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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른 영화들 어떻게 보나...
"너무 재밌다." 또는 " 2시간 40분간 푹 빠져 왔다."
이런 느낌은 아니다.
다만,
기술적 표현력이 너무 우월해서
다른 영화들이 값싸 보이고,
같은 돈 내고 보기 아까울 뿐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
작은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야 디지털의 발전으로
예전보다 수월하게 제작할 수 있겠지만
상위급의 경우엔 제작자들 허리 휘겠다.
그나마 점진적으로 조금씩 발전해 오던,
(사실, 대개는 그리 큰 변화도 아니었다.)
영화를,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그 눈높이를
일거에 수직 상승시켜버렸다.
만 얼마의 돈이면 2시간 동안
중국의 어느 비경이나 그랜드 캐년과 같은
장관을 그저 객석에 편안히 앉아 팝콘과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아이맥스 다큐처럼 직접 비경을
찍어 보여주는 것이 아닌
환상을 눈앞에 잡히듯 그려주는데는...
말 그대로 I see you 다.)
어쩌면 좋으냐...
이젠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읽어야 하나...
아바타는
기존의 영화 읽기로는 해석이 불가하다.
해석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기가 어렵다.
솔직히 내용은 지극히 진부하고,
(카메론 스타일이 누구나 익히 알만한
스토리, 그저 보통 정도의 수준이면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수준의 네러티브였지만
그래도 사람의 진을 빼놓을 만큼의 긴장감이
여타 영화들의 추종을 불허했었는데
이 영화는 그 마저 약하다.)
진부한 스토리에 더해
처음부터 영웅으로 운명지워진 사내를 통해
그 운명만큼이나 결말도 술술 풀릴 것으로
쉽게 예견될 지경이라 얼마간의 희생 앞에서도
쉽사리 그에 동화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비주얼은 스토리 자체를
논외로 두고 따로 평가할 만큼 너무도 우월해서
다른 영화들과 똑같은 기준으로 평하기 애매해진다.
모르겠다.
그의 전작들, 특히 터미네이터1편이나 타이타닉의
경우엔 극적 긴장감이 거의 벼랑 끝을 달리는 기분이었는데
이 영화는 어째 관광헬기를 타고 그랜드캐년 위를 날고 있는
기분이다.
너무도 편안하고, 그들의 위기는 그저 그 위기 끝에 터질
볼거리를 더 기대하게 하는 수준이고,
어느 순간에 매트릭스의 "그(The One)"가 되어버린 주인공으로
인해 그 위기도 곧 타개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버려
끝날 때까지 비주얼만 놓치지 않으려는 나를 깨닫게 된다.
(터미네이터 1편과 2편의 차이는 선과 악의 힘의 균형에 있다.
1편에서 쫓기는 자들은 한 없이 약하고,
너무도 평범해서 그 눈물겨운 분투에 같이 힘들어하게 되는데
2편은 힘으로는 밀리지 않는 빠방한 녀석이 우리편이라
긴장감에서는 1편만 못하다.
여기서도 주인공은 "운명적"으로 범상치 않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극적 재미는 참으로 밋밋한데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너무도 달아서
매 장면을 갤러리에 걸어두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사실, 너무도 싱거운 나머지 주인공이나 여주인공
둘 중 하나가 하직하기를 바라기 까지 했다.
나우시카 앤딩에서 나우시카가 희생하는 장면에서
눈물 찔금거렸던 기억...
제임스 호너의 음악은...
사실, 적잖이 실망이다.
그가 90년대 내놓았던 에픽 3부작,
가을의 전설, 브레이브 하트, 타이타닉, 그 이후,
점점 자신의 텍스트를 구간 반복하는 수준.
클라이막스에서 에일리언2의 네 도막이 나올 땐
살짝 당황했다.
배경 설정 음악은 아포칼립토가 떠오른다.
전반적으로는 딥 임펙트 수준으로 밋밋하며
포인트가 없다.
그저 주제곡 "I see you"의 레오나 루이스가 반가운 정도...
포카혼타스, 늑대와 춤을, 아라비아의 로렌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원령공주, 매트릭스, 에일리언2...
벼라별 영화가 다 떠오르는 진부한 주제의 영화.
그저
편안한 좌석에 앉아
별천지를 "관광"하고 온 느낌.
3부작으로 기획했단다.
