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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상적이 잘 되는 타입인것 같다. 마음앓이때문에 그럴수도 있고.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잘 흘러가는 사고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기반이 약해서, 아까 내가 말한, 마음의 지지대가 약해서 그래서 그럴 수도 있고.
나는 속상해서 눈물까지 나왔는데, 내 동생은, 참 유연하고 쏘 쿨~~~~ 했다.
나는 왜, 그깟거 돈벌어서 사줄께~ 라고 왜 말못했지?
아 아니다, 나도 좀 지나면 어쩌고 하면서 말을 했었지.
그런데 계속되는 엄마의 주위와의 비교하는 말들과,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말들에
내 마음의 운전대를 넘겨버렸다.
나를 지키고 위하고 감싸는 그 마음의 지휘권을 순간 흔들려버린거다.
그런데 내 동생은 그 상황에서, 똑같은 상황인데도 다르게 대처하더라.
니는 눈물나지 않냐고, 속상하지 않냐고 했더니, 내 동생은 못사준다고 해서 그렇게 막 가슴아픈,
절절한 그런 상황도 아니고, 단지 엄마가 아줌마들의 사치 대열에 못낄뿐이지,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별로 그렇게 눈물나거나 속상하지 않다고 했다.
근데, 사실 아줌마들이 너무 사치스럽다고 그 지적을 한건 나였다.
나도 그 생각을 했었고, 엄마한테 넌지시 그런 말도 했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지 못했을까...?!
유쾌하고 밝은 기운이라던지, 내적인 에너지나, 나 자신을 위하고 지키는 내면의 힘, 그런것들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반항적인 느낌이 있지만, 속은 내가 더 여리고 착한 면이 있어서일까?
흠......... 유연하지 못해서일까? 내가 스스로 경직되고 융통성이 없다는 생각은 엣저녁부터 했었다만....
그래도 예전보다 나 , 조금은 유연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은 참 기쁘다.
사실 오늘 엄마에게 대처한 내 태도도, 굉장히 나로써는 참 유연한 태도였다! 잘했다~ 참으로 대견하다.
속상했다. 엄마가 주위 아줌마들은 얼마짜리 가방을 들고 다니고 누구 자식이 어떻게 해주고 하며 속풀이를 하는데...
엄마로써도 그간 참고 참았다가 터뜨린 이야기인 것 같은데...... 엄마 입장이나 심정도 이해는 가고,
하지만 아줌마들의 그런 사치스런 분위기, 그런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좋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되게,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자책감이 , 죄책감이 많이 쌓여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분노한다는건, 죄책감의 다른 표현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게 내 경우에 대입하여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많은 경우 맞는 말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제껏 엄마에게 따박따박 말대꾸하고, 수시로 분노했었던 예전의 내 모습들이..........
사실은 뭔가 부모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많아서 , 그것의 다른 표현은 아니었을까..?
엄마는 날보고 무슨 운동권같이 화를 낸다고 그랬었다.
연어라는 책에서 그러더라. 그 , 되게 인상깊었는데, 턱큰연어가 무리를 지배하고 굉장히 권위적이고 우악스러운 기질이
있는 연어인데, 그 때 나와 있던 구절이,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기 위해 연어 무리 위에 군림하려 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속이 굉장히 나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겉으로는 그것을 위장하여 완전히 그 반대의 성향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한다는것.
나도 그런거 아니었을까? 엄마가 날 탓하는 듯한 말을 할 때, 사실 그 탓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것을 인정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으면, 쉽게 말하면 그 말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면 , 그러면 분노할 이유는 없을거다.
그래, 그럴거다. 그래서 지는 것이 이기는 거다 라는 말이 생겨났나?
내가 신입사원이란 프로그램을 보면서, 요즘 굉장히 생각하고 느끼는 바가 많은데,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내 안을 새롭게
되짚어보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된다. 저절로, 자연스럽게.
