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선배 들과의 껄끄러웠던 직장생활
저녁을 먹으며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났다
집사람과 옛날 얘기를 하며 저녁을 먹었다
대학 선배들과의 껄끄러웠던 직장생활 이야기
41년 전인 1983년 봄에 있었던 일이다
입사한지 딱 1년 쯤 지난 싯점이었다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Company Car얘기다
당시 근무했던 사무실에 3개 부서가 있었다
인체의약품부, 동물약품부, 농약부
인체의약품부에 2명, 동물약품부에 2명, 농약부에 5명
그리고 재정/인사담당 1명, 지사장 1명, 기사 1명,
지사장 비서 1명, 여성보조직원 2명 모두 15명이었다
그런데 회사차는 인체약품부에 1대, 동물약품부에 1대,
농약부에 3대, 지사장 몫으로 1대 그랬다
1983년 봄에 차 3대가 추가로 배정됐다
인체약품부에 1대, 동물약품부에 1대, 재정/인사부에 1대
동물약품부에 근무했던 내게도 차가 1대 배정됐다
차 1대로 둘이 나눠타느라 불편했던 업무활동이
원활해 질거라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지사장의 차량 배정에 관한 브리핑이 끝나자 마자
농약부직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지사장의 발표는 농약부가 바쁜 봄/여름철에는
재정/인사부의 차 1대를 우선 배정받고
그래도 업무가 바쁠 때는 동물약품부에서 1대를
더 협조받으라는 것이었다
인체의약품부와 동물약품부는 계절성 영업이 아니었다
연중 고르게 업무활동을 해야하는 부서들이었다
문제는...
농약부 직원 5명이 모두 나의 대학 선배들이었다
마케팅 총괄을 맡은 선배가 10년 선배
필드로 영업을 다니는 두 선배가 9년 선배
기술부문을 맡고있던 선배가 7년 선배
그리고 다른 마케팅 요원 선배가 4년 선배
그래서...
제일 고참선배 앞으로 1대를 붙박이로 배정했다
반포에서 소공동까지 출퇴근용으로 썼다
하루종일 조선호텔 지하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나머지 두 대로 업무를 뛰려니 늘 차가 부족했다
문제는 그 중 9년 선배 한 명이 내 차를 뺏어갔다
당시 유행했던 시트카바까지 자기 멋대로 해서 끼웠다
한 달 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다녔던 대학교에서 과별로 연례 행사 들이 있었다
따로 날짜를 잡았는데 우연히 날짜기 겹친 것이었다
나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참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대학교 캠퍼스에 가서 보니
농약부서 선배들이 모두 차를 몰고 참석한 것이었다
그 중에는 내 앞으로 배정된 차도 끼어 있었다
특히 그 선배가 차창을 열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너무도 태연하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명의만 내 앞으로 배정됐을 뿐
막상 차는 엉뚱한 사람이 몰고 있었다
주말을 지나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지사장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와 관련해 한 달 간 벌어졌던 일을 보고했다
키가 197cm였던 얼굴이 하얀 미국인 지사장의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상기가 됐다. 열받았다는 얘기였다
나더러 물었다.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한 달 전에 발표했던 신차 배정 내용을
한번 더 서면으로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마도 사무실이 시끄러울 걸 미리 예상했는지
그 날 따라 지사장이 일찍 퇴근을 했다
그리고 바로 고지문이 배부됐다
정확히 한 달 전 발표했던 그 내용대로...
조금 있다가 갑자기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제일 안 쪽에 있던 농약부에서 고참 선배가 뛰쳐 나왔다
그리고 나한테 쌍욕을 퍼부우며 차 키를 집어 던졌다
늘 지하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자기 차 키였다
각오했던 일이라서 눈도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책상 위로 집어던진 차 키가 내 가슴을 때렸다
농약부 선배들이 뛰쳐 나오고 생난리가 났다
대충 마무리를 하고 반포로 갔었다
반포는 최고참선배가 살았던 아파트촌인데
거기 시장에 가면 당시 유명한 복집이 있었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를 설득하기 위한 감언이설이 이어졌다
"양놈 지사장은 지사장이고 이형은 한국사람 아니냐"
"우리가 선배고 당신은 후배 아니냐"
"차를 우리한테 양보해라" 그런 요지였다
눈도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나도 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실적이 없으면 짤리는게 외국인 회사 아니냐?"
