으로 하여금 확신에 찬 믿음 생활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완전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마땅히 의지해야 할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며 세상의 헛된 것들을 버리고 오직 주님과만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허무하게 사라질 것에 불과한 것들에게 인생을 맡기지 말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것을 사모하는 삶이기를(시 91:1~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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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해설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함 (91:1~10)
인생의 위기 가운데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존자시며 전능자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지존자를 거처로 삼고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는 사람은 재앙과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음을 강조합니다(1~2, 9~10절).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 앞에 두려움은 물러갑니다.
악인들은 재앙 가운데서 멸망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날개 아래 피하는 사람은 무서운 전염병,
공포, 재앙 가운데서도 담대함과 평안을 누립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그분의 신실함은 모든 악으로부터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 요새,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성도는 구원의 은혜를 누립니다.
- 시편 기자가 공포, 날아드는 화살, 전염병, 재앙 등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난의 때에 내가 담대함과 평안을 누리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주를 사랑하는 자를 구원하심 (91:11~16)
우리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시선은 우리에게 고정됩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주시고,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붙들어 발이 돌부리에 부딪히지 않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사자와 독사 같은 악한 세력을 짓밟고 시험과 유혹으로부터 승리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간절한 기도는 그분의 임재와 능력을 속히 이끌어 내리는 사다리와 같습니다.
사랑과 신뢰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성도는 장수와 구원의 은총을 누립니다.
세상의 환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성도를 결코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환난 때에 하나님은 약속대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건지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은혜를 주시나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신뢰를 기초로 내가 간구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힘든 환경 속에서도 은밀한 피난처, 견고한 요새, 든든한 방패가 되시는 주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고난이 깊을수록 주님을 향한 사랑 고백이 깊어지고,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경험하게 하소서.
세상 방법이 아닌 주님 뜻만 구하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게 하소서.
4
어렵고 힘겨운 일을 만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안식처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은밀한 곳(성전)에서 그분의 임재 속에 사는 사람은 어미의
날개 아래 보호받는 새끼 새처럼 참된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누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은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닥쳐오는 재앙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자들을 굳게 붙들어 주시고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악인들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에게 보호자가 되어 주시되 대적들이 가까이
못하도록 지켜주시고 화나 재앙이 미치지 못하도록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도저히 헤쳐나오지 못했을 때가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천사들을 동원하여 믿음의 길을 걷는 모든 자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의 발이 돌에 부딪혀 상하지 않도록
그들의 몸을 붙들어 주시며 사나운 사자와 독사들도 짓밟게 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여 응답하시고 구원의 은혜로
만족시켜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참된 보호와 구원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시선은 우리에게 고정됩니다.
그리고 여러 방법을 통하여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사랑과 믿음의 고백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입술로 선포하는 자에게 말대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흘러가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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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오직 승리입니다(고후2:14; 고전15:57) 그러나 주께서 가르치신 전략으로 싸워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24:6) 그 전략의 기본은 먼저 안을 튼튼히 한 후에야 밖을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안을 튼튼히 할까요? 우리가 주 안에 거하고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
아무도 이길 자가 없으시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시는, 주 안에 거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삼상2:6~9)
오직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우리의 안이 안전하게 되고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91:1~3)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에 어떤 원수도 우리의 성벽을 넘을 수 없고, 어떤 재앙도 우리의 담을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91:4~7)
그렇다면 어떻게 주 안에 거할까요? 주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요일2:27~29)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천사들에게도 지시하사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91:8~12)
그러나 승리를 위해서는 안만 튼튼히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바깥의 적을 쳐서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안에 계시는 이가 세상보다 크심을 믿고, 기도함으로, 주의 이름으로 바벨론 독사들을 밟고 이기는 승리를 취하기 원합니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시9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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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시편 91:1)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자주 얼렁뚱땅 나를 넘어가게 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들키지 않았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납득했다고 진실해지는 것도 아닌데, 나를 합리화하며 나를 덮어 왔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고, 신앙 안에서도 그럴듯한 말로 나를 포장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결국 벌거벗은 존재일 뿐입니다. 참자아는 잘해 보이려는 내가 아니라,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만 붙드는 나라는 사실을 다시 배웁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내는 사람으로 서고 싶어 했지만, 정작 믿음의 시작은 “내가 합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십니다”를 인정하는 데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것은 자존심에는 아픈 일이지만, 영혼에는 가장 안전한 자리가 됩니다. 내가 드러날수록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지고, 내가 작아질수록 오히려 하나님이 크심이 선명해집니다. 결국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돕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붙드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신비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또한 오늘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봅니다. 남을 의식하고, 내 삶에도 솔직하지 못하고, 쉽게 판단하고, 내 기준대로 타인도 살아야 한다고 여기는 모습들 말입니다. 이것은 단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숨어 하나님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거짓자아의 움직임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내가 나를 지키려 할수록 더 얽매이고, 내가 나를 내려놓을수록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붙드는 것이 사는 길 같지만, 실은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건강한 신앙생활은 열심에서 시작되지 않고, 정직함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안의 거짓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로 처리되었음을 아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비로소 신앙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의 많은 분주함은 어쩌면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면서 결국 나를 섬기던 시간일 수 있습니다. 자아숭배라는 우상은 눈에 보이는 우상보다 더 교묘해서, 경건의 모습까지 빌려 나를 높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시 지존자의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사람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 앞에, 성과가 아닌 은혜 앞에, 자랑이 아닌 항복의 자리 앞에 서고 싶습니다.
하나님, 저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흔들렸던 저의 믿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환난 가운데서도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붙들고 두려움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께 간구하며 나아갈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님, 제 안의 거짓자아를 밝히 드러내 주시고,
저를 섬기던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만 높이는 삶으로 이끌어 주소서.
벌거벗은 그대로 주님 앞에 서는 정직함과,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제게는 영광이 없고 주님께만 영광이 있게 하소서.
지존자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