면접관의 공격적인 질문에도 유연하고 부드럽게 대처하는 지원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지난날 , 별 것 아닌 아주 사소한 말들에도 불같이 화를 냈던 내 모습, 눈알을 희번득거렸던 내 모습들이 ,
그런 어느 날의 나의 수많은 자화상들이 겹쳐오르면서 굉장히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래, 반성은 좋은 거다. 하지만 자학은 좋지 않다. 살면서 자학을 아주 하지 않기도 어렵겠지만,
적어도 나는 자학하는 횟수와 강도를 적고 약하게, 무르게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장성규에게 반한 것이, 그 진지함과 예의, 그리고 번뜩이는 재치와 끼있는 모습 (그래, 부정하지 않겠다) 이었다.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매력들이 있었는데, 굉장히 다른 사람들도 많이들 말한 것처럼,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매력들을 굉장히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십분 잘 드러내고 있는것 같다.
물론 다른 출연자들도 아마 아주 수십가지의 다양한 매력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것이 장성규의 경우에는 그 특유의 끼와 재치를 통해 더 빨리, 더 왕성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처음에 그런 모습만 볼 때는, 그냥 참 웃기네 싶었는데, 예의있는 모습과 진지하고 진솔하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완전 반해버렸어. 내 스타일입니다^^
처음엔 굉장히 김대호가 끌렸었는데. 지금도 김대호가 끌린다. ^^ 굉장히 남자로써, 이성으로써, 거부할 수 없는 마력같은 매력을
가졌달까. 푸하하. 갑자기 왜 남자로 흘러가지? 이야기가? 엥?;
그런데 김대호는, 아직 방송이라는 매체가 낯설고 카메라라는 대상이 조금 어색한 것 같다.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그 속에서도 진실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나와 동질감도 느껴지는,
그래서 그런 모습들이 참 좋아서 반했었는데, 그런데 그 비슷한 색깔만 보이니, 암래도 장성규의 그 다양한 매력앞에는,
내 안에서는 으스러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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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정리, 마무리를 좀 합세다! 내가 사실 요즘 신입사원에 대해 여기저기 떠들고 싶었어서 입이 근질, 아니 손도 근질근질했었다.
그래서 얘기하다가 엉뚱하게 신입사원, 요즘 가장 나의 머리와 마음속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두 남정네에 대해 얘기를 꺼내버렸는데.
히힛. 이제 좀 자제하기로 했다. 나는 뭔가에 빠지면, 모든 생활의 중심이 그 쪽으로 홀딱 가버리는 경향이 있는지라,
이런 내가 참 무섭다.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컨트롤을 못하고 중심을 못잡을 줄은, 좀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서, 그냥 좀 멀리하기로 했다. 잠깐 보면서 활력이나 찾아야지 , 이러고 보다가 새벽 , 차마 말하기 민망하고 부끄러운
시간들이 되어버리기에. 할튼 티비는 나에게 적이다. 그래서 사실 오늘 샘들의 이야기에 쉬이 공감하며 맞장구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고, 일부러 이 집에 들어오면서 티비도 놓지 않았으니까.
그간 나는 너무 티비에 많이 빠져 살아왔기에, 내 남은 시간들을 또 티비에 투자한다면, 그 시간들이 좀 아까울거라고 생각했다.
티비는 바보상자라며 무조건 나쁘게만 보는 것도 경직된 사고지만, 사실 나에게는 티비는 경계대상이다.
티비중독이랄까. 중독성이 강한 매체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의 그 무료함과 자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사실 티비를 아예 없애버린다거나 못보게 하는 부모님들의 교육방식에 대해 나는 사실 비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런건 있었어. 어떤 틀에 지나치게 가두어 자식을 키우는 그런 방식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할 순 있겠다고.
너무 완고하달까. 이제껏 단 한 번도 애에게 만화영화를 보여주지 않았다는게. 아마 샘들도 그런 부분을 지적한거겠지.
