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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PQ9rEa8O8s?si=_M1skB3qk1W4SCyV
복수하시는 하나님
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2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하게 떠들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다 자만하나이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8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9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10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이 허무함을 아시느니라
요새이신 하나님
12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13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15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
17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0 율례를 빙자하고 재난을 꾸미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어울리리이까
21 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3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시편 94:1~2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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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시편 기자는 복수하시는 하나님,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교만한 자들을 벌하시길 간구합니다.
악인들은 주의 백성을 짓밟고 죽이면서도 하나님이 알지 못하신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귀와 눈을 만드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들으시며 보시기에, 악인들을 징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으로 교훈을 받는 사람은 환난을 피하고 평안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인자로 붙드시며 위로하십니다.
율례를 빙자해 재난을 꾸미는 악한 재판장이 무죄한 의인을 정죄하려 하지만, 요새이시요
피할 반석이신 하나님이 악인들의 죄악을 갚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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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시는 하나님 시편 94편 1~11절
1 오 하나님 여호와여, 복수는 주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이여, 모습을 드러내소서.
2 오 땅의 심판자여, 몸을 일으켜 교만한 사람들에게 마땅한 것으로 갚아 주소서.
3 여호와여, 악인들이 얼마나 더, 악인들이 얼마나 더 환호하겠습니까?
4 그들이 얼마나 더 험악한 말을 쏟아붓겠습니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 자랑하기에 급급하지 않습니까?
5 오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들을 갈가리 찢고 주께서 선택하신 민족을 망치고 있습니다.
6 과부들과 나그네들을 죽이고 고아들을 살해하며
7 “여호와는 보지 못한다. 야곱의 하나님은 생각하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8 백성들 가운데 너희 우둔한 사람들아, 생각해 보라. 너희 어리석은 사람들아, 얼마나 더 있어야 지혜로워지겠느냐?
9 귀를 지으신 분이 듣지 못하시겠느냐? 눈을 지으신 분이 보지 못하겠느냐?
10 이방 민족들을 훈계하시는 분이 바로잡지 않으시겠느냐? 사람을 가르치시는 분이 모르시겠느냐?
11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생각을 아시고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헛된지도 다 아십니다.
- 시편 기자는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부르며 억울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간구합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약자를 짓밟고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귀를 지으신 분으로서 들으시고, 눈을 만드신 분으로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인간의 생각까지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악인의 교만은 결국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정의로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붙들게 합니다.
악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오해하며 행동하고 있나요?
나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들으신다는 사실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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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이신 하나님의 구원 시편 94편 12~23절
12 오 여호와여, 주의 훈계를 받고 주의 법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13 주께서 그를 고통스러운 나날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악인들을 위해 구덩이를 파실 때까지 평안하게 하실 것입니다.
14 여호와께서 그 백성들을 모른 척하지 않으시고 그 택하신 민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15 그러나 심판은 다시 의를 따라갈 것이니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이 다 그것을 따를 것입니다.
16 누가 나를 위해 악인들에게 들고일어날까? 나를 위해 누가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들고일어날까?
17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내 영혼은 침묵 속에 빠졌을 것입니다.
18 내가 “내 발이 미끄러진다”라고 했더니 오 여호와여, 주의 사랑이 나를 붙드셨습니다.
19 내 마음이 복잡할 때 주의 위로가 내 영혼을 기쁘게 합니다.
20 율법을 핑계로 악한 일을 꾸미는 썩어 빠진 재판장이 어떻게 주와 상관이 있겠습니까?
21 그들은 의인들을 반대하며 함께 모이고 죄 없는 사람들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22 그러나 여호와는 내 산성이시요, 내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바위가 되셨습니다.
23 그분은 그 죄악이 그들에게 돌아가게 하시고 그 악으로 인해 그들을 끊어 내실 것입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그들을 끊어 내실 것입니다.
