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Europa Universalis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역사게시판 한국 예송(禮訟)과 민생(民生)
이름짓기귀찮아 추천 1 조회 623 17.07.23 01:35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7.07.23 11:55

    첫댓글 붕당은 학문적 지향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각 붕당은 자신의 세계관에 맞춰 현실을 주조하고자 이에 맞는 정책을 펼쳤죠. 예송과 민생이 동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현대에 와서 비판은 많겠지만 당대 조선사회의 어떤 풍토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가는 한 번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조선전기와 후기사회를 구분할 수 있는 기점을 양난이라고 하는데 임란은 조선 안팎의 경제사회적 혼란을 야기했고 호란 이후 명의 멸망은 조선의 세계관을 흔들었죠. 조선은 경제사회적 혼란 뿐 아니라 세계관에 대한 붕괴에 대처해 새 사회를 재건해야 했죠. 한국전쟁이 한국의 잔존했던 신분질서를 일소하는데 도움이 되었듯 양난은 조선사회의 비유교적인

  • 17.07.23 03:05

    사회질서를 일소하고 유교화된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죠. 조선 전기만 해도 제사 지내는 법부터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고려사회의 유습이 이어져 오고 있었고 사림과 국가가 단속하려 하지만 쉽사리 수용되지 않았고 정절을 중심으로 했던 가치관도 상위 신분층에게만 영향을 미쳤지 일반민들은 자유혼이 이루어지고 있었죠. 양난 이후 새 조선을 재건하는데 있어 어떤 세계관으로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가 논쟁이 되는데 내수외양론을 주장하는 산림들의 예학을 중시하는 경향이 설득력을 얻게 되죠. 그러면서 문제시되지 않던 예송이 갑자기 사회의 중심이슈가 될만큼 파급력을 미치게 되는 것이었죠.

  • 17.07.23 08:48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7.07.23 12:43

    오랜만에 꿀잼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7.07.25 17:37

    서당 설치와 교육 기회의 확대는 조선 중기 이래 꾸준한 추세였습니다. 성리학에 민주주의 운운하는 아나크로니즘도 건전치는 않지만, 극단적 환원론 역시 의미 없는 허무주위로 귀결될 뿐입니다.

  • 17.07.27 20:50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이 들어서면 교주적인 성리학이 등장하고 남송도 똑같이 예송논쟁으로 돌입하게 됩니다. 전쟁으로 무너진 기존의 질서와 사상을 복구시켜야 하는데 전란으로 타격을 받아서 복구 될수없는 부분이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이적(당시의 금나라 조선은 만주족과 일본인)과 다른 사상적 도취를 고취시키는 과정에서 전시대의 사상보다 더 억압된 사상을 발전 시켰다고 볼수 있지 않을 까 합니다. 그리고 당시대의 유교는 이미 북송의 멸망과 원,명,청으로 이어지면서 신유교의 교조주의가 발달했고 청나라때 그런 교조주의도 탄압이 심해 아예 훈고학이라고 옛 금석문을 연구하는 이질적인 유파도 등장했으니 이는 비단

  • 17.07.25 20:06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당시 중국적 가치관을 가진 국가의 공통된 이념이지 않을까 합니다. 명나라의 멸망으로 일본, 베트남, 조선이 다 소중화를 자처한 것도 그시대의 맹락에서 볼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내외적 사항과 시대적 흐름일 것입니다. 이는 비단 동아시아만의 문제도 아니고 오스만제국의 붕괴로 수니 와하비즘이 대두된 것처럼 생존의 위기에 처했을때 사상의 왜곡이나 사회의 유습이 어떻게 변하는 가에 중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 까 합니다.

  • 17.07.25 20:15

    재밌는 점은 남송조에 들면서 여성들의 정절을 강조하고 수절을 넘어서 자살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양난후 조선시대의 여성들의 정절과 수절을 강요한 것과 같은 것으로 지금의 항주지역(남송의 수도)엔 그 정도가 심해서 남편이 임종하면 여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강요하는게 두드려져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죠.. 열녀문이란게 남송시대에 각도처에 생기고 각가문에서(남송의 사류-사대부) 그런 수절자살 부인이 나오지 않는 것을 수치라고 할 만큼 억압이 되었다는 것이죠. 아마도 조선후기와 남송시대의 사상적 왜곡을 연구해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