어쩌면 그래서 맛보기 수준이었던
반지의 제왕1편의 전철을 밟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
카메론은 피터잭슨이 아니고,
시간 지키기를 철칙처럼 아는 스필버그는 더더욱 아니다.
그가 아바타를 만들겠다고,
100% 디지털 액터로 영화를 찍겠다고 공언한 게
12년 전이다.
아바타 2부가 언제 나올 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카메론 자신도 모른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촬영된 이후 후반 작업 중
원래 아바타 개봉은 2009년 여름이었다.
그게 겨울이 되었다.
촬영은 2007년이었다.
하나 더
터미네이터 1편의 성공 이후 바로 2편이 기획되었지만
개봉은 7년 후였다.
...
아바타...
내겐 재미있었는 지,
어쨌는 지
그저 멍하다...
끝으로...
뱀다리 하나.
어느 게 꿈이고,
어느 게 현실인지
그 경계도 모호하고,
다른 생명 시스템에 단지
"링크"를 통해 마치 영혼을 가진 독립적 생명처럼
아무런 충격 없이 느끼고 활동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수백, 수천, 수만년이 지나도록 인간 문명이
번성하게 된다면 정말로 신적인 능력을 가질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땐 굳이 남성, 여성이 필요없을 수도 있다.
개체 유지, 유전자의 보존에 그다지 애쓸 필요도 없잖은가.
이 몸뚱이가 노쇠해지면 다른 몸뚱이로 갈아타면 되니
유전자를 새로운 그릇에 채우는데
굳이 남녀 교접을 통해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게된다.
그러다 보면 성기능 자체가 퇴화해 버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보면...
외계 생명체의 신체를 아바타로 쓸 만큼의 생체 공학이라면
하반신 불수 정도야 우습지 않을까?
아이언맨만큼 세련되진 않았어도
로봇 수트를 보니 마음 먹은대로 움직일 만큼
기계 공학도 우월해 보이던데...
여튼,,,
생존과 개체 유지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이 지구상의 자연에 비해
판도라의 자연은 고등생명체가 "착하게 살기" 딱 좋은 환경이다.
누가 창조했는 지 모든 만물이 어느 고등 생명체의 노예가 될 플러그를
미리 달고 태어난다. 누구든 깃발 먼저 꽂으면 완벽하게 "플러그인"되어
하란대로 뭐든 다 한다.
물리학과를 중퇴한 카메론 영화에는
테크놀러지 못지 않게
물리학적 기초 개념이 늘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양자역학 관점에서 절대성은 약화되고,
모든 게 상대적 관점에서 알 수 없는 가능성으로만
남게 되는데 3차원 세계에서 절대적인 시간도
예외 아니다.
그렇게 태어난 게 터미네이터이고,
이 영화에서도
'에너지'가 중요한 매개 관념이 된다.
회사는 에너지를 팔아먹으려
판도라를 착취하려 들고,
판도라의 생태는 신경체계와 에너지의 연속으로
안정화 되어있고,
육신이 죽고, 그 육신이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어도
에너지가 담긴 그릇이 바뀌었을 뿐, 계속 순환함을 믿고,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자연으로부터의 위협,
이를테면 2012에서와 같은 재난은 없어보이고,
자연으로부터 편안하게 보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걸 보면...
이 영화가 환경 영화, 자연과의 교감,
순수, "인간들이여 토굴로 돌아가자-아놀드 토인비 --;"
뭐 어떻든 지간에
그런 걸 말하고자 한다하더라도
어찌보면 때론 가혹할 만큼 거칠고
때론 무심한 실제의 자연에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나라도 그 정도 자연이라면 홀딱 "나비족"이 되겠다고 하지 않을까...
뱀다리 2...
단순한 내용을 참 어렵게도 찍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들은 디지털의 산물이 아니지만
호빗으로 보인다.
갈라드리엘이나 여타 엘프들만 나오면
뽀사시해지는 엘프의 계곡은
실재하지 않지만 실제 있는 뉴질랜드 어느 계곡에서
찍어 살짝 디지털 효과 내고 뽀사시하게 뭉게면 되는데
이 영화는 캐릭터들부터 공간까지 현기증 날 만큼
디지털로 완벽하고 디테일하게 묘사해냈다.