-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그분의 법으로 교훈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는 고난이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빚어 가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형통해 보일지라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정의는 회복됩니다. 시편 기자는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이 자신의 요새와 반석이 되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며, 마지막에는 반드시 공의로 악을 끊어 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나를 어떻게 빚어 가신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억울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요새로 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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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나쁜 기억 위탁하기
세상은 “철저하게 기억해서 복수하라.”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나쁜 기억에 대해 연구했던 미로슬라브 볼프라는 학자는 「기억의 종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피해자가 당했던 악행이 지독할수록, 그 악행은 피해자의 정체성에 더 깊이 새겨진다. 때로 그런 피해자는 자신을 특별한 악행을 겪은 사람으로 여긴다. 자신을 ‘르완다 집단 학살의 생존자’나 ‘배신당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가 당한 악행이 그의 인생을 규정하는 사건이 된 셈이다. 창의적인 업적, 우정, 과거와 현재의 즐거운 사건, 그 밖의 다른 모든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악행이 우리를 규정할 때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얼어붙어 성장이 멈춘 왜곡된 정체성’을 입는다.” 그런 사람은 나쁜 기억을 해결하고 보상받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는 건강하지 못한 것이며, 하나님 뜻이 아닙니다.
복수하라는 이 시대의 목소리를 따르지 마십시오. 이제는 나쁜 기억에 대한 해석을 하나님께 위탁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나쁜 기억에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한 것과 모든 나쁜 일에서도 선한 것을 만들어 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 삶의 억울한 경험은 결코 우리 삶을 해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신 우리 삶의 억울함을 가지고 기꺼이 십자가로 가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 한 절 묵상
94편 2절 |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심판자십니다. 피조물이 하나님 뜻을 거절하면,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무너진 공의를 다시 세우십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악을 즐기는 죄인의 결말은 무서운 심판이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둘째, 악인의 멸망은 고통당하는 의인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확인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멸망이 의인의 최종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인이 돌이켜 회개하고 구원받는 데 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저의 옳지 못한 행실도, 제가 당하는 억울함도 다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공의로 징계하시는 권능 앞에 작은 죄라도 버리기에 힘쓰게 하소서. 또한 제가 미끄러질 때 붙들어 주시고, 근심 속에 있을 때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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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4편은 악인의 불의와 억압 속에서 고통받는 의인이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보지 못한다고 여기며 교만하게 행동하지만,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들으시는 분이심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시는 분이 아니라, 때가 되면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버리지 않으시고, 그 과정을 통해 더욱 의롭게 빚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며 끝까지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시요” 시편 94편 22절
우리의 삶에는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함과 고통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 해결하려 하거나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분명히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시요.” 요새는 공격을 피하는 곳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 주는 안전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서 우리를 붙드시고 끝까지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하루,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고 하나님을 나의 요새로 삼는 믿음의 선택을 하길 소망합니다.
오늘의 말씀 명언시편 94편 1~23절
고난은 우리를 무너뜨리기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끈다. - C. S. 루이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기억하시며, 반드시 응답하신다. - 맥스 루카도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분이다. - 존 파이퍼
고난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되는 자리다. - 삶을 노래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결코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시다. - 죠지 뮬러
의인은 넘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이 붙드신다. - 마틴 루터
불의가 잠시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난다. - 존 스토트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 시편 94:23
1
시94:1-23절
본 시편은 심각한 압제속에서 하나님께 탄식을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의 배경은 이스라엘의 포로기나 포로기 이후 였을 것이라 봅니다
아마도 포로기라고 생각하면 이스라엘 압제속에서 신음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예로 에스더서에 아하수에로왕에 하만이 유대민족을 모두 죽이려는 것을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본 시편의 주제는 악인들에 의해 세상이 불의와 압제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악인들을 보호하시며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메세지입니다
본 시편은 하나님을 복수의 하나님으로 말씀합니다
1절 상반절에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여기 하나님을 복수하시는 으로
말한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복수하시는 분임을 말하는게 아니라
공의로운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씀입니다
구체적으로 악인들의 악행을 소개합니다
5-7절입니다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
악인들의 악행을 소개합니다 악인들이 이렇게 악행을
계속해서 저지를수 있는 이유는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이 이럴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것은 악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 말씀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셨습니다
악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겁이 없는 것입니다
시인은 악인들에게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말씀합니다
시인은 12절에 주의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앞서 시인은 악인의 범죄를 말했습니다
악인의 범죄 말씀하시다가 주의 교훈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둘 사이 어떤 연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악인들이 불의와 압제속에서도
인내하게 하고 기다릴수 있는 지혜와 힘을 준다는 말씀입니다
악인들이 불의와 압제속에서 본능적으로
악인들을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할수 있습니다 본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훈을 받는 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힘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또 다른 교훈을 줍니다 그 교훈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변치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8,19절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때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떄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연약할떄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인자 즉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언약 약속입니다 그래서 "내 속에 근심이 많을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근심이 많을때 오히려 주의 인자 즉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한다는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악인들을 공의로운 심판으로 심판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22절에 "여호아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입니다 본 시편은 포로기 혹은 포로기 이후라 하였습니다
우리로 치며 일본시대 때라 할수 있습니다
그속에서도 하나님이 교훈하시고 인자하심으로 위로하시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인도해 가심을
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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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시는 하나님 (94:1~7)
하나님은 의인을 위해 복수하시는 분입니다. 시편 기자가 언급하는 복수의 대상은 ‘교만한 자’(2절), ‘악인’(3절),
‘죄악을 행하는 자’(4절)입니다. 그들은 거만해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를 무시합니다.
