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한강 일성 리조트와 신륵사 관광단지(2018.12.21.~24 일정 가족여행).
남한강 일성리조트는 경기도 여주시 신륵로 5 에 위치하며1989,8월 설립되어
1999년12월에 개관하였으며 167개의 객실과 지하 4층,지상 13층 규모로
파밀리아 스카이 라운지,연회장,한식당,편의점,천년 사우나, 이,미용소, 노래방과 주점을 갖춘
종합 레져타운으로 한강의 상류인 남한강과 주변 신륵사 관광단지를 이웃하고 있다.
여주의 맛집 홍원 막국수집.
도자기 공예 전시장.
천년고찰 신륵사와 성군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청송심씨)의 합장릉.
명성황후 생가.전통공예와 불교미술의 요람인 목아 박물관이
10분 거리에 있는 곳이며 수도권과 접근성이 뛰어난 곳이다.
남한강은 한강의 상류 를 이루는 곳으로 금강산에서 발원해 오는 북한강과
강원도 삼척 대덕산에서 발원해오는 남한강이 양평 양수리(두물머리 )에서
합류해 한강을 이루는 곳이다.
남한강 일성 콘도 리조트.
성탄 전야 콘도 여직원들이 베푸는 투숫객 선물.
성탄 이밴트로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증여.
그림도구와 학용품을 선물받는 손녀.
2. 남한강변 신륵사 강월헌과 3층 석탑.
신륵(神勒)이란 이름은 고려 우왕때 전설에 기인하며
신륵사 인근 마암이라는 바위에서 용마(龍馬)가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자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신륵)을 만들어 용마를 다스렸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예로부터 이 일대에는 무속신앙이나 사찰건립을 반대한 지역민의
저항이 컷지만 신륵을 만든후 잠잠하여 젔다고 한다.
또한 여주는 광주 이씨, 여주 민씨의 명문 사대부 가문의 고장이며
조선 왕비 8명을 배출한곳이기도 하다.
봉미산 신륵사 일주문.
진리는 둘이 아니다라는 불이문
멀리보이는 남한강변.
아홉마리의 용이 나왔다는 구룔루.
강변 절벽과 나옹화상이 입적한 강월헌과 삼층석탑.
그림같은 남한강의 풍광과 다층 전탑(보물226호)이 가는 길손을 멈추게한다.
고색찬연한 극락보전(경기도유형문화재128호). 그뒤의 조사당(보물180호)은
나옹화상의 스승인 지공대사와 제자인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신 정통사찰 사당이다.
그 북쪽 나옹화상의 무덤엔 석종비와 석등이 보물 228호와 229호이다.
수도권에서 지근거리이며 남한강에 비춰진 절벽과 물그림자.
고찰의 고즈넉함이 베여있는 곳이다.
벽돌로 쌓아만든 전탑
600년의 보호수 은행나무.
강변 삼층 석탑.
나옹화상이 입적한 강헌루와 석탑.
입구 나룻터엔 황포돛배의 수륙관광도 이색볼거리이다.
백영호씨가 곡을 붙이고 이미자씨가 불러서 히트한 황포돛대와는 전혀 다른곳이었다.
신륵사는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며
산중사찰이 아닌 강변에 위치한 신라시대 사찰임을 알수있었다.
신라 진평왕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나옹화상이 이곳에서 입적후
부도를 세우고 크게 흥하였다고 하며 나옹선사는 우리 경북 영덕 창수면에서
태어나신 대법사이시고 청산은 나를 보고(해탈시)를 쓰신 고승입니다.
극릭 보전
다층 석탑.
지공.나옹.무학대사 영정을 모신 조사당.
나옹화상의 부도.
3. 세종대왕릉과 효종영릉.
세종은 조선 4대왕으로 1418~1450. 승하하실때까지
32년을 재위하셨다고 한다.
조선3대임금이신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3째 아들로 태어나 심온의 딸(소헌왕후 청송심씨)과
결혼후 양녕대군이 패위됨에 따라 왕위에 오르고
우리나라 군왕중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효종왕릉 입구.
효종왕릉의 홍살문과 신로.
북쪽이 효종완릉 앞쪽이 부인 인선왕후릉.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청송심씨) 합장릉.
능역 입구엔 홍살문이 있고 봉분 둘래엔 12면으로 꾸민 돌 난간,
앞에는 합장임을 알수있는 2개의 혼유석과 장명을 놓고 좌우엔 망주석
봉분주변 석양과 석호 2쌍씩 8마리가 능을 수호하는 형상이고
앞에는 문인석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그뒤엔 석마를 배치하였다.
정문엔 유물전시관인 세종전이 있고 어진과 당시 발명품인 과학기구와 악기류
해시계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책 등 15점이 전시되어 한눈에 볼수있도록하였으나
공사중 출입이 통제되어 효종릉 가는 뒷길로 가서 모습만 보았을 뿐이다.
보호수 수령 600년의 향나무.
그 뒤의 영릉은 17대 효종과 부인 인선왕후의 릉이다.
영릉은 왕릉과 왕비릉을 나란히 하지않고 아래 위로 쌍릉형식을 취하고
홍살문과 혼백이 다니는 신로(神路)가 있었다.
릉내,외는 중국인들의 단체관람객들로 붐볐으며 2000년대 전후 동남아에서 보는
우리들의 자화상같아서 마음의 무게를 느꼈으며
오는길엔 여주 도예촌과 반달미술관 관람을 못하고 온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9.1.20. 온 당 이 우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