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이는 종교 기독교와 이슬람교 이복형제인가 ?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는 유대교도 포함한다.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는 고사(故事)는 미국이 철수한 아프카니스탄을 두고
만들어진 말 같다.
※목불인견(目不忍見)-눈으로 차마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슬프고 처참한 광경을 말한다.
명(明)나라 주국정(朱國禎)이 쓴 책 “용당소품(涌幢小品)”의 “단대기(丹臺記)”에
다음 구절이 나온다.
又導觀諸獄,景象甚慘,目不忍視,狼狽而走
-사람을 데려가 지옥을 보게 하니 광경이 참혹하여 눈뜨고 차마 볼 수 없어
서둘러 달아났다.
이처럼 목불인견(目不忍見)은 눈 뜨고 차마 볼 수 없는 비참하고 형용할 수 없는
참혹한 광경을 표현한 말이다.
TV나 신문에서 보지만 미군이 철수한 아프카니스탄에서 텔레반의 만행은
아프카니스탄 국민은 사람취급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는 세상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없다.
아비규환 지옥이다.
대한민국도 6.25 한국 전쟁 때 북한 흥남에서 미국 수송선에 북한피난민을 배에 싣는
사진을 볼 수 있다.
그때도 땅위의 지옥이었다.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는 “종교”의 이름이 사람을 동물과 초목이나 벌레와 다름없는
취급을 하고 있다.
아무리 남의 나라 문제지만 세계는 아프카니스탄 사태를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확실히 말한다 !
인간사회에서 종교가 없으면 “전쟁”이란 단어가 필요 없는 평화의 세상일 것이다.
어느 종교든 악한 부분을 숨기고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솔깃하게 하는 종교 선전은
이 또한 죄악이다.
필자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독서 차원에서 기독교 성경 66권을 몇 번 읽었다.
불교 경전이나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하여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오는 과정의
책도 읽어 보았다.
세계 제 1차,2차 대전을 제외하고 나머지 전쟁,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쟁은
전부가 종교를 바탕에 둔 전쟁이다.
필자가 읽은 종교 전쟁사를 여기에 다 소개 할 수는 없다.
그중에 몇 가지 제목만 소개하여 본다.
▲유럽 중심의 세계대전급 종교 전쟁
전쟁명-30년 전쟁(사무엘 폰 푸펜도르프가 17세기에 처음으로 이 표현을 씀)
전쟁시기-1618 5월 23일 ~ 1648년 5월 15일
전쟁지역-유럽 중 독일 지역
전쟁목적-종교를 통한 패권 다툼
교전국-개신교 측 국가와 가톨릭 측 국가
사망인원-민간인 포함 800만 명 사망
▲십자군전쟁
십자군전쟁은 기독교의 예루살렘 성지탈환이 목표였다.
622년 무함마드가 이슬람교을 전파하며 사라센(Saracen)이 유럽을 향해 물밀 듯이
처들어왔다.
※사라센(Saracen)-기독교 십자군 시대에, 유럽인이 이슬람교도를 부르던 말.
이스라엘에 있는 예루살렘 성지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만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예수를 그냥 보통사람
선지자중의 한사람으로 보고 있다.
두 종교간 에는 예루살렘 쟁탈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십자군전쟁은 기독교의 예루살렘 탈환작전이다.
숫자로 표현 할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건국이 중동전쟁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에서 비롯된 종교 전쟁인 동시에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과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인 국가 사이의
민족전쟁이기도 하다.
지금 이스라엘 국가인 “가나안(Canaan)”은 “낮은 땅”이라는 뜻의 팔레스타인이 사는
땅이었다.
그런데 구약성경 창세기 12장 7절, 출애굽기 6장 4절, 신명기 11장 24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준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세운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이 마치 한국처럼 국토가 남북으로
갈라져 북쪽은 “북이스라엘” 남쪽 “남유다”로 분단되었다가 통치를 잘못하여
앗시리아, 바빌론, 로마에 나라를 빼앗겨 2천년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집시(Gipsy)신세인 디아스포라(Diaspora이산(離散)유대인) 신세가 되었다.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나라 없는 설음이었다.