일부러 뽀사시하게 대충 뭉게지도 않고
풀잎 하나하나 산과 나무 돌, 흙, 바람까지도
다 잡아낼 지경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못한다.
터미네이터 1편에서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카일과 사라코너가
탄 차의 앞에 붙어 창을 주먹으로 구멍내는 장면이 있다.
가짜 유리로 시험해 본 결과 만족스럽지 않자
강화유리 그대로를
아놀드 옆에 부착한
펀칭 로봇팔로 뚫었다.
어비스를 찍을 때는
쓰지 않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깊이 수백미터에 달하는 구조물에
나사의 협조를 얻어 제작한
심해 기지를 만들고 물을 가득 채우고 찍었다.
푸른 색 필터로 만족하지 못한 감독은
그 많은 물에 잉크를 풀어 심해의 느낌을 나게 했다는데...
제작비 초과, 제작 기일 초과.
결국, 해적처럼 아이템 훔쳐 졸속으로 제작한 레비아탄과
딥식스 덕에 어비스는 흥행에서 참패를 하고
제작자였던 아내, 게일 앤 허드와도 이혼하게 된다.
타이타닉 제작 역시 마찬가지.
제작비는 연일 초과되고, 당초 개봉 일정도
무한정 연기 하고,
제작자와 제작회사에
자신의 개런티까지 제작비에 쓰고 런닝 개런티를
받기로 하는 걸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스텝들은 다시는 이 감독과 작업 안한다는 소리를 할 만큼
현장에서는 완벽을 요구하는 감독 때문에 힘들었다고도 한다.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 음악 감독에게는
그만큼의 여유가 생길 지도 모르는 일.
우리 영화처럼 짧은 후반작업 중에 2~3주 동안 후루룩
만들어 내는 음악에 비해 처음 크랭크 인 할 때부터
이미 대본을 보고 작곡을 하는 그들은 그나마도
시간적 여유를 보장 받을 수 있는데다 아예 제작기간도
연장이 되니...
그래서 타이타닉 OST와 같은 걸작이 나왔나 보다.
아바타에서는...
많이 아쉽다.
그래도
주제곡 "I see you"는 좋다.
각설하고,
이 영화가
비교적 빈약한 스토리, 진부한 주제에도
이렇듯 호평을 받는 건
기존의 평면적 영화 보기가 아닌
입체적이고 체험적인 영화 보기라는
"신상"을 내놓았고,
비주얼 면에서 그만큼의, 그 이상의
만족을 끌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아마추어 평론가의 말처럼
로버트 저맥키스가 불쌍해 보인다.
나름의 시스템에서는 독보적 입지를 다졌다 생각했고,
아바타 이전에 선보인 3D 영화에서도
자신감을 보였건만...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저맥키스나 그 전 감독들이 창조한 3D 그래픽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눈과 표정이 시체 같아서...
시종 3D 캐릭터라는 걸 확인하면서 보게 되는데
아바타는 쉬운 걸 너무 어렵게 찍은 거 아닌가 할 만큼
자연스러웠고,
그간 자신만의 새로운 "우주"를 창조한 감독들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섬세한 우주를 창조했다는 생각이 든다.
난생 처음 진기한 체험을 하고 나니까
일어설 때는 도대체 내가 영화를 본건가
뭘 한건가 잠깐 의식이 헷갈리기까지 했다.
2D로도 봐야겠고, 아이맥스로도 확인해 봐야겠는데...
이 녀석 다 보려면 왠만한 뮤지컬 값 나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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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 읽고 나니 머리가.... ㅡㅡ;;; 아무튼 21세기초 기념비적인 영화를 직접 봤다는데서 만족
=^ㅅ^=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크게 감동 받은 것도, 재미를 느꼈던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봤다는 데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카메론의 전작들을 다시 봤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보면 당시엔 대단했던 효과들이 굉장히 어설퍼요.^^ 지금의 기술력이면 굳이 실물 효과 없어도 오로지 CG만으로도 실감나는 영상을 만들어내는데... 타이타닉을 지금 다시 만든다면 어떨까요?^^ 한때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가장 저렴하게 가질 수 있었던 비디오를 모은 적이 있어요. 1000개 정도 모았을 즈음, DVD로 갈아탔는데 블루레이를 보는 지금은 DVD도 의미없어졌어요^^; 변해가는 것들... 가지면 뭐하겠어요?^^; Make each day cou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