"지사장이 배정한대로 차를 운용해 주기 바란다"
그렇게 장시간 부대끼고 난 후에
거의 억지로 내 앞으로 배정된 차 키를 받아들고
선배가 끌어다 놓은 차를 몰고 집으로 왔다
이후로 초록색깔의 포니2가 내 차가 됐다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매년 엄청나게 매출이 늘어났다
지사장도 본사에서도 너무 좋아했다
1985년 가을 지사장이 내게 물었다
"우리 회사는 인체의약품이 주력인 회사다"
"너를 키워주고 싶으니 인체의약품으로 바꿀 수 있겠냐?"
"몇 년 미국 본사에 가서 훈련을 받을 수 있겠냐?"
그렇게 해서 1986년에 미국 본사엘 갔다
마케팅, 시장조사, 영업실습 등 여러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1988년 인체의약품부 마케팅매니저로 돌아왔다
농약부서의 선배들의 행로는 조금 달랐다
내 차를 뺏어갔던 선배는 1984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빚을 다 갚았다고 신이 나서 술을 마시고
음주상태로 차를 몰고 귀가하다가 남부순환도로에서
좌회전하던 시내버스를 들이 받았다
서울대학 병원에 가서 보니 창자가 다 쏟아져 있었다
마케팅 보조를 하던 선배는 1988년 여름
지방출장을 갔다가 고혈압에 의한 지주막하 출혈로
불귀의 객이 됐다
또 다른 선배 한 명은 원래 있었던 한국농약회사로 복귀했다
기술담당을 했던 7년 선배는 몬산토라는 회사로 옮겼다
결국 전체 농약부는 다우케미칼이라는 회사로 팔렸다
지금 그 회사에는 인체의약품부와 동물약품부만 남았다
동물약품부도 몇 해 전에 독립해서 뉴욕증시에 상장됐다
나의 결론은...
선배고 후배고 사회생활에서는 경쟁이라는 것이다
선배의 후배사랑, 후배의 선배존경 이런 건 없었다
선배들도 내 차를 막무가내로 뺏어가긴 했지만
나도 내 차를 양보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실적이 없으면 바로 도태당하는게 외국인 회사의 생리다
어떻게 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실적을 올려야 한다
정말 오랫만에 41년 전 일을 떠올리며 입맛이 씁쓸하다
1988년에 타계한 4년 선배는 나와 아주 잘 지냈다
내가 본사에 있을 때, 한국으로 출장오는 본사 직원을 통해서
내게 깻잎장아찌나 김 같은 걸 보내주기도 했었다
나도 휴가나 출장을 나올 때는 그 선배와 형수를 위해
벨트와 지갑, 넥타이, 스카프 같은 걸 사서 선물했었다
그 선배가 돌아가신 후 한 5년 여
평촌에 있던 그 선배댁으로 제삿날마다 찾아 갔었다
가서 잔을 올리고 절도 하고 그랬다
나머지 선배들은 오지 않았다
이후로도 나머지 선배들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
첫댓글 치열했던 현역에서의 에피소드 잘 읽었습니다.
그 시절에 학교 선,후배 간의 기강이 살아 숨 쉬었던 때였죠.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공감이 잘 안 가겠지만 요.
글 잘 읽었습니다.
특히 제가 다녔던 대학이 좀 그랬습니다
그래도 각자 주어진 임무가 있고
주어진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그 때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애초에 한 달 제가 양보했던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요즘같으면...
감사합니다 김포인님!
참
우리나라는
선배 라고
어거지 막무가내식으로
뺏어 가는건 아니죠
무조껀 남의 꺼 뺏어 가는 인간은
선배가 아니라. 저질입니다
제 짝궁이 그러더라고요
한국에서 직장생활 할려면
자기는 못 한다고 하대요
직책이 윗사람 이라고
갈구고 위세 떨고 더러버 못한다고 해요
일본대사관 근무는
참 편하다고
일본인들은
자기 할일만 잘 하면
우대 해주고
입 하나 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닐수 있었던
직장생활 이었죠
그 시절엔 그랬습니다
지사가 생긴지는 겨우 4년이었는데
그 이전에는 모두 한국회사나
공무원을 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짬뽕이었죠
윗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똑같은 직급으로 입사를 했으니까요
오히려 84년에는 제가 2계급 특진해서
다른 이들보다 위였습니다
같은 부서의 양반도 나보다 9년 위
같은 대학선배는 아니었지만
제가 보고를 받았습니다
어렵게 나이차이를 극복하느라
쓸데없는 데 정력을 낭비했지요
감사합니다
@청솔. 남자들은
경쟁사회에서
직장생활
참 힘겨웠을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리야 맞습니다
여자들이 남자들 고생하는 거
하루치만 녹화떠서 보게되면
돈 못 쓸거라고 했던
우스개소리 잘하던
동국대 철학과 교수 테잎 생각납니다
저도 몇 년 후배인 갑에게 멸시당하고
사무실을 나와서 운전을 못하고
운전대를 붙잡고 엎드려 한없이 울었던
그 때 일이 생각나네요
영업하다 보면 참 더러운 일 많습니다
영업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리야님!
