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같은 대상도 달리 보이곤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게는 두 가지 생생한 체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통킹만 사건’의 실상을, 젊었을 때 한 독서 클럽 활동을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검증 안 된 세상 뉴스에 섣불리 반응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또 하나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요셉에게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반복해서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이 (적극적인 면에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성경과 여러 자료를 통해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골 1:12, 2:7하). 이것은 저의 구약 성경 이해에 큰 전환을 갖게 했습니다.
관련하여 한 신실한 성경 교사는 이 가나안 땅의 특징을 묘사한 신명기 8장 7-9절만으로 책 한 권 분량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풍성”(엡 3:8)을 해당 본문에 열거된 밀과 보리와 골짜기와 산 등의 특징을 빌려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면, 가나안 땅에서 보리는 “가장 먼저 익는 곡식으로서, 첫 열매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전 15:20)”라고 설명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요 6:9, 13).
성경은 최소한 세 군데에서 보리떡을 언급합니다. 먼저는 어떤 사람이 ‘첫 열매로 만든 보리떡 스무 덩이’를 엘리사에게 가져왔고, 그것을 백 명이 먹고도 남았다는 기록입니다(왕하 4:42-44). 그다음은 “둥근 보리떡 한 덩이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 천막을 쳐서 무너뜨린” 꿈에 대한 기록입니다(삿 7:13). 마지막으로 위 본문처럼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인 사건입니다.
저는 위 세 사례에서 언급된 보리떡이 동일한 영적인 의미를 갖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의 보리떡이 그냥 평범한 먹을거리가 아님은 전후 문맥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위 본문의 ‘오병이어’ 사건이 그렇습니다. 조금 찾아보니, 위 본문에 대한 해석은 크게 다음 두 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첫째, 오병이어 사건을 하나의 기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참고로 송정미 시인의 노랫말에서 이 보리떡은 (작은 아이의 헌신을 근거로 한) “내가 가진 모든 것” 혹은 “나의 삶의 전부”로 해석되었습니다.
둘째, 여기서의 보리떡을 뒤에 나오는 생명의 떡, 즉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설명하는 것입니다(35절). 특히 이 견해는 요한복음에 소개된 여러 표적들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그분의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도록” 의도적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씀의 지지를 받습니다(요 20:30-31).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사복음서에 다 기록되었지만, 오직 요한복음만 이 떡이 “보리떡’ 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을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보리’가 첫 열매이신 주님의 ‘부활’과 연관이 있다는 점과 함께 두고 보면, 여기서의 보리떡이 갖는 영적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참고로 <신약성경 회복역>은 여기의 보리떡이 “우리의 음식이 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라고 했습니다(각주 1).
위 본문에 이어서 주님은 “나(생명떡)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만일 보리떡으로 오천 명을 먹인 사건이 과거에 있었던 기적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그 떡을 먹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저는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다음 두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중국 내지 선교회를 세운 허드슨 테일러입니다. 그는 21살에 중국에 갔고, 평생 중국 내륙의 복음화에 힘쓰다가 중국에서 73세에 죽었습니다. 그가 그 당시 복음의 불모지였던 중국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후에 주님을 “먹고” “살아서” 남긴 열매는 열 두 광주리 그 이상입니다.
또 하나는 M. E. 바버(和受恩) 자매입니다. 그녀 역시 영국 선교사로 중국에 와서 주님을 먹고 감추어진 방식으로 주님을 살아내어서 워치만 니라는 한 걸출한 열매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이 한 사람을 통해 증언된 ‘보리떡’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지금도 수많은 추구하는 믿는 이들의 영적인 허기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또한 그 수혜자 중에 한 명임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아무리 가까운 제자라도 기껏해야 그분의 품에 기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요 13:23). 그러나 그분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는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셔서 보리떡의 실재로 내주하시게 되었습니다(골 1:27). 이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이 떡을 먹는 사람마다 오늘날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 보리떡의 실재이신 부활하신 주님.
당신을 먹고 당신으로 말미암아 살아서
우리 모두도 다른 이들에게 보리떡을 먹이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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