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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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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아뜨리에,.. 애송시 스크랩 반성 79 외 / 김영승
동산 추천 0 조회 104 14.05.06 15:0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반성 79 / 김영승

 

 

아내가 내 빤스를 입고 갔다. 나는 아내 빤스를
입어 본 적이 없다.
아내는 내 빤스를 입고 가 버린 것이다. 나는 빤스가 없다.
일주일 후에 아내는 내 빤스를 빨아서 갖고 왔다.
나는 빤스를 입었다.

 

 

 

 

 

 

 

 

 

반성 99 / 김영승

 

 

집을 나서는 데 옆집 새댁이 또 층계를 쓸고 있다.
다음엔 꼭 제가 한 번 쓸겠읍니다.
괜찮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쓸어야지요.
그럼 난 집에 없는 사람인가?
나는 늘 집에만 쳐박혀 있는 실업잔데
나는 문득 집에조차 없는 사람 같다.
나는 없어져 버렸다.

 

 

 

 

 

 

 

 

 

반성 100 / 김영승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반성 156 / 김영승

 

 

그 누군가가 마지못해 사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때
그는 붕어나 참새같은 것들하고 친하게 살고 있음을 더러 본다.
마아고트 폰테인을 굳이 마곳 훤턴이라고 발음하는 여자 앞에서
그 사소한 발음 때문에도 나는 엄청나게 달리 취급된다.
그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도 사실 끔찍하게 서로 다르다.
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도
살벌할 만큼 다른 의미에서 거래된다.
그들에게 잘 보여야 살 수 있다.

 

 

 

 

 

 

 

 반성 207 / 김영승

 

 

우리는 아주 배고픈 나라로 여행을 갔다
배고픔밖에 없는 나라가 그저 아득한
배고픔의 나라로 손잡고 갔다
비인도적인 처사도 야만적인 행위도 없는
황홀한 쾌락도 따분한 무료함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감사한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나눠먹은 저녁은
그날 저녁분의 배고픔이었다

 

 

 

 

 

 

 

 반성 569 / 김영승

 

 

술 마시면
家屋으로 들어가고 싶다

 

내 所有의
家屋으로 들어가고 싶다

 

正立方體가 아닌 球形의
내 家屋으로
영원한 家屋으로

 

보증금도 月貰도 없는
계약서도 영수증도 없는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수도요금도 청소요금도 없는
무엇보다 전기요금 없는
완전 투명하고 완전 불투명한
완전 경계 없고 완전 독립된
담도 없고 문도 없는

 

마을같고 도시같고 국가같은
쥐구멍같은 집
子宮같은 집 膣같은 집
집게(蟹)의 집같은 집

 

술 마시면
主人이 되고 싶다.

 

 

 

 

 

 

 

반성 743 / 김영승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왔다

 

-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이빨 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런한 손 같은

 

형이 사다 준
예쁜 소녀 같은 선풍기가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어린이 동화극에 나오는 착한 소녀 인형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아저씨 왜 그래요' '더우세요'
눈물겹도록 착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도와줄 게 있다고 왼쪽엔
타임머까지 달고
좌우로 고개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더운 여름
반 지하의 내 방
그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류는
선풍기

 

신축 교회 현장 그 공사판에서 그 머리 기름 바른 목사는
우리들 코에다 대고
까만 구두코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지시하고 있었다

 

선풍기를 발로 눌러 끄지 말자
공손하게 엎드려 두 손으로 끄자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

 

 

 

 

 

 

 

반성 740 / 김영승

 

 

어둠-컴컴한 골목
구멍가게 평상 위에 난짝 올라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옛날 돈 2만원 때문에
쫓아다니며 내 따귀를 갈기던
그 할머니가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뛰어와
내 손을 잡고 운다

 

머리가 홀랑 빠졌고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맥주까지 마시니 돈 좀 생겨지나 보지 하면서
웃는다

 

이따가 다른 친구가 올 거예요 하면서
나도 웃었다

 

 

 

 

 

 

 

반성 / 김영승 / 김영승

 

 

쓸쓸하다.
사생활이 걸레 같고 그 인간성이 개판인
어떤 유능한 탈렌트가
고결한 인품과 깊은 사랑의
성자의 역할을 할 때처럼 역겹다.

 

그리고 보통 살아가는 어리숙하고 착하고
가끔 밴댕이 소갈딱지 같기도 한 이런저런 모습의
평범한 서민 역할을 할 때처럼.

 

그보다 훨씬 똑똑하고 세련된 그가
그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도색적인 그가
수줍어한다거나
이웃에 대해서 작은 정을 베풀고
어쩌구저쩌구하는 역할을 할 때처럼.

 

각자 아버지고 어머니고 선생이고 아내고
어쨌든 이 무수한 탈렌트들과
나는 살아야 한다.