내가 쉽사리 판단하기가 힘들어서 섣불리 입을 안뗐다. 설사 그런 내 모습이 호감이지 않고, 그런 내 모습에 원장샘을 비롯한
다른 샘들이 어느 정도 거리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확실하지 않은 느낌으로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줄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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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를 하려다가 또 오늘 학원에서 있었던 일상의 일에 대해 이야기해버렸네. 흑.......
할튼, 지금의 나는 그렇다. 뭐 오늘 꼭 결론 안내면 어떠냐? 그치??
음, 그래, 나는, 내가 나를 지키고 지지하는 힘이 부족해서 그래서 똑같은 상황에서도 좀 더 감상적이 된다든지,
쉽게 슬픈 마음이 든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부정적 감정의 90% 이상이 사실은 내 스스로 나를 그렇게 규정하거나 어떤 틀 속에 가두거나
주위의 자극이나 변화에 내가 나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에 휩쓸려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기는 내동생이 세고, 내 동생이 진정 강한것 같다.
나는 전에도 생각한 것처럼, 겉으로는 뭔가 차갑고 강한 느낌이 있을지 몰라도 , (또 무뚝뚝하니까)
그런데 속은 여리고 상처 잘 받고, 그래서 무너지기 일쑤인 사람인것 같다.
겉으로 새빨갛기만 하고 물러터진까진 아니라도, 무른 토마토같달까?
되게, 그런 토마토가 좋잖아. 딴딴한 토마토. 땡땡하면 보기도 좋고, 자르기도 쉽고 맛도 있다.
외유내강. 뭐 외강내유라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내가 , 내 마음이 힘들고 좋지 않다고 여긴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것을 고수할 것인지, 아님 조금씩 변화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해갈것인지.
오늘 또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많은 생각을 했는데. 나와 동생의 반응을 비교하고, 물어보고 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그러면서 든 생각이, 내가 정말 착한지도 모르겠다. ㅁㅈ보다는 내가 더 착해서.
착해서 어쩌면 엄마의 그런 말들에 쉽게 마음이 아파져서 그래서 눈물까지 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또한 나는 착하지 않은것 같다. 아마 그런 부분이 컸을것이다.
눈물나는 감정이 든 건, 아마도 내 스스로에 대한 초라함 비참한 감정같은것이 있었을 것이다.
실은, 그게 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착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이나 자존감이 낮아서라고 , 그게 더 맞는지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나의 반응들이, 뭔가 속 깊고 장녀에 걸맞는, 뭔가 착한 느낌이 나는지는 몰라도.
내가 나를 돌아볼때, 나는 사실 착하지 않다. 선의와 배려심을 가지고 있긴 하다.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해를 끼치려 드는
악한 부류의 타입, 자기 잇속 잘 챙기고 빠릿빠릿한 타입은 아닌 쪽에 가까운것 같다.
설사 나에게 그런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우같거나 영특하거나 계산에 빠른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순진하고 덜렁거리고 고지식한 쪽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엄마가 여우같이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얘기했을때,
그 애들의 그런 면을 좀 본받으라고 나에게 그랬었지.
뭐 이제는 조금 변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암튼, 나는, 뭐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위해 나는 이다지도 이렇게 앞에 깔아야 되는게 많은지.. 원....
음. 나는, 어쨌든, 그래도 오늘 다시 또 한번 내린 결론이지만, 그래도 아무리 내가 엄마에게 번듯한 값비싼 백을 못사주더라도
그래서 잘난 딸이 되거나 효녀가 못된다 하더라도, 그런 딸이 되기 위해 거짓 가면을 쓰고 싶진 않다 하는 생각.
순간, 생각했었다. 그럼 어떡해야 하나. 그럼 어떡할까. 물론 지금은 사정이 그래서 더 여유가 없는 거지만,
엄마 원하는대로 이것도 저것도, 내가 소위 말하는 부모 호강시켜드릴래믄 나 어떡해야 하나 생각하면,
역시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지는 것 이겠지.
