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9개월만의 인도행이다. 원래 2012년 겨울 인도로 오려고 했으나, 여행사에서 애를 먹이는 바람에 포기하고, 앙코르와트를 갔었다. 그래서 인터벌이 길어졌다.
델리는 7년만이다. 2006년 겨울 다람살라를 갈 때, 델리를 경유하고서는 처음이다. 풍문으로, 델리가 많이 변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과연 어느마늠 변했을까?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 변화의 진폭은 매우 컸다. 가히 천지개벽이고, 상전벽해다. 옛날의 델리가 어떠했는지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 옛날을 떠올리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다. 과거는 미래를 알지 못하고, 미래 역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가장 큰 변화는 델리의 국제공항과 델리 시내 사이의 지하철이다. 대형 국제공항으로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은 거듭 났다. 넓어지고, 깨끗해 졌다. 처음, 1999년 여름 인도로 왔을 때 출영(出迎)나온 인도인들 사이에서 불어오던 ‘인도 냄새’도 이제는 거의 나지 않는다.
지하철 역시 마찬가지다. 2006년에 왔을 때, 한창 지하철 공사 중이었다. 이번에 제일 해보고 싶은 일은 ‘지하철 타기’였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오토릭샤를 타면서 요금흥정이나 요금시비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외국인으로서는, 노선 갈아타기는 아직 어려운 부분이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하드웨어 측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드웨어는 물질적 측면의 일이 아닌가. 그렇지만 소프트웨어의 차원에서도 델리는 7년 전의 델리와는 많이 달라졌던 것일까? 그런 것은 또 얼마나 변했을까?
마치 변하는 것(隨緣) 가운데 불변(不變)의 것은 있어야 한다는 듯이, 델리는 쉽게 변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우선 무엇보다도 불편한 것은 화장실 문제이다. 이는 하드웨어적, 물질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역시 의식 차원의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화장실 어디에요?”
이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잘 없다. 남자 화장실은 그래도 가끔 길에 지어놓고 있는 경우가 있으나(역시 더럽다), 여자들은 도대체 화장실은 안 가도 된다는 것인지 찾기가 쉽지 않다.
그 큰 ‘레드 포트’(랄 킬라) 안에서도, ‘공중화장실(Toilet Complex)'는 하나 뿐이다. 5루피(Rs 5)의 이용료가 필요했다.
큰 기차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화장실 인심이 야박한지, 어디 보이지도 않는다. 올드 델리 기차역의 경우에도, 그 큰 역에 화장실이 없다.(상금 손님들을 위한 웨이팅 룸에 있지만, 우린 2등 침대차 표라서 못 들어간다.) 2등 침대차 이용자를 위한 웨이팅 룸이 있고, 그 안에 화장실이 있지만, 추접다. 더럽기가 이만저만 하지 않다.
왜 공중화장실을 안 만들까? 올드 델리 기차역에서 지하철(Metro)역 가는 곳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역시 5루피. 그 하나의 공중화장실에 그 많은 기차역의 왕래객을 다 수용할 수 있을까? 왜, 손님들에게 홪아실을 제공한다는 ‘생각’이 안 돌아갈까? 내가 화장실 문제는 하드웨어의 문제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보는 이유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전국에 수많은 ‘콤비니’(편의점)이 있고, 그 안에 다 화장실이 있다. 손님이든 아니든 누구나 이용가능하다.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여기저기 음식점, 카페 등이 다 화장실을 갖추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델리에서는, 올드 델리의 구(舊)시장 ‘찬드니 초크’에 있는 서양식 버거점 맥도날드에도 화장실이 없다.
“먹는 것만 먹고 가든지 사서 가든지 할 뿐, 배설의 문제는 알아서 하라”는 말인가? 어디서 어떻게, 알아서 하지?
또 하나 화장실 문제와 관련한 ‘충격적 사건’은 비행기에서 목격하게 되었다.(사진은 없다. 다만 내 양심을 걸고서 진실임을 확언한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는 ‘에어 인디아(AI)'이다. 홍콩에서 잠시 착륙해서 쉬었다 왔다. 홍콩에서는 많은 인도인들이 탑승했다. 홍콩에서 델리까지 다섯시간 정도 비행했다. 비행기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그 참상에 아연실색했다. 손 씻는 세면대에 인분덩이가 둥둥 떠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이 대변의 뒤처리를 물로 한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에어 인디아’ 비행기 화장실에서도, 인도의 여느 화장실에서 수도꼭지를 준비해 주든지 ---. 그렇지 못한 비행기에 탓다면 비행기에서 준비해 놓은 화장지를 쓸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세수 하는 세면대를 이용한다면, 거기가 막히는 사태를 미리 예상 못했을까?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왕래하는 인도인이라면, 적어도 교육받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아닐까?
그래도 나는 내 볼일을 다 보았다. 내가 부잣집에 태어나서 자랐다면 불가능했으리라. 우리 집 화장실(이라기 보다는 ‘변소’) 역시 그 시대의 여느 농촌의 가정집이 다 그렇듯이 ‘푸세식’이 아니었던가.
염정(染淨)이 둘이 아니라는 것은 진리이다. 그러나, 동시에 염정이 서로 다르다는 것 역시 진리다. 그 양자를 동시에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중도(中道)이고 중관(中觀)일 것이다.
델리의 불변, 또 하나의 문제는 여전히 환경오염이다. 쓰레기 처리와 대기오염 문제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버린다. 쓰레기를 넣어서 버릴 수 있는 ‘쓰레기 박스’같은 것이 아예 없다. 기차역 가은 인구밀집지역에도 그런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어쩌라는 말일까?
정말 인도에는, 우리 초등생들이 배우는 ‘바른 생활’ 같은 것이, 그런 규범의 준수가 불필요한 일일까? 그런 규범을 준수할 수 있는 인프라의 설비 같은 것은 국가나 지자체가 왜 하지 않는 것일까? 가끔 쓰레기를 모아서, 바로 태우는 장면을 본다. 그때 나오는 매연도 몸에는 좋지 않은 것이다.
델리에서 하루 다니면서 구경을 했는데, 소금이 생각난다. 소금이 있다면 목 가글을 좀 했으면 싶다. 기내식에 나오는 소금은 챙겨 올 일이다. 목이 텁텁하다. 가래도 좀 나온다. 하루만 자고서, 푸쉬카르로 바로 떠나온 것이 다행이었다. 출국 시에는 또 사흘을 지내야 하지만 ---.
다만 하나 여행자를 편안케 해 준 것으로, 거지의 부재이다. 추위가 다가올 것을 염려해서 남쪽으로 다 내려간 덕분인지, 아니면 거지가 그렇게 많이 줄어든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찬드니 초크의 자마 마스지드(이슬람 사원) 가는 길가에서 노숙자들을 많이 보았지만, 모여들어서 돈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부산에서 온 아주머니 왈 : “델리는 사람 살 곳은 못 되던데, 여기 푸쉬카르는 좋네요.”
그러한 표현이 심한 표현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델리의 이러한 모습들에서 나 역시 ‘예토(穢土)’를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델리의 겉모습의 어느 부분일 터이지만 ---. 그런 것이 또 없어야 정토(淨土)가 아니겠는가. 예토가 곧 정토라는 원리적 불이(不二)를 외치기 전에, 현실에서 정토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은 정도의 차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환경의식에서 본다면 ‘예토와 정토의 중간’쯤은 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고치(高知) 같은 곳이 정토이고, 인도의 푸쉬카르나 산치같은 곳이 정토라면 말이다.
(2013년 11월 22일. 인도의 푸쉬카르 Green Park Resort)