또한 자신들의 악행을 하나님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기에 죄짓는 데 담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 등 약자를 잔인하게 해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스스로 복수하지도, 절망스러운 현실의 고난에 눌려 있지도 않습니다.
대신 그는 빛 되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이 복수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께 복수를 간구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주의 백성’이요 ‘주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5절).
하나님의 복수는 택하신 자녀를 지키시는 사랑의 증거입니다.
-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란 표현에서 하나님의 어떤 면모를 묵상하게 되나요?
복수를 내가 직접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감찰하시는 하나님 (94:8~11)
하나님 앞에 감출 수 있는 죄악은 없습니다. 자기 죄악을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여기는 사람은 가장 어리석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듣지 못하시는 소리는 없습니다.
핍박당하는 성도가 가장 위험한 때는 하나님이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절망할 때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귀와 소리를 지으셨기에 성도의 기도를 다 들으시고,
눈과 모든 보이는 것을 만드셨기에 악인의 죄악도 다 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생각이 바람같이 허무함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모든 기도를 들으시며 악인들에게는 합당한 심판을, 의인들에게는 합당한 상급을 내리십니다.
-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해 죄짓기에 담대하면 어떻게 될까요?
귀를 지으신 하나님, 눈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주의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고난의 목적 (94:12~15)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훈계를 받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의 구덩이에서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해 징벌하십니다.
그 징벌 속에서 교훈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환난의 날을 피하고 평안을 누립니다.
그러나 징벌을 받으면서도 교훈을 받을 줄 모르는 악인은 결국 멸망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자기 소유 된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성도가 가장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외면입니다. 하나님은 징벌을 받으면서도 그분을 사랑하는 성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성도에게 고난은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이 언약적 사랑 안에서 허락하신 것이며,
결국 그 고난은 성도의 삶을 정화하고 단련해 의로움에 이르게 합니다.
- 하나님이 징벌하시는 때에 훈계를 받는 성도가 복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최근에 내가 고난 속에서 배운 교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도우시는 하나님 (94:16~23)
하나님은 위기 때에 가장 큰 도움이시며 피할 반석이 되십니다.
악인들의 핍박과 공격 속에서 성도의 유일한 도움과 피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라고 외칠 때 하나님은 도움의 손길이 되셔서
고난당하는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악인의 공격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그의 발을 굳게 붙드시고,
많은 근심으로 괴로워하는 영혼을 위로해 기쁨을 얻게 하십니다.
핍박과 고난의 때에 성도가 취할 태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악의 세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악을 이기기 위한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 핍박과 고난의 때에 시편 기자가 경험한 하나님의 도우심은 무엇인가요?
나의 요새요 피할 반석이신 하나님 앞에 내가 겸손히 의뢰할 문제는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억울하고 괴로울 때 제 모든 상황을 신원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달려가게 하소서.
모든 것을 보시고 들으시며 공의로 판단해 주실 하늘 아버지가 계시니 제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겸손과 인내와 기도로 승리하게 하소서.
제게 주신 징벌과 훈계의 사건을 감사로 받으며 교훈을 얻어, 더 성숙한 믿음의 발걸음을 떼게 하소서.
고난으로 인해 마음이 괴로울 때 세상의 어떤 위로보다 주님의 위로를 기대합니다.
제 심령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소망의 길로 인도해 주소서.
3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다스리심을 기대하며 악인들에 대한
보복을 탄원하는 시편입니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우리는 악인들이 득세하고 형통한 것을 볼 때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왜 가만히 계시는지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도록 그냥 두실 거냐고 부르짖습니다.
이스라엘의 애굽 노예생활이나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도 그러해서 저들은
하나님 앞에 탄식의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보고 듣고 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악인들이 범하는 최대 실수나 믿는 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하나님이 없거나
하나님이 내 형편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악행도, 의인들의 어려운 형편도 모두 보고 듣고 아십니다.