삶이란 치열하고 치열하게 제 몫을 챙기는데 있습니다 저도 제 것을 확보 한 다음에 주위 살피지 제꺼 양보란 참을 수 없었지요 그 점에선 치열하게 살았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매일이 전투요 저는 투사였던 ㅎ 다 지난 일 지금의 평온이 너무 소중합니다 청솔님 수고하셨습니다
제 밥그릇을 남이 가져가려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는 밥은 챙겨 먹어야지요
성과가 좋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엄청난 성과를 올렸습니다
선배들이 다 놀랬지요
이후에도 10년 선배는 계속 절 갈궜지요
본사로 발령받았을 땐 놀래더군요
저는 계속 위로 위로 올라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훌륭한 삶을 사셨습니다.
남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일이니
얼마나 자랑스러우세요.
아주 잘 읽었습니다.
훌륭하다는 건 과찬이시구요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게 그렇게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낮과 밤을 잊고 일했습니다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이만큼 삽니다
보람있었던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셨군요..
치열한 경쟁속에서 지금까지 잘 살아오신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맞습니다
경쟁이 아주 치열했습니다
거기서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절
다행이 성과가 좋아 살아 남았지요
감사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대학 선후배들과 부디치게 됩니다
그런데?사회에 나와서 선배들을 만나면 처음에는 기대를 걸었었지만 웬걸?
나에게 못되게 노는 선배가 가끔 있어서 놀랐습니다
아마 자기 출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거는 아닌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선배들은 특별히 잘해주거나 못해주지는 않읍디다
나는 대학 후배들에게 잘해 주었습니다
다른 직장 동료가 질투를 느낄 정도로 잘해준 후배도 있었습니다
직장이 바뀌었어서도 만나서 한잔 한 후배도 있습니다
직장의 선후배들도 경쟁 관계 인거는 맞습니다
그래도 학교 선후배들 끼리는 친하게 지내는게 좋겠지용?
충성 우하하하하하
제게는 10년 선배가 악마와 같았습니다
이후로도 저에게 아주 못되게 굴었지요
그래도 무시하고 꿋꿋하게 제 일만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승진도 하고 본사에도 가고
주력부서의 장으로 다시 오니까
그제서야 멈추더라구요
관계는 끝까지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 만난다면 따지고 싶습니다
당한만큼 퍼붓고 싶습니다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지요
그래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직 사회는 기본적으로 다른 교사들과의 경쟁 구도가 아니라서
저는 명퇴할 때까지 39년을 근무하는 동안 동료들과의 치열한 다툼의 경험이 없었습니다.
교감 승진을 코앞에 둔 교사들끼리는 근무성적을 잘 받으려고 경쟁하는 경우가 가끔 있기도 한데,
그조차 본인들끼리 조율해서 한 쪽이 미리 전근을 가든지 하는 방법으로 다툼을 피해요.
청솔님의 이 글을 읽으니 제가 모르는 세상이라서 놀랍기도 하고,
참 치열하게 살아오신 유능하신 청솔님의 인생이 새삼 또렷하게 다가서는군요.
학창 시절에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고 다 삶의 현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닌데
청솔님은 뛰어난 학업의 성취와 대단한 직업의 성취를 함께 이루셨으니 참 훌륭하시다고 늘 생각합니다.
노력한 만큼의 성과로 복된 노후 생활을 누리고 계심에 박수를 보냅니다! ^^
사회생활의 경쟁 말도 못합니다
지사에 가기 전 두 곳의 회사에서
이미 다 겪었었지요
동기도 없습니다
내가 먼저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실력과 능력 그리고 열정이 필요하지요
때로는 권모술수도 필요하구요
저도 만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선배들 입장에서 보면 당돌했겠지요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요만큼 누리고 삽니다
늘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십시오 ^^*
네 생생한 현실 입니다.
감사합니다
우선
넘 리얼하게 쓰신글로만봐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상상력이
발동하네요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또한 성실하신삶에
박수 보냅니다.👍
네 열심히 뛰었습니다
앞만 보고 살았지요
보람도 있었지만
후회되는 일도 있습니다
좀더 인생을 즐기지 못한 것
좀더 너그럽지 못했던 것
문제는
인생은 리와인드가 안된다는거죠
감사합니다
@청솔. 혹시 풀꽃지기님 계신
음악방의 청솔님
이실까요?
@크리스탈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