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의 노래 ―강인한 시집 『全羅道 詩人』
오 하 근(사대 전강•문학 평론 1941~2017)
약력에 의하면 이 시인은 정읍에서 출생하여 현재 광주 사례지오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그는 북도에서 태어나 남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 고장의 하찮은 서민이다. 이러한 서민이기에, 그는 한국현대사의 격랑을 치른 역사의 현장에 본적과 주소를 두고 “쑥떡만 남아서 지키는 고향” “이 나라의 가장 후진 백성들의 한숨이/ 모여서 삭는 곳/ 오늘도 질척이는 갯땅,(「전라도여, 전라도여」)을 누구보다도 잘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그는 순수한 서정시인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아내의 귓밥을 판다./ 채광가(採鑛家)처럼 은근히/ 나는 아내의 귓구멍 속에서/ 도란거리는 첫사랑의 말씀을 캔다./ 더 멀리로는 나에 대한 애정이 파묻혀 있는/ 어여쁜 구멍/ 아내의 처녀 적 소문을/ 들여다보다가/ 슬며시 나는 그것들을 불어 버린다./ 아, 한숨에 꺼져 버리는/ 고운 여인의 은(銀) 부스러기 같은 추억.”(「귓밥파기」)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시인이다.
우리 시사(詩史)에 이토록 고운 절창이 또 있었을까. 이런 순수시에 어려운 해설은 필요하지 않다. 시의 의미 이상의 의미를 우리는 강요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시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학(衒學)을 즐기는 이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사물에 부여한다. “어떤 사람은 돌을 수석(水石)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돌을 수석(壽石)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돌을 예술로 치고/ 어떤 사람은 돌을 돈으로도 치지만// 나는 돌을/ 돌이라고 부른다.// 돌에 이름을 붙이는 부질없음이여/ 돌을 돌 이상으로 섬기는 어리석음이여// 사람이 사람끼리 모여 살듯/ 돌은 돌끼리 모여서 산다."(「돌에 대하여」) 그는 억지의 의미 부여를 거부한다. 현대시의 난해성은 사물과 의미와의 괴리에서 파생하는지도 모른다. 사물에 대한 천착에만 급급하다 오히려 그 본질을 망각해 버렸기 때문에 억지 해석에 의존하여 사물을 재구성하게 되고, 그래서 시는 점점 난해의 구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 시인은 사물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인식은 극히 소박하다. 이 소박성은 서민의식에 입각하고 그래서 더 진리에 가까워진다. 돌이 돌끼리 모여 살듯, 사람은 사람끼리 모여서 산다. 서민들의 집단에서 그의 개인적인 서정성은 점점 공동체 의식으로 변모한다. “그랬구나./ 힘없는 너희들이 무서운 절망으로 / 소리 없이 뭉쳐 있었구나./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가는 물살에 잠겨/ 소리없이 뭉쳐 있었구나.”(「하수구를 뚫으며」) 막힌 하수구는 뚫어야 한다. 그러나, 그 “좁고 캄캄한 하수구 속에 틀어박혀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흐름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은 “원한보다 질긴 폭력이 조직적으로 / 꽝꽝 다지고 뭉친” 서민의식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겪고 있는 서민들의 슬픔과 노여움이다. 흔히 쓰는 애환(哀歡)이라는 낱말에서 한쪽이 없어진 그런 것이다.
“자거라, 자거라,/ 내 아이들아/ 산다는 것이 차마 이렇게/ 말 못할 부끄러움뿐인 것을/ 눈물 나게 그리운 것 하나도 피우지 못한 쭉정이, 쭉정이 같은 손으로/ 얼굴을 쓸면/ 까실하게 묻어나는 겨울의 예감/ 보드라운 흙먼지 속에 숨어서/ 풀씨는 오늘 밤에도 간을 말린다.”(「풀씨」) 이렇게 서민들의 슬픔과 노여움의 깊이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풀씨」는 봄을 기다리며 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민의식에서 역사의식이 싹트는 것은 자연적인 귀결이다. “서양에서 들여온 키 작은 꽃들/ 가혹한 슬픔을 향하여 / 벌거벗은 울음빛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말 못하는 벙어리 시늉으로 피어 있었습니다.”(「팬지꽃」) “꽃상자 속에 담긴” 말 못하는 팬지꽃을 통하여 시인의 역사의식은 입을 연다.