그러다가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Balfou)가 이스라엘 민족국가 건국을 지지하는
“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하였다.
이에따라 이스라엘 유량민족은 시오니즘(Zionism)운동으로 팔레스타인에 모여들어
1948년 5월14일 전격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보다 3개월 앞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대교 이스라엘과 이슬람교 아랍국가들간에 종교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1572년 8월 24일 일요일 새벽
프랑스의 구교(舊敎)인 가톨릭과 신교(新敎-기독교) 위그노(Huguenot)의 세력다툼으로
10만이 넘게 죽었다
※위그노(Huguenot)-프랑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기독교) 칼뱅(Calvin, Jean)파
교도에 대한 호칭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Church)-16세기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다양한
그리스도교 분파의 총칭
▲마녀재판
12세기 말 그리스도 교회는 이단(異端)문제에 대해서 제도를 확립시켰다.
마녀 능력을 가진 여성의 요술행위는 이단 행위로 보았다.
이런 중에서 1258년, 1320년, 로마교황은 이단 심문의 범위 내에서 마녀고발을
정당화하는 교서를 발한다.
마녀가 아니라도 죽이고 싶으면 “마녀”라고 이름을 붙여 죽였다
10만 명이 고소를 당하고 5만 명이 죽었다.
▲우리는 흔히 세계 4대 성인(聖人)을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예수라 한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위대한 사상가-소크라테스-석가모니- 공자-예수라는 책을 썼다.
우리가 세계4대 성인(聖人)이라고 하는 것은 이 책에서 유래되었다.
이 저서에서
“불교는 종교(宗敎)라는 이름으로 이교도(異敎徒) 탄압, 종교재판,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유일한 종교”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 반드시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실제로 불교역사에는
기독교나 이슬람처럼 교리상의 이유 등으로 종교전쟁을 벌린 예가 없다.
불교에는 “법난(法難)”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전쟁이 아니라 국가의 법이 불교를 탄압(彈壓)한 내용이다.
중국 불교에 “회창법난(會昌法難842~845)”이 있다.
회창법난(會昌法難842~845)은
삼무일종(三武一宗)의 법난 가운데 처음의 법난인 회창연간(會昌年間)의 법난 때의 일이다.
중국 당나라 제15대 황제 무종(武宗)이 북방에 있는 흉노족을 정벌하러 가는 도중
큰절에서 잠시 병사들을 쉬게 하였는데, 그때 병사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사찰에 갔다가
절에서 주는 술을 얻어먹고, 취하여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노하여 절을 폐허로
만들었던 것이다
무종(武宗)은 4년간에 걸쳐 불교를 탄압하여 4만여 절이 폐쇄되고 26만 명의 승려가
가정으로 환속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보통 기독교(유대교 포함)와 이슬람교를 이복형제간 종교라 한다.
그 이유는 아래 구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경 내용이 길기 때문이 필자가 간단하게 줄여서 요점만 소개 한다.
△구약성경 창세기 16장
1절-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출산을 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지 못한 사라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급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다.
2절-정부인 사라가 아브람에게 말하기를 후사를 얻기 위해 사라의 몸종인 이집트 하녀
사갈을 아브라함의 잠자리에 넣어 준다.
4절-아브라함이 하녀인 하갈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는다.
아들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다.
5절-여종 하갈이 아들을 낳자 태도가 바뀌어 본처인 사라를 무시하였다
△구약성경 창세기 21장
2절-본처인 사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80세에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3절- 아브라함은 본처인 사라가 낳은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 지었다.
10절-본처인 사라가 아들을 낳으니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여종인 하갈이 낳은
아들 이스마엘과 하갈을 모래사막으로 내 쫓았다.
13절-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절-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 자식과 함께 사막으로 내 쫓았다
15-가죽부대의 물과 식량이 떨어졌다.