그거 아니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효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남보기에 그리 땟갈나는 직장이 아니고,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라 엄마아빠의 자랑이 못된다는거 ,
어쩌면 그 컴플렉스가, 내 안 어디가를 차지하고 있는 그 컴플렉스가 불쑥 이걸 빌미로 고개를 내밀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구나, 이제야 진짜 내 속내가 나온걸까? 그래, 이거다. 나를 지키는 힘 이런거 다 떠나서,
내 안에 있는 뿌리 깊은,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었던, 이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내 또래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열등감................. 특히 부모 앞에서 더욱 작아지는 듯한 내 모습... 아마 이런 근원적임에 가까운 이런 종류의 감정이 올라온
것은 아닐까?
널 응원할께 라든지 다 괜찮다 라는 말로도 다 위로받을 수 없는, 쉬이 회복할 수 없는 뿌리 깊은 자학감 같은 거 말야...
나는 이런 사회 속에서 꿋꿋이 떳떳하게 나를 지탱해나가는 그런 삶의 내공이나 마음적인 힘이 부족하기에,
그런 자학감이란 녀석이 내 안에 스물스물 자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었던 건 아닐까.
신입사원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소위 말하는, 그 주류대열에 끼어들기 위한 도전에, 사실 언제부턴가 내 안에
어느 정도의 편견, 아니면 흑백논리같은 그런 잣대가 있었던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다른 쪽이었고, 그와는 반대였고, 주류에 끼어들기 위한 몸부림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경멸과 무시와
비난이 있었기에 그와 반대되는 쪽을 추구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르겠고.
그런데, 물론 이런 나만의 편견적인 잣대가 여러 경우에 수시로 흔들리긴 했었다.
이걸 많이 뒤엎은게 신입사원. 이라는 프로그램.
너무나 멋졌다. 미치도록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 현직 아나운서들보다, 멋진 가운을 입고 있는 의사같은 그들보다,
의사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 하루하루가 어떻게 될 지 모르지만 자신의 존재가치를 위해 불투명한 미래속에서 구슬땀 흘리는
인턴들같이........
무엇보다, 그 속에서 그들이 어울려 내는 시너지 효과에 마음이 많이 동요됐던것 같다.
건강한 경쟁, 선의의 경쟁이라는건 저런 거구나 싶은... 나는, 나는 이제껏 내 모든 것을 걸고 무언가에 저렇게 힘을 쏟아
도전한 적이 있었던가. 젖먹던 힘까지 다 내서 내 모든 것을 올인해서, 그렇게 절실하고 절박하게,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빛나는 이상을 품으며 한 발 한 발 전진하던 때가 있었던가.
사실 그런 것에 마음을 많이 뺐겼었고. 그래서 지원자들 한명 한명이 남같지 않고. 아직 그들은 예비 아나운서이기도 하고말이다.
한 명 한 명 다 애정과 친근감이 느껴졌달까.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사실 한 명 한 명이 나와 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 같은 시대적 아픔과 또 극복과제를 등에 떠안고 살아가는 , 나와 같은 이 땅의 젊은이라는 사실.
지금 이 사회의 경쟁구도에 대해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게 사실.
그런데 이 프로를 보면서, 참 멋지구나, 아 서바이벌이라는거 이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내가 또 유독 더 좋아하는 부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쟁이라는게 무조건 나쁜게 아니고, 경쟁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해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뭐든지 그 자체로써 문제될건
없는것 같다는 생각.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 모습, 그 가운데 자기 기량을 마음껏 뽐내기 위해 , 때로는 알게모르게 실수나 잘못을 하게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는 명제 하에 서로를 보듬으며 하나가 되어가는듯한 모습.
서로 경쟁자지만, 도와줄 부분은 도와주고, 예의를 갖추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모습도,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중의
하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
어 이 말 참 좋다. 그것에 끌렸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방송이라는 매체적 특성상, 연출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비판의 여지를 남길만한 부분들도 많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완벽할순 없을테니까.
