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룸 로마눔(Foro Romano)
포룸은 고대 로마 도시의 공공광장을 말한다
, 공공 건축물에 둘러싸여 그리스의 아고라와 같이 집회장이나 시장으로 사용되었다.
카피돌리노언덕 가까이의 포룸 로마눔이 가장 오래된 포룸이다.
일반적으로 주위의 신전·교회당·도서관·목욕탕 등과 함께
도시의 중심적 시설을 형성하여 광장에 면해서 주랑(柱廊)이 둘려지고, 중앙에는 전승기념비 등이 세워졌다.
따라서 이들 시설 전체를 포룸이라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축전용·야채전용의 포룸 등 전적으로 시장으로서 사용되던 포룸도 있었다.
로마 건국의 전설적인 영웅 로물루스(Romulus)의 무덤과 감옥, 원로원, 그리고 여러 신전이 그 안이나 주변에 펼쳐져 있다.
기원전 1세기 후반 줄리어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건설하기로 계획한 이후 4세기까지 개조와 증축이 계속되었었다.
중세에는 원로원 건물 등 소수의 건물만이 사용되고 보호를 받았을 뿐 나머지 대부분의 유적은 방치되어 많이 훼손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체계적인 발굴과 정비가 이루어짐으로써 외관이 많이 복원되었다.
서쪽으로 테베레 강, 남쪽으로 팔라티노 언덕, 북쪽으로 캄피돌리오 언덕을 끼고 있는 포로 로마노 '로마인의 광장'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6세기부터 300여년에 걸쳐 고대 로마의 정치, 상업, 사법, 종교 등 로마인들의 생활 중심지였다.
하지만 끊임없는 이민족의 침략과 약탈, 라벤나로의 수도 기능 이전,
그리고 서로마 제국의 멸망 등으로 인해 포로 로마노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고, 지진, 토사 등에 파괴되어 그대로 묻혀버렸다.
이후 19세기부터 포로 로마노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재 남아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제정 시대 이후의 것이다.
포로 트라이아노 광장
넓이 170M X 60M의 포로 트라이아노는 로마에서 가장 큰 광장이다.
본래 포로 로마노와 하나로 이어져 있던 것이 1932년 도로가 개통됨에 따라 지금과 같이 분리되었다.
광장은 당시 로마에서 가장 상행위가 번성했던 곳으로, 주변에 자리한 트라이안 시장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베스타 신전
4세기에 세워진 베스타 신전은 본래 스무 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던 것으로
불과 부엌의 여신인 베스타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로마인들에게 있어 베스타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가장 오래된 의식이자 중요한 것이었다.
때문에 신전 내부에는 여성 성직자인 베스탈 6명이 지키는 성화를 항상 피워 놓았다.
어두운 밤에도 하얗고 몽환스럽게 빛나 포로 로마노의 신전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신전의 성화를 지킨 베스탈은 귀족 가문의 6세에서 10세 사이의 소녀 때 선정되어 30년간 임무를 수행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휘와 고액의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에는 결혼을 할 수 없었으며 이를 어길시 생매장을 당하기까지 했다.
카스트로와 폴룩스 신전
제우스와 헤다 사이에 탄생한 쌍둥이인 카스트로와 폴룩스를 기념하여 기원전 484년에 세워진 것으로,
기원전 12년에 일어난 화재 이후 티베리우스 황제가 복원한 것이다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 신전(산로렌초 인 미란다 성당)
141년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아내 파우스티나를 위해 세운 것으로
이들은 캄피돌리오 언덕에 있는 기마상의 주인공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부모다.
이후 11세기에 성당으로 역할이 바뀌어 산 로렌초 인 미란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1601년에 복원된 것이다.
트라이안 기둥
현재 광장에는 아우구스투스 포럼과 기둥 잔재 등이 남아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트라이안 기둥이다.
기둥은 101~102년, 105~107년
트라이아누스 황제의 두 차례 다치아(지금의 루마니아) 원정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113년에 세워진 것이다.
기둥의 약 40m의 높이로 총 17개의 돌기둥을 올려 만들어 졌다.
겉면에는 다치아 원정 전후를 배경으로 로마인들의 전쟁 준비 모습부터
전쟁이 끝나는 모습까지의 이야기를 기둥 아래서부터 나선 형태로 정교하게 새겨 놓았다.
그밖에 지고(至高)의 황제이기 이전에 카톨릭을 박해했던 트라이아누스 황제가 세운 이 기둥이
현재까지 남아 있을 수 있던 이유는, 7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가 기둥 조각에 새겨진
트라이아누스의 모습에 크게 감동하여 그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하였고,
그리스도가 이에 응답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1588년 교황 식스투스 5세는 기둥 꼭대기에 있던 트라이아누스 황제의 조각상을 성 베드로의 조각상으로 교체한다.
에밀리아 바실리카
기원전 179년 원로회에 의해 만들어진 에밀리아 바실리카는
본래 다양한 대리석 바닥과 청동 타일의 천장 그리고 열주가 있는 그리스 양식의 홀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개보수가 있었으며 당시 이곳에서는 다양한 상행위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410년 고트족이 침략했을 때 완전히 불타버렸다.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티나 신전(산로렌초 인 미란다 성당)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의 바실리카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큰 건물로 가로 65m 세로 100m에 높이는 35m에 이른다.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의 바실리카 막센티우스 시대인 308년에 축조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312년 그가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폐위 당함에 따라 설계가 변경되어 지금과 같이 대규모로 완공되었다.
이후 로마의 여느 바실리카와 같이 집무실, 재판소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7세기에는 바티칸 성당의 지붕을 만들기 위해 금으로 된 타일로 꾸며진 천장을 떼어가 더욱 황량한 모습이 되었다.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
포로 로마노 발굴 작업이 시작된 후 가장 처음으로 발견된 유적인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은
그의 황제 즉위 10주년을 기념하여 203년에 세워진 것이다.
문에는 파르티아(지금의 이란과 이라크)와 아라비아 전투(동방원정)에서 승리한 황제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본래 문 상당부에는 세베루스와 그의 두 아들 카라칼와 제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세베루스가 죽은 후 카라칼라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동생인 제타를 죽이고 문에 새겨져 있는 이름까지 지웠다.
첫댓글 즐감 합니다...
아.. 다녀오긴 했지만 사진을 많이 못 담아와서 많이 아쉬운 곳이네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
사진 잘 봤습니다. 두번째 파노라마 사진은 good. 특히 로마로 오는 길은 정말 마음에 드는 좋은 사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베스타 신전이라고 기록된 기둥 7개 짜리 신전은 사투르누스 신전이고 그 옆의 기둥 3개 짜리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신전입니다. 베스타 신전은 카스토르와 폴룩스 신전 옆에 있는 키 작은 하얀 신전입니다. 전체적으로 설명을 하는데 사진과 순서가 약간 바뀐 것같아 보이는데 다른 분들이 잘 못 이해할까봐 적습니다. 그리고 포로 트라아노 광장이라고 이름붙여주신 곳은 포로 로마노입니다. 설명적으신 것을 봐서는 이것을 모르실리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보는 분들 중에는 모르는 분도 있을 것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