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청년 시절에는 조금은 특이하게 달궈진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한 예로 성경을 읽다가 ‘산돌’과 ‘누림’이라는 단어가 너무 좋아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산돌’이로, 딸을 낳으면 ‘누림’이로 이름을 짓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결국 딸만 낳아서 주님을 잘 누리라고 이름을 누림(Joy)으로 짓긴 했습니다. 만일 아들도 낳았다면 그는 ‘김산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름에 저는 만족했겠지만 정작 아이 본인은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놀림거리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 당시 ‘산돌’(living stone)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에 꽂혔던 것은 바로 다음 구절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산돌은 사람 이름으로서는 좀 어색해도 그 단어가 갖는 깊은 영적 의미는 두고두고 음미할 만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인 집으로 건축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인 희생제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 체계가 됩니다(벧전 2:5).
아침에 위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다음 세 항목이 더 깊이 이해되고 누려졌습니다. 사실 이 세 가지가 모든 신약 성도들의 정체성이자 미래이자 어떤 섬김의 길을 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살아 있는 돌들”: 사람은 본래 흙입니다. 따라서 죽으면 누구나 흙으로 돌아갑니다(창 3:19). 이런 흙인 우리가 살아 있는 돌이 되는 유일한 길은 산돌(a living stone)의 원조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와 하나 되시는 것입니다(벧전 2:4). 신약 성도들은 바로 이런 이들입니다. 관련하여 주님은 흙인 시몬에게 “그대가 게바(조약돌)라 불릴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된 사람의 영’ 부분만 실제로 살아 있는 돌입니다(3:6). 하지만 성경은 우리의 생각이 이 살아 있는 돌인 연합된 영에 두어질 때는 우리 혼도 살아 있는 돌(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롬 8:6).
“영적인 집으로 건축됨”: 이 말씀은 예수님 믿으면 장차 어떻게 되는가? 혹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해당합니다. 많은 이들은 예수 믿고 죽으면 어떤 ‘장소’에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신앙 생활의 목표가 위 본문처럼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영적인 집”, 즉 “산돌들”인 우리가 ‘하나님이 거주하실 집’으로 건축되는 것임을 놓치는 경향이 있습니다(엡 2:21-22).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지금 자신이 신앙 생활의 목표를 잃었다는 느낌이 있는 분들은 바로 이 근본적인 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회복역 성경 해당 각주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에 대해 갖고 계신 목표는 살아 있는 돌들-따로 떨어져 있거나 흩어진 돌들도 아니고, 다만 한 무더기로 쌓여 있는 돌들도 아닌, 서로 건축된 돌들-로 건축된 집을 얻으시는 것이다”(각주 3).
“거룩한 제사장 체계가 됨”: 저는 이 대목에서 오늘날 이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다소 왜곡되어 있는 점이 눌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먼저 제사장은 구약에서 성막(성전)을 돌보는 직무였고, 아론과 그의 후손만 감당해 온 터라 구별된 성직이라는 인상을 주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식은 로마 천주교의 신부 혹은 개신교의 목사 제도로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마르틴 루터가 <독일 기독교 귀족들에게 고함>이란 책에서 위 본문 등을 근거로 신앙인은 모두 동일하게 제사장이라는 소위 만인 제사장설을 천명함으로 일단 이론적으로는 성경의 바른 가르침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여전히 신학 교육을 받고 안수 받은 경우에만 목사로 불리다 보니, 그렇지 못한 이들을 일컫는 소위 ‘평신도’라는 개념도 공존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생활 속에 적용하려고 할 때 다소 혼선을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위 본문을 소화하고 바르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1) 우선 성경에 없는 평신도라는 용어를 자신부터 쓰지 말아야 합니다. 2) 신학 교육과 관계없이 자신이 구약의 제사장에 버금가는 단체적인 제사장 무리, 즉 제사장 체계(히에라튜마(2406), 모든 영어 성경은 priesthood로 번역함) 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거처인 영적인 집으로 지어지도록 매일의 삶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는 생명의 성숙의 길을 가야 합니다. 4) 영적인 희생제물들, 즉 (1) 구약의 각종 제물들의 실재이신 그리스도(요 1:29), (2) 복음 전파로 구원받은 죄인들(롬 15:16), (3) 우리의 몸(롬 12:1), (4) 우리의 찬양(히 13:15), (5)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여러분이 준 것”(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전에는 <평신도를 깨운다>였다면, 이제는 우리 모두가 ‘제사장 체계’에 속했음을 서로에게 일깨워 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 주 예수님, 우리 모두가 제사장 무리임을 더 깊이 자각하게 하옵소서.
제사장 체계의 실재 안에서 발견되게 하소서.
또한 날마다 살아 있는 돌들로서 당신의 거처로 지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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