그런데 뭔가 그 속에 들어있는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용기와 진실성이 느껴졌다. 와닿았다.
그게 내 마음을 울린것 같다. 같이 울고 같이 웃었다. 그것때매 너무 내가 그 속에 빨려들어간 것 같아서 혼란스럽고 짜증도 났지만.
그리고 나는 선배 아나운서, 특히 신동호나 방현주 아나운서의 태도가 참 따스하고 좋았다.
적절하게 지원자들을 독려하는 모습이라든지, 냉철한 지적이나 평가라든지........
뭔가 연륜이 느껴지는 그들의 조언이나 태도에 배우는 부분이 있었다.
신동호 아나운서의 멘트들이 참 와닿았었는데. 그... 심사위원이 아프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면 뭔가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쁜 감정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고 했던 그 말이.......... 참 감사하다.
면접관으로써, 또 인생 선배로써 그런 말을 방송을 통해 나같은 사람도 들을 수 있게 해주어서 감사하다.
내가 면접보고 한없이 초라함과 비참함을 느꼈던 어느 날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런 나에게 다가가 할 수 있는 말이 생겼다.
객관적이고 냉철한, 하지만 따뜻한 조언이었다.
이제인이라는 탤런트를 보면서도 느낀 바가 많았는데. 과거의 어느 날의 내가 보였다.
별 것 아닌 말에 불같이 화를 냈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필요 이상으로 감정적이 된다던지, 자기 페이스를 놓치는 모습...
공사 모두의 경우에 나는 그런 행동을 했던 적이 있었다. 가족에게는 더 많았지.
이제인 그 여자가 꼭 그렇게 잘못했다거나 나같은 타입이라는 말은 아니고, 그냥 그 여자의 어떤 부분을 보고 나의 모습이 떠오른거지.
그래서 그 여자의 태도를 딱 볼 때, 아 저건 아니지 하는 비판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무시하거나 비난하진 못하겠다.
그건 , 지난 어느 날의 내 모습이므로. 그리고 이후의 어느 날의 내 모습이 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 개개인에게 느낀 것들은 제쳐두고. 그 명제 앞에서는 아직 , 잘 모르겠다.
내 모든것을 던져서 도전을 한 적이 있는가. 앞으로 그럴 만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 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것마저도 나는 아직 물음표다.
다만, 이것을 계기로 내가 새롭게 하는 생각은,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어야겠다.
아직 인생 경험 짧은 나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한다는 쓸데없는 중압감과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착각을 가지지 말자.
나는 모르는 것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리고 삶의 이런 시기를 감사하게 받아들이자.
배워야 할 것이 없어질수록 죽음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아직 내 인생 하루 시간으로 8시 반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다음엔 정확한 시간을 알아둬야지)
나이상으로 보자면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 나 시간이 많다. 결코 많은 나이도 아니다.
내 나이면 인생 끝난듯이 그럴 필요는 없다. 내 나이, 아직 더 많은 가능성을 가슴 속에 품고, 나아갈 수 있는 나이다.
더 풍부하게 느끼고 풍요롭게 사고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기이다.
이런 생각만으로 살기엔 , 세상은 그리 만만하고 녹록친 않지만, 이 생각을 내 가슴 속에 붙들어 둘 수 있는 힘을 지녀가야 한다.
어떤 쪽에서 보면 이것이 정답이고 또 어떤 쪽에서 보면 저것이 정답이라면, 어차피 정해진 답이 없다는 말.
그렇다면 나에게 유리하고 이익이 되는 쪽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답으로 삼겠다. 나에겐 이것이 정답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것에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말은. 이렇게 아직 인생경험 짧고 식견이 부족한 나이므로.
완성이 아니라 미숙함 부족함인 나이므로, 어떤 것을 규정하거나 단정내리기보다 사고의 틀을 열겠다는 소리.
