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f jerky
그것은 단순한 육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조각의 기억이고, 수천 년을 건너온 생존의 노래다.
태초의 인간은 불과 바람과 태양애 의존해 고기를 말렸다.
혹독한 겨울에도, 먹이를 찾기 힘든 긴 이동에도 바싹 말라붙은 고기는 배고픔을 견디는 마지막 보루였다.
잉카 사람들은 안데스의 숨 가쁜 고도에서 라마와 알파카를 짜게 절이고 살갗이 갈라질 때까지 바람에 말렸다.
그렇게 태어난 말이, ‘ch’arki’. 이 낱말은 바다를 건너 ‘jerky’가 되었고 정복자들의 배낭과 모피 상인들의 썰매에 담겨 더 멀고 더 척박한 땅으로 스며들었다.
북미의 평원에서는 버펄로가 연기 속에 매달려 말라갔다.
라코타, 코만치, 체로키 — 이름만으로도 바람 냄새가 나는 이들이고 그들은 훈연한 고기를 빻아 지방과 열매를 섞었다.
페미컨(Pemmican) — 단단하고 기름진 생명력를 가지고 한 입이면 사흘길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고열량이고 가벼워야 살아남을 수 있던 사냥꾼과 전사의 주머니에 숨겨져 극한의 자연 속에서도 인간은 놀이하듯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탐험가와 개척자, 카우보이와 군인. 그들은 신대륙의 바람과 먼지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질긴 육포 한 조각을 입 안에서 녹여 씹으며 생존한다.
그 씹힘은 곧 생존의 약속이었고, 철로의 이동과 소몰이에서 인간은 육포에 의지해 다음 날의 꿈꿀 수 있는 생존응 이어갔다.
20세기, 진공포장과 스모크향이 잔뜩 나는 육포가 편의점의 네온 아래 걸리고, Slim Jim. 한때는 인디언과 탐험가의 피와 땀이었지만,
이제는 모험 대신 드라이브스루 창가에서 손쉽게 주문할 수 있는 간편한 단백질 간식이 되었다.
그러나 잊지 말라.
그 질긴 육포의 조직마다 햇빛과 바람, 연기와 땀방울, 그리고 살아야만 했던 인간의 의지가 배어 있다.
육포는 단지 말린 고기가 아니다.
그것은 유목의 증거이고, 바비큐의 원형이며,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과 놀이하는 인간(Homo Nallarians)이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함께 진화해온,작고도 위대한 발명이고 유산이다.
오늘도 우리는 다시 묻는다.
무엇이 인간을 살아남게 했는가?
그 답은 어쩌면 질긴 육포 한 조각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씹고 또 씹으면 — 그 질김만큼 우리의 생은 질기고, 그 짭짤함만큼 우리의 진화는 진하게 이어간다.
※ 페이스북 @Minimalist Haven 님의 글을 참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