이러한 시인의 서정성과 서민의식 그리고 역사의식은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전라도에 대한 향토애에 집결된다. 6.25전쟁과 4월 혁명을 겪은 이 땅, 그리고 이제는 근대화와 산업화에 밀려 “젊은 놈들은 도시로 가고, 잘난 놈들은 돈 벌러 가고, 약은 놈들은 등을 치러 가고, 쑥떡만 남아서 지키는 고향”(「전라도여, 전라도여」)에 대한 한스러움 속에 시인의 모든 의식은 녹아 흐른다. 그리하여 “한 그릇 찬밥덩이 앞에들 놓고/ 죄 없이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들고/ 그래도 남은 사람들끼리, 꿀꺽꿀꺽 돌려 마시는 한 사발의 찬물/ 시리고 아픈 이 나라의 어금니여.”라는 절규를 통하여 오히려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훈훈한 인심을 그리면서 고향에 대한 애정을 쏟고 있다. 그러나 전라도는 글자 그대로의 전라도일 수 없다. 6.25는 우리 민족 모두가 겪은 것이며 이농현상도 전라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산업화의 필연적인귀결인지도 모른다. 또 산업화시대에 비록 우리들의 고향일망정 전라도가 이 나라의 어금니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라도는 단순한 전라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현대인은 귀소(歸巢) 본능에 의하여 돌아갈 고향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이 인간의 고향으로서의 전라도를 되찾기 위하여 시인은 “새야, 새야, 울어라 새야”를 반복하고 있다.
시인은 어차피 한 마리의 외로운 한 마리의 외로운 새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시는 내 개인적인 삶의 신념이다. 이번으로써 세 번째의 시집을 엮으면서 느끼는 것은 초기에 비하여 대체로 서정성이 엷어지고 목소리가 탁해졌다는 점이다. 나이 들고 살아간다는 일이 기껏 이름 석 자에 좀 더 많은 먼지나 묻히는 게 아닌가 하고 서글플 때가 많다.”(「후기(後記)」)라고 시인 자신은 쓰고 있지만 그는 가장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인식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한 마리의 전라도 파랑새인지도 모른다.
(1983년 4월 6일 수요일자 '원광대학신문')
〈『전라도 시인』 1982년 전남문학상 수상 시집, 발행처 태•멘기획〉 |
첫댓글 그러나 전라도는 글자 그대로의 전라도일 수 없다. 6.25는 우리 민족 모두가 겪은 것이며 이농현상도 전라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산업화의 필연적인귀결인지도 모른다. 또 산업화시대에 비록 우리들의 고향일망정 전라도가 이 나라의 어금니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라도는 단순한 전라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향이다. 현대인은 귀소(歸巢) 본능에 의하여 돌아갈 고향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이 인간의 고향으로서의 전라도를 되찾기 위하여 시인은 “새야, 새야, 울어라 새야”를 반복하고 있다.(오하근)
퇴임전 직장에서 우연히 군대얘기가 나오자 현역입영자출신들이 침을 튀기듯
복무기간중의 별별 에피소드를 토해낸다.
그 와중에 비교적 조용한 그룹은 장교출신과 방위출신.
병사신분 보다 상위직으로서 지휘관출신이니 끼어들기에는 체면문제인 듯하고,
전역 당시 고작 일병,상병계급의 방위출신들은 병장출신들의 다양하고 리얼한 체험이 부족하여 꿀먹은 벙어리 같았다.