그러므로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판결에 맡겨야 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악한 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은 지금은 화려해 보이고 힘이 있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며
사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 저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이고
꽃과 같이 쇠잔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돌이키고 돌아설 기회를 주기 위해 참고 기다려 주시는 것이지요.
그때 하나님 자녀들인 우리는 그동안 겪었던 아픔과 고통, 억울함에
대한 위로와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들이 누리는 잠깐의 형통함 때문에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고 그분의 공의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악하고 부조리한 일들을 볼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귀를 지으신 분이 들으시고 눈을 만드신 분이 보시고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실만 보며 두려워하거나 억울한 감정에 머무르지 말고 더 성숙한 신앙의 경지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악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으며 절규하던 인생 광야의 어두웠던 전반부를
지나 주님을 향한 소망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오늘 시인의 노래에서 우리는
광야를 걷는 믿음의 백성이 가져야 할 삶의 지침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복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교훈과 책망을 깨닫는 것은 복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의 구덩이에서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성도에게도 고난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들의 마지막은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 교훈을 받을 줄 아는 사람은 고통의 날에서 벗어나
그분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의인을 도우시는 하나님
경건하게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악인들의 공격과
박해를 받게 되지만 주님은 고난 속에서 그들을 붙드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의 길, 평강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악인들이 형통한
현실에 낙심하지 않는 유일한 길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려움 가운데서 당신의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고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악인들은 반드시 정의를 따라 심판하십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그분께 맡기면 하나님은 당신께서 생각하시는 가장
적절한 때에 악인들에게 보응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성경에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만 아마도 처음부터 그런 믿음을 가졌던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은 안락하고 편안한 궁전이 아니라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단련되고 만들어집니다.
성도에게 고난은 하나님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그분의 사랑에 감사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4
(시 94:1~23절)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심을 신뢰하는 삶❞
❚ 악을 악으로 갚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심판자 하나님,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려야 합니다.
✔ 상황을 이기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떠올리는 삶이어야 합니다(1~11절).
시인은 거듭해서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부르짖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원한을 갚아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공의를 다시금 분명하게 회복시켜 달라는 탄원입니다(1절). 시인은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처벌해 주시기를 간구(2절)하며 그들의 악행을 고발합니다. 악인들은 계속해서 득세하고, 거만하게 말하며, 거드름을 피웁니다(3~4절). 불법을 자행하며, 주의 백성을 짓밟고 소유를 빼앗습니다(5절).
사회적으로 약자들인 과부, 나그네, 고아들을 죽이고, 살해하는 악행을 저지릅니다(6절).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인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주가 못 본다...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다...’(7절,새번역). 그러나 ‘귀를 지어 주신 분이 들을 수 없겠느냐? 눈을 밎으신 분이 볼 수 없겠느냐?’(9절,새번역). 결국 하나님이 보시지 않으시고, 이해하지 않으신다고 떠드는 악인들의 헛된 소리는 ‘허무’(11절)할 뿐입니다.
때로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불공평한 세상의 흐름 때문에 믿음을 저버릴 때도 있습니다. 나에게 해를 가한 대상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불타오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니님께 호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믿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인생에 불과하 내 자신이 나의 힘과 방법으로 복수하려다 보면 더 큰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정당한 방법으로 해결을 해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인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그분께 나의 억울함을 그리고 분노를 맡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공의로 모든 것을 판단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떠올리며 신뢰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평안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이어야 합니다(12~15절).
시인은 잘못을 범했을 때, 주의 징벌과 교훈을 감사함으로 달게 받는 사람이 복이 있는 인생(12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징벌을 받고 교훈을 얻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환난의 날에 벗어나게 하시고 악인들을 묻을 무덤을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겠다(13절)는 것입니다. 비록 상황이 막히고 하고자 하는 일이 막혀서 곤고한 일이 쌓이지만, 우리의 심령에는 그리스도의 평안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택한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실 것(14절)입니다. 잠시 동안 정의가 사라진 듯이 인생에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엔 의가 드러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도래하게 될 것(15절)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내하며 살아가는 자에게 하늘 평안을 주십니다. 좋은 과일을 얻기까지 영양분을 모을 때가 있고, 비바람을 견뎌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일련의 모든 과정을 견디고 버틴 후에야 추수의 때가 되면 농부가 기뻐하는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분의 섭리에 순종하여 닥치는 고난에 인내하는 자들에게 참된 열매를 보게 하십니다. 그렇게 순종하면, 인내하는 자에게 힘을 주시고, 격려하시고, 피할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삶이 주는 고통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마음에 상처와 아픔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는 그 따뜻한 손길을 느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내 자신의 삶을 평안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허락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인생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6~23절).