 

 

 

****************************************************

 

김영승 시인 
 

1959년 인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반성·시」 외

3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차에 실려가는 차』 『취객의 꿈』 『아름다운 폐인』

『반성』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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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이후 그를 추종하는 무리가 생겨나 이른바 ‘소크라테스학파’를

형성했는데 그중 하나가 시닉스(Cynics), 즉 견유(犬儒)학파다.

‘개처럼 살고 싶은 선비들의 모임’ 정도 되겠다.

이 모임의 대표자 격인 디오게네스가 가진 것이라곤 물 떠먹는 호박 사발뿐

이었는데, 개가 사발 없이 물을 먹는 것을 보고 사발마저 버렸다는 데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극단적인 무욕을 추구하고 세속적 가치를 냉소하는 급진주의자들이었다.

‘시니컬’(냉소적인)이라는 형용사가 그래서 생겨났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만나 탄식한 일화는

유명하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  

디오게네스는 시인이 아니었지만 시인들은 좀 디오게네스 같아도 좋겠다.

‘내가 시인이라면 디오게네스도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시인은 김영승이다.

그가 <무소유보다 더 찬란한 극빈>(나남출판·2001)이라는 시집을 낸 적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시민 김영승의 실제 생활이 어떠한지 나는 모르고 또 알 필요도 없을 텐데,

적어도 시인 김영승의 목소리는 한국시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무장무애하다.

그는 심오하게 적나라하고 정교하게 제멋대로인 시를 쓴다.

 

그의 첫 시집은 <반성>(민음사·1987)이고 가장 최근 시집은

<화창>(세계사·2008)이다.

 

특히 전자는, 약간만 과장하자면, 우리 또래 문청들에게는 거의 ‘전설’

이었고, 후자는 그의 건재와 변화를 함께 보여준 반가운 시집이었다.

그의 최근 시 한 편 덕분에 나는 며칠이 즐거웠다.

(원문의 한자들을 한글로 고친 것이 시인에게 너무 큰 결례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이제

느릿느릿 걷고 힘이 세다

 

비 온 뒤

부드러운 폐곡선 보도블록에 떨어진 등꽃이

나를 올려다보게 한다 나는

등나무 페르골라 아래

벤치에 앉아 있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등꽃이 상하로

발을 쳤고

그 휘장에 가리워

나는

비로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미사일 날아갔던 봉재산엔

보리밭은 없어졌고

애기똥풀 군락지를 지나

롤러스케이트장 공원

계단 및 노인들 아지트는

멀리서 보면 경회루 같은데

내가 그 앞에 있다

명자꽃과 등꽃과

가로등 쌍 수은등은

그 향기를

바닥에 깐다

등꽃은

바닥에서부터 지붕까지

수직으로 이어져

꼿꼿한 것이다

허공의 등나무 덩굴이

반달을 휘감는다

 

급한 일?

그런 게 어딨냐

 

(김영승, ‘흐린 날 미사일’ 전문, <문장 웹진> 2010년 6월호) 

 

 

화자는 지금 인천 연수구 동춘동 어딘가에 있다.

거기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한다. 이런 식이다.

나는 걷는다, 나는 앉는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한다, 나는 서 있다…

그리고 즐거워한다.

일단은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발견이고, 거기에 은근한 자부심이

더해지면서 ‘이런 삶은 어떤가’ 하는 제안이 된다.

이 시를 두고 ‘무위(無爲)에의 찬미’ 운운한다면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좀 따분하다.

김영승의 시는 대체로 당연했던 적이 없으며 확실히 따분했던 적이 없고

이 시도 그렇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마지막 문장을 만난다.

 

“급한 일?/ 그런 게 어딨냐.”

 

아, 이건 정말이지 멋진 마무리다. 그래, ‘무위’ 운운은 그 자체가 ‘인위’다.

그냥 저렇게 말해버리는 게 김영승이다.

매인 데가 없는 천진함, 그 천진한 눈에 비친 세상의 투명함, 근거 없어서

더 빛나는 자부심 등이 이 마지막 구절에 응축돼 있다.

 

화법은 가볍지만 질문마저 그렇진 않다.

작게는 한 개인의 생에서, 크게는 한 국가의 경영에서, 과연 무엇이

“급한 일”인지 이 시는 묻는다.

우리에게 가장 급한 일은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급한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멋진 구절을 어떤 분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분께서 디오게네스를 만난 알렉산더처럼 탄식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위정자들은 급한 일들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느라 늘 바쁘고

그것은 응당 그럴 법하지만, 때로는 넥타이 풀고 디오게네스의 통나무에

기대어서, 도대체가 ‘급하다’라는 게 뭔지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거다. 국민의 65%가 반대해도, 여당이 지방선거에 참패를 해도,

장맛비가 내려 공사장에 난리가 나도, 스님께서 소신공양을 해도,

국책사업은 멈추지를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급한 일? 그런 게 어디 있나. 

 

- 신형철 문학평론가 

 

 

 


I Don`t Wanna Talk About It - Julienne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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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5.06 21:20

    첫댓글 감사히 모셔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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