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밴쿠버에서 공부 할때 쓴 글입니다. 혹시 자녀분들의 언어연수에 도움이 될까해서 올립니다.
99년2월26일 금요일 오후2시30분 김해공항에서 출국
2년 전 유럽으로 여행할 때는 흥분되고 마음이 들떠있었는데 이번에 떠나는 캐나다는 마음이 착잡했다. 그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언어 연수차 해외에서 거주할 목적으로 떠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국의 IMF 문제, 알선자의 신임도, 무 비자 그리고 몸이 불편한 내가 외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도 오랫동안 유쾌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을 소요하여 캐나다 Vancouver에 도착했지만 날짜변경 선을 통과했으므로 26일 오전이었다. 하숙집에서 마중 나온 사람을 따라 나와 내 동생은 우리가 거주할 방에 들어섰지만 반가움보다는, 낯설고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이틀을 자고 나도 3류 여관에서 잔 것 같았다. 생각보다는 춥지 않았지만 흐리고 비 내리는 날이 연속이었다. 11月부터 5月까지 우기 철이라고 하는데 하루에도 수 차례 비 오고 햇빛 나는 아주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조금 짜증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다른 학생들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별다른 내색이 없었다. 하숙집 젊은 아주머니도 인정이 있었기에 마음은 편했다.
내가 사는 곳은 조금 한적한 곳으로 영어 학원에 다니려면 bus와 sea bus 그리고 sky train을 갈아타고 40분 정도의 시간을 매일 소비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루를 보낸다. 버스의 문은 한 계단 내려서야 문이 열리는데 그것을 몰라 헤맨 적이 있다. 옆에 있든 승객이 원 스텦하고 말했지만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몰라서 발만 동동 굴렀는데 그 순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또 다른 종류의 버스는 문 앞에 있는 봉을 만져야 문이 열린다. 하숙집에는 독일인, 네델란드인, 멕시코인 ,대만인 그리고 하숙집 아이들 4명과 이혼한 주인 아주머니이다. 우리들은 모두 6시경에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데 식사시간을 지켜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전에 전화를 해야한다. 만약 전화하지 않으면 저녁을 못 먹을 수도 있다. 하숙집에서는 저녁만 차려주었다. 아침이나 점심을 차려 먹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우리하숙집 사람들은 아침을 아주 간단하게 먹거나 아니면 먹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그렇게 먹었지만 점심때가 되기 전에 배고픔을 많이 느꼈다. 점심은 사 먹는데 이곳의 물가가 비싸기 때문에 빵을 사 먹는 수가 많다.
버스 같은 배인 시이 버스는 이채롭다. 타고 갈 때는 관광하는 느낌인데 내릴 때는 경주하는 말이 트랙을 출발하는 것 같다. 여러 개의 문으로 우르르 나오는 모습은 여유 없는 도시사람들 바로 그 광경이지만 지하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어느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그들이 먹기 위해 마련한 사발라면과 김치 그리고 밥을 얻어먹었더니 정말 식사한 것 같았다. 평소에는 라면도 잘 먹지 않고 김치도 몇 가닥 밖에 먹지 않았는데 그 라면과 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식사란 것이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맞을 느껴야 제대로 된 식사란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돈도 받지 않겠다는 걸 억지로 대가를 지불했지만 그 한국인 부부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주말을 즐겁게 보내라고 그러는지 일주일만에 화창하게 개인 날씨다운 날씨였다. 워터프런터역 앞에 있는 무명용사의 동상이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천사가 쓰러져 가는 병사를 안고 날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개스타운에는 레스토랑, 카페, 토산품점 등의 가게가 늘어서 있고 증기를 뿜어내는 증기시계, 개스타운을 조성시킨 개시잭 이라는 사람의 동상을 지나 차이나타운의 중산 공원을 돌아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시장에서 사 먹은 비싸지 않은 요리는 푸짐했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있는 허름한 건물의 벽에는 낙서도 많고 부랑배 같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유쾌한 곳은 못되었다. 스카이트레인 안에서 바라보는 시 외각지대의 잘 정돈된 주거지역, 새파란 잔디, 나무들 그리고 산꼭대기에 있는 하얀 눈과 푸른 하늘이 조화를 잘 이루었다. 몰이라는 곳에서 윈도우 쇼핑을 했는데 품질은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지만 가격은 비싸게 느껴졌다. 아마도 대부분의 공산품은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다니는 영어 학원은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는데 일본인과 한국인이 그리고 남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학원의 체계는 여러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는 수준이 제일 낮은 기초 반이다. 이 기초 반에는 주 강사와 보조강사가 가르치는데 보조강사는 주로 칠판에 글을 쓴다. 그래서 보고 듣고 하기 때문에 이해하기는 조금 편하다. 그렇지만 나는 수업의 반은 알고 반은 모르고 넘어간다. 강사 두 사람 다 20대 중반인데 아주 친절하고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나의 불편함을 잘 이해하여 사전에 있는 단어도 많이 찾아 주고 필기도 많이 해주었다. 이렇게 가르치는 전문 영어학원이 한국에 있었다면 나는 캐나다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훗날 내가 한국에 이런 학원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