이쪽 삶만 답이 아니라 저쪽 삶도 답이고. 이게 사실 현실을 세세히 들여다보면 작고 크게 나만의 벽을 쌓아놓은 것을 보게되는데,
그게 사실 그 작은 벽들을 , 그 수많은 크고 작은 엉겨붙은 실핏줄같은 이런 벽들을 무너뜨리기가 힘든것 같다.
그 한계를 잘 벗어나지 못하겠다 싶은...
무리하게 노력하진 않겠다. 어느 정도 편견이나 고정관념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련다.
내 마음이 그 쪽이 편하고 즐겁다면, 완벽하게 100% 라는 올곧음을 가지고 싶진 않다.
무엇이든 내 마음을 기준으로 생각하기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빨간색도 맞고 파란색도 맞다. 그건 다른 것이지 맞고 틀림의 문제는 아니라고 여러번 수차례 생각했었다.
하지만 맞고 틀림의 문제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분명히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회적 현실에 많은 회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누구 말대로, 어쩌면 내가 이 사회에서 그만큼 얻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해서, 내 스스로 느끼는 열등감이나 박탈감에서
기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보다 더 자유를 원하고 보다 더 행복을 원하는 그런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인것 같다.
그런데 헷갈린다. 그 자유와 행복은 지금 내가 발붙이고 있는 이 땅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인지.
소위 말하는 세속적 성공은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닌지. 그렇다면 왜 신입사원의 지원자들의 도전을 보며 가슴 뛰었는지.
사실 신입사원을 보며 내 안의 욕망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고. 또다시 나에게 자문하게 됐었다.
정말 사회적 성공이라는 빛나는 황금빛 열쇠를 움켜쥘 마음이 없는지 말이다.
자유스럽고 자연과 함께하는 평화와 행복을 지향하는 , 소박해도 괜찮다는 그런 나의 인식은 , 무의식은,
과연 정말 나의 것인지. 그것을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맞는지.
만약 이쪽 저쪽 다 나의 욕망이라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욕망은 어느 쪽일지, 나는 어느 쪽에 먼저 손을 대야 하는 것인지...
그래, 사실 욕망은 다양하고 무한하다. 과연 내가 나의 이 수많은 욕망들 중에 어떤 것을 골라서 실현해가야 하는건지.
어쩌면 늘 그것이 나에게 골칫덩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방향을 못잡고 있다는 말이 늘 이런것때문이 아니었을까.
장성규의 인생 극장의 순간을 나도 매순간, 아니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살고있는것 같다.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지................ 내앞에 수많은 기차들이 지나가는데. 나는 언제 어떤 기차에 오를것인지...
그 기차는 날 어떤 곳에 데려다 줄지 .................... 막연한 곳에 대한 공포와 같은 두려움. 팽팽한 긴장...........
그것이 두려워서 오늘도 주저, 내일도 주저..... 확실한 방향을 몰라 주저 망설........
이것을 정확하게 알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니면 너무나 내가 좋은 때만을 한없이 기다리고 있던 그 영화속 어떤 사람처럼,
나만의 빛나는 별을 가슴에 품은 채로, 그것을 품고 살아가는 이 현실에 회의를 느끼면서도 그것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나 동떨어진 별을 가슴속 한가득 넣어둔건 아닌지.
이제 이런 생각들로 복잡하고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내 모습에 순간 자책이 밀려와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처럼, 이런 고민과 고뇌가 필요하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설사 현명하지 못하고, 나중에 돌아보면 좀 더 빨리 움직일걸 하는 후회가 든다 하더라도,
나는 어차피 내 인생을 그렇게 빠른 스피드로 살아내고 싶지도 그런 능력도 부족하므로 그렇게 빨리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나태와 무료함의 관성에 길들지는 말았으면. 어쨌든 내꿈과 목표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으면.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설사 쉬더라도, 주저 앉아 쉬더라도 끝까지,
끈기라는 요소도 나에게 확실히 많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조금이나마 있는 이 끈기라는 요소를 더 키워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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