16절-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은 크게 울며 이를 갈고 다짐하였다.
20절-야훼 하나님이 이스마엘에게 활을 배우게 하고 나라를 세우도록 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어떻게 다른가.
△유대교-구약성경을 중심으로 야훼 하나님을 믿는 종교로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남자 없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인간의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후 부활하였다.
기독교는 삼위일체라 하여 하나님 예수 성령을 하나의 하나님이라 하여
반드시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하였다.
(참고-가톨릭의 교황은 예수를 대신하고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싸움이
여기에 있다. 초대 교황을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라 하지만 개신교는 인정 안한다)
△이슬람교-이슬람의 창시자는 무함마드다.
사우디의 메카와 메디나 지역을 통일해 이슬람 국가를 세웠다.
무함마드에게는 후사(아들)가 없었다.
632년 무함마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무함마드의 사촌인 알리가 있었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신하들은 논의 끝에 59세의 덕망 높은 아부 바크르를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선출했다
32세에 불과했던 사촌동생인 알리는 후계자가 되지 못했다
아부 바크르가 죽자,
2대 후계자는 우마르와
3대 후계자 우스만을 같은 방식으로 선출했다.
무하마드의 사촌 동생 알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무함마드의 가문이 권력을 잡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
결국 우스만은 암살당했다
그리고 사촌동생 알리가 4번째 후계자가 되었다.
그런데 큰 비극이 생겼다.
우스만의 가문 사람들이 알리를 암살의 배후로 지목하고, 알리를 암살했다.
알리의 가족을 모두 처형했다.
이슬람교는 “시아파”와 “순이파”로 갈라졌다
알리를 따르는 자들을 “시아파”라한다.
시아파들은 이라크 지역으로 쫓겨나 핍박받았다.
시아파는 1501년 이란의 사파비드 왕조가 시아파를 국교로 삼을 때까지 거의 800년
동안 억압받았다.
그러면서 시아파는 정통 이슬람교의 성직자 제도를 만들었다.
반면, 수니파에는 성직자제도가 없다
아무나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할 수 있다
이슬람교의 정통파는 시아파를 말한다.
사우디는 시아파 중심의 국가다
이란도 이슬람혁명을 통해 “시아파 이슬람공화국”으로 출범했다
이라크도 국민 65%가 믿는 시아파의 나라가 됐다
시리아 정부도 시아파의 분파다
중동의 대부분 나라는 시아파 국가다
시리아 정부도 시아파의 분파다.
중동에서 시아파의 존재감이 커지자, 끔찍한 테러 세력이 나타났다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정치조직이이 테러집단으로 변한 것이다
탈레반(Taliban)은 수니파의 다른 이름이다.
일명 IS(이슬람국가)라 한다.
세계는 이슬람 테러 집단을 IS. 탈레반(Taliban)이라 부른다
수니파는 이라크·시리아 정부 등을 상대로 무참한 테러를 벌렸다
시아파 세력이 점차 강해지면서, 사우디가 이란과 주도권 마찰을 빚고
IS(탈레반)가 날뛰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아프카니스탄을 쑥대밭을 만들고 있는 것이 순이파인 탈레반이다.
이 글의 끝을 맺을까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구약성경의 이스마엘 후손이 세운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친자식 이삭은 유대교가 되고
첩의 자식 이스마엘은 이슬람교를 세워서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배다른 형제의 종교”라 하고 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그렇다고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관계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 구약성경 39권은
사해(死海) 서안(西岸)의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한
사해문서(死海文書Dead Sea Scrolls)가 구약성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성경 66권은 (393~419) 카르타고 공의회서 최종 결정되었다
사해문서(死海文書Dead Sea Scrolls)나 고증되지 않은 미 정리 성경 자료가 많기 때문에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배다른 형제인지 아닌지 속단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종교가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데
오히려 기독교 이슬람 종교가 인간세상을 전쟁으로 불행하게 만드니 종교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구약 신약 성경을 읽어보면 온통 사람 죽이는 내용들이 많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