시인은 현재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봅니다. 그리고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행악자들을 대항할까?’(16절,새번역).. 현재 시인이 당한 고난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자신을 돕지 않으셨다면 그는 죽음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17절)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낭떠러리지 곁에서 미끄러져 틀림없이 죽음에 빠지는 순간에 구원의 손길로 그를 붙잡아 주셨습니다(18절).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도 그에게 있어서 유일한 도움이요, 뒤로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19절)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오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라...’(22절)고 고백하며, 찬송합니다. 그리고 원수들을 심판(23절)하실 것입니다.
세상은 결코 내 자신을 위로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위로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내 자신의 상함을 치유하시고, 새로운 힘을 주시며, 내 삶의 희망을 회복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참되 위로를 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는 세상과 사람이 줄 수 없는 참된 위로가 되기에 어둠의 삶에서 밝은 빛의 삶으로 내 자신을 인도해 내실 것입니다. 바라기는 육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하며 인내하는 것뿐입니다. 내 인생을 위로하시는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의로우신 하나님이 공의로 모든 상황과 환경을 다스리고, 판단하실 것임을 신뢰하여 하나님께만 온전히 맡기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시며, 평안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 인내로써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시 94:1~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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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담대히 악을 행하는 것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겨 하나님의 징벌이 실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8:11) 그래서 하나님의 정의는커녕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합1:4) 그래서 교만한 마음으로 더욱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의 지혜로 지어낸 생각일 뿐,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이제 곧 주께서 일어나사 세계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시94:1~7)
그러므로 우리는 허무한 사람의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지혜로 생각해야 합니다 "너희는 생각하라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시94:8~11) 주의 말씀을 버린 자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렘8:9) 주를 버리고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세상 지혜는 헛것입니다(고전3:18~20)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말씀에서 교훈을 얻고 징벌을 받아 새로워지기 원합니다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시94:12~13) 그리하면 주께서 돌보시고 외면치 않으실 줄 믿습니다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94:14~15)
사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도 다 주의 돌보심 덕분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시94:16~17) 다 주의 위안 덕분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94:18~19)
세상을 버리고 주를 따른다 하여, 세상이 우리를 까닭 없이 박해하나, 주는 우리의 반석이시고 요새이시니 항상 돌보시고, 악인들은 끊으실 줄 믿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시94:20~23)
이제 곧 우리의 모든 원한을 풀어 주시고, 천국을 상속 받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 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단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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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94:14)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알면서도 흔들리는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의 유혹과 타협 앞에서는 그 앎이 흐릿해질 때가 많습니다.
시편 기자가 말한 것처럼, 무지함은 단순히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순간, 나는 생각보다 쉽게 나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때로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나를 설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짜로 의식하는 삶이라면, 그런 타협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신중해집니다. 그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사랑 때문입니다.
악은 거창한 모습으로만 다가오지 않고, 아주 사소한 무감각함 속에서도 시작됩니다. 나에게 다시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내 삶을 실제로 바꾸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내 욕심과 편의가 기준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이런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공의로 다스리시며 나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렇기에 다시 돌아갈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완벽해지는 길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임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하나님을 더 의식하며, 타협이 아니라 순종으로 한 걸음 내딛기를 다짐합니다.
주님, 억울한 상황과 고난 속에서도 저를 지켜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모든 것을 보고 들으시는 주님 앞에서 교만과 불신을 내려놓게 하옵소서.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저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저의 요새가 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의 기도
억울하고 괴로울 때 제 모든 상황을 신원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달려가게 하소서.
모든 것을 보시고 들으시며 공의로 판단해 주실 하늘 아버지가 계시니 제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겸손과 인내와 기도로 승리하게 하소서.
제게 주신 징벌과 훈계의 사건을 감사로 받으며 교훈을 얻어, 더 성숙한 믿음의 발걸음을 떼게 하소서.
고난으로 인해 마음이 괴로울 때 세상의 어떤 위로보다 주님의 위로를 기대합니다.
제 심령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소망의 길로 인도해 주소서.
주님,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쉽게 타협하는 제 모습을 용서해 주옵소서.
제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를 회복시켜 주시고,
작은 순간에도 주님을 의식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흔들릴 때마다 다시 주님께 돌아가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