역대 대통령도 현역복무여부로 시비가 일어나고 정치권 입문에 비현역은 어딘가 찝찝하고 기세가 꺾인다.
군대얘기가 끝나는가 싶었는데 뭔가 왁자지껄하여 들어봤더니 대여섯명의 방위전역자들간에 논공행상이 과열이다.
그중 압권은 (방위면 다 똑 같은 방위냐.나는 해병대방위다)라는 일갈에 현역출신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어느 분이 쓴 우리나라 집단의식에 (전라도) 및 (해병대)에 대한 언급을 본 적이 있다.
분명 해병대는 타 군에 비해 정예라는 자긍심이 있어서인지
출근길에 해병대 복장에 교통정리를 하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고
심지어 자동차 앞뒤에 해병대 로고를 부착하기도 한다.
,<전라도>하면 우선 지역감정이 움찔거린다.금새 정치이야기로 비화된다.
지들끼리 똘똘 뭉친다라고 지탄을 받기도 한다.
굳이 이래저래 그 근원을 열거할 필요는 없지만
왜 그리됐는지는 나름 한 번쯤은 숙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남이냐>라 했던 백발의 국회의장이 편가르기 발언이 그 시초다.
박씨와 김씨의 지역 연고로 선거마다 동서로 분할되기전,
이씨와 신씨의 세대에는 도농의 분할이 더 심했지 동서의 분할은 아니었다.
아픔을 겪은 이에게는 위로가 먼저다.
또 지나치게 인간이 인간에게 요구하고 기대해서도 조용할 수 없다.
4.19시대에는 지역감정이 없었으나 5.16과 5.18에 대한 인식에는 확연한 의견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목사인 큰아버지와 그 교회 원로장로인 외할아버지는 평소 그리도 신실한 크리스챤이셨으나
선거철만 되면 거의 원수 수준으로 서로 증오하셨다.
외삼촌이 6.25에 납북되고 외가 작은할아버지는 인민재판으로 저잣거리에서 참살되어
반공의 표상이 된 외가는
당연히 이승만의 세력이 되었고,
목사 큰아버지의 장남은 이승만정권시절 4.19대학생 데모에 경찰이 발포한 흉탄에 사망하여
당연히 뿌리깊은 민주당쪽이 되었다.
목사와 장로의 신앙은 우리 2세들이 보기에도 속된 정치수준 보다 아래였기에
교회출석을 강권하는 집안 어른의 의견을 우리는 묵살했다.
@답곡 <당해보지 않으면 그 심정을 모른다>
이런걸로 얘기가 길어지면 천박하다.
<전라도>라 하여 특별한 언급이 필요하지 않다.
마치 <해병대>에 대한 인식이 그러하듯이.
전라도 출신이 경상도에 뿌리 내린지 40년 -
희한하게도 전라도에서 출생한 장남은 기아타이거즈,경상도에 이사하여 출생한 차남은 롯데자이언트 팬이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 한 순간 웃고 끝나면 된다. 그것으로 애국심까지 비화될 필요는 없다.
한 민족으로서도 남북이 대치된 마당에 웬 지역감정인가.이건 넌센스다.
전라도가 고향인 강인한을 일컬어 굳이 <전라도 시인>으로 부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따라서 강인한의 시를 읽고 공감하면 될 일이지
평론가 오하근의 꿈 보다 해몽이 좋은 평까지 공감할 필요는 없다.
전라도는 초식성 어금니도 아니고
육식성 송곳니도 아닌 그저 평범한 24개의 이빨중의 하나다.
각설이 타령처럼 전라도여~ 전라도여~라 부르는 것 역시 헤프고 어설프다.
가벼운 서정의 무게에 굳이 의식을 주입하여 일부러 무겁게 할 필요가 없다.
수능에 등장하는 시의 해석을 묻는 선다형 정답을 보고 정작 그 시를 쓴 시인이 실소하더라는 이야기는 뭔가.
강인한 시인은 강인하게 쓰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