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프라하-구 시가지-구 시청광장
1945년에는 나치 독일에 의해 광장 앞의 구 시청사가 크게 훼손되었다.
1948년에는 킨스키 궁전 발코니에서 공산당 정권이 선언되었고,
1968년 8월에는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 이후 바르샤바 조약군과 소련군대가 탱크를 앞세우고 점령을 하였다.
그리스도의 12사도가 시간을 알려주는 천문시계가 있는 구 시청 사, 종교개혁 당시 후스파가 모이던 틴 교회가 있다.
틴 성당 건너편엔 킨스키 백작이 살던 골즈킨스키 궁전이 있다.
분홍색과 흰색을 사용한 화려한 로코코 외관을 가진 건물은...
국립미술관의 부속건물로 현대미술을 전시하고 있으며 프란츠 카프카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이 곳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아르누보 양식까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광장 주변에는 크리스탈 가게가 즐비하고, 광장 안에선 기념 음악회와, 거리의 악사들의 연주 등 다채롭고 재미있는 행사가 벌어진다.
12세기부터 생긴 이후 많은 역사적 사건의 증거들을 간직하고 있다.
바로크의 니콜라스 성당이 있으며 로코코의 킨스키 궁전엔 국립 그래픽을 전시관이 있다.
돌로 된 종이 있는 집은 14세기 프라하 시의 궁전이었다.
지금은 시립 전시관, 콘서트 홀이 있어 매년 프라하 봄 페스티벌 때 연주가 있다.
얀 후스 동상
이 동상은 순교 500주년을 맞이하여 1915년에 세워진 것이다.
얀 후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카를 대학 총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모라비아 지역을 토지 80%가 성직자들의 손에 있었고, 많은 부정부패를 저지르면서 부를 축척해 나갔다.
영국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얀 후스는 이것을 보다 못해 기독교 개혁을 외쳤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 속에 있는 것이지 교황의 입 속에 있지 않다.”
재산을 농민들에게 돌려주라고 비판하다가 교황 요한 23세에게 파문 당하고 콘스탄트 공회정에 소환되었다.
콘스탄트 공회정은 후스에게 잘못했다고 인정하면 풀어주겠다고 했지만 후스는 거절했다.
그 뒤 화형을 선고 받고 프라하 구 시청에서 화형을 당한 체코의 신학자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농민들이 일어나 기독교 군대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형편없는 무기로 무장한 농민들은 7차 십자군 원정까지 갔던 십자군들을 이기며 승승 장구를 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군대에게 응원을 요청하여 전쟁을 하게 된다.
결국 프라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전환점인 "하얀산(비호호라)전투"에서 오스트리아 황제 군에게 패배한다.
그 결과 후스파 개혁 지도자 27명이1621년 6월 21일 이 광장에서 단두대에 처형 당했다.
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시청사 건물 바로 옆 바닥에 27개의 하얀색 십자가를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얀 후스 동상 대좌에는 "진실을 사랑하고,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을 지켜라" 라고 새겨져 있다
내부엔 덴마크 천문학자 티코브라헤(1546-1601)가 잠들어 있다.
틴 성당
Church of Our Lady before Tyn (Tynsky chram)틴 앞에 성모 마리아 성당.
동화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이 유서 깊은 교회의 장엄한 쌍둥이 첨탑은 구 시청 광장을 더욱 아릅답게 만들고 있다.
비투스 성당 다음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뒤어난 외관을 가지고 있는 고딕 성당은 14세기에서 16세기 까지 만들었다.
80m 높이의 첨탑을 가지고 있고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15세기 초반부터 1620년까지 이곳은 프라하의 주요 후스 파 교회였다.
당시엔 성배모양 금동장식을 정면 윗부분에 했었지만
후스파와의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황제군인이 이긴 이후에 성배를 녹여 성모마리아 상을 만들어 놓았다.
石 종이 있는 집
House At the Stone Bell(석종이 있는 집)
틴 성당 좌측에 있는 건물이다. 그림 전시관 용도로 만들었던 네오 르네상스 건물은 19세기 말에 만들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두 차례 국무회의가 열렸으며 1946년에 체코 오케스트라를 설립한 장소이다.
메인 홀인 드보르작 홀은 매년 "프라하 봄 음악 페스티발"이 열리는 곳 중 하나로 유명하다.
성 니콜라스 교회,
오른쪽으로 파리거리가 있다.
12세기부터 이곳에 교회가 있었다.
14세기 틴 교회가 있기 전까지는 구시가지 교구 교회이자 회합장소였다.
배산 전투 이후에 베네딕트 수도원의 일부가 되었었다.
지금의 모습은 18세기(1735)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18세기말(1781) 합스브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인
황제 요세프 2세는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을 하지 않는 수도원은 모두 폐쇄할 것을 명령하자 급속히 황폐해 졌다.
1차 세계 대전 당시엔 프라하의 주둔군의 부대로 쓰였다.
당시 주둔군의 대령은 예술가들을 차출하여 이 교회를 복원 했다.
본당 회중석에는 왕관 모양의 아주 큰 샹들리에가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성니콜라스 교회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후스파 교회에 양도 되었다.
여름철이면 이곳에서 음악회가 열린다.
첫댓글 프라하...잘 보고 갑니다.......
*^^*
와~~~넘 이뻐요...언제나 또 가볼까...^^*
사진 정말 멋지게 찍으셨네요. 사진보니 절로 가보고 싶네요.
사진 잘 봤습니다. 또 가고 싶은 ㅍ ㄹ ㅎ
프라하...또 가고프네요~~~
프라하 저도 다시 가고 싶네요. 유럽여행중 가장 생각나고 또다시 가고 싶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